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59)
아까 받은 꽃다발에 끼어 있던 것과 유사하다.
세 개의 단어로 된 어색한 조합.
“하나같이 부자연스러운 문장이군요.”
“그렇죠. ‘앉아 있는 보쿠스는 위험을 회피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글쎄요. ‘이쪽으로 쿠키를 조인다’, ‘더 교활하고 의심스러운 교구의’.”
다시 읽어도 굉장히 이상한 조합이다.
“오늘 아침에 카타콤 곳곳에 나타났습니다. 그냥 단어라면 별생각 없이 넘겼을 텐데, 이상하게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적혔길래 혹시나 찍어 놨습니다.”
“오늘이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진을 빤히 바라봤다.
밝은 담장에 물감으로 정갈하게 적힌 글씨.
꼭 인쇄한 것 같은 형태라 필체로 사람을 찾아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도움이 못 되어 드려 죄송하지만 저도 이 문구의 정체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어쩔 수 없지요. 그냥 술 취한 사람이 한 낙서일지도 모르니….”
“그건 아닐 겁니다. 방금 저도 이렇게 이상한 문장을 하나 받았거든요.”
마리안 바움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받았다고요?”
“누가 놓아두고 간 꽃다발에 Audienz dubioses schockiertes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Audienz? 영어에 익숙한 사람인가?”
나는 마리안 바움의 혼잣말에 속으로 동의했다.
보통 ‘관객, 청중’은 Publikum으로 쓰지 Audienz로 쓰지 않는다.
그 뒤 단어부터는 이제 막 언어를 배운 외국인이 흔히 쓸 법한 형태가 아니지만, 어쨌든 이 부분에서는 수긍하는 게 맞겠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Publikum의 뜻으로 Audience를 사용한 게 아닐까 해서요. 사실 공연장에서 받을 편지에는 회견보다 관객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적합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카타콤에 적혔다는 이 문구를 보니… 생각이 좀 달라지네요.”
실수나 무지가 아니다.
이걸 쓴 사람은 의도적으로 이상한 단어를 배치하고 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마리안 바움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경이 받았다는 쪽지를 고려하면 이게 단순한 낙서일 것 같진 않군요.”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옆의 의자에 팔을 걸쳤다.
“이거 참, 정말 단순히 혹시나 해서 여쭤본 건데, 이것도 이야기가 길어지게 생겼네요….”
“우선은 바이에른에 이런 신고가 들어오는지 살피겠습니다.”
“그래요. 그보다 경에게 온 쪽지를 보니 이 짓을 한 인간들은 나름대로 상황에 맞추어 문구를 적은 것 같은데, 보쿠스라는 이름의 프랑스인을 하루빨리 찾아서 앉아 있으라고 해야겠군요. 하하하!”
나는 그의 답 없는 농담에 웃지 않았다.
아무튼 상황에 맞춘 게 맞다면, 나름대로 경고의 문장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청중이 충격을 받았다’는 문장이 어떤 경고인지는 알 수 없다.
‘이쪽으로 쿠키를 조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 ‘교구가 의심스럽다’는 건 플레로마 교구를 말하는 건지 진짜 대륙의 교구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어느 교구를 말하는가에 따라, 이 문장을 쓴 자가 우리 편인지 아닌지부터 모든 것이 갈리는 셈이다.
‘플레로마가 대놓고 ‘대륙 교구가 의심스럽다’고 경고할 이유가 있나? 리스크에 비해 얻는 것이 상당히 적어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 누군가 ‘플레로마 교구가 이상한 짓을 계획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라면 좀 더 말이 된다.
하지만 제보자가 우리에게 직접 접촉해 오지 않은 점이 걸리고, 이걸 니콜라우스가 아니라 루카스에게 보낸 것도 걸린다.
나는 생각에 잠겨 카페를 둘러보다 물었다.
“그날 이후로 플레로마는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안 합니다. 안제 드라허 부의장께서 모든 병력을 동원할 각오까지 하고 계셨는데, 놀랍게도 아무런 일도 없더군요.”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좋은 정보다.
놈들의 기억을 지우고 가짜 기억을 주입한 것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튼, 우선 이런 현상이 제국 곳곳에 더 나타나는지 확인해 봐야 확실해지겠다.
취객의 헛소리 같은 문구에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헛소리가 더 적혔는지 알아보는 것쯤은 어렵지 않으니 괜찮다.
“카타콤에서도 더 발견되면 제가 경의 사무실로 편지를 보내지요. 그러면, 이제 첫 번째 이야기를 해야겠는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겪은 것과 그들의 실험이 어떻게 다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경은 폭주자의 코어를 건드리면 그의 내면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지요. 실험해 본 결과, 내면에 들어가는 것은 맞습니다. 덩달아 폭주 상태에 이르는 것까지 똑같았습니다. 경이 우리에게 경고하지 않았다면 이미 수십 명이 희생됐겠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하나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경은 ‘희생자의’ 내면에 들어갔다고 하셨는데, 맞나요?”
