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56)
“…….”
밀려?
내가?
확실히, 이대로 점수 보정이 들어간다면 가장 어려운 필드를 받은 팀은 기본 점수부터 우리보다 높아질 것이다.
나는 주어진 필드를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그건 루카스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완벽하다면, 기본 점수가 높은 그쪽이….
“어이구, 우리 왕자님 자존심 상했나~? 거의 완벽했는데 아쉽게 됐어~”
“레오 자존심이 왜 상해? 엘리아스 너 뭔 말 했는데?”
“…….”
레오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니. 자존심 상하다니.”
레오의 눈이 오른쪽 중계 화면에 향했다.
팀원들과 가볍게 포옹하는 루카스의 모습이 화면에 송출되었다. 동시에 율리아의 시선이 중계 카메라에 닿았다.
“내 승리야.”
그를 선점한 바이에른의 승리다.
율리아는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그냥 모르는 편이 낫다. 알면 지금처럼 천천히 스며들려 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나갈 테니까.
내게 시작의 선택권은 없었어도, 이미 친구가 된 지금은 말이 다르다.
바덴이 그를 데려가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
어이없다는 듯이 레오를 보던 엘리아스가 히죽 웃었다.
“재미없긴. 좀 놀리려고 했는데 시험 생각 안 하네?”
“밀려도 어쨌든 가산점 획득권이야.”
“너 왜 여섯 살 때에서 변한 게 없냐. 너희 어머니한테 일러야지~”
뭐라는 거야….
어차피 1팀 친구들이 등수 이야기를 꺼냈기에 굳이 엘리아스의 말에 대꾸할 필요도 없었다.
삐익―
[26분 37초.]
[시험 종료합니다.]
6팀 시험 종료 3분 후, 5팀도 시험을 마무리했다.
5팀 학생들은 이만하면 일찍 끝냈다고 생각하는지,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불 능력자가 없는 6팀이 더 일찍 끝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겠지.’
주위에 앉은 학생들이 애매한 웃음을 흘리며 걱정했다.
“아, 쟤네 어떡하냐.”
“그러게….”
그래도 그들이 현실을 파악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6팀 학생들은 5팀이 끝날 때까지 시험장에서 대기하다, 다 같이 이곳으로 돌아왔다.
“으하하학! 아, 쟤네 얼굴 봐라.”
엘리아스가 빈 의자를 퍽퍽 치며 웃었다.
5팀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곳에 들어오고 있었다.
6팀이 먼저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반면 6팀은 완벽히 안 어울리는 팀원 조합이었음에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시험 치르느라 수고했습니다. 곧 합격자 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자리에 앉아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아, 우리 몇 등이냐. 심장 엄청 빨리 뛴다.”
“1등이지.”
“카르스트가 너무 강력했는데.”
“아, 그러니까….”
1팀 학생들이 뒤에서 대화했다.
엘리아스가 또다시 입을 양쪽으로 찢기 시작했기에, 레오가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이거 끝나면 바로 예술제 갈 거지?”
“아, 연극 보러? 가긴 갈 건데 난 이거 끝나고 잠깐 교수님한테 가야 해서, 만날….”
“너 또 뭔 짓 했어?!”
“에이~ 이번에도 내가 피해자라고. 루카가 경고 안 해 줬으면 오늘 시험 못 칠 뻔했어.”
시험을 못 칠 뻔했다고?
하지만 루카스의 이름이 나온 이상 깊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하여튼 그건 오늘 신경 쓸 게 아냐. 잘 들어 봐. 오늘 루카가 공연장 오지 말라고 했거든?”
“왜 오지 말래?”
“나야 모르지. 근데 오지 말라고 하면 무조건 가 줘야 하는 거 아니겠냐~? 우리 반 다 끌고 가자.”
이유가 있을 텐데 무작정 쳐들어가네….
“아, 그러고 보니 예술제 왜 앞당긴 거야? 물어봐 달래.”
“왜 앞당기긴. 안 그러면 3차 시험 치기 일주일 전에 놀아야 하는데, 다들 시험 준비하느라 예술제에 참여 안 할 거 아냐.”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절반이 떨어져나가는 만큼, 탈락자들의 주의를 돌릴 행사가 필요했다.
