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25)
나는 연락을 받은 지 세 시간 만에 황궁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대기실에서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황궁에 발을 들이자마자, 황제의 사용인들은 나를 곧바로 황제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폐하,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각하가 도착했습니다.”
사용인들이 문을 열고 옆에 섰다.
집무실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을 등지고 앉은 이가 고개를 들었다.
“아, 와 주었군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늘 하던 인사말을 꺼내며 미소 지었다. 황제가 제 앞자리를 향해 손짓했다.
“경이 바이에른의 특임장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게 미덕인 곳은 아니기에, 나는 그냥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오늘 경을 부른 이유를 혹시 짐작하고 있습니까?”
“어제의 부마 사건으로 부르신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여태까지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하루가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제국 전역에서 희생자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백 명이었던 희생자의 수는 이제 천여 명을 넘기고 있지요.”
“예.”
“바이에른 정부에서 경을 대책본부에 올린 만큼 경은 이번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있겠지요?”
플레로마가 이 사태에 끼어들었다는 것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망상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악마와 달리, 플레로마는 누구에게나 실존하는 위험으로 받아들여진다.
플레로마의 짓임을 밝혔을 때 훨씬 더 많은 피해자를 낼 수 있으므로 대응 체계가 잡히기 전까지는 발표해서는 안 된다.
물론 플레로마도 이런 이득을 알고 있을 테니, 조만간 모든 게 그들의 짓임을 밝힐 것이다. 시간이 촉박한 마당에 황제에게 이야기해 혹시 모를 위험을 만들 이유가 없지.
대답하지 않자, 그도 이해한다는 듯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걸 여기서 말해 달라 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경이 임명된 자리가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압니다. 그러니….”
그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제안을 하나 하고 싶군요.”
“말씀하십시오, 폐하.”
“제국의 황제로서 이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내일이 되기 전까지 제국 정부의 마법부와 안보부에서 이번 일에 관한 부서를 묶어 대책 위원회를 만들 생각입니다.”
“…….”
“경이 맡은 업무가 이미 과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나는 경만 한 인재를 더 알지 못합니다. 이곳의 의장직을 맡아 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제국 정부이니, 바이에른이 준 직책보다 훨씬 높은 자리를 주겠다는 말이다.
‘듣기는 좋네.’
더 많은 것을, 더 값진 것을 주겠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지.
하지만 이 자리에 앉을 이유는 내게 단 하나도 없다.
“죄송합니다.”
“…….”
“그 자리는 제게 너무나 무겁습니다, 폐하. 폐하의 깊은 뜻을 알지만 제게는 먼저 한 약속이 있어 따를 수 없는 점, 부디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바이에른처럼 완벽하게 내 편인 곳이면 모를까, 이곳처럼 나의 추락을 기다리는 곳에서는 중한 책임을 맡아서는 안 된다.
급한 불을 껐다고 여겨지거나 조금이라도 흠이 보이면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쓰고 경질될 수 있다.
카타콤 때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득은 이득이지.’
특히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제국 정부에 속한 지금, 기회를 완전히 버릴 생각은 없다.
“아쉽군요, 경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내가 바이에른보다 조금 더 빨랐다면 좋았겠습니다.”
여전히 허물없이 친근한 태도였다.
나는 그를 보고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대표를 맡을 수는 없지만, 자문위원이라면 어떨지요, 폐하.”
이 자리라면 제국 정부에서 헛짓거리를 할 때에 그들을 비판하기도 어렵지 않다.
황제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괜찮겠습니까? 앞으로 경의 일이 많이 바빠질 듯한데, 자문에 응하는 것 역시 경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바이에른에서 깨달은 바를 토대로 프로이센을 돕는다면 새롭게 처리할 일이 많지 않을 테니, 괜찮습니다. 그리해서 제국의 안전을 위할 수 있다면 저야 영광이지요.”
그제야 황제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지어졌다.
“좋습니다. 정부가 아니라 황실에 자문위원회를 신설하지요. 관례상 의장은 제가 될 테니, 경께서 부의장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나는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봤다.
놀랍게도 그는 내 부담을 줄이면서도 공적을 보장해 주려 하고 있다.
의장이 황제인 이상 문제가 생긴다 해도 자문위원회로 탓이 돌려질 가능성은 대폭 줄어든다.
이 정도면, 거래하는 태도로는 괜찮지.
