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50화 (150/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50)

시선이 마주친 순간은 찰나였다.

레오는 곧바로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줍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본관 2층 복도로 내려갔다.

창밖에 분실물 안내 전단이 잔뜩 흩날리고 있었다.

‘이게 뭔 미친 상황이지.’

누가 실시간으로 종이를 뿌리고 있는데?

다른 건물에도 전단이 돌려졌는지, 학생들이 끊임없이 본관 2층으로 워프해 왔다.

나는 바글바글한 인파를 비집고 들어갔다.

“잠시만요.”

“아! 왜 밀….”

신경질을 내던 학생들은 내 얼굴을 보고 조용히 물러났다.

이럴 때는 플레로마로 여겨지던 시간이 꽤 유용하다.

인파를 뚫고 게시판 앞까지 가자, 우편엽서와 사진 하나가 벽에 붙어 있었다.

[프로이센의 공작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저하에게]

익숙한 이름이 타자기로 눌러 적혀 있다.

이미 학생들이 뒷면을 들춰 봤는지 종이 끝이 헤져 있었다.

[어떤 것이든 시간 아깝지 않게 모셔드리겠습니다.]

‘이거….’

호소문인데.

다들 사회적 인생이 끝나기 ‘직전에’ 이런 말을 한다.

다시 말해 청탁을 하려는 자들이 자주 쓰는 문구다. 니콜라우스에게 수없이 날아왔기에 익숙했다.

나는 그 끝에 적힌 붉은 글씨를 읽었다.

[Primrose path]

‘…으음.’

여기가 문제네.

외국어로 되어 있지만 익숙한 관용어.

이 용어를 거리 이름으로 쓰는 곳은 제국에 하나다.

보낸 이도, 자세한 주소도 적히지 않았지만 이 거리는 최근 들어 제국에서 유흥업으로 유명해지고 있는 거리다.

그리고 다들 그렇듯이, 법을 준수한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불법의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며 사업을 한다.

나는 엽서를 다시 뒤집고, 그 아래 붙은 사진을 확인했다.

반가면을 쓰고 하얀색에 가까운 백금발 머리를 묶은 이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일반 카메라가 아니라 아티팩트로 찍었는지 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엘리아스가 평소에 머리를 묶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나머지는 확실히 그와 비슷했다.

분명 아까 ‘팀에서 자진 하차하게 만들 생각’이 너무 나간 가설이라고 생각했지?

아니다.

‘정답이었네.’

학교 이곳저곳에 종이를 뿌린 놈은 엘리아스 팀의 놈들 중 하나일 것이고, 그놈이 엘리아스의 약점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진작부터 퇴학시킬 생각이었다.

아니, 퇴학에서 끝나면 다행이다.

일반 학생이 아닌 제국2교육원 학생들에게 있어, 이런 이슈는 정치판에서의 생명과도 연결되어 있다.

특히 엘리아스를 보낼 확실한 건수를 찾는 황제에게 굉장히 좋은 소식이 된다.

‘곧 쫓겨날 놈이니 열외로 두어도 문제가 아니지.’

그때, 한 사람의 발걸음 소리와 함께 주위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하.”

언제 왔는지, 옆에서 엘리아스가 싸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쫓아낼 생각이었어?”

이미 다른 학생들의 시선은 모조리 엘리아스에게 향해 있었다.

엘리아스가 코웃음 치며 뒤를 돌았다.

“믿어?”

“…….”

믿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학생들의 눈빛은 딱히 엘리아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 학교에서 제일가는 말썽쟁이로 여겨지는 놈의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사진까지 찍혔으니 더더욱 믿을 수가 없다.

‘문제는 사진이 결국 다 가려졌다는 점이지만.’

반가면 탓에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로브를 푹 눌러쓴 탓에 머리칼이 흰색에 가깝다는 점만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상상에 현실감을 더해 주기에는 충분했다.

“얘들아, 상식적으로 이런 우편을 교내로 보낼 것 같냐고.”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엘리아스가 답답한지 머리칼을 잔뜩 헝클고는 우편과 사진을 게시판에서 떼어 냈다.

그가 웃음을 지우지 않고 목소리를 낮췄다.

“구경할 거 없으니까 이제 꺼져.”

‘음.’

원래 이런 말투였지.

주로 악역에게 쓰는 말투이긴 했지만, 뭐. 지금 엘리아스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좋지 않게 보일 수밖에 없다.

