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33화 (133/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33)

“레오, 고맙다.”

나는 웃으며 그들의 대화를 듣다, 나지막이 말했다.

판을 깔아 줘서 고맙다는 뜻이었다. 물론 저 정도로 적극적인 놈들은 레오가 굳이 돕지 않아도 내게 시비를 걸러 왔을 것이다.

[아~ 재밌겠다. 잘 볼게, 루카!]

레오 대신, 엘리아스가 낄낄대며 대답했다.

분명 축젯날 연극 때도 저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나는 통신을 끄고 바이에른에서 가져온 신문을 내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같은 상황을 두고 이득에 따라 태도가 나뉘고 있다.

나는 책상 한구석에 쌓아 둔 쪽지 무더기를 헤집었다.

‘스무 개 가까이 되네.’

72명 중 20명이면 이미 파트너가 정해진 지금 이 시기에 따지면 상당한 수다.

레오나 엘리아스가 그동안 받았던 요청과도 비슷한 건수다.

아무리 목소리 큰 몇이 이의를 제기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소란일 뿐, 결국 흐름은 내게 승산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있다.

또 잃을 게 생길까 두려워 발악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성취도 면에서는 충분히 제대로 가고 있다는 신호다.

‘그보다.’

아델베르트 호엔촐레른이 어제 3+등급을 받았다던데.

하도 교내가 시끄러워서 모를 수가 없었다.

마침 바이에른의 내 사무실에 가 보니 그가 며칠 전에 보낸 편지가 와 있었다.

‘아버지랑 다르게 전령을 보내지는 않네.’

평범하게 워프 우편으로 보냈다.

다만 그 탓에 내가 너무 늦게 확인하기는 했지.

‘이제라도 답장해 줘야지.’

비록 기술값이 2점이라 해도, 그동안 월반까지 할 만큼 성적을 좋게 받아 왔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등급이 수직 하락했으니 마음고생할 게 눈에 선하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때 잘못 마음먹으면 인생 자체가 바뀌는 수가 있다.

애초에 이런 학생군사단 선발도 소설에는 없던 일이고, 선발이 없었으면 그가 3+를 받을 일도 없었을 테니 격려 좀 해 주는 게 좋겠다.

‘괜히 낙심해서 앞으로 방에 틀어박히거나 하면 놈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정보도 못 얻으니까.’

나는 황가의 문장이 찍힌 봉랍을 뜯어, 편지지를 펼쳤다.

[존경하는 에른스트 각하께]

[…최근에 수도 학교에는 동원령이 내려와서 모두 자격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자율인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저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폐하께서는 제가 1팀에 들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당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폐하와 스승님들의 기대를 제가 채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각하께서는 이런 적이 있었나요?]

“…흠.”

왜 성적 떨어졌는지 각 나온다.

전에 연극부에서 죽을상으로 나를 불러세운 이유도 이제 알겠다.

호감도 -5에게 이런 걸 말할 생각이 드나 싶긴 하지만… 호감도 바닥 찍은 이에게라도 말하고 싶을 만큼 답답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그런데 격려를 해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놈과 비슷한 상황은 수두룩하게 겪어 왔지만, 사실 그 시절의 나를 격려하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내성이 없던 시절에는 무슨 말을 해도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참 고민해도 적당한 격려가 떠오르지 않아, 나는 딱 한 문장만 적기로 했다.

[원래 기대는 깨뜨리라고 있는 겁니다, 전하.]

나는 펜을 들어 최대한 바른 글씨로 내용을 적고,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상투적인 문구를 덧붙여 바이에른의 내 사무실로 워프시켰다.

솔직히 와닿을지는 모르겠다. 이건 그냥 직접 만나서 말로 하는 게 낫겠다….

‘그보다 황제가 엘리아스 신경을 좀 쓰나 본데.’

나는 만년필 뚜껑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이제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바람 한 번만 쐴까.’

나는 내 베개 위에서 자는 파이를 데려갈까 고민하다, 혼자 옥상에 올라갔다.

난간에 기대 밤바람을 쐬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내일은 파트너부터 만들고, 놈들이 오는 대로 판을 키워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참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옥상 문 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1+등급 받을 만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애들 모으고 있는데, 그래도 정말 안 해 볼 거야?”

익숙한 주제가 나와 뒤를 돌아보자, 2분반 학생 둘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중 한 명은 화들짝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다른 한 명은 여유롭게 웃으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 루카스.”

다른 한 친구가 황급히 옥상을 나서는 사이, 그가 내게 다가왔다.

“여기서 만나는구나. 아, 혹시 내 이름 알아?”

