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52)
둘은 학생들이 밖으로 나갈 때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엘리아스가 계속 히죽히죽 웃기만 하자 소름이 돋은 1분반 학생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같이 가야지. 응? 이제 탈락하면 무조건 너 때문인데 내가 너한테 맞춰 줘야 해?”
“…….”
나는 1분반 놈을 몰면서 밖으로 나가는 엘리아스를 불러 세웠다.
“엘리아스.”
“으응~?”
시험까지 이제 4일, 시간으로 따지면 3일 남았다.
그 시간 안에 망한 팀워크를 뜯어고치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물론, 엘리아스라면 전혀 걱정 안 된다.
“힘내라. 기대할게.”
엘리아스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아, 이러다 너희 팀보다 잘하면 어떡하지~?”
“시작부터 하고 말해라.”
“그래, 이따 보자! 기숙사에서 기다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아스는 그 길로 저녁 식사도 거르고 훈련장에 갔다.
그리고, 소문은 전교로 금세 퍼져 나갔다. 징계위에 같이 참석했던 학생들과 교수들 덕분이었다.
“그거 걔가 한 거라고?!”
“아니, 진짜 놀고 온 게 아니야? 나 이해가 안 되는데.”
일부러 들으려 한 건 아니지만, 가는 곳마다 이 이야기뿐이다.
그 1분반 놈이 전단을 학교 전체에 날리는 바람에 학생들의 관심이 이미 하늘까지 치솟은 상태여서 그런 듯했다.
정말 제가 제 무덤을 팠다.
그보다….
나는 헛웃음을 참으며 기숙사로 들어갔다.
‘이게 퍼지긴 했는데….’
평소 행실 탓에 쉽게 받아들여지질 않네.
하지만 인상이 양아치 같고 태도가 뺀질뺀질하고 생각이 없어 보여서 그럴 뿐, 엘리아스는 작년부터 플레로마를 공격하고 신민들을 위해 움직이는 걸 대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오히려 일반 대중은 무리 없이 납득할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없지.’
회의장에서 징계위를 지켜봤던 학생들이 잔뜩 흥분해서 이 일을 떠벌리고 다니는 중이다.
엘리아스가 학교에서 평판이 어떻든 그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지금 황당해하는 학생들도 차차 납득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훈련을 하러 가야 한다.
나는 교복을 다시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익숙한 훈련장 좌표로 워프했다.
아까 징계위 회의장에서 봤던 레오가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왔어?”
* * *
“수고했어. 대처 센스가 많이 는 것 같네.”
레오는 이번 달에 내가 본 것 중 가장 시원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걸 보다 어이가 없어 그냥 고개를 바닥에 떨궜다. 어차피 이미 전신이 바닥에 붙은 상태라 이 편이 훨씬 안정감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까딱여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레오가 내 의도를 알아듣고 물었다.
“응?”
“…이….”
목에서는 잔뜩 삭은 목소리만 났다.
나는 목으로만 말하기를 포기하고 신력을 썼다.
―“야 이 새끼야.”
“아, 이 방식 오랜만이네. 그런데 왜?”
“후우….”
왜라니? 그냥 웃음만 난다.
오늘 내가 뭐 거슬리는 짓을 했나?
왜 이 새끼랑 훈련할 때면 항상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무슨 원수 대하듯이 훈련을 했다는 말이다.
‘오늘 괜찮았는데.’
설마 파트너 문제가 마음에 남은 건가?
하지만 그걸로 화가 날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건 지난주 금요일에 일어났던 일이고, 나는 주말에도 놈과 훈련을 했다.
분명 주말까지만 해도 평범했는데 월요일인 오늘 갑자기 훈련 강도가 미친 듯이 높아졌다.
‘…내가 체링겐이랑 따로 훈련하는 걸 알아챘나?’
하지만 역시나 이런 이유로 강도를 높일 이유는 없다.
—“야. 내가 뭐 잘못했냐?”
“네가 무슨 잘못을 해. 왜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아무리 네 교육 방식이 괜찮다고 했다지만 인간적으로 최소한의 체력은 남겨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건 그렇지. 힘들었어? 미안.”
나는 고개를 돌려 놈의 얼굴을 확인했다.
미안하다기에는 굉장히 정석적으로 미소짓고 있었다.
‘미안 같은 소리 하네.’
아까의 엘리아스처럼 살짝 영혼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머릿속에 마법 생각밖에 없는 상태다.