“물론입니다.”
* * *
[황실 마법안보자문위원회 신설… 프리드리히 황제 “부마 문제의 실질적 사령탑으로 기능할 것”]
[프리드리히 황제 “자문위 부의장직에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위촉”]
나는 각지에서 발행된 신문을 하나씩 읽어 나갔다.
황제는 나와 계약서를 쓰고 곧바로 제국신문에 소식을 알렸다.
이후 전국 각지의 신문이 제국신문의 보도를 비슷하게 따라 적었다.
‘그나저나 자문위원회에 대고 사령탑이라는 말을 쓰네.’
웃음만 난다.
이름만 자문위원회지, 이건 뭐….
특이하게도 그는 내가 가져오는 정보와 아이디어를 온전히 내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니, 인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니콜라우스를 대놓고 내세운다.
‘좀 놀랍긴 해도, 그럴 수밖에.’
전처럼 교묘하게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 한다면, 내가 황실에 이름을 얹어 줄 이유가 없지.
때문에 그는 내 심기를 거스를 생각이 없다.
그는 내가 바이에른에서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믿으며, 동시에 프로이센은 그럴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계산이 깔리기는 했어도, 이쪽도 나를 믿어 주기는 했으니….’
이제 믿음에 부응해 줘야지.
지금까지 내가 꺼낸 대책은 두 가지였다.
나는 황실에 출발하기 전 참여했던 대국민 브리핑 보도에 필터를 끼웠다.
[대책본부는 금일 12시부터 영내 모든 강과 하천에 100m 간격으로 단속반과 결계를 설치했습니다. 정화 처리를 마쳤으나, 당분간 강 주위로의 접근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대책은 앞으로 터질 문제를 줄일 예방책일 뿐이다.
지금까지 오염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오염될 사람들을 처리할 방법을 이제부터 세워야 한다.
약에 중독되어 날뛰는 자들을 제압하고 치료하는 방법 말이다.
‘치료법은 일단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레오에게 말해 뒀으니….’
그건 이미 지시가 끝났으니 됐고.
나는 어떻게 해야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제압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알아봐야지.
마법사는 턱없이 부족한데 10분당 한 건씩 신고가 들어오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팀제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신고가 들어오는 족족 현장에 나가고 있다.
‘일단 직접 부딪쳐 봐야 몇 명씩 배치할지 알지.’
이번에 나와 단둘이 출동한 레오가 건물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분은 생각보다 상태가 좀 아닌데.”
“오후부터 나온 희생자 중 제일 강하다 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레오가 내게 눈짓하며 작게 수를 셌다.
그가 수를 다 왼 순간, 나는 희생자가 있는 곳으로 워프했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황실 자문위원회 부의장이 됐다면서.”
“그래.”
상황에 썩 어울리는 대화는 아니었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치료약 개발을 위해 레오에게 맡긴 일이 많아서 그랬다.
레오가 결계를 깨뜨리며 말을 이었다.
“잘됐네. 네가 오늘 얻은 직책만 세 개야.”
“그래.”
“너희 형님께서는 네가 마법을 쓰는 걸 안다고 했지. 그걸 막기 위해 약을 먹여 왔으면서….”
콰앙―!
비트리올이 내가 뻗은 스태프 장막 앞으로 닥쳐왔다.
나는 희생자의 공격을 막아 내며 발뒤꿈치에 힘을 실었다.
레오의 푸른 마법이 하늘을 갈랐다. 동이 터 오는데도 잿빛이었던 하늘이 푸르게 트였다.
촤악― 쾅!
뒤로 밀려나던 레오가 발을 굴러 마력을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약을 먹든 말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걸 응원한다고 하신 건 솔직히 네게 억지로 약을 먹이는 것보다 훨씬 의심스러운 일이야.”
새벽에, 레오와 엘리아스가 형에 대한 이야기를 집요하게 묻기에 짧게 소식을 전했다.
“아마 루카스 네가 나와 친해진 걸 아는 게 아닌가 싶은데. 네가 시종장이 가져오는 약을 먹고도 회복하려면 다른 마법약이 필요한데, 그걸 어디서 구하겠어. 너는 통장에 있던 돈도 아예 안 썼잖아.”
“그래. 형님은 지금 섣불리 움직였다가 일이 더 커질 거라 생각하고 있으니… 아마 내가 몰래 세력을 만들어 놨을 거라 생각하겠지.”
