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27)
“…뭐….”
“제정신이야~?!”
엘리아스가 웃으며 내 어깨를 콱 붙잡았다.
여태까지 보던 것 중 가장 반응이 격한 걸 보니 정말 놀라긴 했나 보다.
“제정신이야. 일단 왜 나가야 하는지….”
“니콜라우스를 지금 밝힐 건 아니지?! 그쪽은 좀 더 다듬을 거라며.”
엘리아스의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레오가 시기 좋게 문에 차음 마법을 쳤다.
어깨가 으스러질 것 같았기에 나는 진정하라는 의미로 그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래, 아니야. 니콜라우스가 아니라, 그냥 나 그대로 나갈 거야.”
나르케는 뒤에서 입만 벌리고 있다, 통찰을 썼는지 이제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딱히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나르케의 저 반응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일단 내게 손해는 닥치지 않는다는 말이니 말이다.
다른 때와 달리 엘리아스가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자, 레오가 그의 어깨를 붙잡아 자리에 앉혔다.
“일단 들어 보자.”
“고맙다. 너희가 할 법한 생각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나로서 마법을 쓸 거면 니콜라우스를 여태 왜 만들어 왔냐고 묻고 싶겠지?”
레오가 골똘히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딱히.”
“음?”
“그때는 지금하고 상황이 달랐지. 또 니콜라우스는 네가 가진 것 중 가장 강력한 무기야. 처음에는 생긴 게 도둑놈 같아서 좀 그랬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선택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선택이었어.”
“그러냐….”
도둑놈이라니.
그냥 미소짓고 있자 레오가 말을 이었다.
“네가 왜 마법을 쓰겠다고 하는지 알 것 같긴 해. 형님께서 네가 마법을 쓰는 걸 알고서도 그대로 보냈으니,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겠지?”
“그래.”
‘생각했겠지’가 아니고 정말 문제가 없다.
출력을 조절하지 않고 세게 마력을 쏟아부었는데도 변경 가능성은 변화하지 않았다.
‘변경 가능성이 그대로이니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고.’
내가 형 앞에서 마법을 썼다는 건 이미 친구들에게 말했다.
추론해서 알아낸 것처럼 말한다면 친구들을 확신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형님께서 몸을 물릴 만큼 세게 마력을 흘렸는데도 형님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 그 정도 출력으로 마법을 썼다는 건 한 주에 두 번이나 약을 먹고 있는데도 약효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말이고, 그건 다시 말해 약을 먹고 나서 매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뜻이야.”
“그렇지. 아니고서야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까.”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형은 다른 무엇보다 타인의 도움 때문에 나를 내버려 두었을 거야. 진실을 알게 된 자가 생겼을 테니, 함부로 건드리면 일이 커지리라 생각했겠지.”
“그래.”
물론 형의 입장에서는 몇 가지 의문점이 더 있겠지만, 이것이 지금 내릴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예측이다.
나는 곧바로 이 논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을 꺼냈다.
“이쯤에서 문제가 있지. 나는 1세대 플레로마로 오해받고 있지? 형은 내 코어가 계속해서 남의 마력을 흡수하려 한다고 말했어.”
내 말에, 나르케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사람까지 죽여 버릴 만큼 말이야~ 전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그런데도 내가 잡혀가지 않았던 건 형이 내 코어를 죽여 놓았기 때문이야. 제국을 절대로 어지럽히지 않겠다는 맹약의 일부였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양손을 맞잡고 몸을 기울였다.
“지금까지는 코어 등급이 최하위이니 비마법사와 다를 바가 없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건데, 제국의 안전을 직접 책임지겠다고 애걸복걸해서 나를 살려 뒀던 형이….”
책상 너머로 둘러앉은 친구들의 얼굴에 슬슬 갈피를 잡았다는 표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엘리아스가 입을 떡 벌렸다.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약도 들지 않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 왜 그걸 응원하지? 내가 어디에 나가서 마법을 쓸 줄 알고 태평하게 구냐고.”
“…….”
“이대로면 나를 케어하겠다고 미친 듯이 빌었던 형도 아스카니엔도, 황실과의 맹약을 깬 탓에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한데.”
레오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이 있나 본데. 그때, ‘내가 늘 도와줄게’라고 하셨다고 했지. 정말 그 말을 지킬 생각인가 보네.”
물론 그렇다.
하지만 형이 걸린 문제인 만큼 좀 더 면밀히 따져야 뒤탈이 없다.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봤어. 만약 그 말이 함정이라면? 나를 안심시켜 놓고 내가 사람들 앞에서 마법을 쓰는 순간, 황실에 처형 명령을 보낸다면?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 코어가 약으로도 억제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있으니 나쁘지 않지.”
