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28화 (128/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28)

완벽히 얼어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는 중에도 엘리아스는 계속해서 뒤를 돌아봤다.

“자, 10분 쉬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교수의 말이 떨어지자, 엘리아스가 몸을 휙 돌렸다.

하지만 벌떡 일어나 다가온 사람은 엘리아스가 아니라 멜빈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눈을 크게 뜬 채 멜빈을 쳐다봤다.

‘…음?’

놀란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멜빈이 침을 꿀꺽 삼키며 빨리 일어나라는 듯 바깥을 고갯짓했다.

“…왜?”

내 물음에도 멜빈은 말없이 나를 끌고 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나를 화장실에 밀어 넣고 워프했다.

이제 우리가 온 곳은 학생회관 지하에 있는 모임 회의실이었다.

“이런 적극성이 있는 줄 몰랐는데, 멜빈.”

“아…! 안 물어보고 워프시킨 건… 미안. 근데 그게 아니라! 이제 마법 쓰려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임 친구들이 우수수 워프해 왔다.

‘다들 표정 상태가?’

이 좁은 공간에 얼뜬 표정의 사람들이 몰아닥치니 그저 웃음만 났다.

하지만 이렇게 반응할 만하다.

이쯤에서 처음 모임을 만들 때 내가 썼던 논리를 떠올릴 때가 됐다.

‘플레로마를 처단하기 위해 일부러 그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고 했지.’

또, 이것이 나의 독단이 아니라 아스카니엔의 계획이라고 말해 두었다.

나 혼자 플레로마 소문을 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때마침 멜빈이 내게 질문했다.

“아직 플레로마 측에 잠입하지 못했잖아. 괜찮겠어?!”

“괜찮아. 이미 에른스트 경처럼 플레로마 측에 다녀온 사람들이 생긴 상황에서 내가 굳이 연기를 이어 나갈 필요는 없을 것 같네.”

학생들의 얼굴에 충격이 스몄다.

‘플레로마와 접촉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지금까지의 모욕을 참아 왔는데 니콜라우스에게 선두를 빼앗겼다고 생각했는지, 약간의 측은함도 비쳤다.

‘딱히 측은해할 필요는 없는데.’

니콜라우스가 나니까….

사실 여기 놈들은 내가 니콜라우스라는 걸 의심해 볼 법도 한데, 니콜라우스가 유명하지 않을 때부터 그를 레오의 수행원으로 이야기했더니 아예 그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니콜라우스가 자신과 같은 고등학생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물론 이 친구들은 알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지.’

애초에 입이 무겁고 책임감이 강한 친구들만 모아 만든 단체니까.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한 학기 동안 모임 이야기를 어디에도 퍼트리지 않았다.

“너무 그럴 필요 없어. 그래도 레오 쪽 사람들을 도와서 움직인 적이 몇 번 있었거든.”

“…그래? 진짜 괜찮겠어?”

“루카스, 형님도 아시는 이야기야? 플레로마가 아니라는 건 형님이 직접 증명해 주시는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말해 줄 수 없지만, 보도는 내가 말한 내용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로 나갈 거야.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그동안 세웠던 계획을 유지할 상황이 아닌 듯해.”

내 말에 학생들의 눈빛이 변했다.

몇몇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도 같은 생각이지 않아? 플레로마가 물까지 오염시키기 시작한 이상, 이걸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 제국에서 확실히 대응한다는 걸 보여 줘야 할 때야.”

“…그래. 웬만해서는 또 모르겠는데 지금 상황은… 심각하긴 하지.”

다행히 말이 통하네.

지금처럼 잠복만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서는 게 낫다고 생각했겠지.

나는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 학생들을 잘 달래 교실로 돌려보냈다.

나 역시 시간 차이를 두고 교실로 향했다.

그동안 쥐 죽은 듯 조용하더니, 내가 자리를 떠서 그런지 이제 교실에서는 내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쟤 마법 쓸 수 있어?”

“그냥 주먹으로 때려잡을 건가 보지.”

“아니… 쟤 상태로 그게 되냐?”

“…….”

루카가 살이 없는 체질이기는 해도 저런 소리를 들을 만큼은 아닌데.

살이고 근육이고 전부 심각하게 없었던 작년과 달리 서서히 평균치에는 수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겨울이라 싸매서 모르는 건가.’

사실이었지만 계속 생각하면 할수록 왜인지 모르게 정신 승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생각을 지우고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아니, 걔 그냥 구색만 맞추려고 낸 거라니까? 마법 쓸 수 있었으면 진작 썼지.”

“그니까, 그리고 쟤 마법 쓸 수 있는 거면 피 마셨다는 말이잖아.”

“아, 설마….”

내가 진짜로 마법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이제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륵―

문을 열자 학생들의 속삭임이 뚝 끊겼다.

괜히 뒷말을 했다가 걸려서 그런지, 교실은 정규 수업 시간인 오후 12시가 되도록 쭉 조용했다.