엘리아스는 곧바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행히 학생들은 엘리아스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낯설지 않은지 말투 지적 대신 저들끼리 우편 이야기를 소곤대기 시작했다.

‘가 봐야겠다.’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소리 없이 경악했다.

부장이 내 코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님…. 여기 있었네요.”

폐인이 여기 또 있네.

얼굴빛을 보니 며칠 전 아델베르트를 보는 듯하다.

나는 예의상 미소지으며 답했다.

“예.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내가 옆으로 빠져나가려 하자, 부장이 재빨리 내 앞을 막았다.

“잠깐… 진짜 잠깐 시간 될까요?”

* * *

안 되지.

엘리아스 달래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있을 리가.

놀랍게도 엘리아스는 내 방에 와 있었다. 늘 그랬듯 내 침대에 엎어진 상태였다.

“이제 네 침대 다됐구나.”

그러고 보니 이놈은 어딜 가나 자꾸 누울 자리만 보이면 눕는다.

전에 아델베르트의 술을 마셨을 때도 다짜고짜 바닥에 드러누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눈만 껌뻑이고 있는 엘리아스를 보며 바닥에 앉았다.

엘리아스가 이불을 내리고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징징댈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나 1분 만에 왔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엘리아스의 손에서 구겨진 우편과 사진을 빼앗았다.

‘흠.’

필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타자기로 찍었군.

보통 우편엽서는 지면이 크지 않은 만큼 들어가는 내용이 적을 수밖에 없고, 그러니 대부분 손으로 간단히 적어서 보낸다.

그때, 레오와 나르케가 내 방으로 워프해 왔다.

‘자연스럽다.’

자연스럽게 남의 방에 무단출입을 하고 있다.

학생회관 지하라는 좋은 공간이 있는데, 내가 학교에서 마법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는 친구들이 매번 이곳에만 온다.

‘세부 좌표 괜히 알려 줬나.’

아무튼, 나는 내가 해야 할 말을 해야겠다.

나는 눈만 깜빡이고 있는 엘리아스에게 말했다.

“프림로즈에 간 적 있지, 엘리.”

“…….”

엘리아스의 눈이 잔뜩 흔들렸다. 그 순간을 포착한 레오가 어깨를 콱 붙들었다.

“야, 너 설마….”

“엘리아스. 여기 네가 다녀왔던 도박장 있는 곳이지. 틀려?”

엘리아스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래. 그래도 난 떳떳해. 문제 될 짓은 안 했어.”

“너 대체 뭘?! 그러고 보니까 돈 걸었잖아?!”

“내가 그냥 건 게 아니야! 다 안전장치 걸어 놨지. 그리고 난 매번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갔다고!”

“그래, 저 사진은 네가 아니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레오와 엘리아스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했다.

프림로즈 패스에서 온 편지가 생존 전략으로서의 청탁 편지라는 점에서부터 엘리아스가 왜 스스로 떳떳하게 여기는지는 이미 답이 나온 셈이다.

레오도 혹시나 해서 몰아붙일 뿐이지, 그도 무슨 일인지는 전부 파악했을 것이다.

그때 레오가 이마를 붙잡고 말했다.

“…잠깐, 검은 머리? 염색은 누가 해 줬는데?”

“나르케가.”

“…!”

레오가 일그러진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나르케는 그저 빙글빙글 웃고 있기만 했다.

엘리아스가 이불을 걷어 내고 일어나 말했다.

“다시 말해서 사진은 내가 아니야.”

“반박할 증거 있어? 나도 네가 계획 없이 움직였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바로 징계위 열러 갈 거니까 지금 말해 줘.”

레오의 말에 엘리아스가 생기 있는 눈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래, 있어.”

“뭔데. 지금 말해.”

엘리아스는 한참 말하지 않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얘들아. 나한테 방법이 있어.”

“…?”

방법…?

순간 레오와 나르케와 눈이 마주쳤다.

이놈이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걸 과연 믿어도 되는 건가?

‘아냐. 요즘 생각보다 상식적이긴 했어.’

의외로 괜찮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레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방법?”

“뭐긴 뭐야. 쟤네들 보내고 나만 합격할 방법이지.”

“아니, 그니까 그게 뭐냐고.”

