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32화 (132/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32)

[예레미 로어]

쪽지를 펼치자 처음 보는 이름이 나왔다.

사실 1-1차가 끝난 뒤 들어오는 요청 중에서 아무나 골라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었는데, 우리 반에서 누가 아직 파트너를 구하지 않았는지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보낸 이의 이름만 읽고 다시 종이를 접자, 엘리아스가 입을 열었다.

“진짜 누구랑 할 거야? 나랑 하자니까~ 나 지금까지 너랑 한 번도 같이 해 본 적 없어.”

“레오는 어쩌고.”

“걔는 친구 많아서 괜찮아. 율리아도 있잖아!”

이미 파트너를 정한 학생들까지 내게 쪽지를 남기고 간 걸 보니 시험 전까지는 팀원을 바꿀 수 있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레오는 엘리아스와 함께할 때 제일 편할 것이다.

나는 미소로 답을 대신하고 제안 창을 켰다.

〈 Chapter 6. 올바르게 행하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말라 〉

제안 1: 기한 내 호감도 +300 (63/300) (158시간 57분 15초)

* Route 1 — 〈 +15.0 포인트 〉

* Route 2 — 〈 제안 2 〉

지금은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15포인트를 어떻게 확보할지 생각해 볼 때다.

12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63점까지 올랐지만, 이 시험이 제국신문에도 그대로 중계되었다는 걸 따지면 그다지 높은 값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호감도를 확인할 수 있는 범위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건가.’

인상값이 아니고 호감도라 명명한 만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타깃은 우리 학교 학생이 될 테다.

‘그러면 답 나왔네.’

두 번째 시험에서 지금처럼 얻는다 치면, 120점까지는 힘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다.

문제는 나머지 180점이지.

그러니, 첫째로.

‘광역으로 올릴 기회를 몇 번 더 만들어야겠다.’

둘째로, 개인별로 호감도를 높이는 일도 필요하다.

43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맥을 만들기는 해야 하는 셈이다. 친절하게 굴고 다녀야겠다.

그때 엘리아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루카 오늘따라….”

“뭐.”

“인상이 부드러운 느낌~? 근데 방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네.”

“그러냐.”

지금까지 의식해서 그런 적은 없는데 본능적으로 호감도를 더 떨궈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엘리아스도 알아챌 만큼 티를 냈나 보다.

‘…묘하게 열받네.’

내 태도가 고작 호감도 때문에 엘리아스까지 알아챌 만큼 변했다고. 웃음만 난다.

‘뭐, 그래도 말같잖은 선택지 두세개 던지고 그 중에서 고르라는 소리는 안 해서 다행이지.’

콰앙―!

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를 책상에 박았다.

“루, 루카! 너 머리…!”

“으음.”

방금 굉장히 큰일 날 뻔했다.

생각도 조심해야 하는 마당에 내가 무슨 짓을?

어제 ‘공략 완료’ 글자 보기 싫다고 생각했더니 사라진 걸 떠올리면, 이 체계가 실시간으로 내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 언제나 줄 거면 통찰 능력이나 달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아야한다.

“…루카, 상태가 영 아닌 것 같은데 이제 기숙사에 가서 쉬어.”

“그럴까.”

사실 우리도 가방을 챙기러 왔을 뿐, 이미 시험이 끝나서 교실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교실은 학생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숙사로 워프했다.

* * *

삐익―

제국2교육원은 1학년의 시험이 시작되면서부터 제국신문 중계를 끊었다.

황자가 삐끗할 경우 그 영상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황족의 이름을 단 만큼 아델베르트 호엔촐레른은 늘 최상위권을 유지해 왔지만, 언제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1분 33초.]

[…종합 3+. 수고하셨습니다.]

3+.

총 18등급 중에서 7등급.

반 이상이니 낮은 것은 아니라지만, 사실상 낙제점 이하를 받는 학생들이 없다는 걸 생각해야 했다.

낙제 등급을 제하면 총 등급 수는 11개.

11등급 중 7등급이다.

‘…….’

그 문제가 오늘 일어났다.

아델베르트는 굳은 얼굴로 허공만을 바라봤다. 이어 실성한 듯 피식거리는 웃음이 그에게서 새어 나왔다.

방에서 나갈 때가 되었음에도, 그 누구도 그에게 나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지.’

연습을 게을리 한 탓인가,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했기 때문인가.

