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65화 (165/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65)

‘잠깐…!’

피할 수는 없었다.

대체 누가 혹시 모를 범죄를 위해 바닥을 밟지 않고 방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차라리 물 위를 걸으라고 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적어도 마법을 준비할 시간이라도 주어지지 않는가.

암흑밖에 없는 중간계는 잠시였다.

금세 생각도 끊어졌다.

* * *

이상한 냄새.

처음 눈을 떴을 때 느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으음….”

목에서 멋대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각이라도 확보해 보려고 했지만 시야는 지나치게 느리게 움직였다.

어떨 때에 이런 반응이 나는지 안다.

지금 나는 경계에 있다. 쇼크가 왔거나 피를 흘려서 졸음이 올 때면 이렇게 되었다.

‘…지금 그럴 이유가 없는데. 사고를 당한 건가?’

분명 황제 폐하를 만나고, 경찰국 사람들에게 신력을 쓰고….

그다음엔?

“…….”

무엇을 했는지 분명 알고 있으나 몽롱함이 내 생각을 지웠다.

의식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너무 많았나….]

[…었어?]

서서히 좁혀 들어가는 눈을 억지로 떴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기절할 것이다.

[…어.]

[닦을 것 좀….]

누군가 옆에서 버석한 수건을 입에 댔다.

혀를 깨문 덕분에 정신이 잠깐이나마 깼다. 감각의 지연은 여전했으나 사고력은 좀 돌아왔다.

[물이라도….]

[아냐. 그냥….]

정신이 좀 깨어나니 감각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슬슬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의식의 끝자락에서 목소리가 흩어진다.

외피부터 속까지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 듯한 불쾌함이 이어지고 있다. 맨정신으로 버티기에는 지나치게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재시도. 최대한 빨리.’

띠링―!

Chapter 6 체크포인트를 찾는 중입니다… (0/?)

눈이 감기는 와중에도 새하얀 글자가 시야에 번쩍였다.

‘아니 이 새끼야….’

그나저나 이런 창은 처음 보네.

그래도 다행인 점은 [Chapter 6 체크포인트가 만료되었습니다.]라는 창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이야기를 바꿀 분기점으로 돌아갈 수 없을 때에 이런 창이 뜬다.

그래도 이번에는 찾아보려는 시도라도 하니 다행이다.

‘…그럼, 일단은 견뎌야겠군.’

안 그래도 간 크게 제국2교육원 기숙사에 워프 마법을 걸어 놓는 놈들이 누구고, 어떤 목적으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알아야 한다.

기분 나쁜 통각에 엄살을 부리기에는 적진에 들어온 지금이 기회다.

물론 여유롭게 생각하기에는 내 상태가 말이 아닌 듯하지만…. 알아볼 것은 알아보고 가야지.

나는 잔뜩 꺾어져 있던 목에 힘을 실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구인류인 게 확실한 인간 몇이 내 옆에 앉아 있다.

‘음.’

내 뇌도 신인류 사고방식에 조금씩 찌드는지, 구인류라는 사실이 먼저 뇌에 닿았다.

만약 내가 이전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면 저들이 여자아이라는 게 먼저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X발….’

뇌가 자꾸만 느리게 흘러가지만, 나는 분명한 결론에 다다랐다.

여기는 프림로즈 패스다.

더 알아볼 것도 없다. 구인류들의 행색이 절대 길에서 볼 법한 행색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응시하려고 노력은 했다.

마찬가지로 구인류로 보이는 남자가 하나 앉아 있다.

구인류 중에서 175cm가 넘는 사람은 신인류와 구분이 힘든데, 저 사람은 체격은 커도 나이를 먹었는지 얼굴 말단부에서 호르몬 영향을 오래 받은 티가 났다.

‘포주인가.’

내 옆에 있는 구인류는 잘 쳐 봐야 3교육원 졸업할 나이쯤으로 보이는데, 저 사람은 적어도 30대 후반이다.

손님이라기에는 내 옆에 앉은 구인류 대신 나를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손에 카메라 아티팩트를 들고 있다.

아무리 못해도 이곳 관리자일 것이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나는 힘이 달려 소파 뒤에 머리를 기댔다.

“아….”

[…이분 뭐라도 좀….]

[…냅두라고….]

구인류끼리 대화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뭉개졌다.

내가 탄식한 이유는 이 사람들이 예상한 이유와 다르다.

‘X발….’

첫째로,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냐? 평생 쌓아 온 윤리관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거부하고 있다.

둘째로, 이제 내가 여기에 왜 끌려왔는지 확실해졌다.

