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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19화 (119/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19)

이 새끼가 나를 여기까지 불렀단 말이지.

살인마를 마주한 것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앞으로 여덟 달은 더 교황령에 있어야 했다. 아직 그의 업무가 삼분의 일밖에 끝나지 않은 시기다.

나는 미소지으며 그를 바라보다, 그의 옷으로 시선을 두었다.

환자복을 입은 형이 담요를 걷어 내고 내게 다가왔다.

‘환자복이라.’

놀랍군.

자해쇼라도 펼치고 이곳에 왔나?

그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 나는 부러 미소를 지어 비아냥을 참았다.

“못 본 사이 좀 더 큰 것 같네, 루카. 얼굴빛도 많이 좋아졌구나.”

“…….”

“저하, 어떻게 그 몸으로 여기 계셨습니까. 제가 작은 도련님을 직접 방으로 모셔다드리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나오실 줄이야….”

시종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드리안을 바라봤다.

“아닙니다. 동생이 온다니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더군요.”

한시라도 빨리 ‘대가리 굵어진 동생 놈이 그동안 뭔 짓거리를 했나’ 봐야 했겠지.

아드리안이 그를 빤히 바라보는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살피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

“루카, 괜찮아?”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형님.”

아드리안이 미소지은 얼굴 그대로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시종장은 그새 익숙해져 차이를 느끼지 못할 테지만, 작년 9월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뚜렷한 차이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

물론, 그렇다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는 연기를 할 생각은 없다.

형 같은 인간이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변화를 눈치챈 상황에서 여전히 저자세로 나가는 건, 형에게 나를 죽여도 군소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전해진다.

한참의 침묵 끝에,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눈을 휘며 웃었다.

“목소리가 많이 달라졌구나. 밖에서 만나면 내 동생인지도 못 알아보겠어.”

“그렇군요.”

이 살인자 앞에서 더 무슨 말을 할까.

나는 예의상 한번 웃어 보이고 말했다.

“이만 제 방에 가 보겠습니다. 이따 뵙죠.”

발걸음을 돌린 차에, 형이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루카.”

“…….”

“이따 보자.”

고개를 돌려 확인한 아드리안의 얼굴이 더없이 밝았다.

그는 내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속이 뒤틀렸다.

동요하지 않는 게 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껏 내가 준비한 것 중 어떤 것도 그에게 보여 주지 않았으니 형이 동요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속이 뒤틀리는 이유는, 저 웃음 뒤에 무엇이 이어질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미소만 지어 보이고 홀을 빠져나갔다.

시종장이 빠른 걸음으로 나를 따라와, 방을 안내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루카도 어릴 적에는 이곳에서 지냈으니까.

“굉장히 의연하시군요, 도련님.”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설명을 요구하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자, 그가 기억에 푹 빠진 얼굴로 말했다.

“분명 반년 전만 해도 큰 도련님의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리 장성하셔서 아드리안 도련님과 여유롭게 대화하시는 날이 올 줄이야….”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군요.”

“그러실 만도 합니다. 지금 도련님의 모습을 보면 꼭 게오르크 공작 전하의 어릴 적이 떠오릅니다. 이게 도련님의 잠재력이 발휘된 진짜 모습일 테니, 그 전을 낯설게 느끼실 만도 하지요.”

“…….”

‘진짜’라니.

듣기 우스운 말이다.

물론 웃음은 나지 않았다.

“그럼, 저녁이 준비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때 아버님을 뵈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시종장이 예를 표하며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비켰다. 나는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 발을 뗐다.

“…!”

그 순간,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나는 바닥을 짚고 몸을 바로 해 앉았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긴장했던 모양이다.

루카에게 각인된 공포는 나 역시도 쉽게 이겨 내기 힘들었다.

‘의연이라….’

남이 보기에는 그래 보였나 보지.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뇌 구조에 문제가 있는 미래의 살인범 앞에 있으면 평정을 유지하기는 힘들지.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이 이상으로 당황에 대해 당황하면 시간만 버릴 뿐이다.