서류 탈락자는 너무 신속하게 탈락한 만큼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별말이 없지만 합격의 맛을 봤던 1차 탈락자는 아직까지도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심지어 2차에서는 팀을 지어 움직인 만큼 팀별 반목이 심해졌으니, 빠르게 화제를 돌려 줄 필요가 있었다.
‘연극부랑 관현악부에서 협박 아닌 협박 편지가 오긴 했지만… 일주일 정도는 괜찮지 않나?’
설마 학생들이 이런 것까지 벼락치기를 하나? 레오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다시 교수의 목소리가 확성 마법을 타고 들려왔다.
[지금부터 합격자 발표가 있겠습니다. 먼저, 개별 합격자 발표에 앞서 가산점이 부여되는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교수가 한번 말을 멈추고, 팀을 불렀다.
[4등, 5팀. 3등, 8팀.]
“와아아아아!”
“아, 우리 3등이야? 역시 하나 밀릴 줄 알았다니까.”
엘리아스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2등, 1팀.]
“…어?!”
아까와 달리 체육관은 조용했다.
뒤늦게서야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들려왔다.
멍하니 있던 1팀 학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우리 2등이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석대로 한 건 우리 아냐?!”
“…….”
학생들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안, 레오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침묵했다.
2등.
정말 밀렸다.
더 공을 들인 필드를 받았으니, 6팀에게 운이 따라 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추크슈피체에서 두 폭주자를 한 번에 마주했다면….
나도 5팀처럼, 그리고 율리아처럼 둘로 찢어지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야.’
이건 내가 밀리는 것이 맞다.
물론 내가 부족한 만큼, 더더욱 바이에른에는 인재가 필요하다.
* * *
‘쟤 뭐냐.’
무서운데?
나는 반대편에 있는 1팀 대기석을 외면했다. 체링겐을 보는 건지 나를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레오가 아까부터 계속 이쪽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도 뒤에서 덜덜 떠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다른 팀에 쓸 정신은 없었다.
“우, 우, 우리 아직까지 안 불렸는데… 설마…!”
“아, 좀 가만히 있어…! 난 소리 두 배로 들린다고!”
“…….”
멜빈과 필립이 둘 다 하얗게 뜬 얼굴로 속삭였다.
‘얘네는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1팀이 2등이라니.”
옆에서 체링겐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쪽은 상황 파악이 빠르네.’
그때, 교수가 우리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1등, 6팀.]
“…!”
“와아아아아―!”
함성이 고막을 찔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과 다시 한번 짧게 포옹했다.
‘생각보다 좋게 평가했네.’
유력한 1등을 이겼다.
개인으로 붙는다면 레오를 이기기는 어려웠겠지.
팀으로나마 선생을 이겨 보다니, 감회가 새롭다.
“네 덕이야, 루카스.”
체링겐이 미소지으며 내게 말했다.
“뭘.”
“얘들아, 진짜 고생 많았다…. 진짜 얼어 뒤지는 줄 알았는데 살아서 내려오고… 가산점까지 받고….”
필립이 거의 우는소리를 했다.
이놈은 교과 점수가 처참하길래 딱히 욕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던 모양이다.
[1등부터 4등까지 동일하게 가산점 10점이 부여됩니다. 이제부터 개별 합격자 발표가 있겠습니다.]
“…자, 잠깐. 이게 끝이 아니야?”
“아, 가산점을 받는 팀이라고 팀원 전부 합격하지는 않았구나. 우리 팀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네.”
체링겐의 여유로운 말에 필립이 앓는 소리를 냈다.
[합격자 최고점은 100점, 최저점은 63점입니다. 합격자는 1층으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24등, 63점. 빅토리아 비어만.]
8팀 학생이 경기장 한가운데로 뛰쳐 내려갔다.
금세 19명의 순위가 불렸다.
그러는 동안, 이제 내 곁에 남은 사람은 체링겐뿐이었다.
체링겐은 떨리지도 않는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 팀 친구들은 다 3차에 진출하네. 다음 팀에서도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게.”
우선 가산점을 받지 못한 팀에서는 거의 뽑히지 않았다.
각 팀에서 쓸 만한 고유능력을 가진 학생들 한둘만이 불려 내려갔을 뿐이었다.
역시나 가산점이 합불합을 가르는 큰 요소였다.
