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66)
[…….]
놈은 말이 없었다.
“인내심을 시험하게 만드네.”
정신조작마법의 한계라는 것을 안다.
통념과 달리, 의식을 싹 빼는 것보다는 반쯤 남겨 두는 게 대답을 듣기에는 더 효과적이다.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니 그럴 수 없었지만.
아는데….
‘자꾸 본능대로 움직이게 되네.’
주먹이 운다는 말이다.
약발이겠지. 어쨌거나 여기서 머리가 더 깨지면 죽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질문을 바꾸자. 어차피 나도 이제 누굴 만나게 될지 확신했으니. 그러면, 네가 날 여기로 데려온 사람인가?”
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면 이 업장 안에, 제국2교육원에 손을 쓴 놈이 있나? 모르면 고개 저어.”
놈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고 인내심을 챙기려 노력했다.
‘아, 모를 수도 있지.’
나는 잠깐 심호흡했다.
모를 수 없다. 왜 뭣도 모르는 새끼를 데려다 놨어?
뭐, 그리 오래 끌 것도 없다.
알아보면 되니까.
“너 여기서 뭐 하는 놈이야. 돈 만져, 안 만져.”
놈은 이 표현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그의 머리를 테이블에 한 번 더 내리치며 물었다. 고여 있던 피가 바닥에 튀는 소리가 증폭되어 들려왔다.
“여기 업장 돈 관리할 권한이 있냐고.”
[어… 어어….]
놈이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실권 없는 양아치라는 것은 잘 알았다. 그렇다면 내가 알아봐야 할 것을 정리해 볼까.
나는 머리를 붙잡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선 누가 제국2교육원에 마법을 설치했는지는 알아낼 수 없어. 그렇다면 상급자를 찾아가야 하는데….’
나는 놈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목에서 공기가 막혔다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생존 본능은 있는지 그가 나름대로 중심을 잡아 서기 시작했다.
“지금 이 건물에 있는 놈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 앞으로 안내해.”
[…….]
“널 해고할 수 있는 놈 앞으로 가라고.”
그제야 놈의 다리가 천천히 움직였다.
이 새끼는 좀 멍청한게 맞다. 아니면 눈치가 없든가.
뇌가 온통 약에 절어서 사고가 느리게 흐르는 나보다도 못하다.
‘흠, 사진은….’
어차피 시간 돌릴 건데, 뭐.
나는 아티팩트를 발로 짓이기고 그대로 앞으로 나가 문을 찼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새파란 마력이 눈앞에 닥쳐왔다.
쾅! 콰앙―!
위쪽 경첩이 떨어져 나무로 된 문이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빠르네.’
차음 마법까지 걸었는데 알아채다니.
문이 열리면 그걸 사고가 났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나 보지.
[가, 가만히 있어!]
누군가 양손으로 완드를 잡고 버럭 소리쳤다.
완전히 오합지졸이라는 생각을 뒤로하고, 나는 감기는 눈에 힘을 주고 그의 행색을 살폈다.
‘신인류가 가드로 있어?’
아니면 마법 쓰는 구인류인가?
어쨌거나, 안타깝게 됐다. 본인도 본인 하나로 나를 막을 수 없다고 여기는지, 완드를 든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나는 가드의 마법을 맞아 거의 시체가 된 관리자를 앞으로 떠밀었다.
“안내해.”
콰앙―!
[커헉…!]
나는 마법사를 벽에 던져 기절시키고 계속 걸어갔다.
소란에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기겁하며 벽에 붙어 섰다.
방금 던진 마법사를 빼면 지금까지 보이는 사람은 전부 구인류 여자아이들뿐이다.
‘수사 탓에 감시 인력을 최소화한 건가.’
나는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합지졸인 것도 이해가 된다.
죽어도 될 놈만 여기에 관리자로 배치했겠지. 이마저도 수사가 재개되었으니 다시 빠질 테고.
시간이 썩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날 데려와야 했던 진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아까 처맞은 탓인지 이 관리자는 걸음이 너무 느리다. 거의 좀비 수준이었다.
“이봐. 네 상사 사무실이 어딘지 그냥 말로 알려 줘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관리자의 목에 완드를 겨눈 순간, 옆에서 누가 소리쳤다.
