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47화 (147/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47)

“그렇게 크게 울 거라고는 생각도….”

“아아아아아악!”

놈이 거의 주먹질하듯 내 입을 막았다. 귀에 대고 소리지른 바람에 고막이 웅웅거린다.

나는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부드럽게 말했다.

“진정해, 필립. 콜라도 다 쏟았잖아.”

“이, 이, 어떻게 잊고 있었는데…!”

“그걸 잊었다고…? 대단하다.”

“…….”

필립이 목덜미를 잡았다.

얼굴색을 보니 당장 뒤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미안해지네.

그때, 나는 불현듯 든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기다려. 바로 올게.”

“뭐? 야!”

나는 기숙사로 워프해, 내 침대 이불을 확 들췄다.

잘 퍼진 채 자던 파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파이.”

“응?”

“자던 중에 미안한데 잠깐 은신 마법 걸고 따라와 줄래?”

“우워어….”

거의 곰인데.

이런 적이 없는데 이번엔 진짜 졸린가 보다.

나는 콜라를 닦을 천을 들고, 어깨에 파이를 얹은 채로 다시 필립 옆에 워프했다.

“닦아.”

“아, 어… 고맙다.”

천은 핑계고, 내 목적은 따로 있다.

나는 신력을 써서 파이에게 말을 걸었다.

―“파이. 여기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좀 봐 줄래?”

파이에게는 워프 전에 신력을 불어넣어 줬더니 금세 기력이 살아났는지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

―“그래.”

나는 퉁퉁 부은 필립의 얼굴을 내려다 보며 대답했다.

사실 이걸 계산하고 온 건 아닌데, 지금 이 광경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델베르트 건에 대해서 이제 수사에 들어가야 하지.’

나르케는 이 일이 내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라 예상했다.

예지 능력을 썼을 테지만, 미래는 나 하기에 달려 있다.

‘불리하게 돌아갈 것 같으면, 내가 먼저 범인을 추론해 보면 되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피해를 입은 자만이 타깃이라는 법은 없지.

다시 말해, 아델베르트가 쓰러진 것은 아델베르트에게 위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라 나를 사회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마련된 범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마침 아델베르트의 감정이 격해져 있었지. 그 상황에 그놈 방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아델베르트는 최적의 수단이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누가 목표물이고 누가 수단인지 확정할 증거는 없다.

이때 중요한 건 조만간 놈이 다시 움직일 거라는 점이다.

타깃이 누구건 목표를 이루지 못한 지금, 범죄자는 또다른 사건을 일으켜 목표를 이루려 하거나 용의 선상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려 할 것이다.

아델베르트를 자연스럽게 폭주시키려는 게 목표라면 지금이 거의 유일한 기회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약해져 있다는 걸 모두가 아니까.

대신, 목표가 아델베르트가 아니라면….

정황상 나와 트러블이 생긴 필립에게 문제가 생길 것이다.

정확히는 필립에게‘만’.

‘어떻게 나올 거냐.’

물론, 더 움직이지 않겠다면 가능한 경우의 수를 전부 따져 보고 가면 되지.

‘누가 이기나 해 보자.’

그 전에 지금은 호감도 쌓기에나 집중하고. 나는 미소지으며 등받이에 팔을 걸쳤다.

“내가 의외라고 한 게 그것뿐만은 아냐, 필립.”

“…또 뭐….”

“보통 감각에 마력을 집중하면 벽이나 문 바로 안쪽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잖아? 그런데 이렇게 건물 한 층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니, 네게 이런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어.”

“…그냥 타고나길 내 감각이 예민해서 그런 것도 있어.”

“그래, 뭐가 어쨌든 시간 단축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

미소지으며 말을 마친 순간, 필립이 있는 쪽에 팝업창이 떴다.

호감도 +1

‘…으음~’

이걸로 +1*이 되었겠군.

속은 좀 울렁거리지만 고맙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특성을 한 단계 더 올렸다.

적용 확률만 커졌기에, 바로 레벨 5까지 포인트를 쏟았다.

매력 Lv.5

―호감도 0점 이하의 개체에서 50% 확률로 적용, 호감도 1점 이상의 개체에서 5% 확률로 적용

―‘친해지고 싶다!’ 호감도 5점 상승

―‘네 말이면 옳겠지.’ 설득력 40% 상승

‘40%면 개소리해도 믿어 주겠는데?’

어디까지 받아주나 한번 시험해 볼까.

내가 호감도 5점과 설득력 40%에 감탄하고 있을 때, 놈이 웅얼대며 입을 열었다.

