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62)
뭘 하는지 보려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러길 잘했네.
“무슨 일이야.”
호감도가 나오는 게임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공략 불가능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대강 감으로 안다.
개발자가 고려하지 않은 인물, 또는 악역이어야 해서 감화시킬 수 없는 인물.
곧 죽을 놈이라 엔딩을 볼 수 없는 거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모은 단서로는 후자가 더 적절하겠지.
즉, 이 체계는 하이케가 내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공략해서는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교주 아인시델’이 하이케 아인시델에게 손을 뻗을 예정이고, 우리 힘으로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아인시델’과 하이케가 이미 손을 잡은 상태다.
주교가 하이케를 끌어들일 유인은 충분하다.
자신과 고유능력이 같은 후손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대상이 있을까.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야 하고 발각을 피해야 하는 플레로마에게 만물의 과거를 알 수 있는 능력은 상당히 수요 있는 능력일 것이다.
특히 직계로 입양될 정도의 자질을 가졌는데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솔직히 말해서, 공략 불가능이니 뭐니 해도 여태까지는 놈의 행동에서 위험을 감지할 수 없었다.
호감도가 오르지 않는 것도, 집에서 주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도, 대체 무엇이 얽혀 있는지 짐작하기 힘들게 할 뿐이지 당장의 위험을 뜻하는 건 아니다.
나는 오늘 그가 악의를 품었다는 증거를 잡지 못한다면 경계는 하되 여태까지 그랬듯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나올 줄이야.’
그가 내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걸 가정하고 이곳까지 왔지만, 정말 위협적인 속내가 있길 바라지는 않았다.
살짝 입맛이 썼다.
어쨌든 결정해야 한다.
그는 내가 능력을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니, 충분히 발뺌할 수 있다. 그러니 아예 시작부터 몰아붙이는 게 맞을까.
‘기회는 이용해야지.’
실험 하나 해 보자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솔직히 집까지 불렀겠다, 좀 늦게까지 같이 놀 줄 알았는데 자정이 되니까 바로 보내는 게 신기하긴 했어.”
“…….”
“역시 이대로 자기는 아깝지?”
밑밥 깔아 줬으니 어디 어느 쪽으로 튀나 보자.
그가 플레로마와 손잡은 자라면 진실을 알릴 수 없다. 타깃에게 제 목표를 들키는 것만큼이나 실패한 임무 수행이 또 없으니 말이다.
“…아니. 그것 때문에 온 건 아니야.”
“그럼.”
그렇게 말한 순간, 밖에서 들려온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문짝이 흔들렸다.
콰앙―!
“루카!”
엘리아스가 나르케의 목덜미를 붙잡고 방에 쳐들어왔다.
나르케는 자다 깬 건지 다짜고짜 끌려와서 그런지 비몽사몽 한 얼굴로 의문 섞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엘리아스의 얼굴에 잠시 서늘한 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어디까지나 잠시였다. 그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히죽 웃었다.
“너무하네. 너희끼리만 놀려고?”
* * *
나는 내 앞에 놓인 보드게임판을 내려다봤다.
이미 엘리아스와 나르케는 옆에 있던 빈 침대 하나를 붙여서 자리를 만들었다.
“아, 이번엔 이겼다. 그치?”
“아니야, 엘리아스.”
“왜?!”
“내가 빨간색 말 네 개 가져갔어. 하나는 남겨야지~”
“아아아아! 잠깐만! 일단 말을 좀 들어 봐.”
하지만 나르케는 일말의 주저 없이 엘리아스의 팔을 찰싹 쳤다.
엘리아스가 잠깐 미간을 구겼다가 하이케를 빼놓고 차음 마법을 걸고서 말했다.
“나르케.”
“응?”
“성직자가 사람 패도 돼?”
“하하하하!”
나르케가 웃음으로 때우자 엘리아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 힘이 센가…. 예전에 만난 사람도 꽤 하던데.”
“나 바티칸에서 태어났는데~?”
“어쨌거나. 그러고 보니까 너 제국어 엄청 잘하네. 바벨탑 이전 사람 같아.”
모든 시대를 통틀어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까불거리는 놈이 종교적 비유를 할 때마다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가 인터넷 언어에 찌들지 않은 시대의 사람이라는 게 다시 와닿았다.
아무튼 엘리아스는 새삼스러운 말을 하고는 침대 아래쪽에 드러누웠다.