“나 합격할 수밖에 없다, 얘들아. 아~ 이렇게 입에다 숟가락을 넣어 주네.”

엘리아스가 눈을 부릅뜨고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

* * *

엘리아스는 가자고 말해 놓고서는 혼자 학교 밖으로 워프했다가 금세 돌아왔다.

“먼저 징계위를 열 거야.”

엘리아스가 기숙사를 걸어서 나서며 차분히 말했다.

아무리 물어도 엘리아스가 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자, 레오는 학생회를 동원해 학교 전체에 뿌려진 전단을 회수하러 갔다.

“난 열어 주면 환영이야. 당연히 사실이 아니거든. 반박할 증거도 전부 있어.”

“그래. 오히려 상대방이 털리겠네. 안 그래도 아까 너희 팀 학생들 전부 1분반 교수님하고 면담 잡혔어.”

“어, 그래?”

레오가 훈련 장면을 마법학과 교수님께 그대로 가져갔다. 당연히 교수님들 모두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쪽은 엘리아스를 퇴학시킬 생각을 하고 있으니 타격 없겠지만.’

“잘됐네~ 그런데 그놈들은 면담으로 될 놈들이 아니야. 알지?”

“그쯤 하는 놈들이면, 그렇겠지.”

하여간 양아치 같은 짓만 쏙쏙 배워서는….

엘리아스가 중얼거렸다.

“너무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바른길을 걷고 있으면 세상이 엿을 준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그런 말 없는데.”

“어쨌든 내가 떳떳한데 이렇게 공격해 오면 나야 환영이지. 안 그래?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가게 될 거라고.”

“그래.”

“아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나를 그런 식으로 매도해? 내가 그렇게 불순한 사람으로 보여? 친황제파 놈들이면 또 모를….”

나는 엘리아스의 입을 틀어막았다.

황제 지원을 받는 이 학교에서 그런 말을? 이제 보니 엘리아스의 눈이 살짝 맛이 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엘리아스와 함께 마법학과 강의동으로 이동했다.

벌써 전교에 소문이 퍼졌는지, 우리 반 교수님이 엘리아스를 호출했다.

그래서 사실 연구실이 있는 건물로 가야 하지만, 그 전에 엘리아스가 8팀 학생들을 보고 싶다고 해서 이곳에 먼저 왔다.

‘교수님은 엘리아스 징계위를 생각하고 있겠지만, 뭐….’

사실 징계를 받아야 할 대상은 반대이니 좀 느긋하게 가도 된다.

1분반 놈들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이쪽은 알리바이도 있다.

“친구라고 감싸고 도는 거야? 걔가 거기에 들어간 걸 봐 놓고도 넌 친구라고 감싸고 싶어?”

때마침, 계단에 올라오자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1분반 놈이다.

레오가 차분히 답했다.

“네가 지금 여기서 뭐라 해도 학생회는 비허가 전단이 오백 장 넘게 유포된 걸 가만히 넘길 수 없어.”

“그래서, 학생회에서 뭐 어쩔 건데. 퇴학시키기라도 할 거야?”

레오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제 할 말을 내뱉었다.

“말 안 끝났어. 그리고 분실물인 걸 알았으면 엘리아스에게 가져다주면 됐겠지. 왜 안 그랬을까?”

“난 진짜 분실물 찾아 주려는 생각이었는데?”

“글쎄다. 혹시 또 알아? 네가 그저 화제 끌 생각으로 가짜 편지를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하하… 너 2분반 반장이라서 2분반 애들 감싸는 거 모를 줄 알아? 학생회가 이렇게 헛소문 퍼트려도 돼?”

우리 반 친구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섰다.

“야. 적당히 안 해?”

“학생회에는 벌금 좀 내지, 뭐. 됐어? 걔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 없어. 나도 그냥 분실물을 주워서 돌려주려고 했을 뿐이니까.”

그 말에, 뒷문에서 지켜보고 있던 엘리아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할 말 없어?”

순식간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이제야 엘리아스를 발견한 1분반 학생이 잠깐 당황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야.”

엘리아스가 위협적으로 학생에게 다가갔다.

학생은 꼴에 자존심은 있는지 움찔거리면서도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분명 눈에 두려움은 있지만, 그보다는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한 비웃음이 더 컸다.

엘리아스가 학생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입꼬리를 올렸다.

“뒤질래?”

“…….”