‘이제 5등이군.’
[5등, 90점.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뭐! 나 왜 90점이야?! 더 높아야지!”
“그야 유적 먼저 보호했으니까….”
“아하~”
1층에서 엘리아스와 레오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래도 실망할 이유는 없다.
연습 기간 반을 날리고서 90점이면 상당하지.
며칠 전까지 탈락하네 마네 해 놓고 당당히 5등에 랭크되었다는 것부터 성공적이다.
[4등, 97점. 율리아 체링겐.]
“와아아아—!”
“아, 내가 4등이구나. 준비해야겠네, 루카스.”
체링겐이 그렇게 말하며 미소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더 높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3등, 98점. 나르케 파르네세.]
객석 저편에서 나르케가 웃으며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점점 높은 순위로 오니 친구들의 이름이 불려서 좋다.
경기장으로 내려간 친구들이 교수 몰래 내게 손짓하는 게 보였다.
[2등.]
‘이제 나도 불리겠네.’
[없습니다.]
“…?!”
“엥?”
순간 객석의 모든 학생들의 눈이 내게 향했다.
학생들이 내는 소음이 커졌음에도 교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1등을 불렀다.
[1등, 100점.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뭐야?”
“루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을 연기하고는 있지만, 내가 불리지 않은 것에 순간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합격자 학생들이 황당하다는 듯 교수와 나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이걸로 23명이지요?]
합격자는 24명이어야 한다.
그래야 3차에서 6명씩 네 팀으로 묶을 것 아닌가.
교수가 합격자 23명을 쭉 둘러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공동 1등입니다. 100점, 루카스 아스카니엔.]
“…….”
“…와아아아아―!”
나는 나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놀리냐….’
심장 떨어질 뻔했다.
한 번에 좀 불러 주지?
그보다, 100점이라니.
예상도 못 했다.
이 학교에서 실기로 100점이 나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좋게 평가받았네.’
“루카~!”
“조용히 해, 엘리아스.”
레오가 아닌 다른 학생이 옆에서 그를 뜯어말렸다.
경기장으로 내려가자 조명이 머리 위를 뜨겁게 비추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체링겐의 눈짓에 화답하고 레오의 옆에 섰다.
자리에 도착한 걸 본 교수가 입을 열었다.
[가능하면 같은 등수를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1교육원과 2교육원 교수진의 만장일치로 이번 2학년 2차 선발에서는 예외를 두었습니다.]
교수가 레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1팀의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학생은 복합 필드에서 무엇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팀원들을 효율적으로 통솔한 점에서 최고점을 부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6팀의 루카스 아스카니엔 학생은 위기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신속하게 활용한 점에서 최고점을 부여했습니다. 네 번의 시험 중 가장 난도 높게 출제된 시험이었고, 그런 만큼 같은 시각에 시행된 3학년과 1학년 시험에서 이 필드의 정답을 맞힌 팀은 없었습니다.]
교수가 레오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두 학생 모두 각자의 필드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 주었습니다. 1등 축하합니다.]
표정 관리를 하며 미소지었을 때, 옆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엥?”
끝에서 엘리아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엘리아스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맨 앞줄에 선 친구들 모두가 당황한 눈으로 이쪽을 봤다.
레오가 표정 없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
다른 학생들 앞에서 아는 체하면 안 되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표정에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걸 보면 놈도 연기하는 중이기는 한 것 같다.
‘…이 자식이 위험하게….’
감히 같은 등수를 받다니 제대로 겨뤄 보자 이건가?
아니겠지.
이놈이 하도 원수 진 것처럼 훈련 강도를 높이는 바람에 놈을 대할 때마다 사고가 이렇게 튀고 있다.
물론 갑작스레 안 하던 짓을 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훈련 빼야겠다.’
또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른다.
나는 간단하게 악수하고 인사를 마쳤다.
[이제 여기 나온 24명은 6명씩 4팀으로 나뉘어 3차에 진출합니다. 이 중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여섯뿐이니, 한결 마음이 편하지요?]
“…….”
편하겠냐….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여기 있는 모두가 1팀을 노릴 텐데.
사실상 24명 중 6등 안에 드는 것이 목적인 시험이지 않은가.
역시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가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이제 3차 팀을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