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34)
다음 날, 시험 이후 첫 번째 등교일이 되었다.
물론 내게만 그럴 뿐, 다른 학생들은 이미 두 번째 등교일이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성적의 여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야 당연했다. 제국신문을 비롯한 수많은 언론사에서 아직 내 기사를 1면에 싣는 마당에 학생들이라고 뭐가 다를까.
[루카스 아스카니엔, 아스카니엔 초대 마법사의 귀환]
[요주아 크라이스 제국1교육원 마법학과 명예교수 “아스카니엔 역사상 최고의 빛”]
[[사설] 아스카니엔뿐 아니라 제국 사상 최고의 경지… 교육받았다면 제국 최고의 마법사가 되었을 것]
엘리아스의 말에 의하면 오늘 나온 기사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직접 읽은 게 아니라 엘리아스가 복도에서 쩌렁쩌렁 타이틀을 읽어 줬기 때문이다.
“영상 판독 결과 사용 마력 총 36종… 으웁?”
“그만 읽어.”
나는 엘리아스의 입을 치고 교실로 재빨리 들어갔다.
놈의 입을 막느라 한 1년쯤 더 늙은 것 같다.
“앞으로 닥칠 문제를 분석하는 것도 좋은데, 너는 좀 이런 기사를 읽어야 해. 그리고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고.”
엘리아스가 나를 따라 반에 들어서며 눈을 희번득 뜨며 말했다.
그래도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지는 않았다.
그걸 어떻게 아냐면,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새 내 호감도가 +80을 찍었기 때문이다. 방금도 사람 없는 방향에서 팝업이 하나씩 떴다. 건물 너머에 있거나 옆 반 사람이거나 하겠지.
엘리아스와 레오가 열을 내는 것과 달리 내 성적을 마력량 덕으로 치부하는 부류는 어디까지나 일부였다.
성적이 애매한 부류, 그리고 다른 학생들을 조금씩 깔보면서 자존감을 채워 왔던 부류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그놈들이 물을 들이니 조심은 해야지.’
나는 급격히 조용해진 교실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았다.
어제 레오와 대화했던 학생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어떤 충격을 겪은 직후에는 그저 당황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단계가 이어진다.
그리고 몇 번 더 현실을 깨우쳐 주면 그제야 순응한다.
자신들이 본 게 헛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깨우치기 전까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이제 깨우칠 때가 왔다.
마침 내가 나서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학생 하나가 다가왔다.
“루카스, 오늘 정규 수업 끝나고 우리랑 같이 연습할래?”
“…….”
나는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꽤 인상이 흐릿하긴 하지만, 항상 아쉽게 학과 10등 밖으로 밀려나던 친구인 건 기억하고 있다. 그 옆에 있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스 프리치였지. 미안, 이미 파트너가 있어서 그건 좀 어렵네.”
“파트너?”
“그래. 율리아랑 같이 시험 치기로 해서 따로 훈련하기 힘들 것 같아.”
그 말에 학생들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누군가 당황을 지우고 입을 열었다.
“음, 사실 네가 마법을 쓰는 걸 처음 봤기도 하고, 우리는 1학년 때부터 서로서로 대련 상대도 되어 주고 했는데 너랑은 그런 적이 없어서. 한 번은 같이해 보지 않을래?”
“음….”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잠깐이라면 괜찮겠지. 그럼 어디서 대련할지 알려 줘.”
* * *
루카스 아스카니엔이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오전 첫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한스가 제 친구를 돌아보며 차음 마법을 걸고 중얼거렸다.
“나 쟤랑 대화 처음 해 봐.”
“나도야. 근데 쟤 생각보다 순순히 받아 준 걸 보면 아직 모르나 본데?”
“몰라야지.”
진짜 실력을 검증해 보려고 대련한다는 걸 어떻게 밝히겠나.
사실, 아스카니엔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다.
“…….”
한스 프리치는 제국신문 1면에 자리한 루카스의 경기 화면을 내려다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저 58초짜리 영상에 제국 전역이 열광하고 있다.
