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46)
“…무슨 대화.”
“그래, 질질 끌 것도 없지. 왜 자꾸 놀라?”
“아, 놀라긴 뭘 놀라, X발….”
필립이 애써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한 발짝 다가가자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안 놀라?”
필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문고리가 돌아가다 턱 막혔다.
밖에서 체링겐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루카스?]
“먼저 가. 필립하고 대화할 게 있어서.”
[…아~ 그래.]
체링겐이 뜻을 알아듣고 웃었다.
놈도 필립의 행동이 거슬리긴 했던 모양이다.
아무도 문을 따려 들지 않자 필립이 충격받은 얼굴로 인상을 구겼다.
“…난 대화할 거 없어. 비켜.”
“나도야, 필립. 내가 좋아서 대화하자고 한 줄 알아?”
“뭐?”
“넌 대화할 게 없겠지만 네 점수는 생각이 다르지 않겠냐고.”
“…….”
놈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 틈에 시계를 확인했다.
다음 팀의 예약 시간까지 15분쯤 남아 있다.
나는 홀스터에 넣어 두었던 완드를 빼 들며 말했다.
“대련하면서 대화하자. 15분이면 충분하지.”
“…뭐, 아니, 그걸 왜 지금…!”
“왜냐고? 네가 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데, 이래서 팀워크 점수를 받을 수는 있겠어?”
못 받는다.
지금 바이에른에서 활동하는 1급부터 3급 희생자 전담 마법사 팀은 내가 직접 뽑았다.
그리고 그 과정 그대로 학교에 적용한다면, 당연히 우리 팀은 탈락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두려워하는데 정상적인 팀 생활이 가능할 리가 없다.
긁은 효과가 있었는지 필립이 붉어진 얼굴로 씩씩댔다.
“두려워? 웃기지 마! 네가 뭔데…!”
“그러면 증명해. 완드 들어.”
“…….”
“도망가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한 발짝씩 걸음을 뗄 때마다 놈이 뒤로 계속해서 물러났다.
나는 손을 튕겨 저 멀리 놓인 공간 마법 아티팩트를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빈 시험장을 불러냈다.
[3, 2, 1. 시작합니다.]
“…!”
사방이 새하얗게 변했다.
나는 출입구를 등지고 있어 보이지 않지만, 아마 사라졌을 것이다. 미메시스 안에 들어왔으니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없다.
‘도망가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니, 무슨.
당연히 말뿐이지. 절대 못 간다.
역시나, 출입구가 사라졌는지 필립의 눈에 충격이 스몄다.
“그러면 좀 놀랍긴 하겠네. 분명 널 두려워하던 건 나였는데 이제는 네가 나를 피한다니.”
나는 놈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필립.”
놈의 표정은 꽤 볼 만했다.
루카를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다. 널 그렇게 무시하고 깔보던 놈이 이제 완전히 반대 입장이 됐는데, 한번 봐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웃으며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내가 네 피라도 마실까 봐 무서워?”
“…!”
콰아앙―!
나는 양팔로 앞을 가리고 다리에 마력을 콱 옮겼다.
장막에 부딪힌 필립의 회갈색 마력이 허공에 흩어졌다.
놈이 얼마나 세게 공격했는지 한참 뒤로 밀려나 있었다.
내가 천천히 낮췄던 몸을 일으키자, 필립이 완드로 나를 겨눈 채 미친 듯이 손을 떨며 소리쳤다.
“오지 마. 진짜 X발, 오기만 해 봐! 죽여 버릴 거야.”
“내가 모기도 아니고 피를 마시겠어? 필립,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오지 말라고! 아, X발. 아티팩트 어디에 있어?!”
귀가 썩고 있다.
나는 뇌를 비우려 노력하며 미소지었다.
“그래, 뭐. 이왕 완드 든 거 제대로 해 보자.”
콰앙―!
나는 놈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치고 기수식을 펼쳤다.
놈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듯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완드가 좋아, 검이 좋아? 어느 쪽이 편해?”
“…뭐….”
저놈이야 당연히 완드를 쓰려고 하겠지.
근접전을 원하지 않을 테니.
나도 개인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적은 완드를 선호하니 상관없다.
완드로도 근접 공격이 가능하다는 걸 알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뭐, 둘 다 싫으면….”
“으아아악!”
내가 놈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놈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완드를 휘저었다.
완벽하게 마구잡이인 공격법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어 웃음이 났다.
‘대체 이게 뭐냐.’
남 괴롭히는 놈 중 알맹이 제대로 된 놈 없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겉과 속이 완벽하게 다른 놈은 오랜만에 본다.
어릴 때 뭐 겁쟁이 소리라도 듣고 트라우마가 됐나.