연습을 게을리 했다기에는 얼마 전 기말고사 실기 성적은 1등급이었다.

아마 지나친 부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테다.

황제 폐하로부터 ‘엘리아스 호엔촐레른이 2학년 1팀에 들 테니, 무조건 1학년 1팀의 장을 맡을 만큼 우수한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명령을 들은 날부터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한심하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엉망이었다.

오늘 그 마법도 못 쓰는 선배가 1+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 더더욱 긴장이 심해졌다.

마법을 써 본 적 없던 이보다도 못하면 폐하께 좋은 말을 들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국2교육원은 쓸데없이 공정했다.

당연히 공정해야 맞지만 이 성적으로 인해 닥칠 미래를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속이 뒤틀리다 못해 마력까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당장 이곳을 나가 반 친구들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

한참 그대로 서 있던 아델베르트가 손가락을 튕겨 워프했다.

이제 시험장에 남은 건 부서진 황가의 완드뿐이었다.

* * *

하루는 빠르게 갔다.

아니, 바이에른에서 출동하랴 신력 뽑으랴 미친 듯이 뛰어다녔더니 그런 생각이 드는 듯했다.

신문도 수집해 놓기만 했지, 아직 읽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월요일 등교 직전에 학교로 이동했다. 그리고 아티팩트에 저장된 개인 회선으로 레오를 불렀다.

“뭐야, 상태 왜 이래. 왜 불렀어?”

얼마 뒤, 내 방으로 워프한 레오가 침대에 엎어진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목소리에 당혹이 묻어났다.

“신문 하나만 구해다 줘.”

아마 바이에른 왕세자에게 이딴 잡심부름을 시키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르케는 지금 자신의 파트너와 훈련하는 중이고, 엘리아스는 도박장에 갔다. 시킬 사람이 이놈밖에 없다.

레오도 지금 그 말 하려고 불렀냐는 듯 헛웃음을 쳤다.

“뭔 신문.”

“뮌헨 경제지. 오늘 저녁 예약분으로 구해다 줘.”

“플로스 말하는 거지?”

“그래.”

답변이 들려오지 않아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레오가 내 책상에 널린 각종 신문을 구경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미 신문을 쌓아 놓고 경제지는 왜 구하나 싶은 모양이다.

어쨌든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미리 고맙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늘어진 순간, 무언가 뾰족한 것이 내 어깻죽지를 푹 찔렀다.

“뭐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완드였나 보다.

전에 들었던 치유 마법 주문이다.

그런데….

‘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분명 전에 마법의학을 배우겠다고 했었지.

그날부터 레오는 시험 없는 시간을 전부 째 가면서 바이에른에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나흘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전에 받았던 마법보다 마력 자체에서 훨씬 생기가 넘쳤다.

“배운 지 며칠 안 되지 않았어?”

“그랬지.”

레오가 씁쓸하다는 듯 웃었다.

‘재능있다는 말에 씁쓸해하네.’

놈이라면 그럴 수 있다.

마침 해야 할 말도 있으니, 주제를 돌려야겠다.

“레오, 아마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내 성적에 반발하는 학생들이 생길 거야.”

“반발?”

“내 1+ 성적을 못마땅해하는 학생들이 나올 거라고. 어떻게든 내 성적과 실력을 깎아 보려 노력하겠지.”

“…….”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물음은 딱히 의미가 없었다. 레오도 알 것이었다.

제국2교육원의 유일한 부정 입학생이, 스스로도 부끄럽게 들어온 걸 아는지 매일 고개만 푹 숙이고 다니던 학생이 단숨에 1+라는 최고점을 얻었다는 사실은 학생 모두를 패닉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정도는 마법학과 학생들이 더했다.

‘물론 나야 환영이지.’

이 열등감을 광역으로 호감도 얻을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내게는 완벽히 좋은 기회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에너지 소모할까 봐 알려 주는 거야. 굳이 열 내지 말라고.”

“열 안 내.”

레오는 심드렁한 말투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 태도가 깨어진 건 여섯 시간 뒤였다.

* * *

“…피 마신 건 아니고?”

“황실 갔다가 그냥 왔잖아. 이 시기에 그랬으면 그냥 보낼 리가.”

“아….”

교실에 일찍 도착해 공부하던 한 학생이 배경음처럼 깔리는 다른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수식을 적어 나갔다.