계속해서 지기만 하니 흥미가 떨어진 모양이다.
그가 이불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고개를 확 틀었다.
“하이케.”
“…….”
“넌 왜 안 해? 지금 두 판째인데 네가 안 하니까 재미가 없어.”
“…….”
“아, 한 명만 더 끼면 진짜 더 재밌어질 것 같은데~ 응?”
친구들의 난입 이후부터 침묵을 일관하던 하이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 룰을 몰라.”
“어?”
최근에 학교에서 유행하는 게임이라 룰을 모르기가 쉽지 않다.
엘리아스가 의문 섞인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다, 같이 포커 칠 사람이 없었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는지 잽싸게 말했다.
“그런 거야 뭐~ 맞으면서 배우는 거지. 혈관 한두 줄쯤 포기하면 편해.”
“그래, 하이케. 내가 잘 가르쳐 줄게.”
나르케가 하이케의 팔을 잡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거나, 엘리아스가 이렇게 구는 건 단순히 놀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는 하이케가 내게 무언가 하려고 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다짜고짜 몰아붙이는 것보다는 분위기를 풀고서 검증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여전히 묵묵부답이자, 나르케가 자리를 옮겨 하이케의 옆에 앉아 말했다.
“하이케. 아까 뭔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풀이 죽었어?”
사실 풀이 죽어서 말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내게 말하려던 차에 친구들이 난입한 바람에 조용히 하고 있는 쪽에 가깝지.
“루카스한테 할 말이 있어.”
“아, 말해. 자리 비켜 줄까?”
“아냐. 있어도 돼.”
아인시델이 벽과 바닥 사이 언저리를 응시하며 말했다.
“낮에, 내가 고유능력으로 물건의 과거를 읽을 수 있다고 했지.”
“그래.”
“나는 사람의 과거도 읽을 수 있어.”
나는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의외의 대답이다.
친구들과 잠시 눈이 마주쳤다.
“네 과거를 읽으려고 했어. 미안해.”
“…….”
빠져나갈 구멍까지 마련해 줬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나온다고.
“왜 내 과거를 읽으려고 한 건데?”
“…내가….”
하이케가 감정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혹시나 내가 네 상처나… 별로 좋지 않은 주제를 건드릴까 봐.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가까워진 게 처음이라서 이번에는 잘해 보고 싶었어.”
“하이케.”
“…그러면 안 됐다는 걸 알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끄집어내듯 미묘하게 목을 긁는 소리가 느릿느릿 흘러갔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무릎을 손끝으로 찍어누르고 있다는 것 하나는 눈에 들어왔다.
“실수하고 싶지 않았는데, 실수를 넘어 문제를 일으켰네. 미안해.”
한 걸음 후퇴하는 게 낫겠다.
그가 아인시델과 손을 잡았다면 제 능력을 내게 곧이곧대로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그냥 잘 자고 있나 보러 왔어’ 정도로 회피할 것을 예상했지, 이렇게 속마음을 싹싹 긁은 답변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 이건 또 다른 계산이 깔렸거나, 진실이다.
나는 나르케를 바라봤다.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전반적인 행태로는 친구가 없어 보이긴 했는데.’
친구가 얼마나 오랫동안 없었으면 이렇게 사회성 떨어지는 행동을 하는 건가.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썩 좋지 않으니, 차라리 기억을 읽어서 상대에게 맞춰 주는 게 더 괜찮은 방식이라고 생각한 것 아닌가.
사람을 많이 대하지 못했는지 대인 관계 능력이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잘못이 아니란 뜻은 아니지만.’
놈이 플레로마과 연관이 있는지 아닌지.
내게는 그게 중요한 거지 사회성 훈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미안하다는데 계속 화내면서 물고 늘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짜 기분이 나빴다면 놈이 문 따고 들어온 순간부터 화내도 되었던 것이니 그의 잘못에 격하게 반응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야…. 이거는 하이케 네가 잘못하긴 했다. 알지~? 그런 거 안 써도 너 말 멀쩡하게 하고 있어.”
어쨌든 엘리아스도 아예 적으로 돌려 버릴 만큼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분위기를 풀려 하고 있다.
하이케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루카는? 어떻게 생각해.”
“그러니까, 예습해서 나한테 다 맞춰 줄 생각이었다?”
“…….”
