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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20화 (120/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20)

아드리안의 대답에도 루카스는 태연했다.

“그동안 제가 형님께 소홀했지요.”

“소홀했다니. 무리하지 않아도 되니 그런 생각은 말아라.”

아드리안의 얼굴에는 변함없는 미소가 떠 있었다.

그때 시종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게오르크 아스카니엔 공작 전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그가 오자 루카스와 아드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를 표했다.

“오셨습니까.”

“앉지.”

그렇게 말하는 게오르크의 시선이 일 년 전과는 다른 루카스의 무덤덤한 표정에 향했다가, 금세 거둬졌다.

이제 게오르크가 아드리안을 바라봤다.

“몸은 좀 어떻지?”

“오기 전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집에 오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아픈 것도 잊게 되는군요.”

“다행이구나.”

말과 달리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셋이 마지막으로 모인 자리가 일 년도 더 전이었음에도, 게오르크 아스카니엔은 그 얼굴에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고 있었다.

그를 관찰하던 루카스에게서 비린 웃음이 스쳐 갔다.

하인이 식전주를 셋의 잔에 채우자 게오르크가 기도문을 읊었다.

“은혜로 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축복하소서. 천주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그가 짧게 말했다.

“들지.”

얼마간 포크가 접시에 닿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전채 요리를 다 먹어 갈 즈음, 아드리안이 입을 열었다.

“셋이 함께 식사한 것이 꽤 오래전이었는데, 이렇게 모이니 집에 온 것이 실감 나는군요. 전하께서는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짤막한 대답에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이 대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오르크 아스카니엔은 도통 입을 열지를 않는 사람이었다.

대답 대신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싸늘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보통이었고, 이렇게 대화에 응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기에 받을 수 있는 특혜에 가까웠다.

“다행입니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그린 듯 정석적인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러고는 게오르크와 함께 안할트의 정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 내내 이어지는 아드리안의 기품 있고 부드러운 말씨에, 사용인들은 이제야 이 집의 주인이 돌아왔다는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게오르크 아스카니엔의 태도는 부하를 복종시키는 데에는 특출났지만, 진정한 충성을 유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달랐다. 어떻게 그가 황실과 제국 전역에서 그만한 입지를 가질 수 있었는지, 하인들은 그와 마주할 때마다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아드리안이 게오르크와의 대화를 마무리할 즈음에는 숨 막힐 듯 무거웠던 만찬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린 뒤였다.

이제 아드리안은 루카스를 바라봤다.

“내 동생과도 오랜만에 같이 식사하니 좋구나. 안 그래도 이번에 바이에른 마법약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

“네가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고 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많이 놀랐어.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니 정말 기쁘구나.”

“형님께서 그간 믿고 지지해 주신 덕분입니다.”

루카스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형님께서 사고를 당하셨다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하인들은 이제 당황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지난해까지만 해도 묻는 말에만 간신히 답했던 자가, 이제는 똑바로 형을 바라보며 궁금한 점을 묻고 있다.

반면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그런 변화에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따뜻한 눈길로 동생을 바라볼 뿐이었다.

“면이 사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너도 알아야겠지. 플레로마가 설치한 마법에 공격당해서 의식을 잃었어. 처음에는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국에서 치료받는 게 좋겠다는 진단이 내려왔더구나.”

플레로마라는 말에 하인들이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아스카니엔에서 교육받은 사용인인 만큼 그 반사적인 반응은 신속하게 거둬졌지만, 이미 아드리안이 그 찰나를 포착한 뒤였다.

아드리안의 얼굴이 살짝 굳자 루카스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플레로마에게 공격당했다는 이야기를 플레로마인 동생 앞에서 하면, 그 동생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할 수밖에.

루카스가 제 앞에 놓이는 수프를 흘끗 보고는 다시 아드리안을 보며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최근 플레로마의 움직임이 커졌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가족이 피해를 보다니 충격이 앞서는군요. 빠르게 쾌유하시도록 마음 깊이 기도하겠습니다.”

“…….”

아드리안이 싱긋 미소지으며 답했다.

“고맙구나.”

수프 그릇이 치워지고 이제 빵이 담긴 접시가 놓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미 화제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주로 게오르크와 아드리안의 정치 이야기가 이어졌다.

게오르크와 대화하던 아드리안이 루카스를 보며 말했다.

“루카, 그쪽에 있는 버터 좀 주겠니?”

“…….”

때마침 와인을 마시고 있던 루카스가 무심히 테이블 벨을 흔들었다.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게오르크까지 말을 멈추고 루카스를 바라보았기에, 둘의 대화는 그걸로 끊겼다.

사용인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가와 섰다.

“말씀하십시오.”

“형님께서 쓰기 편하게 놓아드려.”

“예, 도련님.”

자연스러운 명령에, 하인은 어떤 이상함도 느끼지 못하고 홀린 듯 따랐다.

루카스는 저를 빤히 바라보는 둘을 보며 미소지었다.

“저는 이제 쓰지 않으니 편하게 사용하십시오, 형님.”

“…….”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각자 앞에 놓인 잔도 두 개씩 되니 테이블에 팔을 뻗는 것이 오히려 번잡스러운 일이었다.

또 그도 귀족이고, 사용인만 백이 넘는 통치가문의 자식이니 오히려 남을 시키는 게 더 익숙해야 맞았다.