나는 빠르게 상황을 종료하고 가방을 열었다.

기숙사에서 짐을 챙길 때 레오가 유인물을 전달한다는 핑계로 내게 찾아왔는데, 그때 받은 진정제가 있었다.

하나 까서 입에 넣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치던 심장에 진정제의 마력이 스며들어, 점차 맥박 뛰는 속도가 느려졌다.

‘역시 비텔스바흐 약이다.’

내가 역사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실제 역사에서 바이에른의 왕가가 의학에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그 점은 이곳의 마법 이전 세계에서도 그랬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때마다 아직 조금 낯설긴 하다.

다른 생각을 하자 조금 마음이 편해져, 나는 몸을 일으켰다.

시선이 바로 닿는 곳에 마호가니 문이 있었다.

‘…잠그고 싶네.’

아직 식사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 있으니, 형이 언제 여기로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쓸데없이 대화나 처하자고 하겠지.’

그쪽이 입을 터는 동안 내가 대가리를 쳐도 되는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맥박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그날의 지하실이 아닌데도, 그곳에서 느꼈던 모든 감각이 다시 생생히 살아났다.

‘내 목표물이 이곳에 있다.’

곧 나를 죽일 살인자가, 내가 처형시켜야 하는 적이 내가 선 곳에서 불과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니콜라우스는 이제 많이 준비되었다는 점이다.

동시에 불행인 점이 있다면, 놈이 자해쇼를 벌이지 않고 ‘정상적으로’ 올해 8월에 돌아왔다면 더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그때면 추기경으로서 활발히 경력을 쌓고, 니콜라우스의 인상 점수를 8점, 아니, 그 이상으로 올리고도 남을 시간이다.

황가의 모함까지도 손쉽게 막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아니기에 가능한 여유였다.

‘웃기네.’

그는 나를 감시하고 시험하는 데에 실패했다.

방학 때 나를 집에 가둬 두는 것도, 신문 인터뷰를 통해 루카에게 조건반사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트라우트 교수에게서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 내는 것도.

그래서 직접 나를 보러 오기로 결정했다.

8월까지로 예정된 전출은 그에게 딱히 걸림돌이 아니었을 테다.

‘적의 공격을 막지 않고 크게 다친다면 치료를 위해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으니까.’

나름 영광이다.

그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제 안전을 희생해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만들다니.

놈은 내 변화를 직접 보고 시험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지.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벌일 짓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이 하나 있다.

놈은 나를 또다시 지하실에 처넣고 심문할 것이다.

그리고, 마력의 징후를 발견하는 순간 내가 사회로 돌아갈 길을 모조리 끊어 놓을 것이다.

나는 입고 왔던 교복을 벗고 이곳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미 시종장이 내 키를 대중하고 옷을 새로 맞춰 왔는지, 옷은 제대로 내 몸에 맞았다.

‘이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겠네.’

시종장의 준비성을 보니 이런 부수적인 요소로 체면 상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곳에 있는 동안 잡다한 것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온전히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의 계획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

다시 침대에 앉아 형의 움직임을 생각했다.

교수는 내게 ‘일주일’이라 했지만,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분명 소설에서 루카는 1교육원에 진학하지 못했지. 3교육원에도 가지 못했었고.’

이곳 놈들에게 있어 ‘루카’는 언제든지 집에 처박을 수 있는 사람이다.

시작이 어렵지, 이미 의무교육도 무시한 자들이 나를 제적시키는 데에 주저할 리가 없다.

‘만약 영영 집에 박혀 있게 된다면… 이 경우에 니콜라우스를 내게 통합시킬 시간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트 좀 찾자.

나중에 불태우거나 물에 빠뜨려 증거를 지우더라도, 일단은 쓰면서 정리 좀 해야겠다.

나는 서류 가방을 끌어당겨 손을 넣었다.

