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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18화 (118/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18)

나르케가 미소지으며 나를 불렀다.

“신부님.”

“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음료여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당연하게 생각 읽는 거 봐라….

지금도 읽고 있으면 그만 읽어라.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르케가 웃음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이동 경로가 대부분 비슷합니다. 주로 온천 보수 공사에 참여한 모양인데요. 어제 희생되었던 마틴 듀러 씨, 그리고 일주일 전에 희생되었던 카린 콜 씨는 왜 개방되지 않은 온천 건물에 발을 들였죠?”

“마틴 듀러 씨는 제 저택의 시종장입니다. 곧 보수를 끝내고 개장할 예정이라, 대공국 정부에서 시찰을 나오기 전에 문제가 없는지 한번 살펴보려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콜 씨는….”

모르는 사람인지 귀족이 제 사용인에게 무어라 말했다.

사용인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용인이 뛰어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온천 보수에 참여한 분들에 관해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고요.”

“예. 카린 콜 씨는 온천 건물에서 뭘 하셨죠?”

“온도계에 이상이 없는지 체크하려고 고용한 분입니다. 그런데 이게 딱 자기가 맡은 일만 하는 시스템은 아니라… 더 정확히 아셔야 한다면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장갑을 끼고 일하나요?”

“지급하기는 했지만… 위험한 게 없으니까요. 타일 작업을 하시는 분이 아니면 대부분 맨손으로 일하셨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을 넘겼다.

온천에 발을 들인 이들에게서만 부마 현상이 나타났다면, 이들이 원인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온천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악마에 씌었다는 사람이 다섯이나 더 있었다.

“페트켈레에서 물을 마셨다는 기록이 다섯 명에게서 동시에 나오는데 여기가 어딥니까?”

“아, 바덴바덴의 공공 식수대입니다. 이곳 온천수는 마셔도 문제없는 물이라서요.”

“…….”

순식간에 나르케가 웃는 얼굴 그대로 굳는 게 보였다.

우리는 말을 잇지 못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 보시겠어요? 좀 뜨겁긴 해도 요즘 날씨에는 좋거든요. 신부님들께서는 타지에서 오셨으니 한번 마셔 보시는 게….”

“하하하, 아뇨.”

나르케가 빠르게 잘라 답했다.

그러고는 귀족을 향해 부드럽게 물었다.

“그곳을 일주일 정도 폐쇄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체크할 게 있는데, 민간에 개방하면 조사에 차질이 생깁니다.”

“폐쇄요? 그건 정부에 우선 문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다른 식수대가 있다면 그쪽도요.”

정확히 왜 폐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눈치지만, 어쨌든 귀족은 최대한 빨리 문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우리는 그대로 성당을 빠져나와 마을을 돌았다.

“스트라우치에게서 영감을 받은 건가.”

“물에 약을 타다니, 확실히 써먹으려는 방식이 비슷하긴 하네~”

나르케가 턱을 쓸며 고민했다.

“루카스, 이건 우리가 입수한 문서에 없었지? 아무것도 보지 않고 통찰을 쓰려니 뭔가 막히는 느낌이라서.”

“아쉽지만 없었어.”

전에는 플레로마와 플레로마 사이에 실적 경쟁이 있다는 걸 알았지.

아인시델의 경우에서 새로운 정보를 하나 더 알았다.

교구끼리도 나름대로 경쟁한다.

교단 전체가 공유하는 계획도 있겠지만, 사실 아인시델처럼 이득을 독식하려는 자가 각지에 없을 리가 없다.

오스나브뤼크를 털었던 것처럼, 이곳의 플레로마 교구를 털어야만 관련된 계획을 파악할 수 있을 테다.

‘굳이 거기까지 파악 안 해도 이미 들킨 셈이지.’

간 크게 이런 짓을 벌이다니.

그때, 나르케가 우뚝 멈춰 섰다.

곧바로 사람 몇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 밤중에 한둘도 아닌 비명이 들리니 본능적으로 피부가 오싹해졌다.

나르케의 반응으로 보아서 이건 또 부마와 관련된 일인 게 분명했다. 나르케와 나는 시선을 교환하고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었다.

“와.”

비명이 들린 지점으로 도착하자, 나르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게, 남빛이던 하늘이 이곳만 까맣게 보이고 있었다.

그 아래 누군가가 어제 본 사람처럼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붙잡고 건물에서 뛰어나왔다.

검은 마력 비슷한 것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저 사람이 이번 희생자일 것이다.