제국신문은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며 자축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어느 신문을 펴나 붉은 마력이 1면을 장식했고, 어느 장을 펴나 그의 이름이 든 기사가 두셋씩 자리했다.
대중은 무능한 폐인이 군주가 될 자격을 갖추고 돌아온 것에 더없이 폭발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인정한다.
따라잡을 길 없이 빛나는 재능이 부럽다.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그 천부적인 천재성이 부럽다.
아스카니엔의 본질과 같은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마력도, 이론을 단번에 체화하는 능력도, 누구보다도 통치가문의 일원다운 그 언변도, 이제 와서는 입이 쓸 만큼 부러웠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의 동생이라는 것마저도 그랬다.
‘…그래도….’
그래도 재능이 있는 것과 단숨에 1+ 성적을 받을 만한 것은 다르지.
다른 건 깨끗하게 인정해도 이것만큼은 직접 본 게 있으니 인정할 수 없었다.
한스가 중얼거렸다.
“율리아가 쟤랑 파트너라고 했지.”
율리아와 레오나르드는 3교육원에서부터 유명했던 친구들이다. 우선 둘 다 통치가문의 자손이었고, 그런 만큼 제국에서 제일가는 마법사들에게 교육받은 덕에 어릴 적부터 마법 실력이 뛰어났기에 그랬다.
그 둘 모두 반응이 미적지근하더니, 이제 한 명은 아스카니엔의 파트너가 되기까지 했다.
친구가 욕설을 뱉고 대답했다.
“그랬지. 걔네 둘이 같이하는 게 이해가 안 가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건 한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왜 굳이?
마력으로 밀어붙이면 시간 따위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거니 제외하자.
아무리 봐도 생초짜 같은 영창에, 기본적인 증폭식에, 어딜 보나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다짜고짜 밀어붙이기’ 말고 뭘 했단 말인가.
1+까지는 인정하기 어려웠다. 자신과 같은 2+라면 모를까.
이 모호한 성적평가에 말이라도 꺼내지 않는다면 이대로 학생군사단 선발도, 그 이후 중간기말 성적 평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파워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움직임으로 1+를 받을 수 있다면 기술을 배우는 의미가 없지. 그런 평가라면 우리 역시도 1+, 아니, 못해도 1등급대까지는 올라갈 수 있어야 했다.
‘그나저나 레오나 율리아처럼 아스카니엔이랑 같은 등급을 받은 학생들이 나서 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번에 좀 미끄러지긴 했지만 한스 자신도 평소에 실기에서 1등급대는 기본으로 받으니 아주 못 겨룰 상대는 아닐 것이다.
한스가 나름대로 의지를 다지며 생각했다.
* * *
‘대련해 줄 수 있냐니.’
괜찮고말고.
호감도 쓸어야 한다.
사실 매력뿐 아니라 재시도 특성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면 뭐가 달라질지 궁금하다.
‘또 애들 장난은 빨리 끝내야지.’
그들이 불러낸 곳은 2학년 공용 훈련장이었다.
사실 개인 대 개인으로 대련할 때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다. 보통 50명이 한 번에 들어가는 장소니 당연했다.
하지만 개인 훈련장이나 체육관은 부적합했을 것이다. 실내이기에 사람이 쉽게 구경할 수 없으니까.
약속한 시각이 되어 공용 훈련장에 나가자, 나는 눈을 의심했다.
‘역시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대체 몇 명이냐. 고작 학생끼리 하는 대련에 사람이 이렇게 모인다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소문이 많이 퍼졌는지, 수십 명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이러면 곧 100명도 찍겠다 싶다.
‘다양하게도 모였네.’
학과 구분도 없다.
그만큼 내 실력이 어떤지 궁금했겠지.
여기 있는 학생들은 내 마법이 궁금하기도 했을 테고, 또 내가 진정으로 1+라는 성적을 받을 실력이 되는 사람인지 궁금해 모였을 것이다.
애초에 이 세 놈만이 내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니까.
이 셋은 그저 앞에 나서서 눈에 띄는 것 뿐, 놈과 같은 의견인 학생들은 좀 더 있다.