그냥 처음부터 몰아갈 생각이었다.
엘리아스에게 털리고 있을 귄터가 지금 이 심정 아닐까 싶다.
‘평소였으면 그냥 욕 한번 하고 끝냈을 텐데.’
이 마력이 루카의 것이 아니라 내 자질로 인해 발현된 것이라는 말을 들은 탓에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까지 레오가 마법에 미쳐 있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놈이 10년 넘게 쫓아온 마력은 루카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 내가 쓰는 마법이 내 자질로 발현되었다면 말이 달라지지.’
내가 아델베르트의 몸에서 썼던 마법은, 적응이 되지 않은 탓에 투박하게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성질이 아델베르트의 것과 달랐다. 우선 색깔 수부터 차이가 났다. 신력도 쓸 수 있었고.
그렇다면 루카의 마법과 내 마법에도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레오는 지금 두 마법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 내가 쓰는 마법이 내 것이고, 레오가 내 마력을 학문적으로 완벽한 마력이라고 여긴다고 해도 딱히 외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광인이 괜히 광인이냐?
알릴 생각 따위 추호도 없지만, 만약 놈이 내가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해도, 놈은 마력이 남아있는 이상 나를 연구 재료로라도 써먹을 것 같다.
‘이 열의가 꺾이지 않으면 대학원에 보내야겠다.’
이 광적인 열정을 연구에 쏟아야지 남의 마력 구경하는 데에서 끝내면 안 되지. 국가적 손실이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기만 하자 레오가 치유 마법을 발동시켰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병 주고 약 주냐.”
“으음?”
“됐다. 그래서 오늘 뭔데?”
“별거 아냐. 오늘 합동 훈련에서 보여 준 게 좀 의외길래.”
“그래서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런 셈이지.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오기가 생겨서.”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알아챘네.
오늘 놈이 평소보다 세게 몰아붙였지만, 나는 마법 사용을 최소화했다.
놈도 그걸 느낀 게 분명하다.
‘이제 보니 슬슬 알겠네.’
놈은 내가 오늘 오전에 있었던 합동 훈련 중에 제대로 마법을 쓰지 않고 몸만 쓴 것을 여전히 의문스럽게 여기고 있다.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일대일로라도 파악해 보려 했겠지.
“어쩐지, 오늘따라 희생자처럼 공격하더라.”
“음. 그래서 알려 줄 생각은 없나 봐? 오늘 이 방식은 체링겐이 지시한 대로 따른 거잖아.”
“뭐, 네가 평소에 봤던 것 그대로야.”
“난 네가 세우는 전략이 궁금한 거야, 루카스.”
그러니까 상황판단력을 말하는 건데.
평소라면 모를까, 아무리 레오라도 다른 팀이니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지.
레오가 오늘 날 몰아간 것도 우리 팀이 감추고 있는 게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니 쌤쌤으로 하자.
“글쎄, 시험 날 확인해.”
“흠…. 너희 팀이 훈련을 어떻게 했을지 기대되네.”
“아니, 기대는 하지 말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워프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구석에 앉아서 파이와 과자를 먹고 있는 나르케를 발견했다.
“루카스 왔어~?”
“또 여기 있네.”
가루 떨어지는 거 아냐.
내가 과자 케이스에 시선을 두자, 먹고 싶다는 걸로 판단했는지 나르케가 과자를 꺼내 팔을 뻗었다.
나는 외투를 벗으며 과자를 받아먹었다.
‘잠깐, 이놈은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 텐데?’
그냥 입 막으려고 줬네.
“하하, 정확하네~ 정리는 깨끗이 하고 나갈게.”
“그래. 그리고 적당히 읽어.”
“그러고 보니까 나르케 이제 생각도 읽어?”
나를 따라온 레오가 물었다.
“그렇더라.”
“아, 루카스만~ 나머지는 모르겠어.”
“…내 생각만 읽을 수 있다고? 왜 나만?”
“이제 넌 생각도 조심해야겠네….”
“조심하고 말고 애초에 맨날 플레로마 생각뿐이던데, 뭘~ 추기경직에 전혀 손색이 없어.”
신 생각을 단 한순간도 하지 않는데 손색이 없다고?
“신을 생각하면서도 온갖 죄악을 벌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까.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 신을 들먹이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신실한 게 아니라 오히려 모독적인 사람이야. 그런 식으로 합리화된 죄악이 역사를 뒤덮고 있지 않니.”
