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26화 (126/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26)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수님.”

모두가 벙찐 채 교수만 바라보고 있을 때, 레오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15세에서 25세 사이, 수도의 마법학교 학생들에게 동원령이 내려졌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아직 얼떨떨하자, 교수가 말을 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여러분이 유력 가문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해 내려진 결정입니다. 물론 총동원령이 아닌 만큼 자격 요건을 갖춘 희망자에 한해 브란덴부르크 방위군으로 편성될 겁니다.”

그래, 이런 일이 터지면 귀족이 먼저 행동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기는 하지.

종종 이곳이 21세기가 아니라는 걸 잊는데, 지금 또다시 느낌이 왔다.

‘흠.’

10대라는 점이 걸려도 한참 걸리는데, 사실 이 사회에서 귀족 10대가 징집되는 걸 껄끄러워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다.

‘그래도 안전하게 거리 좀 둬야겠는데.’

자문위원회만 맡길 잘했다.

헛짓하면 버리고 떠야지.

노트에 생각을 갈겨 적고 있을 때, 코에서 또다시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한 번 겪었다고, 이제 직접 닦아 보지 않아도 뭔지 알겠다.

‘신력을 너무 많이 썼나.’

내가 가방을 뒤지고 있자 옆자리에 앉은 필립이 플레로마라도 마주한 것처럼 경기를 일으키며 의자를 뒤로 뺐다.

“헉, 뭡…! 아악!”

필립의 입을 주먹으로 쳤지만, 이미 교수와 학생들이 이쪽을 보기 시작했다.

플레로마가 피를 처먹는 놈들이지, 자기 피로 뭘 하는 놈들은 아닌데 순간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인 모양이다.

이해는 간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럴 수밖에.’

니콜라우스의 인상 점수는 지금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데, 플레로마로 오해받는 루카의 점수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마저 형의 큰 그림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교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보고 눈썹을 올렸다.

“학생, 입은 왜 막고 있죠?”

“침 나와서요. 잠깐 졸았습니다.”

“음?”

“세수하고 오겠습니다.”

엘리아스가 낄낄대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에도 할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교수는 여전히 동원령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교수가 무게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플레로마의 테러 행위가 도를 넘고 있지요. 이제 신민들은 먹고 씻는 것 모두 정부에서 지급하는 성수로 간신히 해결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결계가 없었다면 숨 쉬는 것까지 걱정해야 했겠지요.”

“…….”

“지금까지 플레로마가 이런 짓을 벌인 적이 있었던가요? 없었습니다. 제국을, 우리를 우습게 본 것이 아니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교수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어 갔다.

플레로마에 대한 적개심 탓에, 학생들의 표정이 굳었다.

“프리드리히 폐하께서는 일 년 내로 이 상황을 끝내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폭주자를 제압하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셨습니다.”

몇몇 학생들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대부분 조금 당황하기는 했어도 큰 반발심은 없을 것이다.

귀족들은 모두 위기 상황에 신민을 위해 힘쓰는 게 도리라고 배우니까.

‘또 그 높으신 분이 직접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충성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지.’

황제는 바이에른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나를 기용했어도 본질적으로 나는 바이에른 정부에 몸을 담고 있으며, 신민들도 내 성과를 바이에른의 성과로 파악한다.

‘그러니 이쯤에서 통솔력 한번 발휘해 보고 싶었겠지.’

제국2교육원은 프로이센에 있지만, 프로이센이 아닌 타국의 통치가문과 유력 가문 사람들도 함께 다니는 학교다.

통치자가 될 각국의 유력가 학생들을 하나로 묶을 능력이 있음을 확인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신민에게 확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징집 대상이 된 국가들에게 말이다.

지금처럼 다른 국가에 리더 자리를 빼앗기면 앞으로 제국의 맹주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불안했겠지.

결과적으로 만인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는 점에서 신민들의 호감까지 얻을 수 있는 정책이다.

‘바이에른에게 지지 않겠다는 마음 잘 알겠다.’

나는 턱을 괴고 미소지으며 교수의 말을 들었다.

“좋습니다. 말했다시피 심각한 일은 아닙니다. 황실은 에른스트 각하와 함께 플레로마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이 동원령은 폭주자만을 제어하기 위한 것입니다.”