그리고 이 인원이 구경 오도록 내버려 둔 걸 보니 놈들의 마음가짐도 뻔히 보인다.
‘기술에 자신이 있나 보지.’
물론 나야 고맙지.
호감도 미리 잘 받아 간다.
나는 한 손에 미리 준비해 온 마력 구속구를 차며 입꼬리를 올렸다.
* * *
‘음?’
쟤 지금 뭘 손에 차는 거냐?
훈련장에 도착한 한스가 눈을 찡그리며 저 멀리를 바라봤다.
‘이렇게 대놓고 부정행위를?’
놈은 대련을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있어 봤자 한두 번이지.
호기롭게 승낙하긴 했어도, 나와 대련하는 이 상황에 조금 불안을 느꼈을 수 있다.
‘아티팩트발로 이겨 보려는 심산인가?’
설마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약은 놈은 아니지 않나?
한스가 루카스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루카스.”
“음, 왔어?”
루카스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왜 웃지?’
한스는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꼈다.
보통 이런 반응은 이미지메이킹을 하려는 시도거나 정말 인성이 좋아서 사람을 잘 반겨 주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왜인지 그 밖의 불길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루카스의 얼굴에서 텄다는 표정이 슬쩍 스쳐 지나가, 한스는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그제야 한스의 친구가 루카스의 손목을 가리켰다.
“그거 뭐야, 루카스?”
“아, 이거.”
루카스가 손목에 감은 팔찌를 보이더니 손을 튕겼다. 전에 보았던 불길과 달리 미약한 불꽃이 짧게 솟았다가 사라졌다.
“마력 구속구.”
그 말에 한스는 자신이 뭘 들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했다.
‘음.’
마력 구속구라.
마력….
‘…….’
지금 대련을 하는데 뭘 껴?
“자, 잠깐만. 뭔 소리야? 내가 써 봐도 돼?”
“뭐, 그래라.”
루카스가 팔찌를 뽑아 건넸다.
손에 팔찌를 끼우자 그 부위의 혈관이 옥죄어 말라붙는 느낌이 났다.
살면서 연행된 적이 없어 그간 써 보지는 못했으나, 그 기능으로 보아서 분명히 마력 구속구가 맞기는 했다.
한스가 본능적으로 인상을 쓰며 팔찌를 뽑자 지켜보던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그들도 한스가 느끼는 당황과 의문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루카스가 피식거렸다.
“아, 시작하기 전에 잠깐만.”
루카스가 저 멀리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엘리아스.”
그 말이 떨어지자 멀찍이 서 있던 엘리아스가 얇은 팔찌 비슷한 것을 던졌다.
루카스가 그것을 잡아채 왼손 손목에 끼웠다. 그러고는 완드를 몇 번 흔들어 보더니, 씩 웃었다.
“좋아, 딱 맞네.”
“그러니까 두 개 챙겨 가라니까~”
“…….”
학생들이 멈칫했다.
한스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 인상을 구겼다.
루카스가 그런 한스의 얼굴을 한참 구경하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마력량만으로 최고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이해는 되더라. 오해를 받기 쉬운 건 사실이지. 칼이라도 기깔나게 휘두르거나 특수능력이라도 확실히 써 줘야 실력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
“마침 한스 너는 늘 실기 상위권이지. 이번 1-1차를 제외하면 1등급대를 놓친 적이 없더라고. 그렇지?”
“…그래.”
한스가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너처럼 뛰어난 친구와 대련할 기회가 생겼을 때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서. 내가 정말 마력량만으로 최고점을 받았는지 아닌지, 알아는 봐야 할 것 아니겠어? 그걸 알아보려면 마력을 제한하는 게 좋겠지.”
루카스의 말투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했다.
하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눈치챘네.’
일부러 대련에 응했다.
내가 공용 훈련장을 들먹이는데도, 학교 시설을 모를 리가 없는데 흔쾌히 승낙했지.
그때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제 알겠다.
루카스 아스카니엔은 내가 낸 의혹을 전면으로 부정하러 왔다.
그걸 위해 어디서 구속구까지 구해 왔다.
