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53)
“지금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딱 절반만 살아남으니까.”
“글쎄. 우리가 아니면 누가 살아남지?”
“아, 하하하하! 그건 그렇네.”
체링겐이 크게 웃었다.
만족스러워 보였다.
‘연습한 대로만 나오면 큰 문제 없지.’
학교가 미메시스에 저장해 둔 공간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공간이다.
희생자가 정직하게 건물에만 쏙 들어가 있는데 쉽지 않을 수가. 현장에서 희생자는 그렇게 안전하게 있어 주지 않는다. 신고가 들어갈 즈음이면 이미 건물을 뛰쳐나가 민간인이 많은 곳으로 돌진한 상태다.
‘거기에 비하면 편리하지.’
“그러고 보니 루카스 너는 시험보다는 예술제가 더 긴장되려나?”
“아… 들었구나.”
“그럼. 주인공 맡은 거 축하해. 전에 축제 때도 정말 연기 잘한다고 느꼈는데, 네가 주인공인 극을 하나 더 볼 수 있어서 기뻐.”
낯간지러운 소리를 면전에서 잘도 한다.
뭐든 교과서적으로 표현하는 건 귀족 가문 자식 놈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체링겐은 특히 그 정도가 더했다.
“그때 급하게 준비한 건데 좋게 판단했다니 고맙네. 그런데 안 와도 돼.”
“왜? 열심히 했을 텐데, 관객이 많아야 좋지 않아?”
“…….”
그때 신인류를 설득하려 들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높은 확률로 내 에너지만 소비하고 하나도 이해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거 봐라.
구인류와 달리 그 어떤 의문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냥 ‘주인공=좋은 것’, ‘좋은 것=축하한다’ 같은 생각만 하고 있다.
‘뭐,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지.’
못 맡을 배역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아델베르트에게 말했던 대로, 연기를 배울 때는 이런저런 역을 전부 시도한다.
사람들 앞에서 동물 연기까지 하는 마당에 성별 하나 바뀌었다고 갑자기 못 할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비주얼이 걸릴 뿐이다.
‘내가 이 세계까지 와서 새 시도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뭐, 그래도 나의 정서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기는 하다.
오히려 이득이지.
손해였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야 암기는 문제가 아니고, 2시간 나서서 호감도 쓸어 모을 수 있는 자리가 몇 없기도 하니 그냥 받아들였다.
인상값 어디까지 치솟나 보자.
“그냥 마음대로 해라.”
“음? 아, 오늘 끝나고 뒤풀이 갈 건데 너 연극 끝난 다음으로 잡았거든. 괜찮겠어? 연극부에서도 뒤풀이해야 하나?”
“아무래도 그렇지. 그보다 늦은 시간에는 학교 밖으로 걸어서 못 나갈 텐데. 워프해서 나갈 거야?”
내가 자주 새벽에 밖으로 워프하긴 했지만, 사실 걸리면 곤란하다.
사감을 비롯해 그 누구도 내 방에 찾아오지 않으니 마음 놓고 워프했을 뿐, 이렇게 단체로 사라지면 꼬리 밟힐 수 있다.
“괜찮아. 미리 사다 놓으려고.”
“그래? 중간에라도 괜찮으면 들어갈게.”
그때,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험 시작 30초 전입니다.]
이미 1팀 학생들은 시험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2팀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지금 이 자리에는 두 개의 중계 화면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다.
옆에서 잡담하던 체링겐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이제 시작한다.”
[3, 2, 1. 시작합니다.]
삐익―
그 알림음과 함께 중계 화면이 바뀌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계신 신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
“저런 필드 미메시스에 없었는데?”
학생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계 화면에서는 수많은 행인 너머로 커다란 기차역의 모습이 펼쳐졌다.
놀랍게도 1팀과 2팀 모두 동일한 필드를 받았는데, 예상 못한 필드가 나와서 다들 그것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 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필립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뭐야? 저런 건 연습 안 했잖아! 우리 연습 안 한 필드도 나와?!”
“흐음….”
체링겐이 미간을 좁혔다.
“이거, 예상을 벗어났는데.”
동감한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필드를 살폈다.
미메시스에 주어졌던 대로 나오지 않는군. 세부 지형은 당연히 바뀔 걸 예상하고 있었지만, 아예 용도가 새로운 건축물이 필드로 나올 줄은 몰랐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제국에서 한 손에 꼽힐 만큼 중요한 기차역이고, 그만큼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하다.
이 중앙역에만 세 방면으로 향하는 역이 들어 있다는 점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지 더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마법이 존재하는 바람에 제국 전역의 도시가 내가 살던 곳의 과거보다 일찍 팽창했다는 점이다.
