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54)
“아, 알프….”
“엥?!”
추크슈피체.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이다.
“이거, 추워서 돌아다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루카스, 괜찮아?”
체링겐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확실히 팀의 2인자쯤 되니 챙겨 주네….
별로 그럴 필요는 없지만.
“괜찮아. 너부터 챙겨.”
“빠르게 끝내야겠네. 얘들아, 이 상태로 뛸 수 있겠어?”
“뛰라고? 관절이 얼고 있는데?”
“뛰어야 해.”
체링겐은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확실히 불리해.’
고유능력을 활용하기에도 문제가 많은 환경이다.
필립이 앓는 소리를 하고는 버럭 소리쳤다.
“아니, 이렇게 출동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어? 지상 3000m에서 사람이 폭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데! 여기 뭐 올라가는 길이 있기는 하냐?”
리프트도 없고 관광용 철도도 없다.
그냥 맨몸으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는 곳이다.
당연히 보통 이런 곳에서 사람이 폭주하지는 않지….
하지만 아예 불가한 건 아니다. 학교가 난이도 조절을 위해 어디까지 가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필립이 또다시 소리쳤다.
“그리고 여기서 폭주했으면 출동할 때는 옷 제대로 껴입고 가지 우리처럼 무방비 상태에서 워프당하지는 않거든?”
그 말에 필립 친구가 끼어들었다.
“워프당했다니, 우리는 그 자리에 있어.”
“물론 그거야 그렇겠지! 가상현실이니까. 그런데 교수들이 거기를 그대로 복사해서 여기다 붙여넣었는데 사실상 워프한 거랑 다를 게 뭐야?”
“그만.”
체링겐이 조용히 하라는 듯 손을 들었다.
모두 입을 다물고 체링겐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추워서 더 떠들 정신이 없기도 했다.
“지금 폭주자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해. 이럴 때는 관광객이 없다는 점이 나름대로 이점이 되겠지. 필립, 도심보다는 수월하겠지?”
“…그래.”
“플로리안, 영하에서 능력 써 본 적 있어?”
“당연히… 별로 없는데. 그래도 불가능하지는 않아. 좀 딸리지만.”
“좋아. 우선 나도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최후의 보루로 내버려 둬야 해. 찬 공기가 지표에 있는 상황은 내가 평소에 겪던 상황과는 썩 일치하지 않거든.”
애초에 체링겐의 낙뢰 능력은 농지를 만들려는 게 아니면 딱히 인간 생명에는 이득이 없는, 굉장히 파괴적인 능력이기에 이런 구조 활동에는 적합하지 않다.
“고유능력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의 움직임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지. 그동안 앞선 여섯 팀은 전부 권장 처리 시간이 30분에서 40분 사이였어. 아마 이 필드도 그렇겠지. 하지만 여기서 30분 버틸 수 있는 사람?”
“…….”
“…빨리 끝내 보자.”
1분반 아인시델이 중얼거렸다.
체링겐이 고개를 끄덕였다.
“20분 안쪽으로 끝내는 게 좋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뭘 우선으로 해야 하는지 알아야겠지. 아까 본 대로, 민간인이 나올 경우 민간인 케어를 우선으로 해야 해. 유적이 나온다면 그것도 신경 써야 하고, 3-4팀이 받은 것처럼 늪과 숲이 나온다면 땅에 비트리올이 스미지 않게 노력해야 하지.”
“그, 그런데 여긴 아무것도 아닌데….”
“그래. 여기는 민간인도 없고, 유적도 없고, 지면 깊숙이 비트리올이 스미는 구조도 아니야. 그러면 학교는 우리에게 어떤 요소를 가장 큰 문제로 주었을까?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뭐지?”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
대답할 에너지도 없는 듯하고, 민간인 케어나 2차 피해를 막는 게 1순위가 아니라면 뭘 학교가 원하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우리의 생명이지.”
내 말에 체링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필드의 핵심은 구조자의 목숨일 거야.”
1-2팀 필드의 핵심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고, 7-8팀 필드의 핵심은 환경 손상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었지. 3-4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조자의 안전을 중시하는 것.
학교가 마지막으로 출제할 주제로는 딱 적합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하나 있다.
학교는 기물파손 감점을 크게 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기물파손, 자연환경 보존에 방점을 찍는 순간 우리 팀은 마이너스다.
파손이고 뭐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 이용해야 한다.
나는 장화 끝으로 바닥을 쓸었다.
밟고 있던 눈이 몸의 무게 탓에 굳어, 발끝이 휙 미끄러졌다.
‘하필 경사면에 떨구냐.’
우선 안전을 확보하려면 여길 나가야 한다.