“모를 리가. 같은 반이잖아.”

율리아 체링겐.

바덴 대공국의 후계로, 앞으로 바덴 대공, 그러니까 바덴의 군주가 될 인물이다.

그리고 내가 파트너 제안을 하려 했던 학생이다.

“그렇구나. 무시하려던 건 아니고, 사실 멜빈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었거든. 날 안다니 기쁘네.”

루카가 반 친구들 이름 안 외웠던 걸 말하나 보네.

루카는 1년 내내 멜빈을 비롯해 대부분의 학생들 이름을 몰랐었다.

“그보다, 어제 1차 첫 시험에서 정말 놀랐어. 네게 그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앞으로 같이 시험 칠 동료로서 좋은 공부가 되었어. 자극도 되었고 말이야.”

“좋게 평해 주니 고맙네.”

“뭘.”

체링겐이 호쾌하게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상으로 내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썩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 너처럼 뛰어난 자들에게는 아무리 능력을 칭찬해도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야.”

“…….”

내가 먼저 가려 했더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나 보다.

‘뜻이 같았네.’

그보다, 내용만 들어서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데 말투나 태도가 여태까지 만났던 학생 중 가장 통치가문의 후계 같다.

스스로 왕세자 소리를 듣기 껄끄러워하는 레오와 달리 이쪽은 그 칭호에 어떤 껄끄러움도 느끼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다.

‘이래서 레오나 엘리아스와는 크게 접점이 없었나.’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이자가 폭정을 하는 인물이었다면 엘리아스가 한 대 치러 갔을 것이기 때문에, 아마 체링겐은 앞으로 딱히 모나지 않은 정치를 하는 군주가 될 것이다.

다만 신분제에 완벽히 적응한 일반적인 귀족은 레오나 엘리아스와는 깊게 교감하지 못하겠지. 그뿐이다.

나는 해 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말을 섞어 보지 않은 사이에서 이런 말을 하기는 미안하지만, 루카스 너는 지금 마력량으로 밀어붙인 덕에 1+등급을 받았다는 평을 듣고 있지. 알고 있어?”

“알아.”

“어느 정도는 사실이야.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대충 감이 온다.

그는 지금 내 칭찬을 하는 대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전략이지만 그간 쪽지를 보냈던 학생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나와 반대 방향으로 난간에 기댔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마력량으로 밀어붙인다는 평가를 하는 건 순전히 네 움직임에서 특별한 기교나 특색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야. 동의해?”

“그래, 동의해.”

“그리고 그건 다른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술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네 움직임이 완벽히 교과서적이기 때문이지.”

“…….”

“레오나르드의 방식이 떠오르는 움직임이었어. 배우고 싶을 만큼 깔끔하고 절제되어 있더군.”

확실히 한 분야에서 좀 하는 놈들은 보는 눈 자체가 다르다.

단순히 마력량으로 밀어붙였네 뭐네 하는 학생들과 달리 이미 움직임을 제대로 분석했다.

“이런 공격 방식은 상대적으로 수를 읽히기 쉽다는 단점이 있지. 물론 그거야 어중이떠중이들의 변명이지만, 동시에 9할 9푼의 사람들에게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래서 다들 저들만의 변칙수를 만들고 특색을 만들려 하지.”

놈의 얼굴이 살짝 진지해졌다.

그가 허공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섣부른 요행에서 모든 것이 잘못 흘러간다는 건 말하기도 입 아프지. 발전 가능성은 올바른 길에서 나와.”

레오 같다.

당장 보기 좋은 성과를 추구하는 이들과 달리 멀리를 내다본다.

“그런데 수를 읽히기 쉽다는 단점은 네게 있어 크게 유의미하지 않아 보이는군. 그야 네 마력량을 감당할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이때 네게 있는 단점이라 하면, 아직 데이터가 부족해 상대의 공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뿐이겠지. 추측이지만 말이야.”

“음, 아주 틀리지는 않네.”

좀 더 공부가 되었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경우에도, 나는 경험이 부족해 그동안 배웠던 대로만 움직이는 경향이 있으니까.

“너도 그렇게 느꼈구나. 그렇다면… 빈틈이 생겼을 때 기술적으로 대응하는 파트너가 있다면 만에 하나 생길지도 모르는 점수 구멍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겠지. 알다시피 파트너 선정도 팀워크 평가 항목의 일부이니, 파트너의 움직임은 네 점수이기도 해.”

나는 말없이 미소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체링겐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네가 어떤 공격법을 선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부족하지 않게 채워 줄 수 있어, 루카스. 두 번째 시험에서 너랑 함께하고 싶어.”