21세기도 아니면서 이곳은 벌써 인구가 1억에 도달했고, 다들 활발히 기차를 타고 제국 전역을 이동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다뤘던 건물 필드 중에서 가장 클 것이다.
‘이미 미메시스에 필드를 20개나 저장해 둬서 당연히 그 안에서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를 너무 무시했네.’
역시 너무 쉽기는 했다.
졸릴 만큼 쉬운 이론이 시험 날에는 온갖 괴이한 난도의 문제로 탈바꿈해 나오듯이, 지필뿐 아니라 실기도 그렇게 만들 생각인 듯하다.
그때, 경보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현재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의 타우누스 역내에 폭주자가 발생하였습니다. 타우누스 역에 계신 신민 여러분께서는 역무원의 지시에 따라 신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비스바덴으로 향하시는 신민 여러분께서는 진압이 완료될 때까지 역에 접근하실 수 없습니다.]
[시작하자.]
레오가 웃음을 흘리며 완드를 고쳐 쥐었다. 그의 머리칼과 로브를 흩는 바람이 세차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오히려 표정이 여유로우니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그저 웃음만 났다.
만약 2팀이 나와서 이걸 보고 있었다면 시작부터 찜찜해졌을 것이다.
시작할 때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에서는 단 한 번도 당황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새끼 설마?’
미리 알고 있었나.
학생회에서 본의 아니게 주워듣는 정보가 있을 테니, 난도가 달라질 거라는 것쯤은 들었을 수 있지.
아니면 나르케가 귀띔해 줬거나.
자신이 무슨 필드를 받을지 미리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놈은 그렇게 떳떳지 못한 행동을 받아들일 놈이 아니다.
어쨌든, 그래서 내 상황판단력을 그렇게 집요하게 검증하려고 했군.
‘연습했던 규모가 아닐 테니까.’
그리고, 새로운 용도의 건물과 새로운 환경이 주어질 테니까.
체링겐은 금세 당황을 거두고 필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지금 벌써 문제점이 보이는데. 루카스, 어떻게 생각해?”
“문제 있지. 저 방송부터 뜯어고쳐야겠어. 저 안에 든 인구가 얼만데 저렇게 다른 필드와 똑같은 방송을 내보낸다고?”
“다행이다. 나도 그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너까지 그렇다니 확신이 서네.”
말뿐이지 이미 놈은 제 판단을 확신했을 것이다.
체링겐이 하이파이브를 시도했다.
여기는 하이파이브의 뜻을 가진 용어도 없고 이 뜻으로 통용되는 손짓도 없는데 잘도 계속 참신한 행동을 시도하는구나 싶다.
이젠 그냥 웃음만 난다.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놈의 손을 쳤다.
그때, 레오가 나르케에게 손짓했다.
기차역 앞 광장에 도착한 나르케가 스태프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순간 화면이 새하얗게 변했다가 돌아왔다.
금세 신력이 기차역 안까지 밀려 들어갔다.
‘한 번에 만 평 정화시켰던 실력 나오네.’
“뭐야? 정화하는 거야?”
주위에서 학생들의 의문이 들려왔다.
‘당연히 아니지.’
지금 레오가 뭘 지시했는지 알겠다.
신력으로 신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
가짜 영상이라지만 행동은 우리와 똑같으니 이런 조치가 필요하기는 하다.
‘이제 말로도 하겠네.’
역시나, 레오가 확성 마법을 중첩시켜 입을 열었다.
[제국 대책본부에서 나왔습니다! 대책본부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역무원과 공조하여 대피를 도울 예정이니, 제국 국장을 단 마법사의 지시에 따라 질서를 지켜 역사 바깥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레오가 말을 마치고 다른 두 학생에게 손짓했다.
학생 둘이 기차역 서쪽 입구에 진입했다. 그쪽이 폭주자가 있는 곳이니 빠르게 민간인을 대피시켜야 했다.
이제 폭주하는 희생자를 처리해야 할 시기였다.
레오가 나르케를 불렀다.
[나르케.]
나르케가 고개를 끄덕이고 홀로 워프했다.
“…!”
순간 웃음이 났다.
나르케가 이동한 곳은 폭주자가 있는 타우누스 역이 아니었다.
“끝났네.”
체링겐이 중얼거렸다.
그래, 끝났다.
좋은 의미로.
나르케가 이동한 공간은 세 개의 기차역을 잇는 중앙의 거대한 홀이었다.
가장 많은 인구가 모이는 장소다.
레오는 나르케를 희생자의 곁에 보내지 않고 민간인 구조에 투입시켰다.
‘신력을 쓸 수 있는 대책본부 마법사가 투입됐으니 패닉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줄어들지.’
신력에 대한 믿음이 강하니 당연하다.
