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48)
우리 팀 아인시델이라고 말하자마자 친구들이 다 같이 벽에 붙어 숨을 참았다.
그러는 동안 그냥 워프해서 제 방으로 돌아가면 될 텐데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문을 살짝 열자, 낮에 봤던 그 친구가 눈앞에 있었다.
“…하이케.”
“내 이름 알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같은 팀인데.”
체링겐도 그러더니 다들 내가 이름을 모를 것을 기본으로 하는구나.
사실 맞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별 건 아니고.”
‘별 게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야지.’
성씨만으로 몰아가기는 미안하지만, 집안에 플레로마가 있는 걸 아는 입장에서 다른 학생들과 같이 대할 수는 없다.
경계심을 올리고 그를 바라본 순간,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같이 술 마시러 갈래?”
“뭐?”
그 후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지금 이 사람과 처음으로 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1분반 아인시델 본인도 딱히 나와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낮에 보았던 것처럼 표정 없는 얼굴이었다.
“…금주 중이라 안 되겠어. 갑자기 무슨 일일까? 다른 애들이 나도 부르래?”
“아니. 둘이 마시자고.”
“…….”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왜 그러느냐 묻기 전에, 1분반 아인시델이 금세 말을 이었다.
“금주 중이라니 아쉽네. 그럼 지금 시간 돼?”
“글쎄다. 이제 자려고 했는데.”
“음, 많이 늦긴 했지. 그러면 내일 훈련 끝나고 시간 낼 수 있어?”
“갑자기?”
“그래.”
들려오는 이유는 없었고, 1분반 아인시델의 얼굴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뭐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뭐가 됐든, 거절할 이유는 없다.
공략 불가능이라고 나왔던 인물이 왜 내게 먼저 접근했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지 알아야 한다.
1분반 아인시델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나는 빠르게 문을 닫고 친구들을 바라봤다.
친구들도 이 갑작스러운 대화에 어이가 없어진 듯했다.
레오가 물었다.
“뭐야. 너희 친해?”
“지금 대화 처음 해 보는데.”
“대화를 지금 처음 하는데 다짜고짜 둘이서만 술을 마시자고 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교내에 술 안 파는데 어떻게 마시려고 했던 거냐.
그때 엘리아스가 중얼거렸다.
“…쟤가 저렇게 구는 애였나? 워낙 말수가 없어서 몰랐네.”
“아, 너희는 3교육원에서부터 알았겠구나.”
나르케의 말에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쟤 3교육원 안 나왔어.”
“어, 정말?”
“이번 발표 있기 전까지 저런 애가 있는 줄도 몰랐어. 알아보니까 지역 마법학교 다니다가 고등학교만 여기로 왔다더라.“
‘…흐음.’
정보가 없는 상황이네. 어쩐지 아인시델이라고 하니까 일단 벽에 붙고 보더라.
엘리아스는 하이케 아인시델과 같은 1분반 학생이었지만, 학교에 자주 드나들지 않았으니 잘 모를 법도 하다.
어쨌든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 정보를 좀 털어 보고.
지금은 엘리아스 팀에 무슨 일이 있는지나 확인해 봐야겠다.
나는 파이를 손에 쥐고 구경하기 시작한 엘리아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엘리.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 *
엘리아스는 그저 내 옷을 잡고 우는소리만 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갔다.
‘조별과제가 보통 피 말리는 일이 아니긴 하지.’
그래도 무슨 일인지 들어야 돕든지 할 텐데, 어떻게 된 게 말을 안 해 준다.
일요일 오전, 우리 팀과 약속했던 훈련 시간이 끝났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하이케 아인시델이 다가왔다.
“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옆에서 보조를 맞춰 걸었다.
학교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둘 중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무신경한 표정에서도 느꼈지만, 1분반 아인시델은 말수가 지독히도 없는 놈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놈은 나를 교내 카페로 이끌었다.
나는 우리 앞에 놓이는 차를 흘끗 보고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가 각설탕을 넣을 거냐는 제스처를 취하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커피에 설탕 두 덩어리를 넣고 말을 이었다.
“같은 팀이니 앞으로 잘해 보자고.”
“우리 잘하고 있었지 않나?”
“그건 그렇지.”
잘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이렇게 불러내?
대충 둘러대면 안 되지.
“편하게 말해, 하이케.”
“아니. 진짜로 문제없어. 그냥 이상하게….”
하이케 아인시델이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너랑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
나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든다’고?
호감도 -2*에게서 들을 말인가?
물론, 매력 특성을 올렸으니 이제 0*점이다.
하이케 아인시델
호감도 0* [공략 불가능]
‘여전히 공략 불가능이군.’
그러면, 내가 특성을 레벨업하면서 호감도가 올라서 제 생각을 착각하게 된 것인가?
‘그럴 리가. 0점이면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준이 아니지.’
그간 학교에서 학생들을 보며 느낀 것이다.