“오늘 화요일인데 주말부터 시작해도 되는 것 맞기는 하냐?”

“하하…. 예정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하겠다고 보고하는 수밖에.”

나르케가 원을 그리며 바닥에 스태프를 내리찍었다.

그가 그린 원이 순식간에 광장 전체로 퍼져 나가, 바닥이 하얗게 빛났다.

“저분 안에 든 게 악마든 플레로마의 성과물이든, 일단 손 좀 써 봐야지. 혹시 내키지 않는다면… 실적 잘 쌓으면 연봉 올라가. 평화 유지비가 나오거든~”

“내키지 않는다고 한 적 없다.”

나는 완드를 휘저으며 답했다.

이게 다 미래의 내 입지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데 안 할 이유가 있나. 애초에 내가 맡은 일이다.

[으아아아악!]

놀랍게도 인간에게서 짐승 소리가 났다.

구마 예식서에서 읽은 것과 같은 증상이었다.

“이름이?”

“멜라니 리터.”

“좋아, 고마워.”

나르케가 스태프를 다시 완드로 바꿔 내며 나를 보고 미소지었다.

“시작하자.”

* * *

대치는 길지 않았다.

저번과 달리, 부마자를 제압하고 상태를 원래대로 돌리는 데에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신력이 통하지 않았다.

엊그제 보았던 자와는 또 다른 사례였다.

‘오늘은 가서 분류 좀 해 봐야겠어.’

아직 우리가 알아낸 것은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감이 왔다.

이것 역시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일만 골라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니, 이 지역만 플레로마의 과감한 계획이 미치고 있다기보다는 다른 지역 어딘가에서도 이만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판단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그때, 교수가 경직된 얼굴로 교실에 들어왔다.

몇몇 학생들이 유독 어두운 교수의 얼굴을 보고는 저들끼리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 때문에 교수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익숙한 이름이 불렸기 때문이다.

“루카스 학생.”

왜 날?

나는 표정을 정리하고 대답했다.

“예, 교수님.”

“지금 짐 싸서 정문으로 내려가세요.”

“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학생들의 눈이 일제히 내게 향했다.

뭘 모르겠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짐을 왜 싸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퇴학당한 거냐?

“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서 전할 말은 아닌 듯하군요. 정문에 아스카니엔의 시종장이 기다리고 있다 하니, 이제 기숙사에 가서 일주일간 집에서 써야 할 물건을 모두 챙기세요.”

‘…시종장?’

그리고 ‘일주일간 집에서 써야 할 물건’이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내가 이제 와서 집에 왜 가는가.

엘리아스가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뒤돌았다.

그렇게 경계심 많던 레오도 이번만큼은 표정을 다듬기 힘들었는지, 눈썹을 좁히고 있었다.

뜻 모를 불길함이 엄습했다.

시종장이 와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늘은 약을 마시는 날이 아니다.

“…집이라니요.”

“내려가면 알 겁니다.”

교수의 목소리는 침통했다.

왜?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 경우의 수가 나왔다.

어떤 경우든 좋은 이유는 아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뇨. 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오늘은 시종장을 만나는 날도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내가 집안 명령으로 시종장을 만나고 있다는 걸 반 친구들 앞에서 입 밖에 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주에 한두 번씩, 집안 사정으로 수업에 빠지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내 좋고 싫음을 따져 가며 질문할 때가 아니었다.

교수가 난감하다는 듯 말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앞문을 두드리고, 자연스럽게 문을 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시간을 더 지체할 수가 없어 올라왔습니다. 도련님과 잠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아, 예. 학생, 지금 바로 나가지요.”

교수가 내게 말했다.

교내에서 이런 식으로 신분이 개입되는 것은 사실 교칙에 맞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교수가 나를 빨리 교실 밖으로 내보내려는 것이 보였다.

“학기가 시작한 지금 왜 집에 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실 수 없다면, 갈 수 없습니다.”

시종장과 교수가 모두 곤란한 얼굴로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이내 시종장이 결연하게 말했다.

“오늘 내로 데사우의 본성에 도착하셔야 합니다, 도련님.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게오르크 아스카니엔 공작 전하께서 제가 아니라 작은 도련님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주위 친구들이 눈치를 보며 그들과 나 사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 네가 이유를 듣고 말고 해서 결정할 거리가 아니라는 뜻이지.’

엘리아스가 느꼈던 모멸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신분제는 표면상의 자유조차도 보장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런 상황이 되니 되레 머리가 차분해진다.