희생자를 폭주자로 명할 생각이군.

그런데….

‘내가 누구랑 뭘 준비해?’

언제부터?

‘이거 재밌네.’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소리 없이 웃었다.

그래, 이래서 언제나 변장이 유용하지.

그 인간이 지금 여기에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그저 관용 표현이겠지만, 황제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는 잘 알겠다.

‘더 얘기해 보라고 하고 싶다.’

내가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레오가 헛웃음을 치며 물었다.

“에른스트 각하가 그리 표현할 만큼 급진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요?”

“학생은 이미 아는 내용이 아닌가요?”

“그런 계획은 어디와도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다. 섣불리 과격하게 움직이는 것은 신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입니다. 그분은 다른 무엇보다 제국 신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분이니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누구에게도 좋지 못합니다.”

내내 비웃음을 흘리고 있던 엘리아스가 놀랍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놀릴 거리를 잡았다는 표정이 얼핏 스쳤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사자가 있는 걸 모르면 또 모르겠는데 쟤는 알고서도 진지하게 잘 말하네….’

레오답다.

교수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주제를 돌렸다.

“착오가 있었나 보군요. 미안합니다. 이따 3시부터 교육부의 장학사가 징집 대상교를 하나씩 살피러 나올 겁니다. 제국2교육원 마법학과는 황제 폐하의 기대가 가장 큰 곳이니, 행동을 주의하십시오.”

그 뒤로 교수의 안내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수업이 끝난 뒤 가방을 챙기고 있을 때, 묵직한 팔이 어깨에 올랐다.

“아마 떨어질 일 없을 텐데. 그치? 잡음 나올까 봐 저러는 거잖아.”

“엘리아스.”

다행히 놈은 차음 마법을 건 상태였다.

그가 바깥을 고갯짓하며 말했다.

“잠깐 모여서 얘기 좀 하자. 레오가 불렀어.”

* * *

그래, 떨어질 일 없을 것이다.

비판이 나올 것에 대비해 있는 형식적인 절차니까.

‘욕먹기 싫은가 보네.’

이렇게 준비하지 않아도 별말 나오지 않을 텐데.

마법사 사회의 젊은이는 비마법사 사회의 젊은이와 다르다.

귀족의 나이는 평민의 나이에서 +10쯤으로 여겨진다.

통치가문의 자식들이 십 대 후반의 나이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만 봐도, 받아들여지는 나이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애초에 십 대 후반이라 완전히 청소년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있지….’

인식 상 청년에 더 가깝기도 하다.

또 이 사회에서 현역 4-50대의 평범한 마법사보다 재능을 타고난 중학생이 훨씬 쓸 만한 인재인 건 사실이다.

“프로이센 땅이 좀 넓지? 죄다 끌어다 써도 부족하니까 이제 학생까지 빼 가냐? 이럴 거면 바이에른에 땅 반절 나눠 줘라.”

엘리아스가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지금 내 방에는 엘리아스와 나르케가 와 있다.

정작 우리를 불러 모은 레오가 아직 오지 않아, 나는 연구소에 전달할 신력을 뽑으며 파이가 돌을 옮기는 걸 지켜보았다.

‘이런 식으로 옮기는 거였냐.’

파이가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앞발을 휘적이며 신력을 썼다. 그러다 힘이 부족했는지 다시 네 발로 걷다, 아까의 행동을 반복했다.

같이 구경하던 엘리아스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아니,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데 매번 치웠던 거야?”

“어쩔 수 없지.”

“피가 얼음이네….”

“안 치우면 공부는 어떻게 해.”

“토끼, 앞으로는 내 방 와서 집 만들어~ 난 공부 안 해서 안 치우니까!”

레오가 들으면 자랑이냐고 할 것 같다.

파이의 귀가 바싹 접히기 시작했다.

엘리아스는 그 모습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우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얘도 신력 쓰는 게 신기하네. 교황청 동물은 역시 뭐가 다르구나.”

“하하, 비밀인데 얘만 이래.”

나르케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처음에는 파이가 신력을 쓰는 걸 알리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한 건지 편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때, 레오가 방으로 워프해 왔다.

“다 와 있었네.”

“그분은 다른 무엇보다 제국 신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분이니….”

