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24화 (124/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24)

“…거래?”

레오가 물었다.

“루카 혹시 플레로마 들어가려고~? 걔네는 말이 안 통할 텐데?”

“그래. 말이 안 통하지.”

내가 거래하려는 대상은 플레로마가 아니다.

대화도 상식이 있는 자들과 해야지, 강물에 약을 타는 자들과 무슨 거래를 할 수 있을까.

거래를 하려면 놈들이 행위를 포기해서 생기는 손실에 상응하거나 초과하는 대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범죄는 거래 대상이 될 수 없지. 나는 플레로마가 아니라 황제와 거래할 거야.”

정보를 밝히는 시기를 잘만 조절하면 바이에른의 영향력을 대폭 늘리면서 니콜라우스의 인상 점수를 8점, 아니, 그보다 더 완벽히 올려 굳힐 수 있다.

엘리아스의 입지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것도 그거지만….’

소설에서도 플레로마는 크게 일을 벌인 적이 있었고, 황실은 기회를 날린 채 제국 신민을 죄다 죽음으로 몰아갈 뻔했다.

그 꼴을 방치할 수는 없다.

황제 이야기가 나오자 엘리아스의 눈빛이 살짝 진지해졌다.

“정확히 어떤 거래를 하려고?”

나는 손가락을 튕겨 차음 마법을 공간에 펼쳤다.

“민간에 닥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당장 수많은 대책을 내야겠지. 어차피 낼 거, 하는 김에 이번 일을 황실의 영향력을 줄일 기회로 쓰면 어떨까 싶은데.”

순간 셋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었다.

이 문제는 빨리 끝나지 않을 것이다.

놈들은 여태까지 벌인 것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았으니 물이 안 되면 땅에도, 공기에도 같은 짓을 벌일 것이다.

문제가 심각한 만큼 해결도 복잡하겠지만, 또 그렇기에 바이에른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

나를 보던 레오가 물었다.

“대책을 거래해서 황실의 영향력을 줄이겠다고.”

“그래. 시스템을 황실과 거래할 거야. 안 그래도 이번 사건으로 바이에른은 황실의 지원을 상당히 받았지. 아마 그쪽은 착한 체를 하면서 뒤로는 언제 큰소리를 칠까 준비하고 있을 텐데.”

엘리아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무얼 말하는지 알아챈 레오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가, 금세 평소처럼 차분히 돌아왔다.

“…간단하네.”

“그래. 간단하지만, 우리가 황실과의 거래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것과 그렇지 않고 움직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 말하는 거야. 섣불리 모든 정보를 일시에 밝히는 선행을 해서는 안 되겠지.”

“신민의 안전은?”

“정보를 밝히지 않겠다는 게 신민을 구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야.”

대가를 받고 무기 제작 기술자를 보내는 것과 시장에 무기 설계 도면과 원리를 낱낱이 뿌리는 것은 다르지.

“정보를 공공재로 만든다면 주도권은 모두에게 공평히 돌아가지만, 해결 방법이 있음을 드러내되 핵심 자원이나 인력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어. 물론 그 주도권으로 지금 이 판국에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되겠지.”

“…핵심 자원이나 인력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레오가 내 말을 반복하며 생각에 잠긴 채 허공을 바라봤다.

어떤 요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계산하는 듯했다.

“황실이 제국의 안위를 바이에른에 빚지게 만들어, 레오.”

그게 곧 엘리아스를 즉위시킬 힘이 될 것이고, 나의 확고한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말에 레오가 부드럽게 웃어 답을 대신했다.

‘반응 확실하네.’

이들에게 이득뿐인 제안이니 당연하지.

나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럼, 이제 거래할 자원부터 확보해야겠지.”

우리 역시 기술도, 정보도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이걸 악마의 짓으로 알고 있으니, 우리의 강점을 만들 시간은 충분하다.

“레오, 국왕 전하를 뵐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대가 언제야?”

“언제든지.”

지금은 자정이다.

국가 재난 상황인 만큼 언제든지 자리를 열어 둘 생각인 듯했다.

‘좋네.’

황실과의 거래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먼저 바이에른 왕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 * *

[악마라는 이름의 집단 정신착란, 제국은 이대로 괜찮은가?]

[12시~6시 제국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피해자 발생… 원인 여전히 ‘불명’]

[다니엘 노이만 뮌헨 대주교 “사탄의 접근이 분명… 경계해야”]

[[바이에른] 오전 6시까지 피해자 207명으로 집계]

[부마 증상과 완벽히 같아… 교황청 “지원 아끼지 않을 것”]

‘난리네.’

나는 신문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르케와 함께 위층의 회의장으로 올라갔다.

30분 전, 나는 국왕 전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연락을 드렸다.

처음에는 국왕 하나를 대면할 생각이었지만, 국왕 전하는 정부 각료와 상하원의 대표 의원도 함께하는 게 좋겠다며 나를 정부 청사로 불렀다.

‘뭐, 나야 좋지.’

대신 정치인 중 플레로마가 섞여 있을 것에 대비해, 나르케와 함께 이곳에 왔다.

우리와 함께 층에 올라온 수행원이 문을 열고 말했다.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각하와 미하엘 슐츠 주교 각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밝은 복도와 달리, 회의장은 마법으로 자료를 띄울 것을 생각해 불을 다 켜지 않아 어두웠다.

자리에서는 서른에 가까운 바이에른 정부의 각 부처 장관과 상하원의 대표 의원들이 어둡게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내가 자리를 찾아 앉자, 때마침 국왕이 회의장에 들어왔다.

