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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36화 (136/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36)

엘리아스에게 어깨를 붙들린 레오가 표정 없이 한스와 루카스를 바라봤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이에른에 갔으나, 엘리아스가 좋은 구경거리를 보여 준다며 곧바로 붙잡아 데려왔다.

마침 루카스가 남과 대련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보고 조언할 거리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건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내가 가르친 움직임을 보고 채점이 잘못됐다고 몰아가려 하다니, 현실 부정도 적당히 해야지.’

레오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스는 지나치게 흥분했다. 하지만 흥분한 와중에도 그의 움직임은 꽤 정확했다.

채앵!

루카스가 한스의 검을 밀어내고 뒤로 빠졌다.

레오의 눈이 루카스의 움직임을 하나씩 뜯어 살폈다.

대응 방식과 속도도, 공격을 받아치는 정교함도 모두 완벽하다.

마침 엘리아스가 차음 마법을 걸고 킬킬댔다.

“야~ 완전 너다.”

“아니. 스타일 겹치면 안 되니까 일부러 다르게 가르쳤어.”

레오가 턱을 괴고 입 모양이 보이지 않게 중얼거렸다.

[쥐새끼처럼 피하기만 할 거야?!]

[언제는 기술을 운운하더니?]

“그게 어디 쉽게 바뀌냐? 이제 네가 스타일 바꾸는 수밖에 없겠는데?”

“너나 날 어릴 때부터 봤으니까 파악하지, 아니면 몰라.”

[일단 진정부터 해. 이런 상태로 하는 대련이 의미가 있나?]

[…이….]

“어, 어어! 쟤…!”

“야!”

주변에서 들리는 놀란 외침에, 엘리아스도 웃음을 멈추고 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카아앙!

한스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난 변칙수에도, 루카스는 안정적으로 검을 돌려 한스의 공격을 막았다.

순간 한스의 얼굴에 짙은 당황이 끼었다.

엘리아스가 눈을 크게 뜨고 감탄했다.

“…오~”

“…….”

레오가 턱을 괸 손에 힘을 주었다.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솔직히 남의 대련을 보고 재밌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아무리 봐도 양쪽 모두 그저 그런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나쁘지 않네.’

지난 네 달 동안 미친 듯이 발전한 루카스의 실력도, 이런 구경도 말이다.

레오가 무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 *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니.

당연히….

“…제대로 와!”

한스가 분노 서린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그 말에 아스카니엔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콰앙―!

아스카니엔의 검 끝이 위를 향해 돌며 한스의 검을 밀쳐 냈다. 동시에 둘 모두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한스가 지체 없이 반동을 이용해 아스카니엔에게 돌진했다.

카앙!

아스카니엔이 검을 흘려 내지 않고 그대로 받았다.

한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게 닥치는 검을 막는 데에 그 어떤 망설임도 느낄 수 없었다. 이미 수십, 아니, 수천 번은 공격을 받아 본 듯한 안정감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끼긱―

“물러나는 것도 기술인데 왜 달려들어야만 제대로 왔다고 생각하지? 분명 너라면 알 텐데.”

말할 정신이 있는가 보군.

한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스카니엔의 검을 꺾을 작정이었으나 여전히 놈의 검에는 떨림이 없었다.

‘초보자라면 검을 막는 데에 급급해서 손목에 무리가 가는 자세를 취할 법도 한데.’

순간,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이 아스카니엔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한스가 그걸 의아하게 여기고는 팔에 마력을 훅 실었다.

휘익―

그제야 아스카니엔의 검날이 방향을 틀어 빠져나갔다.

이 행로라면, 다음 공격은 위에서부터 오른쪽 대각선 아래로 내리쳐 올 것이다. 역시나 아스카니엔의 검이 쾌속하게 위로 향했다.

‘다음 수가 뻔히 보이는데 따라 줄 이유가 없지.’

한스가 마력을 싣고 아스카니엔의 옆으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한스의 검이 길게 뻗어 나갔다.

채앵!

“…!”

거리를 벌린 아스카니엔이 어느새 몸을 틀어 한스의 검을 막아 냈다.

아스카니엔의 검도, 그의 눈동자도 흔들림 하나 없이 고요했다.

변수에 전혀 당황하기는커녕, 피하지 말고 제대로 오라는 요구를 들어주듯 그는 딱 검을 맞붙일 거리만큼을 계산해 물러났다.

‘…….’

한스가 아스카니엔의 자세를 훑었다. 급격히 방향을 튼 만큼 자세가 무너질 법도 한데 놈은 여전했다.

‘…안 배운 것 아니었나? 이쯤 하면 실력 부족으로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다. 계속 놀라서는 안 된다.

배움의 시간에 차이가 있을 텐데도 놈이 나와 호각을 이룬다는 건 내가 지나치게 흥분해서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단 말이다.

“확실히 잘하는구나.”

한스가 심호흡을 하려 숨을 크게 들이쉰 순간, 아스카니엔이 느릿하게 말했다.

“그런데 몇 가지 알려 주고 싶은 게 있어.”