‘뻔하지.’

엘리아스에게 협박하기 위해서다.

주변인을 괴롭혀서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것. 계속 괴롭힘을 당하다 보면 ‘이게 전부 엘리아스 탓이다’라고 원인을 돌릴 만하다.

하지만 그런 괴롭힘은 어디까지나 협박 편지를 우편함 터질 때까지 보내거나 집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정도지, 수사원 친구를 퇴폐 업소로 워프시킬 정도는 아니다.

그것도 왜 하필 난데?

물론 엘리아스나 나르케가 똑같은 일을 당하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겪는 것보다는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내가 겪는 게 낫지. 그리고 그쪽은 아직 고등학생밖에 안 됐다.

그러니 질문을 정확히 하자면, 뭘 믿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냐는 거다.

삑―

구인류가 든 아티팩트에서 나는 소리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가 내 쪽으로 아티팩트를 들이대고 있었다.

“…….”

정신 못 차렸을 줄 아나 보네?

눈을 뜨고 있는데 대놓고 사진이나 찍고.

물론 세상이 지나치게 느리게 움직이고 있긴 하다. 저쪽이 보기에도 여전히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의문점이 몇 가지 있는데.’

뒷배가 어마어마할 것은 일단 제쳐 두자.

정말 ‘왜’ 하필 나냐는 거다.

제일 만만해서? 글쎄다. 필립이 그날 울었던 이유 중에 ‘내가 집에 꼰지를까 봐’가 있었지. 그것만 봐도 한 나라의 통치가문이라는 배경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답이 나온다.

이들의 지원세력은 적어도 아스카니엔과 동급이거나 그 윗급이어야 할 것이다.

‘설마… 형의 짓인가.’

이제 플레로마로 안 되겠으니 퇴폐 업소에 보내겠다? 사진도 전국에 뿌릴 거고?

결과만 보면 효과는 있겠지만 형이 형 입으로 그렇게 리스크 높은 주문을 했다고 생각하니 좀 애매하다.

그리고 여전히 문제가 하나 있다.

‘내가 여기서 빠져나간 뒤에는?’

학교에 워프 마법이 걸려 있던 것부터 뭔지 모를 약을 먹은 것까지, 나는 다 알고 있다.

특히 나는 이것을 이용해 엘리아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사진은 오히려 내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어 줄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결정적인 문제다.

그들의 무기가 곧 내 무기가 될 것인데, 이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움직였을까?

상대방이 멍청할 것을 가정하는 것보다는 계획이 있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렇다면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일단, 뾰족한 답이 없으니 지금은 ‘나에게 프림로즈 패스 고객이라는 오명을 씌우고, 더 나아가 엘리아스의 사회적 관계를 죽이려 한다’는 가설을 유지하자.

자료는 이곳에 있는 동안 충분히 모을 수 있다.

그전에….

‘지금 상태로는 파악이 어렵긴 한데. 한번 해 볼까.’

나는 손가락으로 소파를 쓸었다.

몸에서 나오는 마력도 컨트롤이 안 되는 상태라 읽어 내기 어렵긴 했지만, 딱히 느껴지는 마력은 없었다. 내 몸에도 내 마력 외에 다른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공기는 좀 애매하네.’

마력이 섞이긴 했는데, 플레로마가 썼던 것처럼 비트리올 외의 모든 마력을 막는 그런 종류의 마법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이 업소에서 영업을 위해 섞어 놓은 마력 아닐까 싶다.

‘음.’

좋아.

결론적으로 마법은 쓸 수 있다, 이거지.

이대로 재시도를 쓰지 않고 이놈들의 짓을 신고할까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안 된다. 재시도는 어차피 써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나만 피해를 당하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친구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줄 필요는 없지.

그리고 니콜라우스는 여관에서 바로 학교로 워프했다.

기숙사에 마법을 건 걸 보면 놈들의 타깃은 니콜라우스가 아니라 나인 듯하지만, 니콜라우스가 마차에서 내린 시간과 워프된 시간이 가까우므로 시간을 돌려야 한다.

삐이익―

그때, 귓가의 아티팩트에서 알림음이 들려왔다. 누군가 내게 연락을 보내고 있다.

‘음, 이걸 안 뗐어? 허술하긴.’

구인류가 스텔스 걸려 있는 아티팩트까지 어떻게 파악하겠냐마는, 이런 허술함은 고맙다.

어쨌거나 재시도를 쓰기 전까지, 이놈들이 뭘 원해서 나를 여기로 데려왔는지 알아봐야겠지.

