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31화 (131/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31)

아스카니엔이 시험장에 들어가고 나서, 30초가 지나자 시험을 시작한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주변에서도 결과가 궁금한지 웃음 섞인 물음이 오갔다.

“쟤 몇 분 걸릴 것 같냐?”

“10분? 30분?”

“얘 지가 10분 걸렸다고 다 10분 걸릴 줄 아네.”

“아, 나 꼴찌하게 생겼다고. 쟤라도….”

콰앙! 화르르륵―!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불길이 팔을 타고 오른 순간, 학생들의 웃음이 멈췄다.

방금까지 레오 옆에서 낄낄대던 한 학생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붉은 마법은 비트리올과 더불어 플레로마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물론 헛소문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소문을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 광경을 보고 플레로마 따위를 떠올린 학생은 없었다.

‘…색이….’

붉은 계열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빛깔이 다채롭게 뒤섞여 스태프를 따라 흘렀다. 분명 불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주위로 흐르는 빛 때문에 마치 신력처럼 보였다.

“야, 쟤….”

순간 중계 카메라가 까맣게 변했다가 지직거리며 돌아왔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불길이 시험장을 덮쳤다. 동시에 대기하던 학생들에게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배운 적 없다며?!”

“뭐야?! 오늘 처음 쓰는 거 아니었어?”

“…….”

학생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잠깐. 진짜 뭐야?’

내 눈이 잘못되었나.

이게 그놈이 쓰는 마법이라고?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건 전적으로 아스카니엔의 마법이었다.

물론 루카스도 아스카니엔이지만, 당연히 그런 의미에서 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아스카니엔의 마법은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마력이 여러 빛깔을 띤다는 것은 사용자의 경지가 높다는 뜻이기에 아스카니엔 출신 마법사들은 직계든 방계든 어디서나 환영받았다.

하지만 이게 진짜 놈의 실력이라면 방계는 물론이고 가문의 본류인 게오르크 아스카니엔도, 아드리안 아스카니엔도 전부 그런 평가를 듣기에 모자라다.

그제야 어릴 적, 아스카니엔의 초대 마법사를 그대로 빼다 박은 이가 사실 플레로마였네 뭐네 하던 어른들의 안도와 비웃음이 떠올랐다.

넋을 놓고 화면을 보던 학생은 이제야 당혹감에 고개를 돌렸다.

“야, 레오….”

레오는 그 화면을 보고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희열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미소였다.

‘…아스카니엔이라면 인상부터 구기고 보는 놈이 왜?’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레오가 무슨 일이냐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봤다.

“왜?”

“…쟤 지금… 아니, 쟤 마법 배운 적 없지 않아?!”

“없지. 놀랍네.”

“…….”

‘놀랍네’로 치부할 마력이 아니다.

기술같은 것은 솔직히 일개 학생인 자신이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 머릿속에는 딱 두 가지 인상만이 박혔다.

마력의 빛깔과 힘을 전혀 들이지 않고서 운용하는 마법의 규모.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공격을 처리했던 학생들과 달리 그는 처음 섰던 자리에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마력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

아스카니엔은 슬슬 망해 간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가문이다.

우선 게오르크 아스카니엔의 병적인 무기력증과 횡포 탓에 그랬고, 둘째로는 저 플레로마 탓에 그랬다.

아니, 루카스 아스카니엔의 기질이 밝혀진 후부터 게오르크 공작에게 병이 찾아왔으니 아스카니엔이 기울어 가는 건 전부 저 친구 때문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덕분에 아스카니엔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

삐익―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58.33초.]

“…….”

시험장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입을 다물고 있는 이를 찾아보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여태까지 바로 들려오던 등급 발표는 한참 뒤에야 들려왔다.

[…종합 1+. 수고하셨습니다.]

* * *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1+.’

학기 말에 보고서 점수를 합산한 덕에 간신히 낙제는 면했지만, 루카는 언제나 실기에서 6-, 최저점을 받았다.

루카뿐 아니라 나도 1학기 내내 그랬고.

‘좋게 평가해 주니 고맙네.’

그 순간, 익숙하면서 이질적인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호감도 50 달성 (50/300)

어?

“…….”

나는 입을 벌리고 그 창을 바라봤다.

한 번에 50이 올랐다고?

눈을 감았다 떠도 내가 본 것은 여전했다.

순간, 광역으로 호감도를 올리려 했던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아하.’

쉽네.

연극 무대뿐 아니라 이것도 따지고 보면 광역으로 올릴 방법이긴 하지.

‘좋다’는 인식 없이도 ‘의외네’ 정도의 감상으로도 +1쯤은 오르는 모양이다.

순간 지금까지와는 본질부터 다른 웃음이 나, 나는 급하게 입을 쳤다.

카메라를 의식한 건 그 이후였다.

‘…….’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웃는 놈도 다 있다.

