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45)
“…왜 날 보면서…?”
필립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화났다는 걸 드러내고 싶은 듯했지만, 체링겐의 집안이 보통이 아닌 걸 떠올렸는지 금세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아무래도 가장 문제의 소지가 많아서 말이지.”
“어딜 봐서…!”
“아니라고 생각하나? 싸우자는 건 아니었는데, 스스로 모범적으로 살아왔다고 믿는다면 미안하군.”
‘…으음.’
다짜고짜 비꼴 줄이야.
시작부터 싹을 자르겠다는 건 빈말이 아닌 듯하다.
가산점을 방해하는 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 잘 보인다.
필립은 이 자리에 찔리는 관계가 둘이나 있어 그런지 변명하듯 말했다.
“…방해 안 할 거야. 내 점수도 걸렸다고.”
“그래, 좋아. 같은 팀이 되었는데 잘해 봐야지.”
체링겐이 웃으며 강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리 확실하네.
인간관계를 모조리 서열로 판단하는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는 놈이 팀을 이끌고 있으니 편하다.
“먼저, 고유능력부터 조사해 볼까? 다들 알겠지만 나는 이번 시험에서 쓸 수 있는 능력은 아니야. 폭주자에게 낙뢰를 떨어뜨릴 수는 없으니까.”
‘오.’
고유능력이 꽤 만화 같네.
좋은 능력이다.
내 표정을 보고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체링겐이 미소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루카스는 오늘 처음 알았겠구나. 말 그대로 번개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물을 조작하는 능력이겠지만, 작동 원리에 해박하지 않아서 응용은 못 해.”
“음, 그럴 수 있지.”
다들 그럴 것이다.
아델베르트만 해도 바람을 고유능력으로 쓰는데, 그건 사실 기체를 다루는 능력 아닌가.
하지만 기체 조작을 고유능력으로 한다고 말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놈은 마력과 몸의 움직임 없이 바람을 일으킬 수는 있어도, 공간의 기체를 단번에 제거해 진공 상태로 만들거나 분자를 원자로 쪼개고 새롭게 결합하는 등 응용에는 발달되어 있지 않다.
고유능력이라는 건 그렇다.
능력을 가진 본인도 왜 가졌는지 모를 일부 분야에만 국한된 능력이다. 범위를 넓히는 게 불가한 건 아니나 힘든 일이다.
“자, 그러면… 멜빈은 고유능력이 없으니, 하이케부터 말해 볼까?”
그 말에 하이케 아인시델이 표정 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지금 쓸 수 있는 능력은 아냐.”
처음 듣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서늘했다. 안 좋은 감정을 담아 말하는 게 아닌 듯한데도 그랬다.
어쨌든… 고유능력이 있긴 하다는 거네.
내 차례가 되어서, 나는 짧게 답했다.
“난 없어.”
필립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이케 아인시델과 플로리안의 시선도 내게 향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
‘피를 마셔서 마력을 늘릴 수 있는 특징 자체가 고유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바이에른에서 내 코어에 ‘현재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과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언제든지 내게 과거의 특성이 발현될 수 있는 셈이다.
진짜로 피 마셔서 마력을 늘릴 수 있기라도 하면 안 억울하겠다.
그때, 차례가 된 필립 친구가 주저하다 진지하게 말했다.
“음, 이거 쓸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르겠는데.”
“뭐, 일단 말해 봐. 전부 대략 아는데 이제 와서 꺼릴 필요 없어.”
체링겐이 빨리 말하고 끝내라는 듯 대충 대답했다.
그가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주저하면서도 말을 시작했다.
“식물 생장 속도를 좀 조절할 수 있는데… 레오나르드처럼 한계를 넘어서 키울 수는 없어. 조금이라도 써먹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말하는 거야.”
“그래, 좋아.”
학교폭력범 주제에 고유능력도 있네.
아무튼 써먹을 일이 있을 것은 사실이다.
시험에 주어지는 필드는 도심부터 자연까지 다양하다.
자연 필드에서는 쓸 만한 능력이겠지.
체링겐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필립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제 필립 너만 말해 주면 되겠다.”
