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30화 (130/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30)

이렇게 된 거 무대라도 서야 하나.

‘되겠냐.’

그렇게 생각했지만 머리는 알아서 계산하고 있었다.

전에 연극 했을 때 500명이 모였지.

두당 1씩만 수급해도 500인데?

‘짭짤하긴 한데. …가 아니고. 정신 차려라.’

연극할 때냐.

그것도 연극부 들어간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잘도 자리를 주겠다.

친구들에게서 어떻게든 조금씩 더 쥐어짤까, 싶었지만….

‘아니, 됐다.’

친구들의 호감도는 열어 보기가 좀 그렇다.

일단 예의도 아닌 것 같고, 이미 값이 높을 텐데 거기서 올려봐야 뭐 얼마나 느냐.

내 학교 인상값이 현재 -7이다. 그걸 0점까지만 끌어올려도 7점, 그렇게 43명만 공략해도 301점이다.

‘43이라.’

그냥저냥 쓸 만한 인맥 43명 만든다고 생각하고 해 보자.

일단 이 체계가 내 목숨을 멱살 잡고 살려 주려 한다는 건 잘 알겠다.

물론 나도 내 목숨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나와는 살짝 지향이 다른 것 같다.

‘호감도 같은 걸로 목숨 구할 생각은 없었다고.’

그래도 포인트를 이런 식으로 보충해 준다는 걸 알았으니 한시름 놓이기는 한다.

친구 하나는 수두룩하게 만들 수 있겠다.

그때 레오가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루카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대충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이 시험이지. 훈련이나 하러 가자.”

* * *

“여러분, 주말에도 출석하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가 이제 두 시간 뒤에 1차 첫 시험을 치르지요.”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일찍 교실에 도착했다.

2분반의 합격자 37명 모두가 나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물론 모임 친구들은 제외였으나, 그중 반은 서류에서 탈락했으니 사실상 30명쯤은 온전히 나를 피하고 있다 봐도 문제없었다.

‘흐음.’

노다지라고 생각하면 나름 긍정적이다.

‘생각난 김에 한 명씩 볼까.’

나는 교수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호감도 창을 열었다.

호감도 +6

교수님….

친황제파 학교에 몸담은 친황제파 마법사인 만큼 정치색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나를 이리 좋게 판단해 주고 있었다니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동시에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더 올릴 것 없는 인물이군.’

좋아, 판단 끝났다.

띠링―!

호감도 +6 [공략 가능]

‘…….’

뭘 공략해? 이게 진짜….

그렇게 생각했지만 제안으로 나오지는 않았으니 나는 빠르게 평정을 찾았다. 이 세계까지 와서 교수 연구실에서 일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지금보다 더 좋은 사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겠지.

하지만 이 체계가 내게 이런 걸 알려 봤자 내 타깃은 호감도 2 이하의 낮은 놈들이다.

낮은 놈들이 올리기도 쉽고 빠르다.

‘그러고 보니 내 옆에 있는 놈도 호감도가 음수였지.’

시험 하나 해 볼까.

나는 고개를 돌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야.”

“…!”

콰앙―!

내가 손을 뻗자 필립이 책상을 무릎으로 치며 경기를 일으켰다.

“…….”

“그쪽 무슨 일입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필립이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놈은 내 코어 안정성 보도가 나고 나서 더더욱 나를 귀신 보듯 봤다.

이런 깡으로 여태 루카는 어떻게 괴롭힌 건가.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하긴 하지.

호감도 -1* [공략 가능]

나는 호감도를 확인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필립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필립.”

“…왜…?”

“졸업까지 필기 힘내라.”

“…응?”

놈의 얼굴에서 필기라면 이제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이 얼핏 스쳤다. 값도 그대로였다.

호감도 -1* [공략 가능]

‘1점이라도 챙겨 볼까 했더니 이걸 안 주네.’

이런 말로 호감도가 오르지는 않는군.

역시 이런 식의 쓸데없는 노력보다는 광역으로 호감도를 올릴 방법을 찾는 게 좋겠다.

“빡세게 써라.”

괜히 내 정신력만 털린 것 같아, 나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파이와 눈을 마주했다.

파이의 입꼬리가 위로 쭉 올라갔다.

호감도 +10 [공략 완료]

‘흠.’

이 +10은 마음에 든다.