품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말에, 레오가 입술을 깨물기 시작했다. 낯이 점점 시커메지는 게 보인다.

“이래서 여태까지 날 빼놓고 움직인 거야? 그래서 내가 어딜 갔는데?”

“뭘 어딜 가, 저기 편지에 적혀 있잖아.”

“내가 왜? 뭐 하자고 거기에 가?”

“뭘 하러 갔겠어. 거기서 하는 거야 뻔하지.”

“아, 그러니까 그게 뭐냐니까~?”

“말 돌리지 마라. 너 빼고 다 알아. 아니, 너도 알겠지. 네가 갔다 왔는데 모르겠어?”

1분반 학생은 엘리아스의 무시무시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코웃음 쳤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네.’

조별과제에서 저런 놈을 만나다니, 엘리아스가 정말 피곤했을 게 눈에 보인다.

애초에 ‘퇴학당할 놈이니까 그냥 처음부터 빼고 연습하자’고 생각한 것부터 남다르다.

퇴학당할 것을 진작부터 알고서 배제한 건지, 아니면 배제하던 중 운 좋게 증거를 얻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자여도 후자여도 적당히 밀쳐 내는 게 아니라 대놓고 열외를 시키는 건 보통 정신머리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놈들은 징계위 열려도 기가 안 죽을 확률이 높은데.’

사람 따돌리는 걸 즐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분실물’ 따위의 용어를 써서 책임을 회피한 것부터, 놈은 엘리아스가 징계위를 열어도 ‘실수했네~’ 따위로 뭉개고 넘어갈 게 분명하다.

놈의 교묘한 행동이 합쳐져서 처벌할 거리가 많아 보일 뿐,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크게 처벌하기 쉽지 않은 사항만 남는다. 놈도 알고서 일을 벌였겠지.

‘문제네.’

징계위를 연다고 해도 놈들의 팀워크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2차 시험을 1분반 놈들과 같이 치러야 하는 데다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심지어 그럴 만한 놈으로 받아들여져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럴싸했다―엘리아스만 모조리 피해를 입는 셈이다.

아까 엘리아스가 ‘쟤네들 보내고 나만 합격할 방법’이 있다고 우리에게 떠벌렸지.

지금 이 상황에서 정말 그게 있을지 모르겠다. 저놈들은 내가 한스나 필립에게 했던 것처럼 대련을 유도해도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다.

그때, 엘리아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새끼 진짜. 말을 하지.”

“뭐야.”

학생이 기분 나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알려 줘?”

“뭘.”

엘리아스가 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네가 좀 호기심이 많은 거 같아. 그렇지?”

엘리아스가 주머니를 뒤져, 내가 아까 돌려줬던 우편을 꺼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전교에 떠벌리고 다니는 건데. 응?”

“야, 너 진짜 갔어?! 이거 학교가 알면 퇴학이야, 엘리아스!”

우리 반 친구가 제정신이냐는 얼굴로 물었다.

1분반 놈이 엘리아스의 팔을 쳐내고, 비웃으며 말했다.

“거 봐, 자기 입으로 인정하네.”

“아니, 생각해 봐.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전단을 오백 장이나 만들어서 뿌려? 너 솔직히….”

엘리아스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가고 싶어서 그랬지. 어?”

“뭐?”

“흠….”

마지막은 내 주변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엘리아스의 비약에 레오가 인상을 쓰고 고개를 기울였다.

“별거 없긴 한데 정 알고 싶으면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래서 어쩔 거야?”

“뭘 어쩌….”

엘리아스가 로브 브로치를 꾹 눌러 핀을 빼냈다.

엘리아스의 행동을 보는 학생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사라졌다. 표정에 의문이 서리기 시작한 건 아마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알려 줄까 묻잖아. 입 막혔어?”

“아니, 아까부터 뭘 알려 준다는 거야. 말을 똑바로….”

1분반 학생이 싸늘하게 대답한 순간, 엘리아스가 로브를 던지고 재킷을 훌훌 벗었다.

“…?!”

학생이 세상에서 이렇게 어이없는 얼굴은 다시 볼 수 없을 듯한 표정을 하고는 얼어붙었다.

이제 엘리아스는 넥타이를 내던지더니 셔츠를 말 그대로 잡아 뜯기 시작했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거 보니까 되게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거기서 배운 대로 알려 주겠다고.”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엘리아스가 벨트에 손을 올리자 학생이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지금 뭔?’