“나도 지금 쓸 만한 능력 아냐.”
“글쎄다. 제대로 말해 줬으면 하는데.”
체링겐의 단호한 말에 필립이 얼빠진 얼굴로 코웃음쳤다.
“알면서 왜 물은 거야? 수맥 찾을 때 빼고는 쓸모도 없는 능력이야.”
‘수맥은 어쩌다 찾아본 거지.’
그런 걸 찾을 수 있다는 걸 보니 지각 능력을 증폭할 수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 새끼가 내게 파이를 먹이려 했던 날, 사람 안 온다고 호언장담했던 게 고유능력 덕분이었나 보다.
별로 폼이 안 난다고 생각하는지 본인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체링겐이 종이에 무언가 적으면서 무심히 말했다.
“초지각이 가능하다는 말이지. 꽤 쓸 만할 것 같은데. 수맥은 확실히 쓸모없겠지만.”
방금 유일하게 쓸모 있다고 말한 것을 쓸모없다고 말해서 그런지 필립이 어이없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율리아의 말에 동의한다. 진짜로 왜 수맥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근데 듣고 있으니 새롭네.’
학교폭력범 둘이 고유능력을 가진 건 좀 어이없지만 다들 진짜 마법사같다.
특히 체링겐은 이대로 가서 영화 하나 찍어도 되겠다.
그 뒤로, 회의는 순조로웠다. 필립과 놈의 친구도 잠깐 툴툴대긴 했지만 일반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발표한 20가지 필드에 대한 전략을 설정하고, 회의를 마무리했다.
체링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한 시간 뒤에 3팀이 훈련장 비운다고 했거든. 그때까지 자유시간 보내다가 다시 모이면 되겠다.”
“그래. 여기로 오면 돼?”
“응. 만나서 다 같이 이동하자.”
나는 하이케와 체링겐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간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카스!”
1팀도 이제 막 쉬는 시간을 가졌는지, 나르케가 복도 끝에 있는 휴게 공간에 나와서 쉬고 있었다.
“여기 있었네. 훈련은 언제 해?”
“예약한 시간까지 앞으로 1시간 남았어.”
나르케가 제 앞자리에 앉으라는 듯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회의 잘 끝냈어? 필립이랑 너랑 같은 팀 된 거 놀랍더라.”
“그럭저럭. 해 봐야 알겠지만 지금 당장은 문제 될 것 같진 않아.”
“그래? 다행이네.”
나르케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신력을 써서 말했다.
—“아인시델은 어때.”
얘도 그놈이 신경 쓰이나 보네.
“평범해.”
처음으로 공략 불가능이 떴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그때, 귓가에 걸어둔 아티팩트에서 누군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 곧바로 바이에른으로 워프했다.
십여 분 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자 나르케가 웃었다.
“바쁘네~ 본부에서 너 계속 찾지 않아?”
“그렇지.”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드나드는 것 같다.
내가 자리에 있는 시간을 추정하지 못하게, 누가 문을 두드리면 바로 그곳으로 워프하고 다시 이곳에 오기를 반복한다.
어제 아델베르트 일을 겪고 희생자의 코어에 직접 접촉하지 말라고 발표한 뒤부터는 불려 가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보다, 나르케에게 물어볼 게 있었지.
나는 차음 마법을 걸고 말을 꺼냈다.
“나르케. 아델베르트 일에 대해서 비공개로 수사를 해야 하는데, 내 알리바이에 대해 뭐라고 말하면 좋을 것 같아?”
“음, 알리바이라….”
나르케가 난감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지금 따져도 의미 없을 듯해.”
“무슨 말이야?”
“음….”
나르케가 애매하게 웃었다.
알리바이를 만들어도 상황이 내게 썩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지 않는단 말이군.
“그래도 걱정 마. 장기적으로는 이게 제일이었어. 네가 아델베르트 안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지금쯤 마법사 여럿 죽었을 테니까.”
“그건 그렇지.”
플레로마는 지금 왜 신약이 마법사들에게 통하지 않는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것이다.