정상 아래에 고원이 하나 있다.
이곳에도 한국의 지구과학 같은 과목이 있어서, 여기 지형이 어떤지는 간단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혹시 내가 모르는 것이 있는지 알기 위해 학생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여기 환경에 대해 좀 아는 사람? 필립 너 과학 시간에 안 잔 것 같은데, 최대한 아는 대로 말해 봐.”
“여기? 빙하, 눈사태, 석회, 납, 아연, 카르스트. 그리고 빙하기, 중생대. 이거밖에 모르겠다.”
“하하…. 과학 시간에는 네가 존 거 아니고?”
체링겐이 웃으며 핀잔했다.
놈이 제국2교육원 학생이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딱히 아는 게 있진 않은 듯하다.
나보다 더 모르면 몰랐지….
아무튼 문장으로 뽑아낼 정신이 아니니 이해는 한다.
“벌써 1분 넘게 지났어. 시작하자.”
체링겐이 손뼉을 한번 치고 무게 있는 말투로 말했다.
필립이 몸을 낮추고 감각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위쪽.”
“위라고?”
“정상 쪽에서 뭐가 굴러다니는 것 같은데? 엄청 멀리 있어.”
“…….”
체링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리를 바라보며 고갯짓했다.
‘굴러다닌다’고 했지.
다른 팀의 시험에서도 구는 공중에 떠 있지 않았다. 실제 폭주자에게 사지가 달려 있고, 다리로 뛰어다닌다는 걸 고려한 듯했다.
어쨌든….
뜻을 알아챈 필립 친구가 머리를 붙잡았다.
“이 날씨에 알프스 등산해야 해?!”
“그래. 정상 300m 아래 고원까지는 올라가야 해. 고원 워프 좌표 아는 사람?”
“…….”
“물론 없겠지.”
“여, 여기서 좌표 한 칸씩 조절해 보면….”
“안 돼.”
나는 멜빈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디로 추락할지 모른다.
“그럼, 필립. 여기 고원을 중심으로 사방에 봉우리가 엄청 많은데 폭주자가 있는 곳이 그 중 어디야?”
“음, 너무 멀어서 그것까진 잘 모르겠다.”
“…….”
“미안. 근데 인간적으로 좀 멀어야지.”
필립이 눈치보다 사과했다.
딱히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일단 어느 방향에 있는지도 모른다면 당장 전략회의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모두와 눈이 마주쳤다.
체링겐이 미소지으며 외쳤다.
“뛰어, 얘들아.”
* * *
“추크슈피체? 와우….”
체육관에 앉아 중계를 지켜보는 학생들에게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쟤네 얼어서 뛰어다닐 수는 있냐? 지금 거기 영하 15도쯤 될 것 같은데.”
“저기 5팀 중에 고유능력으로 불 쓰는 애 있어.”
“그래?! 6팀한테 너무 불리한데?”
“걔네 율리아도 있고 아스카니엔도 있잖아. 좀 불리하면 뭐 어떠냐.”
“아니, 미끄러져서 굴러떨어지면 그거 충격 어째? 실제로 안 죽어도 그렇지, 꿈에 나오겠다.”
“쟤네는 살아남는 게 우선이지, 뭐.”
학생이 낄낄댔다.
레오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중계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저 학생은 반쯤 농담으로 던졌겠지만, 그게 진짜 출제 의도일 것이다.
‘어찌 보면 쉽고 어찌 보면 어렵네.’
불 능력자가 있는 5팀에게는 지나치게 쉽고, 6팀에게는 지나치게 어렵다.
하지만 율리아가 낙뢰를 사용해 나무에 불이라도 붙이고, 다들 횃불 하나씩 지니고 다니면 말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과 불 능력자는 천지차이지. 불 능력자는 온몸을 난로로 사용할 수 있으니 그냥 옆에 돌아다니기만 해도 한결 낫다. 반면 횃불은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방해다.
그때, 엘리아스가 슬쩍 자리를 옮겨 1팀 대기석에 끼어들었다.
“야~ 루카 어떻게 하나 볼까?”
그 말에 레오 옆에 앉은 학생이 웃으며 물었다.
“루카? 너 아스카니엔 되게 자주 찾네.”
“재밌잖아~ 그보다 알프스라니. 저기는 레오 네가 갔어야 했는데. 그치?”
“아, 그러게! 바이에른이잖아.”
학생들의 말에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다. 어쨌든 자연물 필드면 나는 고유능력을 활용하기 좋아서.”
학교 측은 고유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레오 자신이야 흙 한줌만 있어도 어디서나 능력을 쓸 수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차역은 자연물 필드보다는 고유능력을 펼치기에 불리하다.