마이너스의 경우 확실히 ‘싫다’는 감정이 드는 수준이고, 0점이면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공기 정도로 보이는 수준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있어 팀 활동에 방해가 되기라도 했다면 오해를 풀고 친밀감을 쌓아 볼 만하니 그렇다 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공기와 친해지려 할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보통 친해지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접점을 많이 만들려 하지, 다짜고짜 이걸 말로 내뱉지 않는데.’
그때 아인시델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갑작스러웠나? 당황했다면 미안.”
‘…이거, 내 쪽에서만 어떻게든 알아보려고 했지….’
내 쪽이 공략 불가 대상에게 공략될 처지가 될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나오나 보자.
“그래. 친해지면 좋지.”
가볍게 답한 순간, 하이케 아인시델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다행이네. 루카스, 이따 점심도 같이 먹을래?”
* * *
점심은 개뿔 저녁까지 붙잡혀 있었다.
나는 훈련을 마치고서야 하이케 아인시델과 헤어질 수 있었다.
‘그래도 정보는 꽤 뽑았다.’
정작 그의 진짜 속내는 듣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걸 첫날에 알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놈은 현재 아인시델 가주의 조카로 태어났으며, 마력량이 많아 직계로 입양되었다.
그러니까 다음 대 아인시델 가주가 될 것이다.
‘직계라니.’
비록 피는 방계지만, 결과적으로 위험도는 높다.
물론 제국2교육원에 올 정도면 대부분 직계이긴 하다.
그리고, 알아낸 것 하나 더.
‘친해지고 싶다면서?’
하루종일 그와 함께 있었는데 그의 호감도는 단 1점도 오르지 않았다.
특히 그쪽이 먼저 친해지고 싶다고 해서 같이 시간을 보냈으면, 그냥 그 시간이 만족스러워서라도 1점 정도는 줄 법하다.
필립도 고작 설득력 특성으로 2점이나 주지 않았던가.
나는 내 방에 돌아왔다.
친구들은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내 방에 모조리 모여 있었다.
오늘도 엘리아스는 내 침대에 쭈그려서 좌절하는 중이었고, 나르케와 레오는 그런 엘리아스의 눈치를 보다 이제 나를 반겼다.
나는 인사 대신 레오와 나르케가 궁금해할 말을 바로 꺼냈다.
“내내 아티팩트로 들었지? 별일 없었어. 나랑 친해지고 싶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별일 없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공략 불가 대상에 얼마 전까지 호감도가 음수였던 자라는 걸 말할 수가 없으니, 친구들은 별일 아니게 여길 것이다.
그때 레오가 의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친해지고 싶다고 하루종일 붙들고 있는다고? 물론 루카스 너는 관찰하려고 요청을 전부 받아 줬겠지만, 애초에 아침부터 밤까지 쭉 같이 있으려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음, 이런 식으로 별일이 맞다는 걸 캐치했네.
맞는 말이다.
하이케 아인시델과 함께 있느라 오늘 레오와 같이 훈련을 못 해서 그런지, 상당히 예리해졌다.
아인시델에 관해서 이야기를 더 나눠 보려 입을 연 순간, 엘리아스가 중얼거렸다.
“저작력은 굉장한 힘이야.”
“음?”
“아침에 일어나면 손에 힘이 안 들어온다는 점에서 악력은 후지지. 그래도 음식은 평소대로 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믿을 건 어금니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제부터 계속되는 어금니 발언에 레오가 표정 없이 말을 얹었다.
“그래? 난 아침에 더 악력 세지는데.”
“낮에 대체 힘을 얼마나 빼는 거냐? 학교 다니면서 정치하니까 체력이 점점 딸리지.”
‘…?’
레오와 나르케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엘리아스가 말을 장난으로 안 받아치고 진지하게 대응한다고?
지금쯤 ‘그래, 좋겠다’ 따위로 반응해야 했는데.
표정을 보니 레오 역시 심각성을 느낀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아스는 다시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다 운이 안 좋게 압력 꽉 들어간 병을 고르면 뚜껑 따려다가 손바닥만 불탄단 말이지. 그냥 병을 깨고 그 부분으로 마실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경우 이로 뚜껑을 찌그러뜨릴 수 있지. 또 와인을 빨리 마시고 싶은데 옆에 사용인도 없고 오프너도 없으면 경우 이로 코르크를 뽑을 수 있어.”
“논문 써라.”
“그게 어금니로 열린다고?”
안 될 텐데? 입이 어떻게 돼먹은 거냐?
어금니 안 나간 게 신기하네.
그보다 정 참기 싫으면 그냥 마법으로 열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놈의 옆에 앉아 차분히 물었다.
“그래서, 엘리. 왜 자꾸 어금니 이야기를 하는 거야?”
“다 물어 버리고 싶어! 으아아악!”
“…….”