그것과 별개로, 파이와 친해졌으니 더 올릴 게 없다는 뜻을 ‘공략 완료’ 같은 말로 표현하나 본데 썩 기분 좋은 표현법은 아니다. 이제 저 창은 그만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눈앞에서 그 문구가 사라졌다.

‘…이거 내 의지로 끄고 켤 수 있는 거였어?’

그때, 교수가 나를 불렀다.

“먼저, 루카스 아스카니엔.”

이름이 불린 순간 교실의 분위기가 묘하게 경직되었다.

교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한참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엊그제, 코어 안정성이 높게 나왔더군요.”

“예.”

“지난 18년간….”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그 이야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교수가 고개를 살짝 젓고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학생이 처음으로 마법을 쓰는 날이 되겠군요. 시험 과정을 전부 중계하기로 했다는 점은 미리 알고 시작합시다. 여태 마법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 긴장하지 말고 가볍게 체험한다고 생각하고 임하세요.”

처음으로 마법을 쓴다는 말에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잠시 닿았다.

‘여전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시는군.’

아마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여길 것이다.

코어 안정성은 실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여태 마법을 배우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지.

내가 구구절절 해명해 봐야 딱히 나아질 것 없다.

“예, 그러겠습니다.”

“좋습니다. 자, 1-2차는 팀 시험이지요. 1차 첫 번째 시험 이후에 조를 짜기로 되어 있었는데, 벌써 명단을 적어 낸 사람이 72명 중 60명이 넘더군요.”

‘급하네.’

나와 팀이 되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다.

당장 어제까지 레오와 엘리아스, 나르케에게는 다른 학생들의 파트너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사실 다른 평범한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내게는 단 하나의 요청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내 파트너는 눈치 게임에서 실패한 누군가가 될 것이니, 다들 기를 쓰고 파트너를 찾아다녔을 테다.

내 추측이 맞냐고 나르케에게 물었는데, 어색한 웃음이 답으로 돌아왔다.

정답이라는 뜻이었다.

“우리 반에서는 다섯 명이 아직 명단을 내지 않았군요. 천천히 조를 짜도 문제는 아니지만, 이제 남은 인원이 얼마 없으니 슬슬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교수가 명단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율리아 체링겐.”

“예.”

“2분반 실기 상위권 학생 중에서는 유일하게 아직 조를 짜지 않았더군요. 실력이 맞는 친구와 함께해야 2차에 선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상위권쯤 되니 교수가 직접 챙겨 주는 게 보인다.

나는 그저 턱을 괴고 교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험까지 30분쯤 남았을 때, 소식을 전하러 온 직원이 교실에 들어오고서야 교수의 기나긴 당부가 끝이 났다.

“자, 1분반 합격자 35명은 벌써 시험을 마쳤다는군요. 우리도 시험장으로 이동합시다.”

* * *

시험장으로 마련된 거대한 학교 체육관은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학생들은 긴장했는지 모두 굳은 얼굴로 허공만 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나를 보고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얼굴에 적개심보다는 공포와 호기심이 어려 있었기에 딱히 뭐라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휙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1차 첫 시험은 그냥 개인별 실력 체크지.’

바이에른에서는 실제 희생자로 실력을 체크했는데, 학교에서는 그럴 수 없어 훈련할 때 서로 희생자 역을 맡았다.

‘혹시 시험에서 희생자를 실제로 데려다 놓는 미친 짓을 할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시험을 치르는 의미가 없는 상황이지.

“미메시스~?”

옆에서 엘리아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학교는 황실과 교황청의 도움을 받아 공간 마법 아티팩트를 만들었고, 그걸 이용해 희생자의 폭주 모습을 구현했다.

비록 지금은 안전상의 이유로 희생자 대신 구(球)를 가져다 놓았지만, 아마 시험 차수가 늘면 구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이 나올 것이다.

학교는 그 아티팩트를 이용한 훈련 시스템을 미메시스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이놈들 그리스어 뒤져라 외우게 할 때부터 알아봤지. 자랑스러운 우리말을 좀 활용하면 안 되겠냐? 그리스어는 그놈의 동사 변화 때문에 아직도 좋은 기억이 없다.”

“하하….”

그때, 누군가의 시험이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삐익―

[3분 57초.]

[종합 2+. 수고하셨습니다.]

“오~ 좀 하네. 지금까지 계속 3등급 애들만 나와서 재미없었는데.”

6등급까지 +, 0, -가 구분되어 있기에 총 18등급제다.

그중에서 2+면 꽤 하는 편이긴 하지.