정확히 말해서 고유능력을 펼친다 해도 그 가치를 완전히 활용하고 드러낼 수 없는 필드가 주어졌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필립만이 어느 필드에서든 유용하게 능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이야.”
“쟤 꼴에 지각 능력 잘 쓰더라.”
“그리고 율리아의 능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하기 어려워. 능력의 성질 자체가 굉장히 파괴적이고 공격적이니 구조 활동에는 적합하지 않지.”
“그래. 전쟁터라면 또 모를까.”
확실히 루카스네 팀인 6팀에게 전적으로 불리하다.
그때, 다른 학생들에게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뭐야?! 이래도 돼?”
뭐야.
레오가 두 화면을 바라봤다.
6팀은 아직 고원에 이르지도 못했기에, 여전히 화면이 그대로였지만 5팀은 아니었다. 빠르게 뛰어 고원에 도착한 5팀과 그들의 시야를 비추었다. 물론 거기까지는 이상하지 않았다. 불 능력자가 있는 팀이 훨씬 유리하니 진행 속도가 빠를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이 광경은 참가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출제의 문제였다.
“…!”
화면을 확인한 레오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 * *
필립의 보고는 계속해서 끊겼다.
맨 앞에서 달리던 체링겐이 외쳤다.
“필립, 계속 확인해!”
“헉…. 바람이… 저기, 저기. 이번에는 왼쪽!”
애가 얼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네.
놈은 지금 바람의 흐름을 따라서 고원이 있는 곳을 추측하고 있다.
‘5팀은 지금 어쩌고 있을지 궁금하네.’
이미 우리 팀 학생들은 완전히 얼었다. 내가 장막을 학생들의 사방에 씌웠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이었다. 다들 입술이 보라색이 되고 있다.
필립은 바람의 결을 느껴야 하니 장막도 씌워주지 못했다.
이러다 동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미친 난이도….’
누가 추크슈피체에 출동하면서 장비도 없이 가냐고.
물론, 이렇게 떨궈진 덕에 학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지. 아까도 생각했지만, 학교는 극한까지 몰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건지 묻고 있다.
그나마 다들 운동신경이 좋아서 미끄러지지 않고는 있다.
“으악!”
‘방금 그렇게 생각했더니 미끄러지네.’
필립 친구가 미끄러질 뻔하다, 저도 모르게 고유능력을 썼는지 어디선가 다 죽어 가는 풀이 닥쳐와 그의 다리를 붙들었다.
고유능력을 이런 식으로 소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니 헛웃음만 난다.
숲이라도 받았으면 지금쯤 이걸로 희생자를 제압하고 있을 텐데, 어떻게든 고유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학교 측의 생각이 정말 존경스럽다.
‘그러고 보니 5팀에 불 쓰는 놈 하나 있는데.’
그건 좀 걸린단 말이지.
앞서 있었던 모든 필드에서 학교는 고유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각 능력자에게 불리한 필드를 배정했다.
이 말이 뭘 의미하겠는가.
5팀은 생각 잘 해야 할 것이다.
알프스에서 불 능력을 가진 것은 그들의 행운이 아니다.
불 능력이라는 이점이 있어도 그걸 상쇄할 만큼의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못하지는 않았겠지.
다만 문제는, 아무리 머리로는 알아도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쪽은 자만하기 쉽다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관성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그쪽 능력자가 우리 팀에 없는 게 행운일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체링겐이 필립에게 물었다.
“얼마나 남았어?”
“이제 곧이야. 그런데, 얘들아.”
필립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소리가 중첩되어서 나는데.”
“뭐? 동물 소리 아냐?”
“아니, 이건… 공기에 닿는 저 느낌이 딱 비트리올 느낌이라고. 뭔지 알지? 반사되는 파동이 다르단 말이야.”
그 말에 필립 친구가 답답하다는 듯이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그때, 아예 다리에 마법을 싣고 뛰쳐 올라간 체링겐이 헛웃음을 치며 우리를 불렀다.
[얘들아. 빨리 와야겠다.]
“왜?”
[폭주자가 둘이야.]
* * *
[야, 뭐야? 폭주자가 둘이야?]
5팀 중계 화면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체육관의 학생들은 소리 없이 5팀과 6팀의 움직임만 주시하고 있었다.
폭주자를 둘이나 설정하는 필드는 지금 이게 처음이었다.
‘동쪽에, 그리고 북동쪽에 하나. 하필이면 다른 봉우리에 있네.’
학교가 너무 극한의 난이도를 요구하는 것 아닌가.
레오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화면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