그리고 배우긴 뭘 배워. 왜 인정하고 있어?

나만 경악했나 싶어 주위를 바라봤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나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학생 역시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주변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모두 같은 의미로 파악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굳었다.

“알려 주겠다고오오오!”

“아니, 뭔 소리야?!”

학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뒤돌아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레오는 내가 얼어붙은 동안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뒤쫓았다.

“야! 뭐 하는 거야?! 좀 참아!”

확실히 엘리아스 소꿉친구인 만큼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한 듯한 반응 속도다.

“왜 도망가는데! 내가 알려 준다고! 전단 500장 뿌릴 정성으로 나한테 직접 말했으면, 어?”

나는 잠시 엘리아스가 왜 여태 망나니 취급을 받았는지 잊고 있었다.

그가 2분반 전입 첫날 처음 보는 1학년을 로비에 묶어놓는 실행력을 가졌다는 것도, 사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강렬한 첫인상을 어떻게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그들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잡으러 가는 학생이 몇 있어서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은 정말 귀신이 들린 것처럼 빨랐다. 한 명은 왠지 생의 위기를 느껴서 빨라진 것 같고, 다른 한 명은 그냥 타고나길 그런 듯했다.

한참 뛰어도 놈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저 멀리서 엘리아스의 고함이 들려왔다.

“야!”

“아니, 아아아아악! 그만 오라고!”

“너도 가라고! 너도 집 가라고! 너 내가 책임지고 방학 만들어 준다.”

퇴학당하라는 말인가?

어쨌든 엘리아스는 아까의 컨셉을 놓쳤다. 그의 본심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안도한 순간, 저 멀리서 우리 반 교수님이 1학년 마법학과 문을 열고 나왔다.

“음?!”

속도 조절이 불가해진 1분반 놈과 엘리아스를 본 교수님의 얼굴에 당황이 번지기 시작했다.

* * *

‘기선제압을 이렇게 들어가네.’

누가 더 미쳤는지 자랑하는 과정을 통해 기를 죽이는 활동은 성공적이었다.

비록 광인 같긴 했지만, 그래도 엘리아스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저 1분반 놈이 퇴학당할 가능성은 극히 낮으니까.’

놈이 비허가 전단을 500장 뿌리든 1000장 뿌리든, 그것에 대한 처벌은 받되 퇴학이나 정학이 이뤄지지는 않을 테니 2차 시험을 함께 치러야 한다.

특히 저 행동대장과 뜻을 함께하는 세 명의 학생이 더 있지.

징계위를 열더라도 시험에서의 총체적 난국을 피할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말이 다르다.

1분반 놈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완벽히 기가 죽은 티가 났다.

“자네들은….”

“…….”

“자네들은 고등학교에서 이게 대체 뭔가?”

교수님은 경어를 쓰길 포기했다.

우리는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와 훈계를 받는 중이다.

그래도 다행히 충돌 사고는 피했다.

내가 교수님의 앞에 장막을 친 순간, 레오가 1분반 놈과 엘리아스를 마법으로 붙들어 던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교수님이 나와 레오의 지친 얼굴을 보고 격려했다.

“학생들은 그래도 잘했습니다. 이렇게 뛰면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데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군요. 그래도 가능하다면 다음부터는 안전하게 선생을 부르도록 하세요.”

“그러겠습니다….”

레오가 영혼 없이 대답했다.

교수가 목을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안 그래도 아까 엘리아스 학생을 호출했지요.”

“예.”

엘리아스가 부루퉁한 얼굴로 대답했다.

“학생.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말하세요.”

“프림로즈 패스 말씀이시지요.”

“그래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결코 제국2교육원과 호엔촐레른의 이름을 더럽힐 짓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교수님.”

교수가 엘리아스를 빤히 보고는 입을 열었다.

“학생. 사진까지 찍히지 않았습니까. 물론 진위 여부는 이제부터 파악해야겠지만, 학생이 받았다는 편지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문제가 커집니다.”

“말할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우선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아뇨. 열어 주세요.”

엘리아스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1분반 학생이 인상을 구기고 그를 쳐다봤다.

교수 역시 눈썹을 좁혔다.

누가 보나 엘리아스의 퇴학이 확정인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엘리아스가 그런 그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아니면, 여섯 시에 신문으로 확인하셔도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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