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58)
리허설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니, 사실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사를 생각보다 많이 까먹네.’
준비 기간이 짧아서 그렇겠지.
그래도 취미로 하는 예체능 동아리에서 크게 나쁜 퀄리티는 아니었다.
‘문제는 부장은 목표가 다르다는 점이지.’
“…본무대에서는….”
부장이 미간을 붙잡았다.
“더 망할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공부에 집중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제국2교육원 학생이라면 주어진 시험에 대충 임하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부장이 저러는 이유가 있다.
오늘 공연에 심사위원이 끼기 때문이다.
제국 정부의 문화부에서 주관하는 심사로, 여기서 합격하면 학교가 아니라 황궁에서 공연할 수 있다.
‘굳이 거기까지 가서 연극을 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나는 저기에 진출하면 로잘린드로 안 선다.
무조건 아델베르트를 주인공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을 듣고 이번에만 장단에 맞춰 준 것이다.
“아무리 예체능 동아리라고 해도 제국2교육원 자존심이 있지, 예선부터 탈락할 수는 없겠지요!”
‘열정 대단하네.’
나는 별로 열정이 생기지는 않지만, 나만 주인공을 맡을 수는 없기에 열심히 할 생각이다.
“자, 이제 10분 뒤에 시작하니까 대기하고 계세요. 저는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부장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우리는 무대 뒤편으로 올라갔다.
맨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 둘은 벌써 무대로 나가, 막 뒤에 서 있었다.
한참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자, 저 너머로 극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말과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생각보다 크네.’
대체 몇 명이 온 거냐?
[애덤.]
또 다른 주연을 맡은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기억으로는, 아버님께서 유언으로 1,000크라운을 내게 유산으로 남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내 형 올리버에게 날 잘 키워 달라고 부탁하셨지요. 축복을 받고 싶다면 말이에요. 하지만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게 내 불행의 시작이었다는 걸!]
‘잘하네.’
“후배님!”
그때, 밖에 나가 있던 동아리 부장이 무대 뒤로 뛰쳐 왔다.
부장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후배님, 2차 1등 했다면서요?”
“예.”
부장의 심각한 표정에, 주위에 있던 다른 부원들의 얼굴까지 굳었다.
부장이 침을 꿀꺽 삼키고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예.”
“후배님이 1등 한 덕분에 지금 관객 엄청 많이 왔어요!”
“헉, 진짜요?!”
“우와~”
“…….”
부원 모두가 손뼉을 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게 그거랑 뭔 상관이죠?”
“무슨 상관이긴요~! 1등 한 친구 얼굴 좀 보려는 거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유명하잖아요.”
플레로마로 유명하긴 하지….
그때, 막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스태프가 재빨리 무대 뒤편으로 뛰어왔다.
“1막 2장 들어가야 합니다!”
“후배님, 가세요. 그리고 제가 아까 나가서 입금했습니다.”
부장이 완전히 만족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입금했다는 건 뭔 소리야….
나는 헛웃음을 참으며 무대에 올라, 소품으로 배치된 벤치에 기대앉았다.
조명이 없어 검게 보이는 막이 관객과 무대를 가르고 있었다.
나와 함께 나가는 학생도 옆에 앉아, 몸을 내 쪽으로 틀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한나, 첫 대사는 ‘내 사랑하는 언니, 로잘린드. 부디 나를 위해 즐겁게 웃어 줘.’, 기억하지?”
“…예에…!”
“대사 잊었으면 내가 즉석으로 메울 거니까 긴장하지 말고.”
“예…!”
부장 황궁 갈 수는 있냐?
여전히 기합이 들어가 있어서 나는 그냥 기대하기를 포기했다.
그때, 대기실 앞에서 스태프가 수신호를 보냈다.
막이 올라, 이전처럼 낯선 한기가 객석에서 퍼져 오는 게 느껴졌다.
팟―
머리 위에서 눈이 따가울 만큼 밝은 조명이 들어왔다.
조명 탓에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수많은 학생들이 객석 주위로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일어나 있었다.
‘아니, 이 새끼들이…. 입석까지 받았어?’
띠링―!
호감도 +1
호감도 +2
호감도 +1
“…….”
게오르크 아스카니엔이 로잘린드여도 호감도를 퍼 주네.
나는 객석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을 무시하며 주인공의 표정을 연기했다.
사촌 역을 맡은 학생이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내 사랑하는 언니, 부디 웃어 줘.”
“…….”
대사 반을 날려?
어이가 없어서 진짜로 웃을 뻔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관객들은 모르겠네.’
앞으로도 이 정도 실수만 나온다면 내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내가 로잘린드를 떠맡은 게 아델베르트 잘못은 아니지만, 나는 아델베르트가 황궁에서 로잘린드 역을 맡는 걸 봐야겠다.