“예.”
“그거참 신기하네요. 우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희생자의 코어에 함께 오염되면 나의 내면에 갇히지 그 희생자의 내면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
나는 아델베르트의 내면에 들어갔는데?
그것도 놈의 몸으로 말이다.
“라비린스는 원래 그렇습니다. 남의 기억을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트라우마를 보는 것이죠. 물론 우리 기술로는 그걸 밖으로 빼서 공유할 수 있기는 합니다.”
마리안 바움이 뿌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이건 이전에 레오의 기억으로 만든 공간에 떨어지면서부터 알고 있었다.
그보다, 새로운 용어다.
“라비린스는 미궁 아닙니까?”
“그래요. 심연 중의 심연이죠. 폭주자의 번뇌를 일으키는 내면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나 읽은 말을 여기서 들으니 생소하지만, 무슨 개념인지는 알겠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기억을 공유 공간화한다고 해도 관전만 가능할 뿐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경은 희생자의 몸에 들어가 그를 조종할 수 있다고 했어요. 아니, 애초에 공간을 밖으로 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타인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죠.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
그건 나도 알고 싶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마리안 바움이 손을 내저었다.
“물론 경의 말씀대로 코어를 만졌다가 같이 폭주해 죽게 된다는 결과는 똑같습니다. 플레로마가 약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 말이에요. 그러니 과정의 차이야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죠.”
그래도 개인적으로 궁금하긴 하다.
마리안 바움도 그래서 내 앞에 앉아 있는 것 아닌가.
‘그보다….’
나르케는 왜 내가 아델베르트가 되었다는 걸 알고서도 놀라지 않은 건가.
물론 놈은 큰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매일 웃고만 있는 놈이니 이상하진 않지만.
“기억을 공유 공간화한다고 해도 개입할 수 없는 건 왜입니까?”
“세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건 세계의 창조자에게 달린 권한이니까요. 우리 세계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선택이라 생각하는 것도 사실 전부 그분의 뜻이 아닙니까.”
이 사람도 말하는 게 종교인 같다.
어쨌든 지금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저는 이전에 카타콤에서 공유된 기억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마음대로 움직여서 기억의 전개를 바꿨는데요.”
“바꿨다고요?”
마리안 바움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알겠다.’
공유 공간화시키면 관전자가 되는데, 그 상황에서 세계 주인의 뇌를 조작하면 내게 의지가 생길 수 있다 이건가. 결국 이건 순서의 문제다.
내가―왜 남의 내면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아델베르트의 안에 빨려 들어간 건 공유 공간이 아니라서 관전자가 되는 대신 본인이 된 것이고?
‘…아니, 반대가 더 자연스럽다.’
다들 비트리올에 오염된 후 자기 자신의 트라우마를 봤다고 했지. 사실 그게 맞는 것이다.
내가 아델베르트가 되어버려서 아델베르트의 라비린스를 본 것에 가깝겠다.
그럼 대체 왜 아델베르트가 되어 버린 건지가 문제다.
아무튼 이건 지금 답을 내기 어려우니, 관전자에서 참여자로 바꾸는 방법이나 말해 줘야겠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던지듯 말했다.
“기억 주인이 자유의지를 주면 그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겠죠. 신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처럼 말입니다.”
“아하하하! 그거 말이 되는군요.”
“농담 아닙니다. 나중에 정신 개입 약물로 기억 주인 뇌를 좀 조작해 보시죠.”
마리안 바움의 얼굴이 순간 진지해졌다.
“…어?”
“해 보시고 알려 주세요.”
“시도해 볼 만한 아이디어군요. 한번 해 보고 말씀드리지요. 아무튼 경의 사례는 몇 번을 실험해도 재현할 수가 없는 특이 사례입니다. 혹시 변동 사항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마리안 바움이 펜을 꺼내 이런저런 내용을 갈겨 적었다.
그 뒤로 그는 한참을 카타콤과 플레로마에 대해 질문했고, 나 역시도 질답을 하며 쓸만한 정보를 모았다.
종이 한 페이지를 다 채워 갈 때쯤, 마리안 바움이 물었다.
“플레로마를 먼저 공격할 계획은 없나요?”
“지금 미리 계획해 둔 것도 뒤로 미뤄둔 상태라서, 정부 차원에서 플레로마를 공격할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하긴, 지금 오염된 걸 복구하고 치료하기에도 손이 모자라지요. 최근에는 신약 보도까지 났으니까요.”