엘리아스 말대로 지금까지 학생들은 대부분 3~4등급에 몰려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좀 대놓고 점수를 공개하는 거 아니냐.’

이거 현대였으면 민원 들어올 것 같은데. 시험 칠 때 쓰는 아티팩트를 이제 공개한 것도 사실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다들 강하게 크는 시대라 그런지 별생각 없어 보였다.

이어, 다른 방에서도 알림음이 들려왔다.

삐익―

[7분 17초.]

[종합 3. 수고하셨습니다.]

“7분은 좀 심하네. 기록 누가 깨냐~ 아직 레오도 나르케도 안 들어갔지?”

“어.”

엘리아스가 팔짱을 끼고 휘파람을 불더니, 나를 불렀다.

“루카. 그거 알아?”

“뭔데.”

“이번에 2학년 기사학과랑 행정학과 애들 사이에서 너 몇 등급 받을지 내기 붙었다.”

[다음, 25번, 루카스 아스카니엔. 26번, 한나 노이도르프. 27번….]

“이거 탈락하는 시험은 아니라지만… 원래 다른 과목은 4- 아래가 낙제잖아. 너 4등급 이상 받을지, 낙제점 받을지 내기 붙었어.”

“그러냐?”

이런 걸 시험 직전에 말해 주다니 정말 좋은 친구다.

물론 낙제 같은 말도 안 되는 항목으로 내기를 하고 있으니, 말해도 부담 없겠다고 생각했겠지.

엘리아스가 등을 팡팡 치며 웃었다.

“힘내, 루카! 나 네가 4등급 이상 받는 거에 심부름권 열 장 걸었어~! 따면 전부 다 너한테 줄 테니까 실컷 부려 먹어.”

[다시 한번 알립니다. 25번, 루카스 아스카니엔. 26번….]

초등학생이냐….

나는 대강 그의 말을 흘리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뒤의 문이 닫히고,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30초 후 1차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완드를 손에서 굴리고, 앞을 바라봤다.

[3, 2, 1. 시작합니다.]

눈앞에 새까만 덩어리가 나타났다.

비트리올처럼 까만 점액이 그 표면에서 일렁거렸다.

* * *

“반장.”

“이름 불러.”

레오가 표정 없이 시험장 위쪽의 중계 영상을 보며 대답했다.

아직 시험은 시작하지 않아, 모든 영상에는 하얀 공간만 보였다.

“레오, 루카스 어떻게 될 것 같아?”

“뭘 어떻게 돼.”

“제대로 마법 쓸 수 있을 것 같냐고.”

“…….”

제대로 마법 쓸 수 있냐니.

니콜라우스를 상대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루카스에게서 니콜라우스를 겹쳐 보지 않는 이들의 생각은 이렇구나 싶다.

“저러다 학교 날리고 피 빨아먹는 거 아냐? 솔직히 관상은 1학년 때보다 지금이 더 그러게 생겼는데.”

“관상 뭐야.”

한 친구가 웃으며 묻자 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작년엔 그냥 존재감도 없고 그랬는데 올해는 표정부터가… 뭔 말인지 알잖아.“

“아, 알지~”

레오는 무어라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루카스를 변호하기에 자신은 위치가 너무 불리했다.

어차피, 실력이든 헛소문이든 전부 직접 보고 나면 해결 될 일이다.

레오는 간단히 대답했다.

“검사하면 알겠지.”

“아, 바이에른에 검사하러 간댔지.”

그때 주위에 있던 학생이 입을 열었다.

“야, 쟤 마법 제대로 쓰는 거 궁금하긴 하다.”

“기대하지 마. 이거 진짜 성적평가였으면 낙제할걸.”

“그래, 여태 마법 배운 적도 없는데 뭘 바라.”

“그건 그렇긴 한데.”

학생들이 팔짱을 끼며 중계 화면을 바라봤다.

같은 시간에 시험을 치고 있는 다른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기 중인 학생들의 시선은 모두 한 화면에 머물러 있었다.

화면 속 루카스가 완드를 뽑아 손에서 돌렸다.

[3, 2, 1. 시작합니다.]

안내음이 끝나자마자, 루카스의 흑단 완드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아니, 완드가 아니었다.

그 완드를 쥔 손에서부터 마력이 솟구치고 있었다.

* * *

학생들의 충격을 덜기 위해 인간형이 아니라 구를 가져다 시험을 치게 했다고 했다.