‘그놈도 대본 한번 쌔빠지게 외워 봐야지.’
나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고개를 들었다.
“사랑하는 실리아. 나는 지금 평소보다 더 유쾌하게 보이려 노력하는 중이야. 그런데 이보다 더 유쾌하게 굴라는 말인가?”
“아냐, 내 말은…!”
좋아.
잘 따라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관객들을 응시했다.
“유쾌한 걸 떠올리기보다는, 차라리 추방당한 내 아버지를 잊는 것이 더 빠르겠군.”
* * *
‘끝났다.’
나는 내 대사가 완전히 끝나자마자 나와 물을 마셨다.
타이밍 좋게 마지막 장도 끝나 가고 있었다.
[자, 계속하자. 계속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재미있게 끝날 테니까!]
놀랍게도 호감도는 계속해서 쏟아졌다.
특히 내 평소 스타일대로 나왔을 때 초반의 호감도 세례를 다시 한번 받았다. 이미지가 확 달라져서 다른 인물로 보이는 효과가 있었던 듯했다.
‘아니, 그보다 아무도 그 처음 비주얼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
이의제기는커녕 호감도만 쓸어 담다니,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만족스럽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칭호: 니콜라우스 경
체력: +3.6 [+6.6]
정신력: +3.0
마력: ?
기술: +4.8 [+7.8]
인상: -7.0 [+1] [+8.095]
행운: +4.2
특성: 여명777, 신력, 매력 (Lv.5), 재시도 (Lv.1)
‘+1.’
이제 이 학교에서 나를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보다,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단순히 2학년 마법학과 학생들뿐 아니라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내가 얼굴도 모르는 타학과 학생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커튼콜까지 전부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뒤로 나가려 했더니만 바로 빠져나갈 수는 없게 됐다.
관객 몇몇과 인사하던 중, 엘리아스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루카!”
그가 제 뒤를 가리켰다.
정말로 쉰 명의 학생들이 저 멀리 앉아 있었다. 나와 친한 친구들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진짜 다 끌고 왔어! 우리 반 애들이 너 연기 엄청 잘한대!”
“그래, 잘했다….”
말을 정말 하나도 안 듣는 점을 지적해야 하는지, 인상값 양수 찍었으니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 이거 루카 거~”
엘리아스가 내게 꽃다발을 안기고,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꽃다발을 흔들었다.
“이것도 너한테 온 거야. 누가 빈 자리에 그냥 두고 갔어.”
“그래?”
꽃다발을 받아들자 내 이름이 적힌 쪽지가 바로 보였다.
쪽지를 풀자, 타자기로 찍힌 글자가 보였다.
[Audienz dubioses schockiertes]
“…음?”
엘리아스가 기웃대며 물었다.
“이게 뭔 말이야.”
“글쎄다.”
그리 자연스럽지 않은 말이 적혀 있다.
‘청중이… 의문을 품게 하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면 충격을 받은 청중?
굳이 이어 보자면 그렇다.
다시 말해,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불필요한 변형에, 자연스럽지 않은 단어 조합에, 마침표도 없다.
마침표야 됐다 쳐도 구성만 보면 0개 국어 하는 사람이 쓴 글 같다.
‘청중이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면 ‘Das Publikum war schockiert’ 정도로 표현해도 된다.
“술 마시고 쓴 거야? 뭐라는 거야.”
“엘리아스. 이거 누가 보낸 건지는 모르지?”
“몰라.”
나는 다른 부원들을 바라봤다.
내가 받은 꽃다발과 비슷한 것을 든 학생은 없었다.
“…….”
엘리아스가 나와 눈짓하고는, 쪽지가 들어 있던 꽃다발을 받아 갔다.
“음~ 조심해야지. 이거 내가 처리할게. 괜찮지?”
“그래.”
문제가 되는 문구는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나는 끼고 있던 장갑을 털었다.
그때, 나는 저 멀리 심사위원증을 달고 있는 사람 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동시에 그도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엥?!”
걸음을 옮기려던 엘리아스가 입을 떡 벌리고 굳었다.
아마 나도 표정을 관리하지 않았다면 그와 똑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심사위원 하나가 천천히 다가와 앞에 섰다.
“루카스 아스카니엔 씨죠.”
“…….”
내 앞에 선 사람은 마리안 바움이었다.
그가 들고 있던 심사지를 접어 파일에 끼우고, 나를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3주 반 만에 다시 처음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인사도 해명도 못 하고 나왔지. 주말에 찾아가 보려 했지만, 그 직후 플레로마가 전국을 오염시키는 바람에 그럴 시간은 없었다.
“예. 맞습니다.”
“우리 극단에서 배우 양성을 위해 유망한 학생 연기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아스카니엔 씨의 연기를 처음부터 지켜봤는데, 꼭 로잘린드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굉장히 자연스럽더군요.”