표정을 정리하고 문을 연 순간, 그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람과 부딪힐 뻔했다.

뒤로 물러나기도 전에 때마침 다른 팝업창이 나타났다.

호감도 60 달성 (60/300)

이건 왜 뒷북이냐? 제국신문 중계 시차 때문인가.

그때, 엘리아스가 놀릴 거리를 잡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붙잡았다.

“루카! 기분 좋아~? 좋지?!”

“아니. 갑자기?”

“방금 1+ 받고 웃는 거 다 찍혔어. 여태 6- 받을 때 답답해서 어떻게 살았냐~ 속 시원하지?!”

‘아.’

다들 이런 식으로 오해하겠군.

15포인트 획득에 1/6가량 가까워져서 그런 것이지만 그걸 설명할 길이 없었는데, 다행히 허공 보고 웃는 미친놈으로 여겨지지는 않겠다.

“루카, 웃어도 돼. 넌 내 만 펠을 지켰어. 따면 전부 너한테 줄게!”

“심부름권 10장이라며.”

“이로써 1팀 합격에 가까워진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난다.

돈을 대체 어디서 걸고 온 건가.

“어디에 건 거야. 학교는 아닐 테고.”

“음~ 있어. 인생 패배자 모임.”

“왜 걸었냐.”

“걔네가 널 까잖아! 그런 놈들 지갑은 탈탈 털어 줘야 제맛이지.”

“그래. 뭐라고 깠는데?”

“…….”

뭐라고 깠길래 말을 안 해 주냐.

나는 엘리아스가 딴청 피우는 틈을 타 놈의 팔을 쳐 냈다.

그의 장난에서 빠져나오자, 나는 그제야 시험장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

자리에 있던 수십 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이 굳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아니겠지만 꼭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그저 그들을 마주보았다.

정적이 이어지자, 엘리아스가 이제는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처음으로 1분 깼어, 루카.”

“…….”

나는 그제야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랬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5분 언저리에서 시험을 끝냈다.

게다가 이들이 지금껏 봐 온 나는 마법이라고는 불꽃 살짝 튀는 정도로 쓰는, 비마법사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지.

낙제로 내기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건 기사학과와 행정학과만의 오해가 아니라 전교생의 정서였을 것이다.

내가 납득을 마칠 즈음 엘리아스가 어깨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그러니까 나랑 1-2차 같이 하자!”

“야, 이미 나랑 짰잖아.”

멀리서 레오의 타박이 들려왔다.

시기 좋게, 다른 학생의 시험이 끝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삐익―

[5분 55초.]

[종합 2-. 수고하셨습니다.]

* * *

간신히 그 충격적인 분위기에서 빠져나왔다 싶었는데, 소문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전교로 퍼져 나갔다.

아니, 전교가 문제가 아니었다.

[루카스 아스카니엔, 제국2교육원 마법 실기 평가 1+ 등급]

제국신문에는 내 시험 장면만을 자른 중계 영상과 기사가 올라 있었다.

‘이게 기삿거리라고?’

진짜냐?

장난하는 거 아니고?

“아스카니엔의 위용… 한편으로는 흡혈에 대한 전국적 공포 여전해…. 어쩌라고. 하나만 해라.”

엘리아스가 기사를 읽으며 나를 따라왔다.

엘리아스는 내가 시험에 나가기로 한 날부터, 아니, 그 전부터 슬슬 시동을 걸더니 이제는 그냥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딱히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엘리아스는 원래 안 친해도 자기 마음대로 학생들을 끌고 다니는 타입이니까.

그나마 그러한 행실 덕에 의심이 줄어 다행이었다.

그때 엘리아스가 복도에 지나다니던 행정학과 학생을 발견하고 웃으며 말했다.

“낙제~?”

“…….”

학생이 내 얼굴을 보더니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반응을 보니 엘리아스와 내기에 참여한 학생인 듯했다.

“이름 써 놓고 기다려라~”

엘리아스가 낄낄대며 입에 손을 대고 소리쳤다.

그렇게 37명 모두의 시험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자리에 모두 앉았음에도 교수도 학생도 놀라울 만큼 말이 없었다.

기록표만을 들여다보며 침묵하던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시험 치르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먼저, 2분반 평균 점수 먼저 공개하겠습니다. 평균 2-등급으로, 평균 3등급을 받은 1분반보다 두 단계 높습니다. 다만 우리 반의 경우….”

교수가 나르케와 엘리아스를 차례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교환학생으로 온 나르케 파르네세 학생과 1분반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학생의 전입이 있었기에 최고점 득점자 수가 많았지요.”

1분반의 실기 1등이었던 엘리아스가 우리 반으로 와서 평균점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르케 부분에서는 다들 크게 동의하지 못할 것이었다.

애초에 1분반도 교황청에서 뽑혀 온 교환학생이 있다.

