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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21화 (121/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21)

멱살을 잡을까 했다.

하지만 내 사욕을 채우자고 시간을 두 번 돌리는 셈이니, 완벽한 포인트 낭비다.

나는 이성을 붙잡고 그의 손에 내 손을 가져갔다. 아니, 그러려 했다.

“장난이야, 루카.”

그가 눈꼬리를 가볍게 접으며 손을 거두었다.

확인하지 않겠다면 포인트도 아낄 수 있고, 극단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나야 문제없지만….

웃음만 난다.

나는 주먹을 날리고자 하는 마음을 누르고 표정 없이 그를 바라봤다.

“널 믿어. 네가 마셨다면 정말 마신 거겠지.”

“…….”

우스운 말이었다.

아무리 마셨다고 말해도 본인의 재미 하나를 위해 억지로 약을 먹였던 게 불과 넉 달 전이다.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구나.”

“감회라니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드리안이 턱을 괸 자세 그대로 중얼거렸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가 가볍게 말을 이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앞으로는 제가 제대로 챙길게요. 살려 주세요…. 라고 했었지.”

“…….”

전부 내가 루카의 몸에 들어와 내뱉은 말이었다.

내 의지가 아니라, 루카의 기억이 형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내뱉은 말.

저절로 웃음이 났다.

“알고 보니 너는 약을 제때 먹었는데도 그렇게 변명했더군. 무서워서 그랬겠지. 천천히 생각해 보니, 내가 괜한 염려 탓에 너를 온전히 믿어 주지 못한 것 같더구나.”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부러 변화 직전의 말을 꺼내어 내 동요를 바라고 있다.

그의 웃음에는 내 상태를 살피려는 시선이 녹아 있었다.

원하는 반응을 선물해 줄 이유는 없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형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으니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내가 목을 칠 텐데 굳이 죄책감을 가져서 어쩔 건가.

그보다….

지금 따져 볼 것이 하나 생겼다.

‘놈이 날 믿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마력을 확인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아까 생각했던 이유와 같을 것이다.

첫째, ‘완벽하게 달라진 마당에 마력을 살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말이 안 되는 추측은 아니다.

약 복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루카가 형에게 느끼는 공포심 덕분이었으니까.

시종장이 직접 약을 먹인다고 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둘째, ‘루카’가 마법을 쓴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우.

아까는 둘 중 어느 쪽인지 알아야 앞으로의 행동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알 필요 없겠어.’

원인이 뭐가 됐든 아드리안은 이미 ‘루카는 마법을 쓸 수 있다’고 결론내렸으니 말이다.

그 결론은 단 하나의 행동으로 이어질 테다.

내 죽음이지.

사회적으로 죽거나, 정말 관짝에 들어가 흙 아래 묻히거나, 둘 다거나.

물론, 성공하게 둘 생각은 없다.

* * *

놀랍게도, 아드리안은 점심이 지나서까지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같이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게 전부였다.

지하실에 가길 바라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원래의 그라면 나를 진작 그곳에 가뒀어야 맞다.

‘놈의 전략이 바뀌었다는 말인데.’

앞으로의 행동 방향을 생각하던 중, 아드리안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연극에 나갔다던데. 그런 부분에 흥미가 있는 줄은 몰랐어. 언제부터 연기를 좋아했니?”

“알고 계시는군요.”

“내 동생 일이니 모를 수가 있나.”

그래, 트라우트가 말해 줬겠지.

나는 태연히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경험 정도는 쌓아 보고 싶었습니다. 마법약 대회에 나간 것도 마찬가지고요.”

“경험이라.”

아드리안이 턱을 쓸며 미소지었다.

“내 동생이 다양한 도전을 할 만큼 성장하다니, 나도 감회가 새롭구나. 분명 반년 전만 해도 사람 앞에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사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의 동요 없는 눈을 보며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형님은 저를 지금까지 살게 해 주신 분이니, 형님께 누가 되는 생활을 이어 나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의심스러울 만큼 태평하게 나를 대하고 있다.

겉보기에 평화롭다 해서 내 속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 자체가 놈의 전략일 테니까.

아드리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는 생각에 잠긴 채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있었다.

“그래, 네 말대로 사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지. 정말 작년과는 완벽하게 달라진 네 모습이 그걸 증명해.”

아드리안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진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네가 변해서 정말 기뻐.”

“…….”

변해서 기쁘다?

순간 머리가 싸늘해져,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 그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런 말을 놈에게서 듣다니 살면서 이보다 아이러니한 경험을 다시 할 수는 없을 테다.

그는 차분히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교황령에 있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됐어. 플레로마들의 코어는 특징이 있어. 대부분 균열이 있고 확장력이 강해. 피를 통해 남의 마력을 흡수하는 코어의 대표적인 공통점이야.”

리히트호펜에게 들었던 대로 비트리올이 들어가야 하니 그렇겠지.

물론 지금 리히트호펜의 정보를 교차 검증할 이유는 없다.

나는 그의 의도를 생각하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건 플레로마에게는 좋은 코어 상태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아닌 걸 잘 알겠지. 인간의 피를 취해 마력을 얻는 사람이 사회에 받아들여질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미소가 없었다. 그저 진중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항상 마음에 걸렸어. 많은 이들이 누리는 평범한 삶은 네게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네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도, 하인들의 물음에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것도, 전부 네게 쓰인 오명으로부터 생겨난 것들이었지.”

“…….”

“멋지구나. 너는 스스로 네 삶을 쟁취한 거나 마찬가지야.”

“…쟁취했다니, 형님께서는 제 변화를 좋게 평가해 주시는군요.”