“자,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동아리가 있는 학생들은 그쪽으로 가시고, 훈련할 학생들은 훈련장으로 가세요.”

자율 시간이 되었음에도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들 짜기라도 한 것처럼 얼어붙은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알겠으나 나까지 장단을 맞춰 줄 필요는 없지.

‘코어 검사하고, 자문위원회 소집하러 가야겠네.’

전에는 니콜라우스의 이름으로 검사했으니 이제는 루카스의 이름으로 검사해야 한다.

나는 교내의 검사실로 가, 나를 보자마자 얼이 빠진 검사관을 채근해 빠르게 검사를 마쳤다.

그러고는 다시 황실이 내게 마련해 준 전용 워프 좌표로 이동했다.

소집 명령을 내린 지 한 시간쯤 지나, 회의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자문위에 속한 내무국장이 회의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러면, 미성년 마법사의 경우 안전 문제를 고려해 4급 이하의 폭주자에 배치하는 것으로 하고, 1-3급 폭주자를 처리할 인원이 없는 비상 상황에 한해 평소의 두 배 인원을 출동시키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대로 황실에 전달하고, 이 안건은 여기까지 합시다.”

나는 간단히 회의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문위 사무실에 온 김에 자리에 놓여 있던 파일을 살피는 동안, 이곳에서 몇 번 말을 섞었던 마법사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부의장님.”

“말씀하세요.”

“소식 들으셨습니까? 그 플레로마 학생이 징집 자격 시험에 참가했답니다.”

“…….”

여기서도 내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나는 웃음이 나려는 걸 참아야 했다.

대답하지 않자 상대방이 알아서 말을 이었다.

“벌써 황궁에도 정부에도 쫙 퍼졌는데, 모르셨군요. 시험에 합격할 능력도 없는데 이름이라도 들이미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는지….”

교수가 내게 철회를 권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플레로마로 오해받는 사람이, 그것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나서 봤자, 수가 보이는 꾀로 치부될 게 뻔하지.

같은 공간에 있던 다른 마법사가 웃으며 한마디 말을 얹었다.

“최근 들어 성적 좀 받았다고 뭔가 착각을 하는 모양이지요.”

성적을 어떻게 받았는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 참 관심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어떤 놈이 어떤 성적을 받았는지 어떻게 아는가.

나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요.”

“하하, 그건 그렇겠죠.”

그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문위 사무실에서 나와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모두가 마법조차 쓰지 못할 거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저 귀족으로서 욕먹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거 저녁때가 기대되네.’

학생군사단 시험은 한 차례의 서류와 세 차례의 실기로 이루어져 있다.

서류에 통과하면 실기에서 당연히 마법을 쓰게 되니, 황실은 플레로마로 전국이 난리 난 지금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온건한 상황은 펼쳐지지 않겠지.’

그러니 이제 대책을 생각할 때다.

많이 잊히긴 했지만, 루카가 아스카니엔 역사상 가장 강한 마력을 타고났다는 건 이미 전국에 퍼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비마법사와 다를 것 없는 인간이 되었는가?

‘다들 내가 피를 마시지 못해서 그대로 고꾸라졌다고 생각하지.’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 피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고,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피를 마셨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내 코어의 기질 탓이다.

그 기질을 형이 직접 케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운 좋게도….’

대중은 그 ‘케어’ 방식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애초에 형은 약을 먹이는 걸 광고하지 않기 위해, 내 기질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대중에 밝히지 않았다.

즉, 그 빈 자리를 내 논리로 채워도 대중에게는 사실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내가 할 대응은 간단하다.

그저 내가 짜 주는 각본대로 형이 연기에 응하길 기다리면 된다.

* * *

저녁이 되어, 나는 코어 검사지를 제출하고 방에 돌아와 레오가 두고 간 시험 안내서를 펼쳤다.

‘서류 단계에서 최종 합격자의 4배수를 선발….’

최종적으로 여섯 명씩 세 팀, 18명을 뽑기에 서류 단계에서 떨어지는 자는 고작 28명이다.

‘이건 뭐, 볼 필요도 없겠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내 방으로 워프한 엘리아스가 히죽대며 물었다.

“발표 시간 됐는데 1층 안 내려갈 거야, 루카~?”

“사람 몰릴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시계를 봤다.

딱 9시, 합격자를 발표할 시각이었다.

“적당히 30분 후에 나가자.”

“그래~”

엘리아스도 딱히 결과가 궁금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엘리아스가 떨어지면 이 중에서 붙을 인간이 없다.

그렇게, 30분 뒤에 나갔지만 로비는 아직 사람으로 붐볐다.

본관 계단 아래에서 건물을 올려다보던 엘리아스가 혀를 내둘렀다.

“이야~ 이쯤이면 다들 확인했을 것 같았는데?”

“그러게.”

나는 먼저 계단을 올랐다.

“…!”