“하이케. 그걸 알아 가는 과정이 친해지는 과정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미안해. 내가 경험이 부족해서, 나한테 실망할까 봐 무서웠어.”
비록 얼굴은 무덤덤하긴 하지만, 놈은 정말로 변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도 이렇게까지 바닥치는 대인 관계 능력을 가진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서 뭐라 할 말이 없다.
나는 양손을 맞잡고 입을 열었다.
“많이 당황했고 또 지금도 어이가 없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맙다.”
“…….”
“야~ 깔끔하다. 그러면 정리 끝?”
엘리아스가 우리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정리는… 애초에 화가 안 났으니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끝났고, 나는 따로 물어야 할 게 있다.
“하이케. 그런데 나는 네가 나와 많이 친해지고 싶어한다는 걸 크게 느끼지 못했거든.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아니었어?”
다시 말해, 왜 호감도가 오르지 않느냐, 이거다.
“솔직히 말해도 돼?”
“물론이지.”
“지금은 아니지만 처음엔 좀 별로였어.”
“왜?”
“플레로마는 좀 그래서.”
“…….”
내가 할 말이다, 이 새끼야….
너희 가문 성씨 쓰는 놈 중에 플레로마 주교가 있는데 지금 누가 누굴 보고 플레로마라고 하는 거야.
나르케는 그의 말에 틀린 부분이 없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루카스 네가 플레로마가 아니라는 걸 알아. 만약 맞다면 지금쯤 우리 학교 학생들 전부 폭주했어야 하겠지.”
나는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하이케. 지금도 네 감정은 비슷하지 않아?”
“그렇게 보였어?”
그가 허공을 바라보며 홀린 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럴지도. 나는 나를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어려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감정을 더 확실히 느껴야 할지 모르겠어.”
“…….”
“나는 널 멋진 팀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부리는 오기일 뿐 내가 진정으로 느끼는 인상이 아닐 수도 있겠지. 물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마저도 너에 대한 선호에서 시작한 건지, 나도 한번 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다는 집념에서 시작했는지 모르겠어.”
‘음, 알겠다.’
이게 호감도를 주지 않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매사에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부류라면 충분히 호감도에도 영향이 간다. 잘 퍼 주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으니까.
‘문제는… 그렇다면 오를 가능성도 있다는 거 아닌가. 그것도 그것대로 의문스러운데.’
공략 불가 대상의 호감도를 적어 놓는 게 일반적인가?
호감도를 올릴 수 없으니 공략 불가 아냐. 아니면 엔딩이 없어서 공략 불가인가?
‘…둘 다일 것 같은데. 그런 게임을 해 봤어야 정확히 알지….’
그래도 아까보다는 안개가 걷혔다.
어느 플레로마가 제 목표물한테 자기 능력을 낱낱이 말하고 있나.
저놈은 친구 없고 감정 결여된 고등학생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 보인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경우의 수는 대폭 줄어든다.
가장 그럴듯한 경우는 이것이다.
이제 곧 플레로마가 하이케에게 접근할 것이다.
“…….”
내 목표는 공략 불가능 대상을 방치했다가 파국으로 가는 결말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놈이 넘어가게 생겼다면….’
넘어가서 조직 말단 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예 확실한 악역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설 속 악당이라 하면 나는 플레로마와 아델베르트가 함께 떠오른다.
하지만 분명 아델베르트는 공략이 가능하지 않았던가.
하이케는 그보다도 더 심각한 악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그 전에 처리하는 게 옳은가?
물론 그는 아직 잘못이 없으니 플레로마의 접근을 막는 게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공략 불가능’이었던 게 아닌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1분반 아인시델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 생각을 읽은 나르케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불편하다면 이제 아는 체하지 않을게.”
“아니, 그렇게까지는.”
결국 오늘 내게 접근한 이유가 결국 ‘친해지고 싶어서’ 아닌가?
‘플레로마에게 정보를 갖다 바치기 위해서’라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다 보니 이 정도는 그냥 코웃음치고 넘길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사이가 나빠지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다. 3차 시험 팀워크를 버리겠다는 말이니까.
“너무 죄책감 갖지 마. 그렇게까지 화나지 않았어.”
“…….”
“나도 그런 상상은 해 본 적 있어. 상대방의 마음을 알면 더 친해질 수 있을 텐데, 뭐 그런 거. 그걸 자려는 사람 상대로 실행에 옮기려 한 건 확실히 잘못됐지만….”