“좋지 않을 수가 없지. 1교육원에 진학하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을 거야.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겠구나. 그 외에도 네가 응당 얻었어야 했던 것들을 하나씩 되찾을 수 있겠지.”

이제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축하해, 루카.”

“…….”

나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1교육원에 진학하기는커녕 2교육원을 졸업하고서 죽었던 과거와 완전히 다른 말이다.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세웠던 계획은 전부 폐기해야겠어.’

지금 내가 들은 이것이 바로 놈의 전략이다.

놈이 여태 나를 지하실에 처박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까지 오니, 그가 나를 지하실에 처박고 작년처럼 괴롭혔다면….

‘오히려 실망스러울 뻔했군.’

작년 9월의 일차원적인 모욕과 괴롭힘은 이미 철 지난 전략이다.

내가 바뀌었는데 놈이 바뀌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패배는 그에게 있지.

형은 내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급격하다고 판단했을 테고, 그렇기에 내가 숨긴 패를 파악하기 전까지 전진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즉, 놈이 나를 죽이는 시기는 내게 변화의 바람이 분 지금 당장이 아니라, 놈이 완벽히 승리할 수 있는 그때다.

‘시험 하나 해 볼까.’

나는 그가 아까 주었던 차를 매만지다, 한 모금 마셨다.

“형님은 제가 스스로 제 삶을 쟁취했다고 하셨죠.”

“그래.”

나는 잔을 받침대에 놓고, 손을 튕겼다.

화악―!

테이블을 따라 분홍빛 마력이 훅 밀려갔다.

지금부터 알아볼 게 있어서 일부러 출력을 낮추지 않았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뒤로 움직이며, 그의 황금빛 머리칼이 함께 흔들렸다.

잠시 정적이 이어지다, 놀란 그의 표정에 환한 웃음이 배었다.

“이럴수가…. 정말 멋진 마법이네, 루카. 우리 집안에서 이런 빛깔의 마력을 보게 될 줄이야.”

이제 그의 눈에서는 여전히 초조함도, 불안도, 그 어떤 걱정도 읽어 볼 수 없었다.

아주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이만한 평정심은 가져야 11살에 사람 죽이고 4살짜리 동생한테 뒤집어씌우지.’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변경 가능성 창을 열었다.

여명777

― 최종 결말 ‘Chapter X. 사망’까지 647일 8시간 59분 34초

― 변경 가능성: 30.3%

30.3%.

그대로다.

그가 내 마력을 안다고 해서 특별한 위기가 닥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야 아까 추측한 대로 이미 예상 범위 안에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30.3%라는 수치는 이미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겹쳐진 결과물일 테다.

‘좋네.’

나는 창을 지우고 입을 열었다.

“형님께 제일 먼저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아드리안에게서는 여전히 동요를 느낄 수 없었다.

그야 죽여야 할 동생이 알아서 정보를 주는데, 동요할 이유가 없겠지.

나는 그의 이마로 팔을 뻗었다.

지금부터 신력을 사용할 생각이다.

효과는 조금 떨어지지만, 아무리 시간을 돌릴 예정이라도 그가 주문을 들어서 좋을 것은 없으니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야겠지.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

하얀 빛이 훅 퍼져 나갔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다른 이들과 달리 잠에 들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놀랍군.’

그에게는 정신 계열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그건 이전에 형의 상태창을 보고서 예측했던 바였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호감도: ?

칭호: ?

체력: +10

정신력: ?

마력: +9

기술: +10 [+?]

인상: +10

행운: +10 [-10]

특성: 매력 (Lv.10), 근성 (Lv.10), Chapter X (Lv.1)(!)

전에, 아인시델은 마력이 물음표로 나타나 있었지.

아드리안은 정신력이 그랬다.

저 모든 스탯을 꽉 채울 정도면 웬만한 정신력이 아닐 법도 하다.

그가 공기 중에 떠도는 신력 입자를 하나하나 감상하며 감탄했다.

“아스카니엔 사람답게 신력조차도 화려하구나. 우리 집안에서 신력을 쓰는 마법사가 나오다니, 아버지께서 아시면 정말 기뻐하시겠구나. 묻고 싶은 것이 정말 많지만… 그건 네가 먼저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릴게.”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드리안이 보여 줘서 고맙다는 얼굴로 미소지었기에, 나는 똑같은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실상은 어떤지 한번 볼까.

여명777

― 최종 결말 ‘Chapter X. 사망’까지 647일 8시간 58분 00초

― 변경 가능성: 0.3% (-30%p)

‘…-30%p.’

변경 가능성이 떨어진 건 처음 본다.

이건 그냥 죽는다는 말이군.

장기적으로 완벽한 살인 방법을 찾기보다는 지금 당장 나를 죽여 버리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판단했다는 말이다.

재시도를 쓰면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일단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숫자였다.

‘결론은….’

마력은 예상했어도 신력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야 당연하다. 어릴 적 신력의 싹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아직 니콜라우스가 나인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잘 알겠다.’

소설의 흐름대로 살지 않은 덕에 놈의 행동이 바뀌었다.

지금 상태에서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소설과 달리 일이 훨씬 커지리라 예상했겠지. 그것 말고는 전개가 바뀐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아드리안의 완벽주의는 상대의 완벽한 패배와 자신의 완벽한 승리를 목표로 한다.

내 죽음을 미룬 만큼, 이제부터 형은 나를 죽이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물색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계획은 훨씬 더 정교하고 촘촘해지겠지.

솔직히, 그가 여기서 더 마음을 먹는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있다는 말은….

내가 그를 완벽하게 이길 수 있도록 니콜라우스를 완성시킬 시간이 생겼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해 봐야지.

그를 보는 내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재시도 창을 불러내, 입을 열었다.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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