나를 돕는 이가 있다.
이것이 형이 생각할 만한 가장 합리적인 가설이다.
레오가 희생자를 향해 완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왜?”
“네가 얻은 직위만 봐도 답이 나오지.”
레오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다.
니콜라우스의 인상 점수는 반나절 만에 7.6점에서 7.9점으로 치솟았다.
하나도 아니고 두 정부에서 나를 기용해서 그런지, 믿음에 상승효과가 붙은 모양이었다.
“특임장관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드네. 비록 제국 장관만 한 입지는 아니라지만 세 가지 직책을 다 합치면 적어도 아스카니엔과 비슷한 급은 되었겠지.”
“네가 더 신나 하면 어떡하냐.”
“어떻게 지금까지 속였는데 이제 와서 아스카니엔에게 죽을 수는 없지. 물론, 이제 그쪽이 너를 죽이려 한다고 해도 바이에른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너만 한 인력을 잃을 수 없어.”
뭐, 이득이 있으니 당연히 바이에른은 내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잘된 일이었다.
나는 말없이 폭주하는 희생자를 제압하는 데에 집중했다.
한참 뒤, 나는 레오가 완벽히 제압해 둔 희생자의 코어에 완드를 겨눴다. 꼭 귀신에 들린 듯이 사지를 뒤튼 채로 날뛰려 드는 모습은, 몇 번을 보아도 적응되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아악!]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컥…!]
희생자가 내뿜던 검은 연기가 사그라들더니, 그의 사지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레오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우리 둘이서 한 시간 걸렸네. 주변 피해를 막으려다 보니 두 배는 더 걸렸어.”
“으음.”
이 정도면 결계만 치는 보조 인원이 필요하겠다.
나는 가져왔던 수첩에 이런저런 내용을 기록하며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지워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가 내게 말했다.
“그거 다 짰으면 연구소 좀 가자, 루카스.”
“왜?”
“네가 말했던 약물 테스트해 봐. 다 만들었거든.”
* * *
꼬박 이틀을 털어 대응 체계를 완성했다.
때마침 어제까지 학교의 재난 휴일이었기에, 일을 전부 끝내고 등교할 수 있게 됐다.
‘감투는 역시 이름만 좋다.’
대응 체계를 완성했으니 이제 그 체계를 실행할 구체적인 방법까지 생각해야 했다. 또, 바이에른에서 완성한 체계를 황실과도 적절히 거래해야 했고.
물론 그보다는 약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약물을 만드는 건 내 신력을 털어야 했기에, 치유 마법을 받아 가며 온종일 연구소에서 신력만 뽑아냈다.
‘그걸 오늘 또 하러 가야 한다니.’
웃음만 나네.
아무튼 결과는 성공적이다.
첫째로, 인상 점수가 8점을 넘어섰다.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바이에른 영내 긴급 치료소 100여 곳 설치… 의심 증상 발생 시 즉시 예방약 복용해야”]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희생자 등급제 시행으로 처리 시간 3배 단축”]
바이에른 대책본부라는 이름보다 내 이름이 더 자주 언급되는 덕에 그런 듯했다.
바이에른과 제국 정부 모두에서 활동하다 보니 이름을 표기하는 게 편한 건지, 아니면 대책본부보다는 내 이름을 언급하는 게 훨씬 신문 판매에 도움이 되는 건지.
둘째로, 악마의 짓이 아니라 플레로마의 짓임을 보도하면 두려움에 잠식된 자들이 늘어 피해가 더 커지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바이에른이 제국 전역에 긴급 구호 물품으로 약을 공급했다는 사실이 같이 보도된 덕인지 신고량은 평소와 같았다.
나는 수업을 한 귀로 흘리고 노트에 이런저런 사항을 갈겨 적었다.
수업이 끝나갈 때쯤, 교수가 분필을 놓고 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수업은 이쯤에서 마무리하죠. 오늘은 교육부에서 장학사가 나옵니다.”
학교의 분위기는 밖과 다를 것 없이 완전히 어두웠다.
장학사고 뭐고, 이 분위기대로면 학교는 학생 생활 태도로는 아무런 경고도 먹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에 들려온 교수의 말은, 상당히 놀라웠다.
“아직 보도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황실에서 동원령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