이미 집중은 흩어졌다.

학생들은 루카스가 피를 마셨네 아니네 토론하다, 황실 이야기에 한풀 꺾여 이제는 마력량으로 최고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슬슬 꺼내고 있었다.

딱히 이 교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모든 곳에서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뭐,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지난 노력이 헛수고로 보이겠지.’

15년을 털어서 고작 3~4등급에 간신히 머물렀는데, 교과서만 본 이가 첫 시험에서 최고등급을 받으면 대부분 돌긴 할 것 같다.

율리아 체링겐이 수식을 적어나가던 손을 멈추고 펜을 돌렸다.

자신의 눈 색과 같은 황금색 마력이 파직거리며 튀어 나갔다.

‘분명히 붉은색이었지. 한 번 더 보고 싶군.’

흐릿한 중계 화면 말고, 실제로 눈앞에서.

그때 본 마법이 얼마나 신선했는지 1분남짓한 시간이 계속해서 눈앞에 재생되는 것 같다.

물론 잘만 하면 곧 지겨울 만큼 보게 될 것이다. 그걸 위해 여태 모든 요청과 부탁을 무르지 않았던가.

내 판단은 옳았다.

안할트의 공작위 계승권자는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1%의 가능성이라지만, 정치에서는 1%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가능성이지.

특히 지금처럼 약간의 노력만으로 거대한 편익을 얻을 수 있는 시기라면 더더욱 투자할 이유가 넘쳐난다.

학생이 펜대를 돌렸다.

아스카니엔의 것을 보고 나니 지나치게 투박해 보이는 자신의 금빛 마력이 주위로 거세게 튀었다.

“율리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율리아가 책에서 시선을 떼고 위를 올려다봤다.

긴장한 낯의 학생 서넛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너 1+ 받았다고 했지?”

“그래.”

새삼 물을 이유가 있나.

이미 교수가 그렇다고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음, 내가 너 시험 치는 거 다 봤는데 역시 넌 평소대로 잘 하더라.”

“그래? 고맙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밑밥을 까는가.

율리아가 미소지으며 양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눈앞에 선 이들 중 하나가 애써 태연한 목소리를 연기하며 물었다.

“근데, 혹시 루카스 최고점 받은 거 어떻게 생각해?”

그 말에 율리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자신의 안목에 확신이 없어서 같은 최고 득점자에게 동의를 받고 싶은 모양인데. 정치질이 먹힐지 아닐지 판단하고 싶기도 할 테고.

“실력대로 잘 받았다고 생각해.”

“…그래? 마력 하나로 1+를 받은 건데 괜찮아?”

“그것도 실력이지.”

“…….”

앞에 선 학생들이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그렇지. 답변 고마워.”

“그래.”

율리아는 웃으며 책을 덮었다.

그 학생들은 썩 마음에 드는 답을 찾지 못했는지, 레오 쪽을 바라보다 교수가 들어오자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 앉았다.

* * *

“레오. 너 괜찮아?”

“뭐가?”

“오늘 루카스 1+ 받았잖아.”

오늘 루카스는 학교까지 와 놓고, 어머니가 긴급하게 대책 회의를 소집하는 바람에 다시 바이에른에 갔다.

‘루카스가 말한 그대로군….’

오늘 학교는 아델베르트 황자와 루카스의 시험 결과로 여전히 떠들썩했다.

한 쪽은 예상보다 너무 낮아서, 한 쪽은 예상보다 너무 높아서.

낮은 쪽은 솔직히 내 알 바가 아니고, 높은 쪽은….

루카스의 예상대로 그의 실력을 깎아내리려는 학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레오가 헛웃음을 참으며 책을 덮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아니, 너랑 같은 등급이잖아. 다 괜찮긴 했는데… 1+는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글쎄.”

레오는 대강 답하고 신경쓰기 싫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걔가 뭐, 못한다는 말은 아니고 나도 잘했다고 생각은 하는데, 율리아랑 너랑 같은 급이라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교수님들이 편애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동생이잖아.”

그 말에 레오가 멈칫했다.

언제는 플레로마라면서 이제는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동생이라는 칭호가 붙는 건가.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불안한가 보네.’

다른 무엇보다 방금까지 전교 꼴찌였던 자가 자신들의 우위에 있게 되었으니 납득이 안 가겠지.