코어를 만지지 말라는 건 기관에만 통보했으니, 우리가 놈들의 업데이트 사항을 알아냈다는 걸 알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럼,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내가 들어간 곳은 아델베르트의 꿈인 거지?”
“애매한데. 꿈이지만 동시에 진짜 세계겠지.”
어쨌든 꿈을 기반으로 했다면, 그곳에서 내가 신력을 사용했다는 건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세계를 만든 주체인 아델베르트는 내가 신력을 사용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가.
“나르케. 나는 그곳에서 나로 들어가지 않고 아델베르트의 몸에 들어갔어.”
“아, 역시. 네가 아델베르트 얼굴로 돌아다녔다니 상상이 안 가는데.”
좀 많이 다르게 생기긴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그 몸에서 신력을 쓸 수 있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납득이 안 되는데, 혹시 짚이는 게 있어?”
“아, 그 애의 꿈이라도 몸 안에 들어간 건 너니까~”
“…….”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으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사실 대부분 의식하지 않는 분야여서 모르는 게 당연하긴 한데….”
그가 턱을 쓸며 생각에 잠기더니, 적절한 비유가 생각났는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루카스, 플레로마의 세계에는 부적격자와 적격자가 있지. 왜 비트리올을 받는 비마법사 모두가 똑같이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지 않는 걸까?”
“…….”
“비트리올은 코어로 자리 잡힌다는 특수성이 있지만, 그게 없던 마법사의 자질을 생기게 해 주는 건 아냐. 그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질이 코어가 생김으로써 발현되는 거지.”
“…잠깐.”
“응?”
알긴 알았지만 이걸 여기에 적용한다고?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럼, 내가 지금 쓰는 마력이….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며 물었다.
“나르케. 그러면 내가 현실에서 아델베르트의 몸 안에 들어가도, 내가 지금까지 썼던 마력을 그대로 쓸 수 있어?”
“이런 재밌는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는데~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재밌지 않아.”
“하하, 어쨌든….”
나르케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오히려 적응만 하면 더 잘 나오지 않을까? 아델베르트는 코어 검사 결과가 특1급이던데.”
“…….”
“당연히 네가 아델베르트가 되어도 마력은 네 것 그대로 나와. 그건 네 자질이니까.”
아델베르트를 루카로, 나를 원래의 나로 해석해도 동일한 상황이지.
내가 지금껏 루카의 마력이라고 믿었던 게, 루카의 마력이 아니고 내 마력이라고?
순식간에 여러 의문이 머리를 헤집었다.
“루카스. 왜 그래?”
“아니야.”
나는 눈을 피하기 위해 눈썹뼈 있는 곳을 누르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놈이 알면 안 되지.
구마 당할지도 모른다.
‘…혹시 지금 구마 당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아니, 애초에 원래의 나는 살아 있긴 한가?
전부 나르케가 듣기에는 이상한 생각이다.
“그래, 알려 줘서 고맙다.”
나는 그렇게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표정을 보니 나르케는 이미 다른 생각에 빠진 듯했다.
“뭘~ 그보다, 루카스!”
“응?”
“연극부에서 너 찾던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까 누가 우리 회의실에 들어와서 너희 어느 방 쓰고 있는지 물어봤거든.”
“…….”
* * *
부장이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지금이 기회다.
어느 학과인지는 몰라도 마법학과면 우리처럼 회의하고 있을 테고, 다른 학과면 지금 오전 수업 중이라 자유롭지 않다.
나는 그 즉시 건물에 퍼져 있던 6팀 친구들을 끌어 모아 훈련장 건물로 워프했다.
다행히 앞 팀에서 20분 일찍 훈련을 마무리하고 간 듯했다.
우리가 예약해 둔 훈련장에 들어서자, 체링겐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루카스가 이렇게 훈련에 진심인지 몰랐어.”
“최선을 다해야지.”
필립은 내가 이끌고 와서 그런지 입이 댓발 나와 있었지만 다행히 별말 하지 않았다.
체링겐이 손뼉을 짝짝 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좋아. 훈련장 대여 2시간 20분 뒤면 끝나니까, 쉬지 말고 일곱 번 연달아 갈까?”