그쪽도 신력을 쓰기는 마찬가지였고, 복도에서 학생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듣기로는 이미 1+ 등급을 받았다고 했다.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그리고 율리아 체링겐 학생은 늘 그랬듯 최고점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점수가 한두 단계씩 낮아졌습니다.”

실전 감각 때문이지.

여태까지 놈들은 비트리올을 내뿜는 무언가를 상대해 본 적이 없다. 실기 역시 대부분 개인 훈련이지, 사람을 상대로 하는 훈련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지.’

오늘 저녁에 바이에른에 들러서 정화 한번 하고, 대책본부에 쌓여 있을 현황 보고도 살피고, 자문위에 들어온 제국정부의 수많은 질문도 처리해야 한다.

‘화요일 배급분부터는 약품에 들어갈 신력을 아직 못 뽑았는데.’

신력 쓰는 다른 마법사들도 매일 신력을 뽑아서 국가에 보내고 있지만, 사실 그 양으로는 충당이 되지 않는다.

기숙사에서 미친 듯이 뽑아서 보내야겠다.

그때 교수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루카스 아스카니엔.”

“예.”

“학생은 마법을 배운 적이 없었지요. 혹시 아스카니엔에서 마법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교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법이론 파트 채점에 참여했습니다. 적어도 내 파트에서만큼은 만점을 주지 않을 수 없더군요. 발동시킨 주문에 따른 결과가 정교했고, 또 지연 시간이 아주 짧고 공격에 대응해 마법을 유지하는 방식까지 완벽했습니다. 최고점을 받은 걸 보니 다른 교수님들도 각 파트에서 같은 평가를 했다는 뜻이겠지요.”

“…….”

나는 미소지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일부러 출력 낮춘 건데….’

결과물에서는 그 점이 드러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출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내가 익힌 그대로였으니, 그렇게 판단할 수 있지.

“학생이 시험을 끝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58초였죠?”

“예.”

“모든 학년이 같은 시험을 쳤지만 1분 안쪽으로 시험을 끝낸 학생은 10명도 되지 않습니다. 마법을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 결과를 낼 수 있었지요?”

말투를 보니 진짜 질문은 아니다. 교수도 대강 잡히는 바는 있으나, 내 입으로 답을 듣고 싶어 물었을 것이다.

순간 학생들의 시선도 내게 향했다.

“이론에 집중한 덕분입니다.”

“이론을 공부한 것만으로 이런 결과를 냈다?”

“예. 실제로 마법을 사용한 적은 많지 않습니다. 코어가 건강해진 걸 안 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하고, 제 마법이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마법을 직접 쓰기보다는 마법식 암기를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

어디선가 바람 빠지듯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교수의 눈이 꿰뚫듯 나를 향했다.

조금 찔리긴 하나, 상황에 대입했을 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학생들은 마법을 익힌 지 15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이제 네 달 배운 게 전부다.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 수업 중에도 계속해서 이론 공부를 했고 그 덕에 이들을 따라잡는 시간이 많이 단축된 건 사실이다.

띠링―!

호감도 +1

‘…믿으셨군.’

그보다 이걸 이제는 눈앞에 띄우기까지 하냐?

그때 교수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은 1+라는 등급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학생은 지금 이론을 공부한 것만으로 3교육원에서부터 피나는 노력을 해 온 학생들을 제친 셈입니다.”

“운이 좋았을 뿐, 저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상황 판단력과 순발력은 운이 아니라 학생의 능력입니다. 같은 이론을 배워도 그걸 어느 상황에 어떻게, 어느 강도로, 얼마나 변형해 사용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지요.”

“…….”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학생도 그랬지요. 스치듯 한 번 본 마법도 꼭 수십 년은 써 온 것처럼 그대로, 아니, 더 강력하게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미소만 짓고 있자, 교수가 웃으며 격려했다.

“그 재능이 학생에게도 있었군요. 물론 미숙한 점도 많았지만, 그건 앞으로의 노력으로 차차 바꿔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 * *

교수의 평가와 달리, 학생들의 평가는 마력량으로 밀어붙였다는 이야기가 다수였다.

‘완전히 마력만으로 밀어붙인 건 아닌데.’

하지만 이해는 간다.

마력 탓에 카메라도 여러 번 깜빡였으니 내 전략보다는 그저 몰아닥치는 양만이 뇌리에 남을 법도 하다.

58초 안에 무슨 분석을 하겠나.

또, 이론만으로 이런 결과를 냈다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듯했다.

‘나야 상관은 없지.’

애들한테 인정받는 게 목표도 아니고.

“오~ 지금까지 대체 몇 개야?”

엘리아스가 옆에서 깐족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는 학생들이 있어도, 진짜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실익을 따져야 하는 학생들의 급박한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상에 붙은 쪽지를 떼어냈다.

어제는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던 파트너 요청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내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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