이해는 간다. 코어를 터트리려면 심장을 공격해야 하는데, 실전에 나가지도 않은 학생들이 그걸 하기는 무리지.

물론 내게도 이득이었다.

제압만 된다면 치료받고 나아질 여지가 있다지만, 죽기 일보 직전의 얼굴을 눈앞에서 보는 건 단순히 보고서에 적힌 숫자 너머로 희생자를 떠올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는 아니고….

‘빠르게 끝내되 초짜 티 좀 내줘야지.’

그래서 완드가 아니라 손에서부터 마력을 좀 뽑아 봤다.

여기서 받는 등수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게서 니콜라우스의 움직임이 보여서는 안 된다.

[시작합니다.]

그 말과 함께 미동 없이 허공에 떠 있던 구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 사방이 새까만 연기로 가득 찼다.

‘모양만 다르지 기본적으로 같네.’

이미 현장에서 수십 번을 마주했던 상황이다.

나는 신체 장막을 두르고 손으로 마력을 끌어 담았다.

손바닥에 느껴졌던 미약한 열기가 순간 폭음과 함께 불길로 번졌다.

콰앙! 화르르륵―!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나는 손가락 사이에서 다시 한번 완드를 굴렸다.

두 배 이상, 최대치를 출력하는 마법식으로 신력과 마력 모두에서 공통으로 사용한다.

사실 보통 특별한 의도가 있지 않다면, 숙련된 이들은 무영창으로 식을 발동시킨다. 그런 만큼 영창은 어디까지나 내가 초짜라는 걸 광고하기 위한 눈속임이니, 나는 오히려 출력을 낮춰야 한다.

나는 수식의 일부를 바꾸며 불길을 휘감은 스태프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콰아아아앙―!!

불길이 스태프를 타고 내 팔을 잡아먹을 듯이 솟구쳤다. 동시에 내가 선 자리부터 새빨간 마력이 파도처럼 밀려 나갔다.

성공이다. 이 정도는 영창 없이도 이끌어낼 수 있는 마력이었다.

쾅―! 콰앙―!

마력에 자극받은 새까만 덩어리가 미친 듯이 사방에 비트리올을 쏘아대고 있었다.

이 경우 민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희생자를 조준해 최소 범위로 결계를 치거나 정확히 동맥 또는 코어를 노리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 드러냈다가는 초짜 티는커녕 몇 번 해 본 사람티가 날 게 분명하다.

‘초짜라면 어떻게 하나.’

생각보다 초짜들은 정답을 잘 찾는다.

그 방법이 자주 비효율적이기는 해도.

그러니 내가 할 것은….

이 공간 전체를 내 마력으로 가두는 것이다.

나는 좌표를 머릿속에 그린 채 다른 팔을 내지르며 손가락을 튕겼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탁―

순간 비트리올 하나 없이 청명한 공기가 얼굴에 훅 끼쳐 왔다.

내 앞의 불길과 비트리올이 깨끗이 걷히며, 분홍빛의 두꺼운 장막이 미처 잡히지 못한 불길과 나 사이를 갈랐다.

후욱―

퍼어엉!

한 템포 늦게 굉음이 들려왔다.

빠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빠악! 드드득― 드드드득―

동시에 돔 형태의 장막이 잘게 흔들렸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며 스태프 끝으로 마력을 밀어 보냈다. 귀가 찢어질 듯 온갖 소음이 청각을 채웠다. 바닥의 타일이 차례로 깨져 나가며 그 사이로 내가 불어넣은 마력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퍽― 투둑―

붉은빛으로 번쩍이던 내부가 온통 까맣게 변했다.

장막이 부식되듯 작게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좋아.’

저 구체의 잘못 자리잡힌 비트리올 코어가 터졌을 것이다.

마력을 한 번 더 밀어붙이려 스태프를 쥔 손에 힘을 실은 순간, 익숙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삐익―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58.33초.]

그 순간, 돔 안의 새까만 공기도, 비트리올도 모조리 사라졌다.

‘58? 초짜 티 내길 잘했네.’

아니다.

티는 못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초짜라고 우기기 위해서 몇 가지 장치를 해 두길 잘했다.

나는 미소지으며 땀을 닦아 냈다.

‘그래서, 점수는?’

보통 함께 발표되는데 이번에는 좀 일찍 끝내서 그런지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중계 카메라와 스피커가 있는 곳을 바라본 순간, 안내음이 들려왔다.

[종합 1+.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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