학생들은 폭주 처리를 메인으로 여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안전이다.
팀의 에이스를 폭주 처리에 쓰지 않은 과감한 결단에서 레오와 그의 팀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더 볼 필요도 없다.’
한 번도 연습하지 않은 이 거대한 공간에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전략을 세웠다.
이 팀은 가산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그와 함께 들어간 2팀은….
‘큰일 났네.’
민간인 수백 명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학교 측에서 볼륨을 줄였다.
중앙 건물의 모든 문에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마법사는 이미 워프해 알아서 빠져나갔을 테니 전부 구인류일 것이다.
2팀 팀장이 확성 마법을 걸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질서를 지키세요!]
[야, 안 되겠어…! 창문 깨자!]
[기다려. 감점 당한다고! 차라리 한 명씩 손 잡고 워프시켜!]
[지금 이건 감점 대상이 아니고?!]
[기물파손 감점이 이 필드에서 몇 점이 될지 모른다고! 폭주자 빨리 제압하고 다시 방송하면 되잖아. 안 그래?!]
[아, X발… X됐다….]
팀원 중 누군가 욕설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목소리만 들리지만 안 봐도 울고 싶은 게 느껴졌다.
이어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누가 지시 없이 창문 깼어? 팀워크 생각 안 해?! 아직 민간인 쪽은 버틸 수 있다고!]
“저 팀 훈련 때는 잘했는데, 큰일이네.”
체링겐이 옆에서 인상을 썼다.
그땐 못하는 팀이 없었다. 1차에서 이미 하위권을 거르고 왔으니 지금 이 시험에는 적어도 중위권부터 참여하는 셈이다.
‘아니, 대놓고 한 명 열외한 8팀이 제일 못하긴 했지.’
나머지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정석적으로 잘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사람을 이렇게 초짜 상태로 돌려놓은 것이다.
체링겐이 중얼거렸다.
“다음 팀이… 7팀, 그리고 8팀이네. 이 중에서는 누가 높게 받을지 궁금하다.”
1-2팀, 7-8팀, 3-4팀, 5-6팀 순서라 우리 팀이 가장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라 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앞서 레오와 엘리아스의 시험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체링겐에게 물었다.
“두 팀 중에서 누가 높을 것 같아?”
“글쎄.”
체링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며칠 전이면 몰라도 이제 또 말이 다르다는 걸 놈도 아는 듯했다.
이제 1팀과 2팀의 훈련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조금 긴장이 풀리기 시작해, 나는 가방에서 콜라를 꺼냈다. 체링겐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뭐야?”
“이번에 수입된 탄산음료.”
“아, 그래? 색이 커피 같네.”
역시 생산 초창기라 별로 안 유명하군.
본토에서나 유명하지, 뭐.
“마실 사람?”
필립은 이제 콜라를 보면 그날 기억이 나는지 시선을 피했다.
모두가 경계하길래, 나는 가장 안색이 후진 멜빈에게 응원 겸 콜라를 주었다.
어차피 1교육원 체육관을 빌린 터라, 장소가 굉장히 커서 누가 뭐 좀 먹는다고 걸리지 않는다.
애초에 구경하러 온 타 학과 교수님들도 뭘 드시고 계셨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멜빈이 뚜껑을 땄다.
‘그런데 쟤 손을 왜 저렇게 떠냐.’
잘 마시나 했더니, 바닥에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계단식 자리라서 굉장히 생생하게 바로 머리 뒤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허… 허어어어어….”
“너희 콜라에 뭐 있냐?”
“아, 아, 아니. 이렇게 넓은 필드는 처음 봐서 좀 긴장….”
그 말에 필립이 눈을 부릅떴다.
“필드? 음료수가 아니라? 야. 너 시험에서 떨면 뒤질 줄 알아라.”
“하하, 그렇게 말하면 넌 긴장이 해소되나 봐? 매번 이렇게 말해 줄 걸 그랬군.”
체링겐의 말에 필립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동안 두 팀의 시험이 끝났다.
학생들은 시험장으로 따로 마련되었던 체육관에서 나와, 이곳 대기석에 앉았다.
툭 치면 욕설부터 들릴 것 같은 2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모두 1팀은 모두 여유로웠다.
사실 1팀도 레오와 나르케를 빼면 나머지 넷의 실력은 2팀 팀원들과 다를 바 없다.
팀원 운으로 이렇게 합불합이 갈리는 현장을 보고 있다.
[7팀 입장하세요.]
[8팀 입장하세요.]
“이제 그쪽이네.”
나는 다시 놈들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시험 시작 30초 전입니다.]
7팀은 뭐,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나는 8팀 중계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엘리아스가 8팀 팀장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이미 기강 세게 잡았네.’