“음.”
종교인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나르케가 의문 섞인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무시하고, 자리에 앉아 프림로즈 패스 이야기가 적힌 신문을 읽는 레오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기분 좋아 보이네. 아까 엘리가 옷 뜯을 때는 황당해 보였는데.”
“…안 황당할 수가 없지 않나…. 그냥, 황제 폐하와 사이도 안 좋으면서 잘도 깨끗이 처리했네 싶어서.”
그래도 기본적으로 황족이니까.
황실 안의 조직이 그 주인의 뜻을 거역하긴 어렵지.
쉽게 생각하면 아스카니엔 가문 내부의 조직에 대고 내가 꼽사리 낄 수 있겠냐고 하는 셈이다.
‘물론 황제와 엘리아스 사이가 썩 원만하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이 문제는 엘리아스가 알아서 잘 처리한 듯하다.
분명 엘리아스는 도박장에 다녀오고 나서 다짜고짜 치안본부에 쳐들어갔을 거고, 치안본부에서 황제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결정을 내릴 시간 없이 무작정 급하다고 소리치면서 몰아붙였을 것이다.
놈이 다 엎어 놓은 치안본부에 가서 수사증을 따낸 걸 보면 가능한 경로는 이것뿐이다.
그때, 방 입구에 빛이 번쩍 일었다.
“오, 뭐야. 다 와 있었네.”
엘리아스가 인사하고는 자연스럽게 내 침대에 누웠다.
방금 막 샤워까지 마쳤는지 잠옷 차림이었다.
여전히 히죽대고 있는 걸 보니 훈련이 깔끔히 끝난 모양이다.
“아~ 시원하다. 이게 사는 거지.”
“어땠어?”
“어떻긴~? 달리 선택지가 있나, 그놈들한테.”
엘리아스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또 이상한 방식으로 위협한 거 아니지?”
“에이, 날 뭘로 보는 거야~! 그런데 루카, 요즘 저거 자주 마시네.”
엘리아스가 말을 돌릴 거리를 찾으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내 책상의 콜라를 가리켰다.
오늘 아침에 마시다 만 병이었다.
“그랬나?”
“응. 방에 올 때마다 책상에 마시다 만 게 꼭 하나씩 있는데.”
반가워서 그만.
사실 제로가 아닌 일반 음료는 현실에서 손도 대지 않았다.
직업상 체중 관리가 필요해서 그렇기도 했고, 뭔가 입에 들어가는 걸 즐기지 않아서 그렇기도 했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오히려 여기 와서 평소에 마시지도 않던 걸 마시게 됐네.
지금은 지나치게 박물관에 있어야 할 디자인이지만 어쨌든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찾게 된 듯했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똑똑―
또다시 친구들과 눈이 마주쳤다.
문에 차음 마법을 걸어 둬서 대화 소리는 새어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문 앞에 섰다가, 왜인지 모를 불길함에 손을 물렸다.
[선배님.]
음.
동아리 부장일 줄 알았는데 아델베르트다.
나는 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굳었다.
“…….”
동아리 부장이 아델베르트 옆에 서 있었다.
‘둘이 같이 온다는 경우의 수는 딱히 고려하지 않았는데.’
아델베르트는 이미 반쯤 영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안 봐도 어떻게 일이 진행됐는지 보인다.
“뭔데요, 이건?”
“죄, 죄송…. 부장님이 와 달라고 하셔서요.”
사실 낮에 나중에 얘기하자고 말하고 떨쳐내고 오기는 했다.
그 나중이 바로 몇 시간 뒤일 줄은 몰랐지만.
아델베르트가 부장을 떨치고 내게 귓속말했다.
“선배님. 혹시 부장님 얼굴빛이 왜 저런지…? 건강에 문제가 생기신 줄 알았습니다.”
“글쎄요.”
아델베르트가 보기에도 부장이 폐인처럼 보이나 보다.
아무래도 이제 극 올리기까지 2주도 안 남았는데 주인공이 없으니 저렇게 될 수밖에.
한참 전부터 예정된 공연을 펑크 내게 생겼는데 정신이 멀쩡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 보나 마나 아델베르트 대타로 다른 놈들한테 맡겨 보려고 했는데 다들 암기력이 여의치 않았겠지.’
그래도 2주면 해 볼 만한데.