그간의 괴롭힘은 방어기제이자 자신이 바라는 높은 서열의 증명 도구였겠지.
나는 가만히 서 놈의 공격을 휙휙 쳐내며 말했다.
“말을 해. 그래야 내가 뭘 고치든지 말든지 하지.”
나는 순간 다리에 마력을 몰아넣고 땅을 박찼다.
콰아앙―!
놈의 코앞까지 접근하기는 우스울 만큼 쉬웠다.
상대가 레오나 체링겐이었다면 이렇게 일직선으로 접근했다가는 난 이미 벽에 처박혔을 것이다.
나는 급박하게 몸을 튼 필립을 보며 몸의 마력을 오른쪽 뒤로 옮겼다.
“…!”
내가 마력을 이용해 곧바로 방향을 180도 틀자, 공격할 여유가 나지 않아서 그런지 필립이 이를 꽉 깨물었다.
내가 계속해서 추격하자 필립의 완드가 더 처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내가 펼친 장막에 맞던 공격이 이제는 장막에도 닿지 않고 흩어졌다.
‘이건 뭐…. 한스는 훨씬 실력자였네.’
뭐, 놈이 뒤로 달리고 있다는 점도 이 후진 실력에 한몫했겠지.
나는 출력을 낮춰 놈에게 수준을 맞췄다.
“네가 왜 날 보고 그렇게 놀라는지, 내 추측이 틀렸다면 네 입으로 직접 알려 달란 말이야.”
“후, 훈련은 이미 제대로 끝냈잖아! 놀라든 말든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냐니.”
나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 반응에도 놈이 흠칫거리는 게 보였다.
콰앙―!
나는 뒤로 닥쳐오는 놈의 마력 줄기를 장막으로 막아 냈다.
나름 시야 밖에서 공격하려 노력하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할 때는 보조 공격을 더해 주의를 분산시켜야 효과가 있는데, 놈은 그러지 않았다. 그야 여전히 내가 쫓고 있으니 신경 쓸 여력이 없겠지.
“실력대로만 뽑자면 성적대로 줄 세우면 되지, 왜 팀 활동을 시킨다고 생각해? 한 번도 출제 의도를 파악해 보려 한 적이 없어? 사이가 안 좋아도 시험에서만큼은 그런 티를 내서는 안 돼. 그러니까 알려 달라고.”
“뭘?! 대체 뭘!”
아까부터 계속 말했는데.
무서워서 머리가 안 굴러가나.
“왜 나를 피해? 알아야 해결하든 말든 하지.”
“해결 못 해!”
콰앙―!
나는 발을 굴렀다.
붉은 마력이 사방으로 퍼지며 필립에게 닥쳤다.
그걸 본 놈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동시에 놈의 몸이 뒤로 훅 기울었다.
“…?!”
쿠웅!
팔의 움직임과 다리의 움직임 사이에서 혼선이 왔는지 놈이 제 발을 밟고 넘어졌다.
내가 그를 일으켜 주려 가까이 다가가자 놈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몸을 뺐다.
어처구니가 없어 그 자리에 멈춰선 순간, 놈이 팔로 얼굴을 눌렀다.
아직 가려지지 않은 얼굴이 지나치게 적색이었다.
이 정도면 병원 가야하지 않나 싶어 자세히 살핀 순간, 놈이 입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허흡….”
“…….”
음?
잠깐 사고가 멈추었다.
나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헛웃음을 치며 물었다.
“야, 너 지금…?”
놈이 거의 절규에 가까운 욕설을 길게 내뱉으며 소리쳤다.
“무섭다고!”
“…….”
“네 마법도 무섭고, 네 말대로 피나 처빨아 마실까 봐 무섭고, 어?! 잘못 찍혔다가 너희 가문에서 보복할까 봐 무섭다고. 이제 됐어?! X발, 왜, 왜 쪽팔리게 계속 물어봐…!”
‘되게 자세히 말해 주네.’
놈이 이제 대놓고 울기 시작했다.
또다시 헛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지만 지금 놈은 그런 것까지는 신경 쓰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
여러 생각이 들기야 하겠지. 이해는 안 되지만.
‘서열질에 목맬 때부터 알아봤다.’
이게 놈의 진짜 심리겠지.
두려움이 많은 건 죄가 아니지만 두려움을 감추고 세 보이고 싶어서 남에게 패악질이나 부리고 다니는 건 죄다.
이제 보니 루카를 깔보고 괴롭힌 것도,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달리 플레로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명을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야.”
뭐가 됐든 지금 울어야 할 쪽은 이놈 때문에 가산점 못 받게 생긴 우리 팀이다.
나는 무릎을 굽혀 그의 앞에 앉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꺼냈다.
“일어나.”