아무리 감정을 동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지만 정보를 국민에게 은폐할 생각은 없어, 2차 시험을 치르기 며칠 전에 이제는 폭주하면 사망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플레로마의 신약 이후부터 예산과 인력을 두 배로 갈아 폭주를 방어하고 있기에 이미 인력도 물자도 부족한 제국에서는 플레로마를 공격할 여력이 없다.
공격하려면 이전처럼 단신으로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는 또 한계가 있다.
한참 말없이 종이만 들여다보고 있던 마리안 바움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연기를 계속할 생각은 없습니까?”
“연기요? 연극부니까 해야죠.”
“그거 말고, 우리 극단에서 말이에요.”
“…….”
이제 와서 어떻게 해….
“얼굴이 좀 알려져서 안 됩니다.”
“대중이 얼굴까지 아주 정확히 기억하고 있진 않을 텐데? 아니면 카타콤에서 서는 건? 방금 그거 저만 보기 아까운 연기였습니다.”
“연기를 혼자 보기 아까우신 건지 구인류로서 문화적 부조화를 혼자 보기 아까우신 건지?”
“하하하하! 아~ 아쉽게도 안 통하네요.”
그가 껄껄 웃더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각각의 배우에게는 색이 있지요. 그 위에 배역의 색을 입혀서 조화를 이루는 게 연기입니다. 그런데 경의 연기에는 배역의 색만 묻어납니다. 그런 말 자주 듣지 않으시나요?”
“…….”
자주 듣기야 했지.
여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사람 보는 눈은 비슷한가 보다.
“그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완전히 지우고 몰입하는 배우는 흔치 않고, 저는 그런 배우가 제 인물이었으면 합니다. 제안은 진심이니 연기에 대한 마음만 생긴다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마리안 바움의 눈빛은 진지했다.
극에 대해서는 언제나 열정적인 이였으니 그럴 만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카타콤에도 오세요. 다들 반길 겁니다.”
“제가 가도 괜찮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쿠키를 어느 쪽에 돌려야 하는지 같이 조사하셔야죠.”
마리안 바움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웃었다.
여전히 답이 하나도 없는 농담이었지만, 내 방문을 편하게 만들어 주려는 게 보여서 그냥 미소 지었다.
“그래야죠. 조만간 가겠습니다.”
* * *
예술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기숙사 옥상에서 대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학교 부스에서 술을 파는 건 무슨 경우야?”
“맥주니까 괜찮지 않아? 미리 사다 놓으려고 했는데, 레오가 그냥 학교에서 사 마시라고 해서 기다렸더니 이렇게 되어 있네.”
체링겐이 환하게 웃으며 술을 마셨다.
학생회에서 대체 뭘 바라는 건지 오늘은 술을 허가했다. 물론 학식에 나오는 10도 미만의 와인과 맥주만 가능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놀라웠다. 지난 축제에서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엘리아스 이놈은 축제 왜 당겼는지 물어봐 달라니까 물어보지도 않고 놀러 나갔네.’
내가 말하는 것을 전부 반대로 하는 것인가? 내가 직접 레오에게 물어봐야겠다.
나는 테이블을 둘러보며 안주로 가져온 자우어크라우트를 먹었다.
‘뒤풀이치고 가볍네.’
오히려 좋다.
사람이 여섯이나 되어서 50만 원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들 내 생각보다 더 소식하는 데다 교내에서 파는 음식으로 전부 처리했다 보니 테이블이 무겁지 않았다.
나는 아직 한참 남은 잔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 술 좋아해?”
“당연하….”
“좋아.”
모두의 눈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1분반 아인시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모두 살짝 당황해 말문이 막혀 있을 때, 체링겐이 웃으며 물었다.
“처음 알았어. 어떤 술 좋아해?”
“그냥 전부. 원래 학교에서는 절대 술 반입 안 된다고 들었는데 의외네. 신기해.”
“보통 안 되는 게 맞지…. 너희 3교육원에서부터 이랬어?”
“아.”
내 말에 필립이 살짝 코웃음 쳤다.
“너도 쟤도 3교육원 안 나왔지. 맞다.”
“하하, 평소 하는 짓으로만 보면 3교육원이고 뭐고 방금 학교 처음 다니는 것처럼 구는 사람은 필립인데 말이야.”
체링겐이 잽싸게 말을 차단했다.
그렇게 굴 만도 했다.
명문이라 불리는 사립학교가 으레 그렇듯 같은 재단에서 에스컬레이트식으로 올라온 학생들끼리는 결속력이 강했다.
필립이 쓸데없는 것으로 기를 펴기 전에 체링겐이 누른 것이다.
‘새끼….’
생각 어리긴. 취기 올라서 본심 나오는 걸 듣고 있자니 놈도 참 속알맹이가 뒤틀린 놈이다.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주제를 돌릴 겸, 지금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너희 교내에 이상한 문장 쓰여 있는 거 봤어?”