“…….”
“잘하면 내 조력자까지 묶어서 보낼 수 있으니, 좋은 생각이지 않아?”
논리만 보면 그럴듯하나, 형의 계획은 이게 아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변경 가능성이 떨어졌어야 했다.
레오가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시기가 별론데.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약 대회 실시간 송출이 네 인식을 많이 바꿔 놨어. 그 덕을 네 형님도 보는 중이고 말이야.”
계속 말없이 듣고만 있던 엘리아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사람들이 걔보고 폐인을 사람 구실 하게 만들었다면서 칭찬하고 있는 마당에 걔가 지금 널 그런 식으로 포기할 거라고?”
“내 생각에는 당장 플레로마 누명을 씌워서 황실에 처형을 요청하는 것보다 훨씬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상황을 꾸밀 생각이 아닐까 싶은데. 네가 당장 형님을 죽일 수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레오가 말했다.
‘정확하네.’
형은 내가 마법을 쓰는 것까지는 각오하고 있다. 좀 더 품을 들여서, 정교하게 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까지 전에 생각했었지.
나처럼 직접 실험하며 시간을 돌린 것도 아닌데 가장 정답에 가까운 말을 하고 있다.
“그래. 형님은 ‘당분간은’ 플레로마라는 누명을 씌우길 접어 둘 생각이겠지. 형님은 집에서 그랬듯이, 이제부터 내가 마법을 쓰는 걸 응원할 거야.”
태평한 태도로 보아서는 이미 황실의 맹약이 위협받을 경우까지 생각해 뒀겠지. 내 코어가 건강해진 걸 모두에게 드러내도 괜찮은 논리를 만들었을 테다.
‘그러고 서서히 판을 깔겠지.’
내 표정을 본 엘리아스의 얼굴에서 차차 불안이 가셨다.
엘리아스가 나르케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물었다.
“나르케. 예언 좀.”
“하하, 난 괜찮을 것 같은데?”
“정확히 말해 줘.”
“흠, 내가 말해 봤자 의미는 없을 것 같고. 루카스. 너는 지금 루카스로서 플레로마의 이미지를 벗으려고 하는 거지? 지금까지는 이대로 살다가 니콜라우스를 통합시키려고 했잖아.”
“그래.”
잘 아네.
형은 부차적인 문제다.
왜 지금껏 키우려 하지 않았던 루카스 아스카니엔의 마법사 이미지를 지금 키우려 하느냐.
이게 진짜 문제지.
“사실 네가 나선다면 팀의 안전함이 훨씬 올라갈 테니, 학생들에게는 이득이야. 하지만 사적으로는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왜 루카스로서의 이미지를 쌓으려고 하는지 알려 줘.”
“더 말할 게 있나? 플레로마가 플레로마를 때려잡는 것처럼 이미지 바꾸기에 효과적인 방법이 또 없지.”
“하하, 맞는 말이네. 하지만 또 있잖아. 네 입으로 말해 줘.”
이건 전에 바덴바덴에 가서도 했던 생각이지.
이제 니콜라우스의 추락을 염원할 이가 셋이다.
황제, 황태자. 그리고 정체를 밝힌 이후에는 형까지.
아니, 셋뿐일까. 친황제파 정치인 모두가 니콜라우스의 적이다.
“니콜라우스의 추락을 바라는 사람이 많아. 정체를 밝힐 때, 이대로면 내 플레로마 누명은 니콜라우스의 발목을 잡을 거야.”
말없이 있던 레오가 물었다.
“그래서, 미리 플레로마 누명을 벗겠다?”
“그래. 조금이라도 상황을 바꿔 놓아야 해. 특히 지금 같은 상황은 이미지를 반전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상황이지.”
“아, 루카 마력 까면 애들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데~?! 나 내일만 기다린다.”
엘리아스는 이제 언제 불안하게 굴었냐는 듯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 레오가 표정 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루카스.”
“…….”
여전히 무리수라고 생각하나.
‘이건 뭐 변경 가능성 창을 보여 줄 수도 없고.’
그간의 경험 탓인지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들려온 말은 의외의 말이었다.
“말릴 생각 없어. 황제 폐하께서 언제 널 보낼지 궁리하는 건 카타콤 때부터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아까부터 했던 생각인데, 웬일로 너랑 말이 통하네.”
“뭐?”
“야, 그러게 평소에 좀 들어주지 그랬냐~”
이번에는 본인이 더 놀랐으면서, 엘리아스가 장난스럽게 레오의 등을 쳤다.
레오가 헛숨을 쉬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지 알려 줘.”
* * *
‘친절하네.’
정말 모든 언행이 전부 레오답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동아리실에서 짐을 챙겼다.