주위가 조용해졌다. 학생들의 입이 벌어지는 게 보였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캐스팅 현장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마리안 바움도 실제로 내게 그런 말을 내뱉고 있다.
“…….”
“물론 연극에 최적화된 스타일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만, 지금 우리 극단에서는 바로 그런 배우를 원합니다.”
마리안 바움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뒤에 일정이 없다면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 * *
당연히 이건 캐스팅이 아니다.
나는 오늘 다시 잘라서 어색해진 머리칼을 쓸며 그가 이끄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냥 나오라고 눈짓만 하셨어도 되었을 텐데요.”
“성의가 없지요. 또 바이에른에서 활동하는 연출가와 연이 있는 것을 미심쩍게 보는 이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마리안 바움이 자리에 앉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보는군요, 디트리히 그라나흐 씨.”
“…….”
굳이 그 이름을 꺼내다니?
시작부터 사과의 말을 내뱉어야 할까, 고민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입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었다. 한 달 전에 비해 피로해진 눈에서도 의외의 온화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따라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마지막으로 뵌 게 한 달 전인데 꼭 일 년 만에 뵌 것 같군요. 선생님께서는 잘 지내셨습니까?”
그 호칭에 마리안 바움이 슬슬 웃음을 흘렸다.
“이런 기분이었나요? 바이에른의 차기 수상으로 불리는 분에게 선생 소리를 듣다니, 이제 목 날아갈 장난은 관두도록 하지요.”
나는 그의 뼈 있는 농담을 모른 체하고 물었다.
“제가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까?”
“국왕 전하와 왕세자 저하의 지지를 동시에 받는데 당연하지요. 그런 분께서 몇백 년 전 구인류 연기하는 걸 볼 줄이야…. 남들은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을 하다니 온 보람이 있다 싶네요.”
마리안 바움이 호탕하게 웃었기에, 나는 사레에 들릴 뻔한 것을 애써 넘기고 물었다.
“…구인류 눈에는 확실히 이상해 보이나 보죠?”
“하하하!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아무래도 체격이나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보니.”
“…….”
“그래도 경 정도면 신인류치고는 꽤 자연스러운 편입니다. 대중적으로 팔리는 얼굴은 생각보다 성별을 바꿔도 위화감이 없거든요.”
연기를 배울 때부터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다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대로다.
이 자는 마치 카타콤에서 니콜라우스 에른스트를 만나지 않았던 것처럼 나를 대하고 있다.
그러니까 디트리히 그라나흐를 대하던 때의 태도다.
‘묻고 갈 생각인가.’
껄끄러운 문제지만 나의 잘못이고, 그런 만큼 해결은 해야 한다. 나는 미소지으며 그를 바라보다 나지막이 물었다.
“제게 화나지 않으셨습니까?”
마리안 바움이 나를 흘끗 바라보더니 테이블에 놓인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화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요.”
“…….”
“잠깐이었습니다. 결국 그라나흐 씨를 데려간 건 저의 실수니까요. 저의 경계심이 부족했던 탓이지요.”
“계획적으로 접근했으니 바움 씨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바움 씨가 어떻게 하면 저를 받아 줄지 연구하고 움직였는데 피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었겠습니까.”
“그거 꽤 경의 타율이 좋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손대는 족족 성공하는 삶 멋지네요.”
이 상황에도 농담이 나오냐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마리안 바움은 그저 허허 웃었다.
“카타콤에 오지 않아서 모르는군요. 그곳의 누구도 니콜라우스 경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경이 아니었다면 황제 폐하의 눈을 돌릴 수 있었을까요?”
“…….”
나는 말없이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고맙습니다.”
“정말 카타콤의 분위기를 경께서 직접 한번 보셔야겠네요. 지금 이렇게 겸손하게 나올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느낄 겁니다.”
나는 그의 배려 섞인 말에, 그저 미소지었다.
그는 분위기가 한결 풀린 걸 느꼈는지 슬슬 주제를 돌리기 시작했다.
“경께서 보내 주신 우편도 잘 받았습니다. 카타콤도 현재 오염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라, 경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리 측에서도 인력이 수없이 죽어 나갔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경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겁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플레로마가 약을 바꿨다는 걸 알아챈 날에 바로 그의 극단에 우편을 보냈다.
정말 받아서 활용했을 줄은 몰랐는데, 나름 다행이다.
‘그보다 그것만으로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그가 입을 열었다.
“사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총 두 가지인데, 첫째로는… 카타콤에서 따로 실험을 해 본 결과, 경의 연구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더군요.”
“다른 부분이라면?”
“우선 그건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으니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둘째로, 경에게 물을 게 있어서요.”
“뭡니까?”
그가 흑백 사진 여러 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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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곳곳에 영문 모를 문구가 적히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