‘이런 걸 쓰고서도 나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뜻인가.’
한스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이렇게 나온다면 말이 달라지지.
그동안 마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이의 제기를 할 만큼만 떠보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다.
우리야 환영이다.
아스카니엔의 실력이 온전히, 있는 그대로 드러날 테니까.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도 태연한 건 좀 걸리는데….’
왜지? 계속해서 루카스의 부드러운 미소가 눈에 밟힌다.
잘못된 길로 발을 들이고 있는 느낌이 지워지질 않는다.
‘…아니야.’
기회다. 루카스의 진짜 실력을 검증해 볼 기회.
한스가 완드를 쥔 손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시작할까?”
한스가 뒤로 물러나며 말을 이었다.
“먼저 시작해, 루카스.”
“음, 아니. 네가 먼저 해.”
“…….”
선공할 기회를 이렇게 찬다고?
며칠 배운 사람이 이 기회를 내게 양보하다니, 어이가 없다.
한스가 표정을 지우고 기수식을 취했다.
이어 루카스가 제국2교육원의 것이 아닌 아스카니엔 가문의 기수식을 펼쳤다.
그의 기수식이 끝나, 한스가 코어에서부터 마력을 끌었다.
다행히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지 마력이 평소보다 부드럽게 혈관을 따라 완드까지 이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내가 지난 15년간 익혀 온 기술을 이 자리에서 쏟고 갈 것이다.
한스는 이제 나름대로 긴장을 즐기며 완드를 스태프로 바꾸었다. 그리고 바닥을 내리찍었다.
쿠웅―!
그 순간, 폭음과 동시에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콰아아앙―!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한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결계와의 충격으로 인한 빛과 소음이 감각을 흩뜨렸다.
‘방금 결계 주문이었지.’
방어해 봤자 의미 없을 것이다.
초보자들은 스태프를 내리찍으면 앞으로 밀려 나가는 공격만을 떠올린다. 실제로 그게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이고. 자연히 방어는 정면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사용한 공격은 바로 그 통념을 노린 공격이었다.
은닉 마법을 중첩하면 마력이 타깃의 사방에 산포하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콰과광― 콰앙―!
마력의 색이 보이지 않음에도 사방에서 미세한 시차를 두고 폭음이 울렸다. 루카스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한스가 공격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묘하게 반응이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한스가 황급히 팔을 휘둘렀다.
콰앙―!
눈이 따가울 만큼 밝은 빛이 일며 새빨간 불꽃이 튀었다.
‘…!’
자칫하면 얼굴이 날아갈 뻔했다. 장막을 치는 게 1초라도 늦었으면 그랬을 것이다.
반사적으로 장막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난 사이, 빠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막에 균열이 가는 소리였다.
방금 들린 충격음은 짧았다. 루카스가 큰 힘 들이지 않고 가볍게 공격을 날렸다는 말이었다.
분명 마력량을 통제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그럼, 지금 구속구로 줄인 마력으로 내 장막이 깨졌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지 않았다.
소음 속에서 아스카니엔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국3교육원에서 가르치는 응용 마법이지? 은닉 마법 결합 공식을 외웠나 보네.”
“…!”
한스가 거칠게 완드를 내질러 장막을 해체하고 마력을 날렸다. 확보된 시야 한가운데서, 루카스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걸 3교육원도 안 나온 친구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대화하고 있을 정신은 없지.
한스가 굳은 얼굴로 완드에 힘을 실어 주먹을 날리듯 팔을 내질렀다. 그의 진녹색 마력이 빠르게 날아갔다. 마력이 루카스의 코앞까지 닥치기 직전, 한스가 눈을 감았다 뜬 사이 섬광이 일었다.
콰앙―!
“…….”
루카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한 팔로 완드를 가볍게 내뻗고 있었다.
그의 장막에는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그 장막이 마력을 흡수한 것처럼, 초록빛 마력이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가 마치 이런 대련은 처음 겪는다는 듯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음, 예상 밖인데. 계속 이렇게 막기만 하면 재미없겠지.”