아스카니엔이 검병을 두세 번 가볍게 두드렸다. 하얀 날은 사라지고 완드의 색과 같은 새까만 목검이 만들어졌다.

한스는 순간 어이가 없어 숨을 내뱉었다.

‘지금 날 상대하면서 목검을 꺼낸 건가?’

마력으로 만든 검이라지만 상대적으로 날이 무딘 건 사실이고, 연습용 검으로 대응한다는 그 각오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된다.

아스카니엔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마력 통로 잘리기라도 하면 위험하니까.”

“허….”

검술은 꽤 오래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여태까지 놈이 보인 반응은 초보자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그가 작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일주일만 쉬어도 실력에 녹이 스는 마당에 일 년을 쉰 자가 내게 이런 말을 한다고?

“맞을 수도 있으니 안 싸우겠다고 해 보지? 똑바로 해!”

“난 똑바로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한스.”

아스카니엔은 아까 그랬던 것처럼 여유롭게 손을 까딱였다.

“먼저 와.”

이게 나를 도발하기 위한 전략이라면, 완벽히 성공이다.

한스가 아스카니엔을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아스카니엔이 주저 없이 달려들었다.

‘우선 검부터 맞댄다.’

목검을 든 이상 놈은 맞서기보다는 들어왔다 빠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수가 뻔히 보이는데 뭘 ‘제대로 하겠다’는 건지. 저 태도는 좀 고쳐 줄 필요가 있겠다.

후웅―

아스카니엔의 검이 시야를 갈랐다. 검로가 아까와는 달랐다.

“…!”

빠악―!

왼쪽 어깨에 격통이 닥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자, 자, 잠깐…!’

“아, 역시.”

아스카니엔의 짧은 감탄이 들려왔다.

‘…검이 아니라 내 몸을 치겠다고?!’

한스가 무너져 가는 자세를 바로 세우며 검을 내질렀다.

아스카니엔이 뒤로 한두 발짝 빠지더니 단순한 찌르기 동작을 따라 했다. 한스가 검을 베려 한 순간, 아스카니엔의 검이 방향을 틀고 추락해 허벅지를 내리쳤다.

콰앙!

“끄아악…!”

“대련은 다음에 하도록 할까?”

물음에 웃음이 옅게 묻어났다.

한스가 허벅지를 붙잡고픈 충동을 누르고 이를 악물었다.

‘그, 근육이….’

찢어질 것 같다. 이제야 ‘마력 통로 잘리면 안 된다’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허벅지를 검병 끝으로 누른 채 놈을 올려다보자, 아스카니엔이 나긋하게 말했다.

“아까부터 빈틈이 계속 보이길래. 참느라 애 좀 먹었어.”

뭘 참아? 후려 패길 참았다는 말인가? 그딴 건 그냥 계속 참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닿을 만큼 내가 틈을 내주고 있었다니. 이게 대련이 아니라 실전이었으면….

“네 기량이 뛰어나다는 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이미 죽었을 것이다.

아스카니엔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 왔다. 한스가 간신히 몸을 낮춘 채 양손으로 검을 받쳐 공격을 막았다.

반쯤 베인 목검이 금세 수복되어, 허공에 반원을 그리며 다시 위로 올랐다.

“…!”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난 한스를 아스카니엔이 맹렬히 쫓았다. 아스카니엔의 검이 왼쪽 아래부터 시작해 큰 동작을 그렸음에도 한스의 검은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도피하려는 본능과 검을 막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때는 이미 늦었다. 아스카니엔의 새까만 목검이 오른쪽 허벅지를 아래서 위로 쳐올렸다.

빠악!

“끅…!”

“하하, 지금은 너무 흥분했어. 빈틈이 많네.”

뭐가 재밌다고 웃어?

꼭 가르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스카니엔은 참을성 있게 한스가 자세를 잡길 기다렸다.

한스가 미친 듯이 떨리는 다리를 왼손으로 찍어누르고 숨을 몰아쉬었다.

파공음이 들리지 않자, 이제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정확히 한스에게 들렸다.

왜인지 아까에 비해 사람이 배로 늘어난 것 같다.

‘…이런 그림을 원한 게 아닌데.’

이 정반대의 상황을 바랐단 말이다. 실제로 배워 온 기간만 따지면 그래야 맞지 않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한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

“음?”

“검 안 바꿔?! 네가 내 선생이야?!”

“원한다면 바꾸겠지만….”

아스카니엔이 한스의 떨리는 다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지금 상태로는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한스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쿠웅―

한스가 다리에 마력을 거세게 밀어 넣었다. 두 다리에 녹색 마력이 일었다. 땅을 박차고, 검을 내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기다렸다는 듯 아스카니엔의 검이 새하얗게 변했다.

챙―! 끼긱―

‘…이런.’

한스는 아스카니엔과 검을 맞댄 순간 깨달았다.

실수했다.

아마 지금뿐 아니라 아까부터 계속 말이다.

다리에 마력을 대부분 분배한 탓에 팔에 넣을 힘이 없다. 그렇다고 이제 와 상체로 마력을 뺀다면 쓰러질 것이다.