팀장이 웃는 얼굴로 얼어 있었다.
저 팀에서 엘리아스와 유일하게 친한 놈인데도 저럴 정도면….
[3, 2, 1. 시작합니다.]
삐익―
[트리어에 거주하는 신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현재 포르타 니그라 인근에서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신민 여러분께서는….]
트리어.
로마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지역이자, 이 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으음~ 포르타 니그라? 로마 좋지. 이제 감점 빡세게 들어갈 게 뻔히 보여서도 좋고.]
엘리아스가 저 멀리 서 있던 귄터의 훈련복 후드를 잡아당겨 어깨동무를 했다.
덩달아 이끌린 팀장이 긴장한 얼굴로 눈치를 봤다.
[잘해 보자, 게르만들아. 뭐 해야 할지 알지?]
[알, 알지.]
[아! 놓으라고.]
엘리아스가 귄터의 말을 무시하고 중계 카메라를 보며 씩 웃었다.
[야, 레오! 고맙다~]
[…엘리아스…!]
뭘 해야 할지 확실히 알려 줘서 고맙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아까 2팀에서 기물파손 감점을 운운한 놈은 이 필드를 먼저 봤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방금 지은 기차역은 그냥 보수하면 되지만 도시 곳곳에 유적이 널린 곳에서는 파손 감점이 훨씬 세게 들어가지.
엘리아스가 팀장과 귄터에게서 팔을 풀고 등을 떠밀었다.
[귄터. 가서 유적 전부 찾아서 결계 치고.]
“음?”
체링겐이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쓸었다.
이제 보니 팀장 역할이 바뀐 듯하다.
엘리아스가 진지한 얼굴로 학생들을 둘러보며 지시했다.
[울리케, 너는 민간인 통제부터 하자.]
* * *
엘리아스의 팀은 성공적으로 희생자를 처리했다.
아직 점수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우선 눈으로 보기에는 며칠 전의 합동 훈련 때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그 뒤로, 다음 두 팀의 시험까지 순조롭게 끝났다.
물론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나 빨리 끝났다는 의미에서 순조롭다고 이야기한 거지, 당사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야 3팀이랑 4팀 다 합동 훈련 때보다 망했으니까.’
이렇게 다채롭게 망하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그때 우리 팀을 부르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6팀, 입장하세요.]
우리는 시험장으로 쓰는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긴장 탓인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참 뒤, 여유롭게 웃고 있던 체링겐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고유능력이, 우선… 낙뢰, 그리고 이쪽은 식물, 이쪽은 초지각. 끝이지?”
“일단은.”
1분반 아인시델이 무심한 말투로 대답했다.
“식물 생장 능력을 쓸 수 있으니 이왕이면 자연물이 있는 필드를 받으면 좋겠네.”
체링겐의 말에 멜빈이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음, 그러면… 낙뢰까지 이용하려면 적란운을 만들어야 하는데. 따뜻해야 유리하겠지? 열대우림 같은 거 나오면 좋겠다.”
“하… 너는 우리나라에 열대우림이 있다고 생각하냐? 과학 시간에 졸았어?”
역시나 지금 꼽 준 놈은 필립이었다.
내가 필립을 향해 돌아보자 놈이 아까처럼 입을 다물었다.
체링겐이 필립에게 눈치를 주고 웃으며 주제를 다시 돌렸다.
“뭐 받을지 진심으로 궁금한데~? 앞에서 도심 두 번 나오고 자연 필드 한 번 나왔으니까, 우리는 자연물이 나올 것 같기는 해.”
그때, 카운트다운 소리가 커졌다.
[3, 2, 1. 시작합니다.]
쿠우우웅―
바람 소리가 귀를 때렸다.
겨울용 로브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추위가 닥쳐와,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상태를 보니 팀원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니, 저들은 나보다 더 심했다.
‘뭐야?’
주위가 온통 눈에 뒤덮여 있다.
게다가 내가 밟고 있는 건…. 암석인 듯했다.
아무리 1월이라지만, 그래도 이 로브로 잘 살아왔다. 코트 없이 그냥 두르기만 해도 한겨울 추위를 피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하게 만들어진 로브였다. 애초에 수도는 그리 춥지 않기는 했지만.
그때 경보음이 들려왔다.
[가르미슈에 거주하는 신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현재 추크슈피체 산에서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신민 여러분께서는….]
폭주자를 희생자로 명명하는 지역.
바이에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추크슈피체? 1월에?”
누군가 중얼거렸다.
원하던 대로 자연물이긴 자연물이다.
이 제국에서 제일 높은 산, 그리고….
체링겐이 웃음을 터트리며 우리를 돌아봤다.
“얘들아, 우리….”
“…….”
“알프스에서 시험을 치게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