“우선 해 보고 결정하자. 처음 필드는 뭘로 할래?”
“무난하게 건물로 가자.”
아인시델이 표정 없이 말했다.
‘…아인시델이라고 하니까 기분이 묘한데.’
분명 내 왼손은 멀쩡한데 계속 부러져 있는 기분이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건물 필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지, 체링겐이 훈련장에 설치된 공간 마법 아티팩트를 조작했다.
그 순간, 학교에서 저장해 둔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번듯한 도로와 수많은 건물이 있었다.
[와, 이걸로 시험장이 아니라 다른 곳을 불러내기는 처음이네.]
분명 옆에서 들리던 체링겐의 목소리가 이제는 아티팩트를 타고 들려왔다.
현장에서 그러는 것처럼 지시사항을 바로 듣기 위해 학교에서도 이 도구를 도입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현장과 달리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없는 버전으로 체링겐이 조작했을 것이다. 폭주 현장에 민간인까지 돌아다니면 난도가 확 올라가니까.
그때 체링겐이 귓가를 두드려 아티팩트로 말을 전했다.
[좋아. 민간인은 없고, 급수는 5급으로 올렸어. 지난번에 쳤던 6급에 비하면 훨씬 어려울 거야. 그래도 논의했던 대로 내가 너희에게 바로 지시할 테니까, 말했던 대로만 잘해 보자.]
그가 한 번 쉬고 말을 이었다.
[카운트다운 후에 폭주자 경보음이 울릴 거야. 좌표는 알려 주지만 건물 안에서는 우리가 직접 폭주자의 위치를 찾아야 해. 루카스, 그리고 필립.]
“그래.”
[필립이 위치를 찾으면 루카스가 옆에서 보조해 줘. 둘은 외부에서, 넷은 내부에서 처리할 거고 너희 둘은 내부로 들어갈 거야.]
이번 2차 시험에서 내 파트너는 필립이 되겠네.
사실 쭉 체링겐과 함께하는 게 마음 편하지만, 그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필립 옆에 붙일 놈이 마땅치가 않지.
“알겠어.”
“뭐, 잠깐, 내가 왜 얘랑….”
필립이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이미 체링겐은 듣지 않고 다른 학생에게 말하고 있었다.
‘왜겠냐?’
행실이 후지니 이미 기선제압을 한 상대를 붙이는 게 낫지.
멜빈은 죽어도 안 되고, 필립 친구도 안 된다. 둘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1분반 아인시델을 붙이자니 데이터가 없어서 모험을 하는 셈이다.
즉, 앞으로 필립은 나 아니면 체린겐과 교대로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다. 문제아는 밀착감시 해야지.
나는 미소지으며 옆에 선 필립에게 말했다.
“너랑 처음으로 파트너가 되어 보네. 잘해 보자.”
“…….”
필립이 말없이 눈살만 찌푸렸다.
그러는 동안 체링겐의 안내가 끝나고,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3, 2, 1. 시작합니다.]
삐이익―
시험 시작 알림음과 동시에 눈살 찌푸려지는 경보음이 크게 울렸다.
[크로이츠베르크 신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12:333:718 지점에서 폭주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신민 여러분께서는 신속히 질서를 유지하여 검은 연기가 보이지 않는 공터 또는 대피 시설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들어도 썩 적응되지 않는 경보다.
나는 좌표를 내가 아는 수식에 넣고 손가락을 튕겼다.
외부를 맡은 멜빈과 1분반 아인시델이 건물 전체를 마력으로 감싸고 있었다.
필립이 아직 건물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나는 놈의 어깨를 살짝 쳤다.
“필립.”
“…!”
놈이 거의 펄쩍 뛰며 나를 돌아보았다.
“…….”
왜 이러냐….
나는 그 반응을 못 본 체하고 정문으로 놈을 이끌고, 이동하는 속도에 맞추어 차음 마법을 걸었다.
건물 안의 비트리올 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잡혔다가는 죽는다는 걸 알고 있는 셈이다.
동물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슬슬 계산을 한다는 것부터가 위험 수준이 남다르다는 말이었다.