루카스가 와 보라는 듯 다른 손을 까딱였다. 이제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 주겠다는 듯, 장난기가 미묘하게 스며 있었다.
한스의 눈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장막이 이렇게 강하면 놈이 했던 것처럼 단순히 양으로 밀어붙이는 게 제일인데.’
여태 그걸 문제시한 마당에 그렇게 나가기란 쉽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전략적으로 양적인 공격을 써야 하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또 그걸 아는 이들은 사실 이 자리에 없지. 잠시 양으로 쏟아붓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고 사방에서 공격을 날리는 게 좋겠다.
학생이 생각을 마치고 완드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 * *
놈은 또다시 주먹을 날리듯 완드에 마력을 응축해 내질렀다.
콰앙―! 쾅―!
결계를 치는 대신 나는 놈이 날리는 공격로를 그대로 따라 완드를 휘저었다.
내 마력이 닿을 때마다 터지는 굉음에, 구경하던 학생들이 몸을 슬쩍 움츠렸다.
그건 그렇고….
‘이게 대련?’
레오에 대한 고마움과 어처구니없음이 동시에 든다.
보통 이런 걸 대련이라고 하고 사는군.
이게 대련이면 나는 그냥 그간 일방적으로 레오에게 맞은 게 아닌가 싶은데.
‘…레오 이 새끼 진짜….’
진실을 알까 봐 엘리아스랑 단둘이 대련하라고 하지 않고 셋이서 하려고 한 건가 하는 의심까지 들고 있다.
물론 그러다 보니 이점도 있었다.
1등급대면 결코 부족한 실력이 아니다.
제국2교육원에서 매 중간기말마다 실기 1등급을 맞는다는 건 이제 졸업과 동시에 황실 취직 또는 제국1교육원 에스컬레이트 진학 중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놈이 나와 맞붙으러 나온 자신감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놈의 움직임이 더없이 우습게 느껴진다.
“움직임이 큰 것 같네. 조금 줄이는 게 어때?”
내가 본인의 의도도 모르고 쓸데없이 조언한다고 생각하는지, 놈이 기분 나쁜 낯으로 완드를 휘저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큰 동작으로 내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생각이겠지. 그리고….”
나는 눈앞까지 날아온 놈의 마력 덩어리를 보며, 유도 마법을 건 공격이 급선회해 등 뒤로 닥쳐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옆으로 한 걸음 빠져 구두 뒤축에 힘을 싣고 몸을 휙 돌렸다.
콰앙―!
스태프로 놈의 공격을 후려치자 녹색 마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스태프를 바닥에 찍어 잔공격을 허공으로 흩어 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그 미끼 공격을 막아 낼 때 진짜 공격을 날릴 생각이었겠지?”
“…!”
놈은 잠시 움찔하고는 잽싸게 평정을 연기했다. 그래 봤자 놈의 모든 공격에 당혹감이 뚝뚝 묻어나고 있어 의미는 없었다.
아무튼 이걸 보니 레오가 왜 화를 냈는지 알 것 같다.
놈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걸 보니 나름의 기술이었을 텐데, 나는 이게 제대로 된 기술인 줄은 몰랐다.
‘레오는 이걸 훈련 첫날에 시켰던 것 같은데.’
완드 한번 제대로 안 잡아 본 내게 이걸 시킨 레오가 미친놈인지 아니면 저 친구 수준이 낮은 건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생각 한번 해 볼 게 있다.
놈의 주 무기는 완드가 아니다. 마법검술학 과목에서 놈은 최상위권에 해당했다.
그러니, 놈은 이제 나를 완벽히 이기기 위해 검을 꺼내 들 것이다. 기술 명분도 챙기고 나쁘지 않지.
물론 그런 점 때문에 놈은 교내에서의 내 입지를 다지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종목에서 내 실력을 의심하거나 시험해 보려는 놈들이 나올 텐데, 지금 놈과 붙은 덕에 검술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게 된 셈이니까.
‘그때까지 지쳐서는 안 되겠지.’
나 말고 놈이.
나는 놈의 공격을 쳐 내며 부드럽게 말했다.
“진정해, 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