총명함이 녹은 황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거절을 염두에 두지 않는 저 미소.

자신의 잘남을 잘 알고 있을 때 가능한 미소다.

그는 지금 철저히 정치적으로 내게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도 의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교류는 고작 시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어쩌면 바뀔지도 모를 안할트 공작위 후계에 대한 밑밥일 것이다.

‘말투부터 알아봤다.’

미묘하게, 고등학교 친구가 아니라 정치계에서 만난 동년배를 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지금처럼 적은 노력으로 관계를 얻을 수 있는 시기라면 나와 친해지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

물론 그렇기 때문에 내게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

미래의 바이에른 왕도 바덴 대공도 전부 내 동료로 있다면 행운이지.

“그래.”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미소지었다.

굳은살이 잔뜩 박인, 레오나 엘리아스의 것과 비슷하게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 손이 느껴졌다.

* * *

바람 쐬고 돌아왔더니 잠이 다 깼다.

내가 파트너 요청을 하려던 친구가 먼저 내게 같은 요청을 해 와서 정신이 확 들기도 했다.

‘호감도도 3점 더 얻었고.’

15포인트 획득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까 레오가 놓고 갔던 신문을 넘겼다.

‘분석할 거나 분석해 둬야겠다.’

이제 막 변화를 드러낸 시기이니 언론 분석을 한번 해 놓아야 한다.

[바이에른 마법의학센터, “루카스 아스카니엔 코어 완벽히 정상”]

[바이에른 마법의학센터, “그간의 상태는 알 수 없어도 현재는 정상”]

각지의 언론사에서 내용만 다르지 비슷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플레로마’는 치료가 가능한가?]

[안할트 신교 교회 연합 “플레로마가 플레로마를 처리하는 시대” 강력 비판]

[루카스 아스카니엔, 아스카니엔 가문의 유일한 활로]

[“플레로마에게 신민 맡길 수 없어” 제국2교육원의 결정에 결사반대]

내 마법에 관한 분석 기사는 대부분 긍정적인 이야기만 하므로 제쳐 놓고 보자.

마법 외로 나를 언급하는 기사는 언뜻 보면 부정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열 개를 펼치면 일곱 개는 ‘플레로마’, ‘흡혈’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었으니까.

‘이것만 보면 썩 좋은 신호는 아니지.’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결과다.

그간 쌓인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면, 그걸 오히려 더 이상하게 여겨야 한다.

어디선가 높으신 분이 자신의 의도대로 언론통제를 하고 있다는 말일 테니.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지금 당장의 정보인데, 이런 식으로 그간의 통념이 반영되어 사람들의 진짜 인식이 드러나기까지의 시차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때, 사람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심리를 가장 먼저 반영하는 곳이 있다.

‘시장이지.’

나는 레오가 두고 간 어제 자 경제지를 집어 들었다.

안할트는 다른 국가에 비해 그간 특별한 산업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지금 내 나이즈음부터 철강과 철도, 방위 산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실제로 해당 방향으로의 발전이 시작 단계에 있다.

다만 안할트는 본래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기에, 정책이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지도자가 바뀌면 언제든 새로운 산업으로의 발전은 규모가 축소되거나 폐지될 수 있다는 불안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아직 갈 날이 한참 남았음에도 게오르크 아스카니엔이 운전대를 놓아 버린 탓에 더더욱 약간의 정보에도 변동이 심할 수밖에 없다.

나는 형이 추진하는 개발에 관여된 기업과, 그 기업과 금전 거래가 오가는 기업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니마이어 엔지니어링 -6.4%

안할트바우머 -7.95%

A&P특수강 -5.9%

‘난리났네.’

나는 미소지었다.

제국 전체로 놓고 보았을 때 동종산업 기업들의 주가에는 큰 변동이 없는데 형의 정책에 관여된 기업들의 주가는 일제히 떨어졌다.

나에 대한 전국의 우려가 높아져 안할트에 투입된 투자금이 회수된 것인가? 그렇다기에는 안할트에 위치한 다른 주식회사들의 주가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이런 하락폭을 보인 건 오로지 형의 경제개발 정책에 합류한 기업들뿐이었다.

‘좋아.’

주가 하락으로 알 수 있는 건 단순히 경제 상황만이 아니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겠지만, 내게 중요한 게 바로 그것이다. 정보가 주어진 직후 사람들이 보이는 즉각적인 계산과 심리 말이다.

다시 말해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시장은 안할트 공작위 계승자에 대한 굳건한 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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