정문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벽에 기대 감각을 집중하던 필립이 조용히 속삭였다.
“1층에 없어.”
[그래. 후문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위치 찾으면 바로 알려 줘. 지금부터 건물 봉쇄한다.]
이제 퇴로는 없다. 창문으로도 못 나가게 외부에서 막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차음 마법을 펼친 채로 2층부터 3층까지 쭉 진입했다.
확실히 놈의 능력은 쓸 만했다.
마력을 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방 안에 들어가 있는 생물까지 파악하기 어려운데, 놈은 5초쯤 집중하고서는 바로 위로 튀어 올라갔다.
‘이 능력으로 여태 말썽만 벌이고 다닌 거냐.’
확실히 말썽피우기에는 최고의 능력이긴 하다.
그딴 식으로 사니 이 능력으로 수맥 찾는 게 가장 쓸모 있는 일이었지….
그때, 건물의 꼭대기 층 계단 벽에 기대 있던 필립이 눈살을 찌푸렸다.
“5층, 정문 기준으로 오른쪽 계단 옆 방에 있다.”
[알겠어.]
이제 율리아와 그의 파트너가 그쪽으로 올라올 것이다.
그쪽과 시간차를 두고 움직일지 정하기 위해서는 희생자가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졌고, 현재 어떤 식으로 세력을 넓혔는지 알아야 한다.
필립이 먼저 튀어나가려 하기에, 나는 놈을 부르며 어깨를 끌어당겼다.
“기다….”
“으악…!”
나는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야…가 아니고, 필립.”
“…….”
“아무리 차음 마법을 걸었대도 소리를 지르면 안 되겠지? 바닥으로 진동 넘어가는데.”
“그, 그래.”
“진정하자.”
나는 간단히 달래고 내가 말하려던 내용을 꺼냈다.
그렇게, 첫 연습은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끝났다.
“와, 권장 처리 시간이 20분인데 15분에 끝냈네…!”
멜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웃었다.
결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내가 잘못 느낀 건가.’
뭐, 또 해 보면 알겠지.
그리고, 30분 뒤.
콰앙―!
내가 목표물을 향해 마법을 쏘자, 정반대에 있던 필립이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주변에 있던 팀원들이 목표물 대신 필립을 바라볼 정도였다.
“…….”
물론 이번에도 크게 나쁘지 않은 결과로 끝이 났다.
삑―
[시험 종료합니다.]
“음, 30분짜리에 도전했는데 이번에도 25분 안에 끝났네.”
“우리 팀워크 진짜 잘 맞는 것 같아…!”
멜빈은 팀원 조합이 최악이라 생각했지만 계속 결과가 잘 뽑히니 만족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분명 이 조합이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기존에 생각했던 문제는 없다.
필립이 사고를 친다던가 하는 문제 말이다.
하지만 사고를 치진 않는데, 이런 식으로 나를 볼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면….
‘장난하나.’
내가 뭐 잡아먹기라도 했어?
안 봐도 놈은 며칠 전의 아델베르트처럼 나를 흡혈귀로 생각하고 있다든지 할 것이다.
공략 단계에 플레로마로 적혀 있겠지.
이런 깡으로 1학년 때는 잘도 괴롭혔다. 그때는 플레로마고 뭐고 당장 아무것도 못하는 쫄보로 먼저 보였으니 딱히 무섭지 않았겠지.
“아쉬운 건 좀 있지만, 아직 2주 남아 있으니까 차차 고쳐 보도록 하자.”
체링겐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 오늘 밤에도 훈련장 예약했으니까 일단 쉬고 이따 다시 해 보자.”
“그래, 이따 보자.”
팀원들이 간단히 인사하고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계속 깜짝 놀라느라 진이 다 빠졌는지 필립도 어깨를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훈련장을 나갔다.
아니, 나가려 했다.
콰앙―!
나는 훈련장 문을 마법으로 끌어당겨 잠갔다.
“…?!”
“필립.”
체링겐은 차차 고쳐 보자고 했지만, 문제는 한시라도 일찍 제거해야지.
나는 핏기가 싹 사라진 놈의 얼굴을 보며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화 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