* * *

“넌….”

필립이 말을 흐리자, 루카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응, 그래.”

그 친절한 말투에 필립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까부터 느끼는 건데, 미묘하게 두려움이 줄어들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여전히 두렵지만 좀 다른 결로 두렵다. 여태까지는 어디 가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임당할까 봐 두려웠다면, 이제는….

‘…왜지?’

인간적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미안해서? 부끄러워서?

스스로도 너무 급격한 변화라 이게 대체 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 짚이는 것은 있다.

나라면 놈처럼 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놈이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나를 괴롭혔을 것이다. 놈의 마법 실력도, 놈의 집안도, 모조리 그게 가능한 환경이지 않은가.

“필립. 왜 말이 없어?”

“…넌 왜 아무것도 안 해?”

“뭔 말이야. 너 같으면 당장 얼굴 못 들고 다니게 조져 놓을 텐데 왜 안 그러냐고?”

뭐지? 이 새끼 왜 알지?

설마?

필립이 흙빛이 된 얼굴로 대답했다.

“어? 뭐… 뭐, 그런 뜻이지.”

“필립.”

루카스의 무신경한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넌 줄 알아?”

“…내가 뭐 어때서….”

“진지하게 하는 말이냐?”

필립의 입이 다물렸다.

“물론, 나는 괜찮지 않아. 네게 당한 일은 전부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루카스가 필립의 어깨 쪽에 손을 가까이 하자 필립이 흠칫 놀라 옆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네가 무서워서 피하는 것처럼, 나도 복수심을 주체하지 못하면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되잖아. 그렇지?”

“…그래.”

“방해가 될 만한 불화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 솔직히 아직도 네가 날 괴롭혔던 기억이 생생해. 화가 안 난다면 거짓말이야.”

필립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우선 시험만큼은 감정을 빼고 임하려 하고 있어. 그러니, 너도 좀 맞춰 줘야 하지 않겠어?”

“그러면 시험이 끝난 다음에는….”

미친 듯이 용기를 끌어서 낸 물음에, 루카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이대로만 한다면 집안에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필립.”

“지금 이대로?”

루카스는 답하지 않고 제 할 말만 내뱉었다.

“솔직히 네가 이렇게 날 무서워할 줄은 몰랐어. 난 늘 네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생각했거든. 예를 들어서 필기도 그렇지. 성적을 많이 올렸길래 네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내 착각….”

‘뭔 개소리야.’

자비를 베풀었다고 제 입으로 이야기하는 놈도 다 있네.

필립이 피눈물을 흘리고 싶은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한 학기 내내 오전부터 오후까지 미친 듯이 강의록을 만드느라 매일 팔 근육이 당겨서 못 살겠다. 말 빠른 교수 수업이 있는 날이면 그냥 아침부터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놈의 아량 덕에 징계위에 가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필기를 하다 보니 등수가 좀 오른 것도 사실이고.

“잘 생각해 봐, 필립. 내게 있어 넌 퇴학시킬 가치가 없었어. 그보다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 개근해서 1교시부터 8교시까지 열심히 필기하는 삶이 얼마나 성실하니? 난 널 좀 갱생시켜 보고 싶었는데, 그 점은 와닿지 않았구나.”

갱생?

그게 아니라 애초부터 강의록 탈취가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설득된다.’

왜 유독 맞는 말 같지?

필립은 그렇게 한참 루카스의 말을 경청했다.

* * *

“…그러니까 네가 네 할 일에 집중한다면 난 기본적으로 네게 어떤 관심도 없어. 오히려 난 대학 진학하고 나서도 시간표 같이 짜자고 할 생각뿐이었는데?”

“강의록 만들려고?”

“그래. 인공지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대학 때도 잘 부탁해.”

“…그래….”

놈은 그렇게 말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되는 대로 대충 말하고 대답하길 반복했음에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신기하다.

이내 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네 덕을 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 넌 늘 날 배려해 주고 있었는데, 난 그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네가 나처럼 굴 거라고만….”

‘효과 제대로네.’

방금까지 인공지능 얘기했는데 이렇게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거냐?

나는 놀라움을 누르고 미소지었다.

“으음, 아니야. 필립, 그러면 이제 아까처럼 놀라지 않을 거지?”

“…노력해 볼게.”

귀찮아서 내내 개소리했는데 결론은 잘 뽑혔다.

이게 설득력 40%의 힘인가. 확실히 정치인들이 가질 능력이다.