아스카니엔이 딱히 힘을 주지 않은 게 느껴지는데도, 한스의 검은 무게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끽, 그극― 극―

맞닿은 채 비틀대는 검을 한참 응시하던 아스카니엔이 한스의 얼굴을 흘끗 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촤악― 콰앙!

아스카니엔이 발을 크게 굴렀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새빨간 마력이 주위에 솟구쳐 한스의 팔과 어깨를 휘감았다.

보통이라면 피할 수 있었겠지만 다리에 모든 마력을 집중한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한쪽 팔을 붙들린 한스가 뒤로 휙 고꾸라졌다.

쿠웅!

질끈 감은 눈을 번쩍 뜨자, 턱 아래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들어왔다.

“수고했어.”

* * *

호감도 150 달성 (150/300)

이미 시작 전에 80을 찍었기에, 호감도 100을 달성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10여 분 전에 150점을 달성했다.

대련 도중 끊임없이 나타나는 하얀 글자 탓에 신경이 분산되었지만, 아무튼 좋은 신호였다.

“수고했어.”

내 호감도 올려 주느라 수고했다.

나는 검을 놈의 턱에 들이대며 말했다. 그 순간, 겁에 질려 있던 한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띠링―!

호감도 +1

‘…….’

호감도가 올랐어?

본능적으로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그야 방금까지 신명 나게 팼던 상대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오면 일단 뒷걸음질부터 칠 수밖에 없다.

‘행동과 속내가 정반대로 움직이는 건 자존심 때문인가.’

나에 대한 평가가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말인데,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은 참 다양하다.

뭐가 됐든 1점이 소중한 내게는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

놈은 내 손을 바라만 보다, 비틀대며 혼자 일어났다.

놈의 친구들이 다급히 계단에서 내려와 놈을 부축했다.

“루카!”

엘리아스가 언제 내려왔는지 내 등을 쳤다.

“야, 이제 네 성적에 딴지 거는 사람 없겠는데~ 나랑도 얼른 하자니까!”

“그래.”

아무렇지 않게 답하기는 했지만 놈도 레오와 스타일이 같을까 봐 섣불리 날짜를 잡을 수가 없다….

나는 엘리아스를 외면하고 손목을 돌렸다.

‘확실히 늘기는 했네.’

한스의 실력은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고작 4개월 배운 내가 이기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놈에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감정이지.’

부동심도 실력이다.

시험 중에는 분노할 일이 없으니 한스 본인도 몰랐겠지만, 놈은 감정에 쉽게 휘둘렸다.

물론 약점을 잡았어도 내게 실력이 없다면 이길 수 없었을 텐데 레오에게 4개월간 미친 듯이 얻어맞으며 기본을 다진 덕에 기회를 잡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레오의 방식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 그저 헛웃음만 나긴 했지만, 어쨌든 그 덕에 이만한 향상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슬슬 가자.”

나는 엘리아스를 떼어내며 뒤돌았다.

그때, 저 멀리 황제가 생각나는 레몬색 머리칼이 보였다.

‘음?’

아델베르트인가 싶어 얼굴을 좀 더 살피려 했으나 그가 몸을 홱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때마침 그쪽에 신경을 쓸 여유도 사라졌다.

시야 끝에 예상치 못한 사람의 얼굴이 걸렸기 때문이다.

덩어리처럼 뭉쳐 있는 2분반 학생들 앞에서, 우리 반 교수가 말없이 나를 보며 서 있었다.

“…….”

“학생.”

담임교수가 정확히 나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 대련은 큰 문제가 아닌데, 괜히 교수의 표정이 진지해 나도 같이 분위기를 잡아야 할 것 같다.

“…안녕하십니까.”

“그래요. 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한스와 대련을 했습니다.”

교수가 그걸 물은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마법검술학 과목은 수강한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개인적으로 조금씩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예.”

교수는 더 묻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띠링―!

호감도 +3

“…….”

그러니까… 교수님 입장에서는 키울 맛 나는 학생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나는 잠시 튀어야 하나 고민했다.

“학생.”

“예.”

“따라오세요.”

* * *

교수님은 열성적으로 전국대회와 동아리를 소개했다.

국정 업무로도 벅찼기에 일단은 전부 거절했으나, 그럼에도 교수님은 열정을 버리지 않고 원한다면 마법검술학 교수에게 1:1 지도를 부탁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일단 그건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마침 트라우트가 마법검술학 교수이지 않았던가.

‘슬슬 그쪽도 보낼 때가 됐지.’

교수님의 연구실 문을 닫고 나오는 사이, 호감도 창이 나타났다.

띠링―!

호감도 200 달성 (200/300)

200점.

그럴 만도 했다.

엘리아스가 마지막으로 세었을 때, 그 자리에 모인 학생 수가 이미 100명이 넘었다고 했으니까.

‘한스 덕에 빠르게 채웠네.’

만족스럽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동아리 시간이 다가오니 기숙사에 들렀다가 연극부에 가야 한다.

‘그 전에, 상황 정리는 완벽히 끝내야지.’

나는 교수님께 받은 온갖 종류의 유인물을 가방에 정리해 넣고, 익숙한 좌표를 외웠다.

그러고는 미리 알아 둔 호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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