축제 때처럼 40분짜리 극도 아니고, 2시간에 가까운 만큼 부담이 큰 듯했다.
학교가 입시에 미친 학생들로 이루어진 예체능 동아리에 너무 많은 짐을 지웠다.
다들 그냥저냥 재미있는 추억 만들러 온 거지 대사 2시간 읊으려고 온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나는 아직 마인드까지 신인류가 아니라는 문제까지 있다.
일단 내게 준비된 논리, 아니, 방법이 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후배님, 지금 시간 되시는지….”
“예, 됩니다.”
언젠가 이야기를 제대로 끝내기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협상을 잘 이끌어 나가기 위해 부드럽게 표정을 고치고 말했다.
“부장님. 대본 각색 다시 하겠습니다. 로맨스 요소를 중심으로 편집하니 로잘린드 비중이 많아졌죠. 그러면 집안싸움 이야기를 늘리면 해결이 되겠지요?”
본격적으로 연극 이야기가 나오자 부장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아, 사실 고려해 봤어요. 대타 맡은 1학년이 계속 암기를 못 하길래…. 하지만 이 극을 보러 오는 관객은 대부분 로맨스를 위해 오는 거니까요. 다들 각각의 극에 기대하는 바가 있잖아요. 햄릿에서 2시간 내내 로맨스를 보고 싶어서 오는 사람은 없듯이 말이에요.”
음.
맞는 말이다.
나는 턱을 쓸며 고민했다.
하지만 저게 문제라면, 문제 축에도 안 낀다.
“그렇다면 제 배역을 남자 주인공으로 바꿉시다. 제 대사량을 늘리고 로잘린드를 줄이죠. 로맨스가 필요하면 남자 주인공 버전으로 만들면 되잖아요?”
“오…?”
“원작에는 로잘린드 내면이 더 많이 서술되어 있죠. 그러니까 한번 비틀자고요. 화제성 하나는 괜찮게 뽑을 수 있을 듯한데요.”
솔깃했는지 부장의 눈빛이 조금 생생해졌다.
나는 미소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각색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부장님은 그냥 부장님 배역에만 충실하세요. 부장님도 두 번째로 대사 많은 배역 맡으셨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는 미소를 유지하려 노력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부장이 영혼이 날아간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제가 후배님을 계속 찾아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뭔데요.”
“망했어요.”
“뭐가 망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부장이 한참 입을 열지 않아, 아델베르트가 대신 말했다.
“…공연 날짜가 이번 주 금요일로 당겨졌다고 했습니다.”
“예?”
“이번에 시험 일정 앞당겨졌잖아요. 2차 시험 날에 맞춰져 있던 거라서요.”
“공연이랑 시험이랑 뭔 상관인데요.”
“쉬려면 시험 끝난 날에 쉬어야 하니까요. 그날 동아리 예술제잖아요.”
“…….”
반쯤 축제날이기는 하다.
그러면 아예 그냥 3차까지 끝내고 하면 안 되는 건가?
그렇게 밀면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이거는 이유를 알아야겠다.’
어쨌든 이 일정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자.
각색은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측은 몇달 전부터 공지한 일정이니 일주일 당긴다고 큰 문제가 되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쨌든 저쪽이 먼저 상도덕을 어겼으니 극을 1시간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해도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금요일이면 사실상 3일 남았는데.’
공연 시간을 줄인다 해도 3일이면….
지금까지 그 배역 대사를 제대로 외운 놈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는데요. 혹시 후배님이 주인공을 맡기 싫어하는 이유를 알려 주시면 제가 가능한 부분에서 개선을 해 보려고 하는데… 혹시 이유가 있나요?”
“정서상의 문제가 살짝 있습니다.”
“웬?”
“…….”
웬 같은 소리하네.
나는 그냥 포기했다. 이 신인류 놈들을 설득시킬 방법이 없다.
“그래요. 그냥 갑시다.”
* * *
그렇게, 2차 시험 당일이 되었다.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렀다.
그야 3일만에 대체 해야 할 게 몇 가지인지 셀 수 없었으니 당연하다.
‘일단 지금은 공연 생각은 접고.’
시험에 집중해야 할 때다.
그때 시험장에 안내음이 들려왔다.
[1팀, 입장하세요.]
“레오네 팀이 첫 순서네.”
바로 옆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체링겐이 혼잣말했다.
이내 그가 웃으며 물었다.
“긴장되지 않아, 루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