먼저, 게오르크 아스카니엔이 나를 왜 불렀는지 확신할 수 없다.

기껏 2주의 방학을 날려 줬더니, 조례 중 난입까지 해 가며 나를 그곳에 데려가려 하는 이유를 확신할 수 없단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안 간다고 버틸 수는 없다.

명령을 어겼다가 무슨 후환이 있을지 모른다.

또 내가 짐작한 이유가 맞다면….

설마, 그럴 리가 없지만, 정말 그게 맞다면 언젠가는 겪을 일이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나는 짐을 챙기겠다는 명분으로 기숙사 방에 혼자 들어가, 형이 보냈던 약을 세 병 털고서 그와 함께 기차에 탔다. 코어가 미친 듯이 쑤셔 왔다.

아티팩트는 그대로 빼서 방에 둘까 고민했지만, 사람 일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선은 마력이 차단되는 상자에 넣었다.

안할트의 수도인 데사우로 가는 기차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뭘 물어도 시종장은 답할 수 없다고만 했다.

“이제 데사우에 왔습니다, 도련님.”

한참 수십 가지 경우의 대책을 생각할 때, 시종장이 말했다.

우리는 기차역에서 나와, 그 앞에 선 아스카니엔의 마차에 탔다. 그 짧은 사이에도 사람들이 나를 보자 슬슬 자리를 피했다.

‘학교 밖에서는 여전하군.’

물론 학기 초 마차를 탔을 때보다는 양호해 보인다.

적어도 평범하게 사람 꼴은 하고 있어 그런 듯했다.

마법약 대회 일주일 내내 문제 일으키지 않고 돌아왔다는 소식 덕도 조금은 봤을 테고.

플레로마가 나가서 뭔 짓을 하고 오나 궁금했는지, 수요자가 폭증하자 안할트 일간지에서는 바이에른 왕국신문의 중계를 공유했다.

이렇게 태평한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려 노력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수면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집안 생각이 이어졌다.

한참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자, 어느 순간 마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시종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부가 문을 열고 그 옆에 섰다.

“…….”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주 가관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길 양옆에 줄지어 서 있었다.

적어도 본성에 있는 시종과 하인은 모조리 이 자리에 나온 듯했다.

곁에 서 있던 누군가가 시종장이 들고 있던 내 가방을 받아 들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하.”

처음의 대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첫날 눈을 뜬 곳은 영지 내의 수많은 성과 저택 중 한 곳이었지만, 이러나저러나 내가 그 저택이 아니라 본성인 이곳에서 눈을 떴다고 해도 이만한 대우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곳에 귀빈이 왔다는 말이다.

어린 플레로마 주인에게도 체면치레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겠지. 그 귀빈 때문에 말이다.

나는 말없이 그들의 얼굴을 한번 훑어보고, 길을 걸어갔다.

이제 와서 인사할 사이도 아니다. 어차피 여기 있는 모두가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의 심복이다.

나는 성의 문 앞에 멈추어 섰다. 그 옆을 지키고 있던 시종 둘이 문을 열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문을 열려던 시종들이 잠시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서로를 보다, 당황이 묻어 나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입을 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루카는 그런 사람이었으니 저런 반응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나는 문을 바라보며 시종장에게 차분히 물었다.

“아버지는 어디 계십니까?”

“이곳 본성에 계십니다. 저녁 만찬 때에 뵈실 수 있을 겁니다, 도련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제 방으로 가도록 하죠.”

“그 전에 잠시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바로 안내해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게 지금 세 시간을 이동하고서 먼저 살펴야 할 부분입니까?”

싸늘하게 나온 질문에도, 시종장은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예, 도련님. 부탁드립니다.”

적진 한가운데까지 와서 내 의중을 보일 필요는 없지.

나는 말없이 고갯짓했다.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이 따라 들어와 내 교복 모자와 코트를 받아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택은 조용했다.

나는 시종장이 이끄는 길로 걸었다. 성의 왼편 건물로 이동해, 층계 하나를 올랐다.

2층에 올라가면 1층처럼 홀이 나올 것이다. 루카의 기억이 내게 자연스레 펼쳐졌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홀에 다다른 순간, 새하얀 옷을 입은 이가 창문 앞의 카우치에 기대앉아 바깥을 감상하는 모습이 보였다.

“…….”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나는 머리가 차갑게 식어 가는 것을 느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표정 없이 고개를 돌린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나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이어, 처음 이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 보았던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왔구나,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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