“어? 이상한 문장?”
“어디 있는데?”
못 봤나 보네.
그래도 당분간은 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니. 보면 알려 달라고.”
“루카스 취했나 봐….”
“아냐.”
멜빈의 말을 단칼에 자르자, 체링겐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 우리 팀 전원 3차 진출이라니, 이대로면 최종 18명 안에서 다들 들겠지? 이번에 학교가 무슨 생각으로 팀을 짰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희를 끝까지 보고 싶어. 마지막까지 잘해 보자.”
학교가 무슨 생각으로 팀을 짰는지 모르겠다니, 저놈도 학교가 이렇게 쉽게 나올 리 없다고 생각하나 보네.
체링겐의 부드러운 미소에 감동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려던 차에, 다시 아인시델이 입을 열었다.
“얘들아.”
고저 없는 목소리에 다시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너희랑 같이 훈련했던 일주일 즐거웠어.”
“…….”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러는?
이전에 내게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불러냈다’고 말했을 때도 느꼈지만, 자꾸 사회성이 없는 건지 솔직한 건지 모르겠는 말을 내뱉고 있다.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나는 데다 말투가 좀 비장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듯하다.
체링겐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하이케.”
“나, 나도…! 너 진짜 잘하더라. 다음에 너랑 루카스는 같은 팀이지?”
“맞아.”
아인시델이 나를 보며 웃었다.
다른 친구들과 있을 때는 처음으로 보이는 감정 변화였다.
“루카스, 다음 팀에서도 잘해 보자.”
그의 표정 없는 얼굴에 미소가 돌아, 이제야 좀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짧게 대답했다.
“그래.”
* * *
마지막까지 옥상에 남은 사람은 나와 아인시델뿐이었다.
아인시델이 붙잡았기 때문이다. 놈은 정말 계속해서 위장에 술을 쏟아부었다.
분명 학생회가 인당 구매 수를 제한했는데, 이놈은 어디선가 마법을 연결해 계속 잔에 술을 리필하고 있었다.
‘대체 이런 쓸데없는 마법은 어떻게 아는 거지.’
마치 술 마시려고 마법 공부한 놈 같다.
좀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어차피 3차 때문에 2주 내내 붙어 다녀야 하니 피하는 의미가 없다.
혹시 몰라 엘리아스와 레오와 연결된 아티팩트를 끼고 왔으니 안전 문제는 한시름 놔도 될 것이다.
1분반 아인시델이 또다시 잔을 비우고 거기에 마법을 걸려 하기에, 나는 헛웃음 치며 그를 말렸다.
“그만 마셔…. 위 상하겠다.”
“그래?”
“그래서 왜 붙잡은 거야? 나 이제 할 일 하러 가야 하는데.”
“그래…?”
놈이 미묘하게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짜 뭐냐.’
이 새끼 진짜 나랑 친해지고 싶은 건가?
그래 놓고 호감도를 1점도 안 줘?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안 그래도 아델베르트와 엘리아스의 폭주 사건 탓에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다.
또 이상한 문장도 그렇고.
이제 알아보러 가야겠지만, 그게 일종의 경고문일 가능성이 크니 긴장을 놓을 수는 없다.
거기에 아인시델 가문 N대손까지 이렇게 구니 머리만 아파진다.
“왜 나랑 친해지고 싶다는 거야?”
나는 다소 뜬금없이 들릴 질문을 했다.
하지만 짚고 가야만 한다.
놈의 호감도는 -2에서 0점이 되었다. 어디까지나 특성 덕분이었다. 특성 외로 그가 준 점수는 단 1점도 없다.
0점밖에 되지 않으면서 나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전에도 생각했지만 0점은 그냥 공기고, 반 친구 27쯤에 불과한 인간이다.
“모르겠어.”
아인시델이 진짜 모르겠다는 듯 생각에 잠겨 눈을 굴렸다.
“뭔가 우리는 오래 볼 것 같아.”
“…….”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이 교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다야?”
“응.”
나는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이케. 너희 조상 중에 머리카락 하얀 마법사 있어?”
“하얀색이면 엘리아스네 집안사람들 아냐?”
“걔도 걔만 하얗지 다 노란색이야.”
“그래? 우리 집 사람들도 다 머리색 어두워. 할머니는 젊었을 때 검은 머리셨고, 우리 삼촌이랑 엄마도 나랑 똑같이 어두운 금발이야.”
확실히, 하나도 안 닮았다.
그 아인시델과 말이다. 그 아인시델은 엘리아스보다 더 하얀 백발이고, 이목구비도 여기 있는 하이케 아인시델과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그 아인시델이 성씨 사기를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체 왜 공략 불가능인지 알아볼까.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말이다.
“하이케.”
“응?”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