“놀려?”

레오가 엘리아스의 등을 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

“폐하랑 같이 뭐 한다고 말한 적 있어?”

“아니. 나는 자문위 부의장을 맡겠다고 했지 같이 전쟁을 하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그래… 그냥 그분 욕심이군.”

“그런데 너는 왜 이제 오냐~?”

엘리아스가 내 침대에 드러누우며 물었다.

“국왕 전하께 말씀드릴 게 있어서.”

“뭔데?”

“마법의학 좀 제대로 배워 보려고.”

“…?!”

엘리아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눈을 크게 떴다.

“네가 마법의학을 배운다고?”

나르케는 아직 통찰을 쓰지 않았는지 그 반응을 의아하게 보고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엘리아스와 똑같이 반응하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마법의학에 두각을 보이는 순간 국왕이 전투마법 쪽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까 싶어 그쪽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솔직히 반항심도 조금 끼긴 했고.

레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냥.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뭐라도 더 배워 두면 좋겠지.”

“너 레오 아니지.”

“…뭐가 아냐?! 루카스도 계속 저렇게 신력만 뽑고 있는데 내가 뭘 못해.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

그제야 엘리아스가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국왕 전하께서 엄청 좋아하셨겠는데. 당장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셔?”

“그러시더라.”

레오가 희미하게 웃고는 우리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이제 잡담 그만 하고, 이거나 봐.”

아까 말했던 동원령에 관한 홍보지와 시험 참가 동의서였다.

동원령이라는 말이 썩 좋지 않다고 여겼는지, 이제는 그저 ‘학생군사단 모집’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엘리아스가 줄줄이 글을 읽다 인상을 찌푸렸다.

“한 학년 마법학과가 총 100명인데 18명만 뽑는다고? 근데 뭔 시험만 한 달을 치냐. 시험 치다 말라 죽겠네.”

“안전이 걸려서 철저히 하시겠다더라. 혹시나 비난받을까 봐 그런 거겠지.”

레오가 턱을 괴고 답했다. 그러고는 우리를 보며 물었다.

“나갈 거지? 루카스 빼고 너희 다.”

“나가야지. 아마 전교생 다 나갈 텐데?”

엘리아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명령이니 거부할 것 같아 보여도, 이 사안에서는 그럴 수 없다.

시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는 순간 귀족이 모범을 보이지 않고 뭐 하냐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으로 만들어질 단체이기는 해도, 신민 앞에서 활동하면 이득도 크다.

오히려 황제는 엘리아스가 참여하는 걸 반기지 않을 것이다. 신민들에게 지지받을 기회가 되니 말이다.

나르케 역시 같은 답을 내어놓았다.

“나는 출신이 걸리는데… 아마 교황청에서는 무조건 나가라고 할 것 같네.”

“그러겠지. 나도 어머니께서 나가라고 하셨어.”

레오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어쩌겠냐.”

레오도 이 나이대의 학생들이 희생자 앞에 서는 걸 걱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함부로 반대 기사를 발표할 수는 없다.

우선, 이 사회는 나이보다는 계급이 우선이다. 귀족 청소년이 징집 대상이 되었다는 문장에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보는 건 ‘청소년’이 아니라 ‘귀족’이다.

사회적 합의가 된 마당에 내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동원을 삼가야 한다고 발표했다가는 적에게 먹이를 주는 셈이다.

‘벌써 헤드라인 기깔나게 뽑힐 게 눈에 선하다.’

그게 안 되면 다른 방식으로 부담을 덜면 되지.

“자문위원회 가서 낮은 등급의 희생자만 상대하게 만들어야겠어. 이 계획을 없앨 수 없다면 애들한테 쉬운 상대만 붙여 줘야지.”

“…음, 그래. 그게 좋겠어.”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이 끝났는지, 나르케와 엘리아스에게 동의서를 주었다.

엘리아스가 주저 없이 대강 글씨를 갈겨 적고 레오에게 내밀었다.

“반장이 모아서 제출해 줘~”

“되게 당연하게 나한테 주네….”

레오가 헛웃음을 치며 종이를 모았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레오, 시험 참가 동의서 남아 있어?”

“음? 왜?”

“한 장 줘. 나도 사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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