하지만, 루카스 아스카니엔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아드리안이 자신을 지목해 한 말에 대해서는 더더욱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자리의 사용인 모두 루카스가 아드리안보다 낮은 존재라 여겼기에 심히 당황한 채 아드리안의 눈치만 살폈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드리안은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는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루카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 * *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그 뒤 사흘이 지나는 동안에도 루카스를 제 방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저 식사 자리에서 웃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학교생활과 친구들, 그리고 플레로마에 대한 이야기뿐이었으니, 내용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이 성의 사용인 모두가 루카스의 변화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지만, 아드리안은 완벽하게 타인처럼 변한 제 동생을 작년 그대로 대했고, 또 그런 변화에 대해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상할 만큼 평범하고 평화로운 대우였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아드리안은 루카스를 불러냈다.

* * *

혼자 오라는 것이 형의 요구였기에, 나는 하인을 대동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온 곳은 극장이었다.

한 나라의 통치가문쯤 되면 이렇게 집 안에 온갖 시설을 지어 놓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지금 주인의 취향에 맞는 곳은 아니니, 아마 이곳은 전대 공작이 지었을 것이다.

“왔구나.”

내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중간쯤 되는 자리에서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뒤돌았다.

“예.”

나는 무심히 답했다.

그의 목적은 하나다. 내게서 마력이 느껴지는가, 아닌가.

그래서 언젠가 자신을 뛰어넘고 복수할 힘이 내게 있는가.

‘그거 하나 알아보러 왔으면서 동요하지 않는 티 내려고 오래도 끌었군.’

숨길 걸 숨겨야지.

그가 나 하나 살피기 위해 여기에 온 순간부터 그는 이미 동요한 셈이었다.

그의 상태창을 확인하고서, 그리고 그가 정확히 어떤 부상을 입고 이곳에 왔는지 듣고 나서 다시 한번 확신했다.

놈은 일부러 다쳐서 온 것이 맞다.

‘그래서, 며칠을 잠자코 기다리다 굳이 극장으로 불러낸 저의가 뭔지 궁금해지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마치 18년간 친하게 지낸 형제라도 되는 듯이 친근하게 물었다.

“어릴 때 여기 자주 왔는데, 기억해?”

“아뇨.”

“음, 하긴. 내가 열 살 때 넌 세 살이었으니까.”

나는 가볍게 웃었다.

그 엄청난 나이 차이를 인지하고 있으면서 일곱 살이나 어린 동생을 사회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보내 버리려는 점에 대해 전혀 걸리지도 않는가 보군.

“여긴 왜 오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제국2교육원에 진학한 후부터 널 많이 챙겨 주지 못한 것 같아서. 사실 루카 너는 어릴 때부터 방에만 주로 있어서 여가를 많이 즐기지 못했잖아.”

아드리안이 미소지은 채 세트만 있는 무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

그래, 슬슬 본색을 나타낼 때가 됐지.

내가 공기에 흐르는 미세한 마력까지 컨트롤하고 있기에 마력을 들킬 걱정은 없지만, 그냥 재수가 없었기에 나는 그와 한 칸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아드리안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이 나이에 보일 만한 행동으로 여기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이 부른 극단이 무대에 올랐다.

극은 맥베스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름 통치가문에서 고용한 극단이라 그런지, 아주 못 봐 줄 정도는 아니었다.

[명예, 사랑, 친우… 그것 대신 내게는 저주만이 남았구나.]

대사를 한 귀로 흘리며 놈의 계획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 어느새 연극은 끝에 다다랐다. 끝나는 시간만 세고 있을 때, 아드리안이 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몇 번을 봐도 즐겁네.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교훈이 와닿는구나.”

“그렇군요.”

그저 웃음만 나는 말이었다.

교훈 같은 소리 하네.

이 새끼가 언제부터 교훈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불행이었다.

차라리 한두 살 차이였으면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거나 아예 대놓고 치고받고 싸웠을 것이다.

본성을 쉽게 드러냈을 테니, 이쪽에서도 처리하기 편리하지.

지금처럼 저렇게 역겨운 착한 척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때, 아드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약은 꾸준히 먹고 있니?”

“…….”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주제가 이제야 나왔다.

이제 곧 지하실로 직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감정을 싣지 않고 대답했다.

“먹고 있습니다.”

아드리안이 턱을 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들지 않는 모양인데.”

“…….”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연극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대사가 순식간에 내 인지에서 멀어졌다. 지금 중요한 정보만 분석하기에도 부족한데, 그딴 것을 인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글쎄요.”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아, 루카.”

“여기서 더 사실대로 말할 게 없습니다. 이미 그대로 말했으니까요.”

생각해 보자.

그가 지금 ‘약효가 들지 않는다’고 할 이유가 없다.

공기로 떠도는 마력을 감추는 법은 이제 레오나 엘리아스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았다.

감추지 않으면 트라우트 같은 놈들에게 정보가 들어갈 테니, 그것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키워 놓아야 했다.

그때,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얼 하라는지 뜻은 명확했다.

사실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공기 중의 마력을 차단한다 해도, 보조도구를 쓰는 게 아니면 맥박 뛰는 쪽 피부의 마력까지 차단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까지 그가 내 마력을 직접 포착할 길은 없었으니, ‘약이 들지 않는 모양’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경로는 두 가지다.

이게 그의 블러핑이거나, 아니면 어디선가 내가 마법을 쓴다는 정보를 얻었거나.

그렇다면 나 역시도 이 두 가지의 선택지 중에서 그가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 알아야만 다음으로 움직일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어떻게 할까.’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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