* * *
나는 학교 벤치에 편히 기대 콜라를 꿀꺽꿀꺽 삼켰다.
탄산이 시원하게 목을 긁고 넘어갔다.
‘좋네.’
벌써 콜라도 나와 있고. 생각해 보면 역사가 좀 있긴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남은 희미한 기억으로는 이게 지금 시기에 수입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뭐… 북해로 워프시켰겠지.’
보존을 위해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고 관세도 붙고 하는 바람에 가격이 본토의 두 배가 되긴 했다.
내가 마셔 왔던 것과 맛은 다르지만, 이렇게 현대에도 있는 것을 여기에서 발견하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반 병을 바로 비우고, 손으로 병을 꽉 쥐고 있는 필립에게 물었다.
“콜라 안 좋아해?”
“…마셔 본 적 없어.”
“그래?”
하긴, 나나 현대인이니까 알지 대륙 건너에 있다가 이제 수입된 걸 모두가 알 리가.
“먹기 싫으면 버리든가.”
“…….”
놈은 한참 고민하다 뚜껑을 땄다.
굉장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내용물을 보더니, 마찬가지로 굉장히 조심스럽게 입에 댔다.
그러더니 눈썹을 올렸다.
나는 대충 살갑게 받아들여질 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까 냉각 마법 걸려 있었을 때 바로 마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음.”
놈은 의심스러워하면서도 계속해서 음료를 마셨다.
이놈에게는 1원도 쓰고 싶지 않지만, 팀워크가 달렸으니 탈나지 않게 기초공사 제대로 들어가야지.
호감도 말이다.
마침 특성에 설득력을 높이는 능력도 있으니, 놈이 의식하지 못하게 천천히 1점씩 올려 보자.
“필립. 이건 알아 줬으면 해.”
나는 양손을 맞잡고 저 멀리 학교 정원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응시했다.
“나는 네가 아니라서 아무리 보복하고 싶다고 해도 너 같은 놈 피를 빨아먹진 않을 거야.”
“…커헉?!”
놈이 가까스로 입을 막고 오래 기침했다.
나는 다행히 자리가 깨끗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갑자기 뭔 소리야?!”
“애초에 나는 플레로마도 아니고. 그보다, 플레로마를 왜 그렇게 무서워해?”
“…….”
“말 못 하겠다면 됐다.”
겁 많은 놈이 뭘 무서워하지 못할까.
놈은 아까 무섭다고 징징댔던 것때문인지 이제는 반박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피 안 마셔도 마법을 쓸 수 있었어.”
“그럼 여태 왜…?”
“내가 그것까지 네게 말해 줄 필요는 없지?”
나는 그렇게 답하며 특성 창을 열었다.
매력 Lv.2
― ‘친해지고 싶다!’ 일정 대상 호감도 3점 상승
― ‘네 말이면 옳겠지.’ 설득력 30% 상승
― 다음 레벨까지 3.0 포인트
* 보유 포인트: 27.0 포인트
‘좋아.’
시간 돌리는 데에 쓸 포인트를 대략 10점 정도 남겨 두어야겠다.
지금이야 나름대로 평화롭다지만, 또 언제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일단 한 단계만 올리자.’
그렇게 생각하자 눈앞의 글자가 바뀌었다.
매력 Lv.3
― 호감도 0점 이하의 개체에서 40% 확률로 적용, 호감도 1점 이상의 개체에서 5% 확률로 적용
― ‘친해지고 싶다!’ 호감도 4점 상승
― ‘네 말이면 옳겠지.’ 설득력 35% 상승
‘이제야 적용 확률을 알려 주네.’
어차피 놈에게는 늘 특성이 적용되고 있었다.
나는 창을 끄고 놈의 얼굴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기운없이 앉아있던 놈이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는지 눈썹을 구겼다. 표정에 혼란이 여실히 묻어났다.
본인도 모르는 새에 나에 대한 느낌이 바뀌었으니 당연하다.
‘…….’
호감도가 오른 건 분명 좋은 일인데 대상이 대상이라 그런지 속이….
아무튼 놈의 호감도 창을 열자, 예상대로 값이 올라 있었다.
필립 괴링
호감도 0* [공략 가능 (2단계/5단계)]
“바이에른에서 검사까지 했는데 플레로마가 아니라는 걸 네가 믿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그걸 네게 설득시켜야 할 의무는 없잖아.”
필립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열질이 머리에 박힌 놈들은, 공포심 없애겠다고 아예 착하게 굴어 주면 또 제 아래로 본다.
‘짜증 나는 놈들이지.’
얼마나 알려 줘야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여기서 세게 나가면 앞으로도 놈은 활동에 방해가 될 만큼 화들짝 놀라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니 좀 미안하지만 방식을 둘 다 써야겠다. 나는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의외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