있는 대로 길게 버텨서 증거를 얻는 게 좋을 것이다.

“…왜.”

[…뭐야, 벌써 깬 거야? 어떻게…?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약 가져와.]

소리가 전화하듯이 멀리서 들리는 느낌이지만 이제 말소리는 끊기지 않고 들린다.

나는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왜 여기로 데려온 거지?”

[빨리, X발! 느려 빠져 가지고….]

관리자가 고함치자 눈치 보던 10대 구인류가 벌떡 일어나 방 끝의 서랍을 뒤적거렸다.

‘그렇게 중요한 거면 본인이 챙겨 놓을 것이지 중학생한테 별….’

나는 울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관리자를 노려봤다.

그 구인류 관리자가 약병을 빼앗아, 소파에 굴러다니던 주사기를 푹 꽂았다.

내 동향을 살피는 놈의 눈에 슬슬 두려움이 스미기 시작했다. 내가 노려봐서 그런 건 아니다. 내게 약효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잔뜩 떨리는 손을 한번 내려다보고, 손가락을 튕겼다.

연분홍색 마력이 공기에 훅 퍼지더니 금세 투명해졌다. 이걸로 소리는 막혔다.

관리자는 그걸 보지 못했는지 아이에게 주사기를 던졌다.

[야! 니가 해.]

[…! 네, 네?]

[니가 좀. 어? 시간 좀 벌라고. X발 안 죽어. 여기 그냥 방에 약 뿌리라고 말하고 올 테니까…!]

나는 그의 위치를 계산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눈앞에 새빨간 빛이 터지는 것이 보였다.

콰아아앙―! 쨍그랑!

[아아악!]

“안 죽으면 네가 하지 왜?”

[끄, 어억….]

숨이 막히는지 벽을 퍽퍽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몸을 세우려 노력하며 한 손으로 눈을 눌렀다.

약효 떨어진 게 이 정도라니, 이 약물 효과도 참 대단하다. 평소와 달리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효과가 심상치가 않은데…. 외부에서 공급받은 건가, 자체 제작 약물인가.’

외부라면 하나 걸리는 곳이 있지.

[으아아아악!]

[허, 허억…!]

경악 어린 소리를 듣고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던지는 중에 장식물에 머리를 부딪혔는지 피가 벽에 흐르는 게 보였다.

마력 조절에 실패했다.

이건 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비명 탓에 더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중얼거렸다.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

쿠웅―!

다행히 이제 10대 구인류는 잠에 들었다.

바닥에 쓰러진 것 같은데, 받아 줄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 그래도 시간을 돌리면 뇌진탕이 왔더라도 사라질 테다.

나는 바닥과 다리에 마력을 박아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너편에 있던 관리자에게 손짓하자 이미 의식을 잃은 그의 몸이 쉽게 끌려왔다.

나는 그의 셔츠 깃을 잡고 테이블에 내던졌다.

콰앙! 빠악―!

“일어나. 넌 자면 안 되지.”

나는 그의 머리를 주먹으로 갈기며 신력을 불어넣었다.

[어어억…. 컥.]

내 것이 아닌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바닥에 침을 뱉고 조용히 말했다.

“뭘 믿고 이렇게 허술하게 준비했지? 분명 이게 끝이 아닐 텐데.”

[허, 억… 저도 그냥 시키는 대로…!]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바로 세뇌 마법을 쓸까.

실은 그냥 맨정신으로 몰아붙여서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고 싶은데….

‘시간 아깝지.’

테이블에 고인 핏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깨진 머리에서 너무 많은 피가 흐르고 있다.

더 몰아붙이려 해도 팰 곳이 없을 듯하다.

어차피 나는 하나만 알면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나는 그의 머리를 테이블에 누른 채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그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단순히 수사원 협박을 위해서 나를 데려왔다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아니면, 내가 너희를 너무 고평가했나?”

놈은 결백하다는 걸 드러내고 싶은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테고. 너희 뒤에 있는 것들은 적어도 안할트와 동급, 그 이상일 거란 말이지.”

그리고 이제 와서는 엘리아스의 가설을 뒷받침해 줄 증거가 하나 생겼다.

엘리아스의 가설대로 프림로즈 패스가 아델베르트와 엘리아스의 방에 손을 쓴 게 맞다면, 놈들의 뒤에는 황가까지 건드릴 수 있는 권력자가 있다는 말이다.

“이 다음에 날 어디로 보낼 건지, 아니면 누가 올 건지는 너도 알겠지.”

나도 슬슬 감이 잡힌다.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아 올리며 물었다.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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