따뜻한 털 덩어리가 손끝에 닿았다.

‘음?’

털…?

“…!”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경기를 일으키며 팔을 뒤로 뺐다.

이어 익숙한 덩어리가 고개를 가방 위로 쑥 들었다.

“루카스!”

―“너 어떻게…!”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목덜미를 잡았지만 파이는 전혀 개의치 않고 창가로 뛰었다.

“우와~ 루카스 집 나르케 집 같아!”

―“들키면 어쩌려고 여기까지 왔어?!”

“나르케가 가래! 그리고 나도 루카스랑 있는 게 좋아~”

“…….”

이게 괜찮은 상황인지는 차치하고, 내내 콱 막혔던 숨이 후 빠져나갔다.

왜인지 어깨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파이.”

“응?”

내가 손을 뻗어 내밀자, 창틀에 올라 있던 파이가 자연스레 내 손으로 점프했다.

다행히, 크기가 크기인 만큼 파이의 마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왜인지 모르게 한쪽 앞발에 흰색 리본이 둘려 있었는데, 그게 아티팩트인 건지 평소보다도 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곳에 있어도 문제는 아니겠네.’

파이가 이곳에 있는 게 문제가 된다면 나르케가 보내지 않았겠지. 나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파이를 침대에 내려 주었다.

―“고맙다.”

“뭐가?!”

―“그런 게 있어.”

나는 노트를 꺼내 침대에 눕고 한 손으로는 파이를 붙잡은 채 필기했다. 레오가 준 진정제만큼이나 경직된 근육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안정도 안정이지만, 효과가 하나 더 있었다. 나르케가 파이를 보내 준 덕에 전략적으로도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훨씬 수월해졌다.

창밖이 점점 어두워졌다.

여러 경우에 대한 행동 방향을 정리한 뒤, 나는 시계를 봤다.

‘곧 여섯 시군.’

이미 쓰면서 외웠으니 증거를 남길 필요는 없지.

나는 방의 벽난로에 종이를 던져 넣고, 종이가 재로 변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꼬챙이로 불을 휘저어 나무의 재와 구별할 수 없게 뒤집어엎었다. 잠깐 줄은 불에 바람을 일으키자, 금세 다시 전처럼 크기가 살아났다.

데엥―

일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여섯 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칼같이 시종장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도련님, 지금 식사하러 가시지요. 곧 게오르크 공작 전하께서도 오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결론은 났다.

그가 내게 고문을 가하든, 날 학교에서 자르든,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다.

이전의 루카처럼 굴면 죽음에 더 빠르게 가까워질 것이다.

그 ‘이전의 루카’가 성인이 되자마자 죽은 것만 보아도 형 앞에서 유약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 생존에 전혀 도움되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러니, 그 반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내 변화에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고 해도, 나는 죽음이 확정된 길로 움직여 줄 수는 없다.

* * *

루카스가 만찬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하인들의 눈길은 그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맡은 일이 없는데도 굳이 세팅과 청소를 돕겠다며 들른 사용인들은 루카스를 힐끔대며 보다, 나가서 동료에게 그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이 성에서 아스카니엔의 둘째 공자에 대한 이야기는 들불처럼 퍼지고 있었다.

머리를 자르고 학교에 간 날에 느꼈던 시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기에, 루카스는 덤덤하게 앉아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을 기다렸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공자 저하께서 오셨습니다.”

시종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자, 루카스의 눈이 문가에 향했다.

환자복을 벗고 예복을 입은 아드리안이 루카스를 발견하자 환히 미소지었다.

입을 연 건 루카스가 먼저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

급하지도, 긴장하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마치 어릴 적부터 수천 번은 내뱉은 듯한 일상적인 말투에, 사용인들의 움직임이 얼어붙었다.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다면 모를까, 그들이 아는 아스카니엔의 둘째는 절대 저런 일상적인 인사를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드리안이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다, 부드럽게 웃었다.

“루카에게 이런 말을 들어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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