1학년 때부터 루카스를 깔보고 있었을 테니, 충격도 받을 대로 받았을 거고.

이제 보니 내 앞에 있는 놈들 모두 2등급대 학생들이다.

아마 저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너랑 같은 급은 아니지 않냐’는 건 질투이기도 하나, 실제로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레오가 표정 없이 고개만 기울이고 있자, 그걸 루카스에 대한 불만으로 여겼는지 누군가 레오를 꼬드겼다.

“어차피 1-2차 하려면 연습도 해야 하는데, 레오. 한번 걔랑 대련해 볼 생각 없어?”

“내가 왜?”

“너 걔 싫어하잖아.”

“…….”

레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빈정 상한 얼굴로 비웃었다.

“그러니까, 누가 이길지 싸움을 붙이려는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학교에 이의제기하려면 대련해서 증거 남겨 놓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안 해.”

“…걔랑 너랑 같은 등급 받은 거 솔직히 공정성 의심되지 않냐? 좀 억울하잖아. 마력량으로 밀면 시간 짧게 나오는 건 당연한 건데, 그걸 가지고 1+를 주는 건….”

지금 이 모든 걸 마력량으로 치부한다고?

솔직히 이 발언은 오늘 종일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어이가 없다.

‘그래, 이론만으로 그 실력이 나왔다는 게 납득이 안 되겠지.’

그야 내가 네 달동안 미친듯이 갈고닦아놨으니까.

물론 네 달 가지고 1+를 이룩해 낸 건 전적으로 루카스의 능력 덕분이다.

가르치는 걸 받아먹지도 못하는 놈들이 수두룩하니, 이딴 말을 하는 놈들도 마찬가지로 네 달 배우고서는 1+라는 성적은 무슨, 6+도 받기 힘들 것이다.

아무튼 이번에 루카스의 시험 장면을 찬찬히 보고서 느낀 게 있다면….

이미 루카스의 모든 움직임이 나와 비슷해졌다는 점이다.

그런 마당에 ‘채점 공정성이 의심된다’ 따위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저 웃음만 난다. 그럴 거면 내게도 그런 말을 해야지.

“너희가 해 보는 건 어때.”

“…우리?”

레오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격려했다.

“한번 물어봐. 루카스 지금 같이 훈련할 친구 없어 보이는데, 생각보다 쉽게 받아 줄지도 모르지. 1+를 받을 실력이 아니라면 너희에게 지지 않겠어?”

“…….”

학생들의 눈이 흔들렸다.

마음도 같이 흔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 * *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레오가 연결해 준 아티팩트로 대화를 전해 들으며 신문을 넘겼다.

[한번 물어봐. 루카스 지금 같이 훈련할 친구 없어 보이는데, 생각보다 쉽게 받아 줄지도 모르지. 1+를 받을 실력이 아니라면 너희에게 지지 않겠어?]

[으하하학!]

엘리아스의 웃음소리가 아티팩트 너머로 들려왔다.

셋이 연결해 두고 있었으니, 아마 레오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쟤 그냥 네가 한번 밟아 줬으면 하는 것 같은데? 레오가 저런 말을 하는 애가 아닌데. 오래 살았더니 레오가 싸움 부추기는 말 하는 것도 다 듣네~!]

“하하….”

18년 살지 않았나?

아무튼 내가 미리 말도 해 뒀는데, 그건 레오의 자존심을 보호해 주지 못했나 보다.

확실히, 학생들의 정신 상태가 어리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어쩌면 알면서도 한번 던져 보는―특징이 모든 언행에서 묻어난다. 이걸 건강하게 승화하면 개혁과 성장이 되겠지만 이런 경우 그냥 입을 댓발 내밀고 떼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질투도, 당황도, 열등감도 전혀 감추지 못했다.

‘그냥 우습네.’

레오는 진짜로 화난 모양이지만, 나는 별 생각 들지 않는다.

저렇게 열등감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은 현실을 계속 보여주면 자멸하게 되어 있다.

어쨌든 나는 앞으로도 이 기량 그대로 시험을 치를 것이고, 놈들은 그때마다 자신이 무얼 바꿀 수 없는지 실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버르장머리는 일찍 잡을수록 좋긴 하다.

마침 내게는 광역으로 호감도를 얻을 자리가 필요했지.

이처럼 타이밍이 좋을 수가 없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