그런 만큼 좀 무서운 능력이긴 하다.

상대가 상대이니 그냥 마구 썼지만, 다른 학생들에게는 조심해서 써야지.

순간 눈앞에 새하얀 글씨가 나타났다.

띠링―!

호감도 +1

나는 다시 놈의 호감도 창을 열었다.

필립 괴링

호감도 +3* [(2단계/5단계)]

‘체링겐이랑 값이 같아졌네.’

분명 체링겐이나 아델베르트의 값을 볼 때는 그냥 만족스러웠는데, 이놈에게서 +3을 보니 속이 살짝 울렁거리는 것 같다.

그렇게, 밤이 되어서 약속한 훈련 시각이 되었다.

우리 팀만 이 시간에 예약을 한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다른 팀도 연습하러 나와 있었다.

삑―

[시험 종료합니다.]

안내음이 나오자 우리 팀 학생들이 나와 필립이 있는 곳을 돌아봤다.

미메시스가 꺼지고 나서, 나는 옆에 서 있는 필립에게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필립이 잠깐 주저하더니 손을 툭 치고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살았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여기서 더 문제를 일으키는 놈만 없으면 우리 팀 팀워크는 살았다.

놈은 여전히 날 볼 때마다 움찔거리기는 해도, 아까처럼 비명을 지르거나 펄쩍 뛰지는 않았다.

체링겐도 달라진 걸 느꼈는지 내게 와서 속삭였다.

“루카스, 어떻게 했어?”

특성으로 사기 치기….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그냥 진지하게 대화했지. 쟤도 점수가 걸려 있어서 그런지 금방 알아듣더라.”

“그래? 대화 실력이 대단한데.”

체링겐이 흡족하게 웃었다.

“아, 루카스. 혹시 2학년 합동 훈련 일정 앞당기는 거 어떻게 생각해?”

“왜 앞당기려고?”

“다른 팀 실력을 보고 연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다른 팀에서도 일정 조정하자고 건의하더라고.”

“음, 그래.”

나야 상관없지.

사실 2주 안에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지.

준비 기간 2주는 실력을 올리는 시간이 아니라 팀워크를 높이는 시간이다.

2차가 시작된 지 하루밖에 안 되었지만 벌써 각이 나오니 다들 빠르게 다른 팀의 실력을 보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건의는 그날 바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친구들의 모임 장소가 된 내 방을 둘러보며 레오의 말을 들었다.

“학교에서 시험 일정을 전부 앞당겼어. 이번에 플레로마가 약을 바꿨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 합동 훈련도 다음주 월요일이 된 거고?”

“그래.”

나르케도 레오도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약을 바꿔서 더 위험해졌으면 더더욱 학생을 투입할 생각을 말아야지, 더 일찍 완성시켜서 더 일찍 내보내겠다는 생각이 학교가 할 생각인가?

‘시험 단계나 추가해야겠는데.’

내가 바이에른에서 추가하면 프로이센이 따라하니 학교도 곧 똑같이 움직이겠지.

그런데, 지금 그것보다….

“왜 그래, 엘리.”

나는 시체처럼 머리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엘리아스를 보며 물었다.

엘리아스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어엉?”

“…뭐야?”

엘리아스의 안부를 묻지 않는 레오까지 헛웃음치며 물었다.

엘리아스의 얼굴은 굉장히 싸늘했다. 평소에 없던 다크서클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무섭네.’

이걸 보니 왜 다른 학생들과 파이가 엘리아스를 무서워하는지 확 체감이 된다.

엘리아스가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얘들아, 그거 알아?”

“뭔데?”

“손으로 안 열리는 거 어금니로 잡아서 따면 열린다.”

“방금 태어났냐?”

레오가 본능대로 말을 내뱉어 놓고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가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이래, 갑자기.”

“어어어엉….”

엘리아스가 대답 대신 우는소리만 하고 엎어졌다.

말은 안 해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팀워크 망했나.’

그 엘리아스까지 이렇게 첫날부터 힘들어할 줄은 몰랐는데.

아마 지금 이런 학생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나라도 팀을 바꿔 주고 싶다.

비록 필립 같은 놈이 둘이나 있고 아인시델 가문 놈도 있긴 하지만, 엘리아스에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인시델 놈은 딱히 팀원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이제 나르케도 대충 눈치챘는지, 엘리아스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똑똑―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평소에 나를 찾을 사람이 없었기에, 친구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향했다.

[루카스.]

‘…음?’

관심 없다고 생각하자마자?

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1분반 아인시델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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