가방을 들쳐 메고 출입구 쪽으로 다가서서 뒤돌자, 구석에 혼자 고개를 박고 앉은 아델베르트가 보였다.
“불 끌 건데요. 안 나가요?”
“…지금 나갈 겁니다.”
“뭐, 그래요.”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고서 지금까지 세 번은 마주쳤지만, 말은 지금 처음 붙여 본다.
정보를 얻으려면 친해져야 하겠지만….
기분이 구려 보이는데 굳이 말을 걸 필요는 없지. 애초에 신분 때문인지 계속 들러붙어 있는 친구들이 있어, 나까지 그 무게를 더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는 마력 광원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가,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
아까, 내가 시험에 참가하려 한 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 Chapter 5. 좋은 물건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1) 〉
제안 3: 최적의 선택을 하세요. (0/1) (1시간 48분 59초)
* Route 1 — 〈 Chapter 6. 올바르게 행하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말라 〉
* Route 2 — 〈 Chapter 6.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
오늘 낮, 수업이 끝났을 때 눈앞에 떴던 창이다.
늘 그랬듯 내 선택에 따라 전개가 갈리겠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재수 없는 속담이 Route 2에 나온 걸로 보아서 무엇이 최적의 선택일지는 뻔하다.
이미 형이 모든 걸 알아 버린 마당에 더 늦춰 봐야 특별히 득 될 것이 없지.
나는 가방에 손을 넣고 종이를 꺼냈다.
아까 레오가 여분의 동의서를 가지고 있지 않아 본관 로비에 비치되어 있던 동의서를 하나 가져왔다.
내 이름을 동의서에 적은 순간, 눈앞에 새하얀 글자가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제안 3: 최적의 선택을 하세요.’ 완료!
‘Route 1 — 〈 Chapter 6. 올바르게 행하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말라 〉’를 확정합니다.
‘이번 제안은 좀 쉽네.’
물론 내가 이번 일을 기회로 여기고 있었기에 쉬운 거지,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았으면 둘도 없이 답 없는 제안이지.
만족스럽게 미소짓고 있을 때, 뒤에서 아델베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왜요?”
호감도 -5짜리가 나를 왜 부르냐.
그렇게 생각하며 뒤돌았지만, 아델베르트는 한참 말없이 앉아 있다가 고개를 떨궜다.
“아닙니다.”
“…….”
왜 저러냐.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다.
집에 문제가 있는 거면 또 들어 볼 만하겠는데, 그런 이야기는 캐묻는다고 알려 줄 이야기는 아니지.
나는 그대로 간단히 인사하고 동아리실을 나왔다.
다음 날 아침, 교수는 출석 체크를 마치고 신문과 자신의 노트를 펼쳤다.
다른 마법학교도 마찬가지였지만, 물이 오염된 이상 이제 수업은 뒷전이었다.
교수 대부분이 폭주자를 제압하기 위해 나갔기에 수업을 맡을 사람이 없기도 했다.
“…다행히 어제보다는 폭주 건수가 줄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폭주한 자들이 다시 폭주하는 경우가 늘었다 하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에는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명단을 훑더니 우리 모두를 보며 말했다.
“다음으로, 어제 말씀드렸던 학생군사단 시험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마법학과 2분반 50명 중 50명 모두 참가 동의서를 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여 준 용기에 감동했습니다.”
순간, 교실의 공기에 당혹감이 맴돌았다.
누군가 작게 속삭였다.
“50명…?”
“…49명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교수는 그 반응을 제지할 생각이 없는지, 말없이 명단만 내려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루카스 아스카니엔 학생.”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교실이 조용해졌다.
모임 친구들을 제외한 나머지 마흔 명의 눈이 충격을 담고 내게 향했다.
“학생은 코어가 마법일반 9급이었죠. 시험에 참여해도 오늘 저녁 발표될 서류 전형에서 탈락할 겁니다. 마음은 잘 알겠지만, 학생의 경우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다들 이해할 겁니다.”
그러니까 귀족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참여할 필요는 없다, 이거지.
오히려 참여하겠다고 나설 때 더욱 욕먹겠다고 생각하셨겠지.
교수가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지금 철회해도 괜찮아요, 학생.”
“아뇨. 걱정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서류에서는 코어 적합성만 검토하는 걸로 아는데, 검사 결과지는 오늘 다시 제출하면 될까요?”
학생들이 당황스럽다는 듯이 서로를 보다, 나를 흘끗 바라봤다.
교수 역시 내게 의문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건 다시 검사해도 바뀌지 않을 텐데. 새로 제출하겠다고요?”
“예.”
“…그래요, 그러면 오늘까지 내세요.”
교수가 아직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이 교실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나르케와 엘리아스, 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