나는 하이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말을 이었다.
“네 지금 상황을 고려하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는 돼. 난 이제 괜찮으니까 너무 오래 침울해하지 마.”
“…고마워.”
표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얼굴과 달리 손끝이 손바닥 안으로 말려들어가 꾹 눌리고 있었다.
그의 심경이 어떨지는 잘 알겠다.
그때, 엘리아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들아.”
“응?”
“왜.”
“정리 끝~?”
“뭐, 그런 셈이지.”
“들어.”
“뭘?”
내가 물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30분쯤 지난 뒤, 나는 바닥을 뒤덮은 거위털을 손으로 한 움큼 집어 허공에 날렸다.
“…이게 이렇게 유서 깊은 짓일 줄은 몰랐다….”
“휴우~ 재밌다!”
나르케가 솜이 다 빠진 베개를 잘 접으며 웃었다.
엘리아스한테 베개로 후드려 맞아 놓고 뭘 웃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얘도 추기경 생활하느라 또래랑 학교생활 하는 건 처음이지.’
그래도 완전히 얼어붙어 있던 아까의 분위기가 풀리기는 했다. 엘리아스가 하이케까지 같이 후려팬 바람에 그렇게 됐다.
그래도 경우가 있지 지금 남의 집에서….
“얘들아. 이건 어느 세월에 치울 거야. 하인 부르면 집안 어른 귀에 들어갈 것 같은데.”
내 헛웃음에, 하이케가 말했다.
“괜찮아…. 몰래 불태우면 돼.”
“넌 그냥 손 대지 마라.”
“불? 쓰레기통에 버리면 삼촌한테 혼나? 친구들이랑 노느라 그랬다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시지 않을까~?”
삼촌 이야기가 나오자 방금까지 뛰어다니느라 상기되어 있던 하이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아마 삼촌은….”
“왜?”
“…아니다. 너희가 있으니 괜찮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네.”
“너 너희 삼촌하고 안 친한가 보네~?”
“응.”
하이케가 웬일로 단호하게 말을 마쳤기에, 아무도 그 주제로 말을 잇지 않았다.
물론 상관없다. 엘리아스도 그 얘기를 계속할 생각은 없을 테니까.
여기서 하이케에게서 더 얻어 낼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단 하나의 방법을 빼면 말이다.
‘신력을 써서 정보를 좀 얻으면 좋을 텐데.’
정보를 뽑아내고 기억을 지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안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이케가 정신계열 마법을 고유능력으로 가졌으니, 정신 조작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나르케마저도 ‘턱턱 막히는 느낌이 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요즘 친해지면 다들 예속 마법 쓴다고 사기 좀 쳐 봐?’
아니다.
이건 아무리 저놈이라도 안 믿지.
“얘들아, 또 술 마실래?”
“우리 내일 7시 등교야, 엘리아스.”
“그래. 이제 자야지. 나는 자러 갈게.”
하이케가 마법으로 거위털을 한 방에 쓸어 구석에 모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루카스. 아까는….”
“얘기 끝나지 않았어?”
하이케가 그 말에 희미하게 미소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대로 방 밖을 나가려다, 뒤돌아 우리를 바라봤다.
“오늘 고마웠어. 챙겨 줘서.”
* * *
우리는 가장 멀리 떨어진 나르케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유능력으로 친해지려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놀랍게도 악의는 없었어.”
엘리아스와 나르케가 차음 마법을 치고 작게 대화했다.
그게 진짜 놀라운 지점이기는 하다.
나르케가 중얼거렸다.
“우선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그쪽하고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아. 확실해.”
“내 능력으로 판단했을 때는 플레로마가 곧 저 친구한테 접촉할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생각해?”
내 말에 나르케가 눈을 감더니, 한참 뒤 인상을 구기며 눈을 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루카스 네가 말한 게 제일 정답에 가까워 보이네.”
“오, 혹시 나르케 미래 보는 중?”
“응.”
“우와~ 멋지네.”
엘리아스가 그렇게 말하고 양손을 맞잡았다.
“얘들아. 일단 너희가 뭘 더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저 친구 이제 어쩔 건지 말하고 싶겠지. 그런데 이제 여기 온 진짜 목적을 들어야 해.”
엘리아스가 자연스럽게 진짜 목적을 바꾸었다.
프림로즈 패스 때문에 온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엘리아스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