나를 발견한 학생들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뒷걸음질 쳤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있음에도 이제 들려오는 소리는 나와 엘리아스의 발걸음 소리가 전부였다.

이 마당에 엘리아스는 뭐가 재밌는지 휘파람을 휙 불었다.

사람들이 옆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자, 널찍한 로비 한가운데 마력으로 뜬 글씨가 눈에 훤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2학년 학생군사단 1기 - 서류 합격자 명단 (72)]

나는 찬찬히 제목부터 그 아래의 명단을 죽 훑었다.

[마법학과 2분반/필립 괴링 (특별 6급)]

[마법학과 2분반/율리아 체링겐 (특별 5급)]

[마법학과 1분반/멜라니에 쾰러 (특별 5급)]

‘특별’이면 제국에서 상위 1%에 해당하는데, 역시 학교가 학교인 만큼 특별 글자를 달지 않은 학생은 없었다.

‘여태까지 이 중에서 표준 9급이었으니 눈에 띄었지.’

이제 돌아보니 좀 웃음이 나네.

수많은 이름 아래, 더욱 눈에 익은 이름이 들어왔다.

[마법학과 2분반/루카스 아스카니엔 (특별 2급)]

‘음.’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전에, 바이에른에서 측정했을 때 내 코어 급수는 특별 4급이었지.

이제 특별 2급으로 올랐다.

그 급수를 생각하면 여기 이름이 없는 게 더 이상하지만, 아무리 예상했다 해도 결과를 직접 보는 건 언제나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내가 미소짓는 사이, 엘리아스의 팔이 내 어깨에 올랐다.

나는 그가 차음 마법을 건 걸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좀 가려서 해라.”

“왕국 특임장관께서 고등학교 마법사팀 시험 출전하는 기분이~?”

“재밌네.”

“하하하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력을 쓰지 않을 생각이니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마력보다는 신력을 훨씬 강하게 쓸 수 있다. 신력을 쓸 수 없다면 내 본래 기량의 50%도 발휘하지 못하는 셈이다.

또, 이게 내가 세운 체계를 그대로 따른다면….

‘단순 마력량으로는 1팀 선발까지 가기 어렵겠지.’

체계를 내가 겪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쉽게 짰을 텐데.

‘내가 짠 체계로 내가 시험을 치고 있네….’

아무튼, 팀은 총 3개로, 여섯 명씩 실력대로 자른다.

나는 불합격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1팀에 들 수 있을지 없을지를 따져야 하는 셈이다.

물론 이제 내 기술 점수가 4.5를 넘긴 지금, 충분히 해 볼 만한 일이다.

“이제 1팀 들어야지, 루카~? 나랑 애들이랑 같이 활동해야지!”

“그래.”

“그리고 나 네가 1팀에 선발되는 데에 만 펠 걸었어.”

“…뭐?! 어디에.”

그때, 조용했던 주위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뒤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음?”

엘리아스와 내가 동시에 고개를 돌린 순간, 내 몸이 누군가의 마력에 붙들렸다.

뒤를 확인한 엘리아스가 사색이 된 채 욕설을 내뱉었다.

“…….”

저 멀리, 황실 치안국 옷을 입은 마법사 몇이 내게 완드를 겨누며 다가오고 있었다.

‘올 때가 됐지.’

오히려 안 오면 직무 태만이지.

황실이 직접 플레로마가 아니라고 공인해 놓고 나를 붙잡는 게 좀 우습긴 하지만, 그거야 맹약이 철저히 지켜질 때의 일이었으니 이해는 할 수 있다.

나를 붙든 치안국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루카스 아스카니엔 씨. 조사에 응해 주셔야겠습니다.”

“…….”

학생들의 당황스러운 시선이 내게 들러붙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정문 밖으로 나가자, 벌써 기자들이 그 앞에 깔려 있었다.

‘구색 맞추기라고 생각할 때는 언제고 대단들 하네.’

소식을 듣자마자 이 시간에 부랴부랴 워프해 왔을 생각을 하니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인권은 어디 갔나 싶은데, 그런 쪽으로 현대의 감각을 요구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아닌 듯했다.

물론 이렇게 나와 주면 고맙지.

이제, 나는 합법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토대를 전국에 깔아 둘 것이다.

기자들이 확성 마법까지 사용해 가며 내게 소리쳤다.

“징집 자격 요건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실기 시험에는 어떻게 참여하실 겁니까?”

“피를 마신 겁니까?! 아니면 앞으로 마실 예정이셨습니까?”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하실 건지….”

“토라도 해 볼까요? 직접 보시면 의문이 풀리겠군요.”

순간, 모든 질문이 뚝 그쳤다.

나를 데리고 가던 황실 마법사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좀 역겨운 말이었으나, 그보다는 당황이 더 커 보였다.

그 폐인이 이런 말을 할 사람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이 정도로는 나가야 좀 닥치는군.’

나는 얼이 빠진 주위를 둘러보고, 미소지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형님 덕분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