“국왕 전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국왕이 의원들을 훑어보고,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도착했군요. 긴히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여러분을 이 자리에 소집했습니다. 그럼, 경만 괜찮다면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를 띄웠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열두 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이번 사건을 보도한 기사를 전부 확인했습니다. 악마의 소행이라는 보도가 대부분이더군요. 직접 현장에 다녀온 제가 보기에도 그들의 증세는 악마의 것과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기다렸다.

나는 가만히 내가 띄웠던 자료를 바라보다, 자리의 장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만약 그랬다면 저는 이 자리를 요청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사건은 악마의 짓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이 보이는 증세가 부마 증세와 같았는데, 악마가 아니라니요?”

장관 하나가 묻자, 다른 장관이 차분히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경께서 하시는 말씀 먼저 들어 봅시다.”

“고맙습니다. 먼저, 얼마 전 저는 플레로마에 진입해 그들의 문서와 약품을 확보했습니다. 국왕 전하께서도 왕세자 저하께 보고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국왕이 확인시켜 주듯 대답했다.

그의 보증이 없다면 내 자료의 신빙성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적절한 반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여러분. 일주일 전, 바덴바덴에서도 같은 문제가 일어났다는 걸 아십니까?”

“…같은 문제?”

“저는 교황청으로부터 신력 지원을 요청받아 구마 활동을 보조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희생자 모두 온천수를 마시거나 만진 적이 있더군요.”

몇몇 장관들의 미간이 좁혀 들어갔다.

‘강 주변’에서 희생자가 집단 출몰한 오늘과의 공통점이 보였으니, 당연했다.

“물에 약을 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비트리올 합성 약품이 지역 온천수에서 검출되었습니다.”

순간 회의장이 술렁였다.

한 장관이 책상을 손으로 짚고 물었다.

“그러면, 지금 그곳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가 도착한 걸 확인한 후부터 철수하더군요. 그 뒤부터 온천수에서도 약물 반응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슬슬 윤곽이 잡히자, 장관들의 얼굴이 지금까지보다 더 굳어 갔다.

“뭘 위해 이런 짓을 합니까? 보복인 겁니까?”

나는 아까 친구들과 읽었던 문서를 띄워 보여 주었다.

“‘비트리올이 코어로 변화하지 않고 기화하므로 부적합 대상자로 판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몸에 약물이 들어갔을 때, 우리가 보았던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면 비트리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 겁니다. 이런 식으로 실험을 거듭해 적합자를 찾아서 세력을 키우고 싶었겠죠.”

정적이 이어졌다.

그들에게는 한 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몰아닥치는 셈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자세하게 하나씩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지.

“경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이 상황을….”

“일주일 전에 겪었지요. 악마의 짓이라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플레로마 측에서 가져온 자료와 비교해 분석했습니다.”

다시 침묵만이 흘렀다.

이쯤 되면 왜 말이 없느냐고 물어야 하나 싶을 즈음, 국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더 볼 것도 없군요. 바이에른은 신께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

신께 버림받지 않았다. 그 말에 몇몇 장관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 전까지 얼굴에 짙게 깔려 있던 수심은 이제 조금 다른 결의 안도와 피로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국왕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나를 바라봤다.

“고맙습니다. 경의 면밀함 덕분에 바이에른이 악의 땅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되었군요.”

이어 국왕이 장관과 의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흉이 무엇인지 이제 깨달았으니, 이제 플레로마에 대응하는 것이 남았습니다. 나는 에른스트 각하가 지금 우리에게 보여 준 통찰로, 플레로마의 생존권 위협 행위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

“따라서 에른스트 경을 마법재난대책 본부장에 임명하고자 합니다. 이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랜 고민도 없이, 다양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무게 있게 들려왔다.

표정만 보아도 모두 국왕의 말에 반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른 지역과 달리, 애초부터 니콜라우스에게 호의적인 지역이었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에른스트 경, 오늘부터 대책본부의 본부장직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

“‘본부’는 각 정부 부처 산하의 단체로서 장관급 인사가 본부장직을 지내는 것이 원칙이니, 동시에 특임장관으로의 임명 또한 필요하겠군요.”

국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꺼냈다.

나는 미소지으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장관이라.’

황실과의 거래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바이에른 왕국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지.

해결 방법이 있음을 드러내되 핵심 자원이나 인력을 ‘바이에른이’ 가지고 있어야 해서 그랬다.

니콜라우스가 왕국군 마법사라는 사항은 애매했다. 바이에른 국적자라고 해서 프로이센 정부에 입성하는 게 불가하지는 않듯이 말이다.

그러니 이번 사건에 걸맞은 무게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뭘 보고하려는지 듣기도 전에 이들을 이 자리에 불렀지. 나를 장관직에 잡음 없이 앉히기 위해서.

처음부터 니콜라우스의 모든 아이디어와 전략을 바이에른의 것으로 못 박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마음에 드네.’

뜻이 같으니 움직이기 편리하다.

“그래서, 경의 의사는 어떻습니까?”

나는 꼭 레오처럼 자신 있게 웃는 국왕을 보며 미소지었다.

“전하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 * *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바이에른 마법재난대책 본부장 취임]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바이에른 정부 특임장관 임명]

아침이 되자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 각지 신문 곳곳에 났다.

이제 자리가 만들어졌으니, 체계를 잡을 시간이다.

나는 신문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똑―

때마침 누군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고 간단히 말하자, 익숙한 얼굴의 누군가가 사용인과 함께 방에 들어왔다.

“에른스트 각하, 긴히 전할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음.’

그를 보자마자 웃음이 났다.

제가 모시는 자에게 반드시 나를 데려오라는 명령이라도 듣고 왔는지,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빠르게 움직이네.’

이전에 봤던 황제의 전령이 다시 눈앞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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