“아, 그래서 지금까지~”
나르케가 엘리아스에 대한 데이터를 하나 더 쌓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레오는 이제야 진상을 알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참나…. 너희 팀 애들 얘기지? 정말 어떻길래? 다들 너한테 짜증 내?”
“아니.”
“자꾸 화나게 해? 뭐, 말 걸어도 대답을 안 해 준다던가.”
그 정도면 그냥 엘리아스는 멱살을 잡아서라도 대답을 들을 것 같은데.
“아냐….”
엘리아스가 앓는 소리를 하더니 이글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1팀에 1분반 한 명이라도 들어오기만 해 봐. 1팀은 2분반 사람으로만 여섯 명 꽉 채워야 해.”
“나도 1팀은 2분반만 여섯 명이었으면 좋겠다~”
나르케가 동조했다.
아무래도 나르케는 2분반 학생들과 더 친하니 그렇게 생각하겠지.
엘리아스가 이를 박박 갈며 말했다.
“아니, 정정하자. 2팀도 3팀도 전부 2분반이 해. 1분반에서 한 명이라도 나오면 안 돼.”
“많이 힘들구나.”
18명 중 1분반이 한 명도 없는 게 말이 되냐.
그놈들이 엘리아스에게 뭘 했길래 엘리아스가 대응도 못하고 저주만 하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엘리아스가 내 등에 머리를 쾅 박았다.
“…나 합격할 수는 있는 건가….”
그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르케와 레오도 입을 다물었다.
엘리아스가 스스로 떨어질 거라고 생각할 정도면 대체 어느 수준인가.
이 정도면 1분반 학생들이 자살 행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레오가 입을 열었다.
“내일이 합동 훈련 날인데, 너희 팀만 유일하게 참가 신청서 안 냈더라.”
“안 냈어? 그럴 줄 알았다.”
엘리아스가 힘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못 내겠지. 나도 이놈들 사고방식을 모르겠다. 대체 어쩔 작정인지….”
엘리아스가 터덜터덜 일어나 입구에 벗어둔 신발을 신었다. 그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제 들어가서 잘게.”
“…….”
나르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엘리아스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레오는 의외로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일 그쪽 팀도 참가시킬 거야.”
“신청서 안 냈다면서, 가능해?”
“훈련장 장부는 학생회가 가지고 있어. 그리고 이번 훈련은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훈련이야. 8팀을 몰아갈 거리는 충분해. 그래서….”
레오가 서늘하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나 지켜봐야지. 8팀 놈들이 어떻게 하길래 엘리아스가 저렇게 구는지 확인해야겠어.”
“확인만 할 건 아니지?”
내 웃음 섞인 물음에 레오가 나를 돌아봤다.
뜻을 알아챈 그가 금세 미소지었다.
* * *
합동 훈련은 두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 단계에서는 각 팀끼리의 훈련을 공개로 바꾸어 진행한다.
그리고, 둘째 단계에서는 서로 팀원을 바꾼다.
정말 다른 팀의 실력 확인이 전부인 활동이었다.
다음날, 8팀 학생들과 함께 있는 엘리아스는 의외로 멀쩡했다.
약한 소리를 하는 건 우리 앞에서만 그런 듯했다.
그때, 8팀의 팀장 역할을 하는 1분반 학생이 순서를 정하는 제비를 뽑고서 탄식했다. 이제 보니, 저 팀장 역의 1분반 학생은 마법약 대회에 같이 나갔던 1분반 학생 중 하나였다.
“아, 우리가 제일 먼저네.”
그가 제 팀 학생들을 둘러보며 조용히 속닥거렸다.
“얘들아, 이번엔 제발 지시하는 대로 하자….”
아무리 조용히 말해도 장소가 조용해 크게 들려왔다.
다들 다른 팀을 경계하느라 떠들 여유가 없는 듯했다.
“그래.”
“…….”
엘리아스 혼자 차분히 대답하고, 그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음~”
나르케가 분위기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헛웃음을 쳤다.
벌써 살짝 각이 나오는데.
저 팀장이 팀원들을 이끌지 못하는 모양이다.
8팀이 시험장에 들어가고, 금세 미메시스 시작음이 들려왔다.
[3, 2, 1.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진짜 시험처럼 다른 팀에서 필드를 지정해 주고, 제한 시간을 설정한다.
8팀에 대해 출제자 역을 맡은 팀에서 준 필드는, 숲이었다.
[…98:121:452 지점에서 폭주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신민 여러분께서는 신속히 질서를 유지하여 검은 연기가 보이지 않는 공터 또는 대피 시설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8팀 팀장의 아티팩트에 연결해 둔 안내 음성이 외부에 그대로 들려왔다.
‘지금은 시작이니까… 1분반 놈들이 문제를 일으키기까지는 좀 기다려야겠지.’
팔짱을 끼고 편히 앉아 중계 화면을 바라본 순간, 당황 섞인 물음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쟤네 왜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