[5층 엘리베이터 옆에!]
[야…!]
“…….”
나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카 또래로 보이는 구인류가 눈을 미친 듯이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한 걸 조금 후회하는 듯해 보였으나, 어디까지나 두려워서 그런 듯했다.
역시 의식을 싹 다 날린 인간보다 의식 있는 인간이 더 도움이 된다.
‘다음에 만나는 놈은 의식을 반만 날려야겠다.’
그럴 경우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게 되지만, 내가 장치만 잘 해 둔다면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
나는 그에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고 입을 열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나는 그들이 넘어지기 전에 손가락을 튕겨 마법을 풀었다.
이제 저 사람이 내게 무언가 알려 주었다는 걸 기억하는 인간은 이 자리에 없다.
그 구인류마저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관리자를 떠밀어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철로 된 방화문을 통과할 때마다 점점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제 나무로 된 바닥도 벽도 없었다.
나는 방화문을 네 개째 열고, 이제 더는 나아갈 길 없이 벽이 그 자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왼쪽에 전형적인 쇠창살 승강기 케이지가 보였다. 나는 그 안에 고개를 들이밀고 위를 올려다봤다.
‘흐음…’
우선 퇴로를 막아야지.
저 멀리, 구리색 바닥이 보인다.
저 높이면 5층쯤 되겠지.
나는 창살을 손으로 잡고 마력을 밀어붙였다.
콰앙― 깡!
승강기 바닥이 찢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며 한 번 더 마력을 쏘았다.
쾅―! 끼익―
드르르륵―
이내 승강기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했다.
콰아앙―!!
[…!]
얼마나 소리가 컸는지 내 앞에 있는 시체마저 몸을 움찔거렸다.
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에 감사하며 그를 이끌고 계단으로 향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중에도 공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
그리고, 나는 3층에서 멈춰 섰다.
내가 손을 위로 든 순간, 위쪽 난간 사이에서 시커먼 물체가 덜컥 흔들렸다.
콰아앙―!
바늘 비슷한 것이 장막 위를 뒹굴다 튕겨 나갔다.
위쪽에서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한테 마취총은 너무하지 않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달음에 위층으로 올라갔다.
‘네 명.’
주춤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린 듯한 조폭처럼 금목걸이부터 온갖 장신구를 두르고 있는 인간이 상급자일 것은 뻔했다. 그 주위에 수수한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이 당황한 얼굴로 내게 완드를 겨누었다.
콰아앙! 드드드득― 쾅!
나는 마법이 그칠 때까지 장막을 유지하다, 장막을 그들에게 던졌다.
[어, 어!]
[아악!]
그들에게 더 시간을 쓰는 것은 사치다. 나는 곧장 상급자 구인류의 멱살을 잡았다.
[자, 잠깐. 5분만 더 버티면 되는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
순간 그가 잠에 들었다.
내가 오기 전부터 공기에 손을 써 뒀는지, 이미 그걸 제어하는 건 늦은 모양이다.
코안으로 특이한 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 이곳에서 처음 마셨던 공기와 비슷한 냄새인데 아까와는 다른 느낌으로 와닿기 시작했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를 수가 없었다.
‘중독성 장난 아니네.’
아까는 처음 겪는 것이라 고통만 인지되었겠지. 신인류 신체는 쓸데없이 적응이 빨랐다.
‘뭐, 이 정도는 그렇다 치자.’
이 정도면 플레로마보다는 하품 날 정도로 쉬운 상대였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나는 이놈을 때려죽이러 온 게 아니라 질문 몇 가지만 하러 왔다. 그 몇 가지 질문이 가장 결정적인 성과가 될 것이긴 하지만.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에 앉아, 멱살을 잡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신력을 불어넣자, 그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제 멱살을 잡은 사람이 누군지 깨달은 상급자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5분이라고 했지.”
[…….]
“앞으로 네 지원 세력이 오기까지 다섯 시간은 기다려야 해. 알고 있지? 지금 당장 그들을 부를 수도 없어.”
[…….]
헛소리가 분명한 말에도, 놈의 눈에 두려움이 차올랐다.
세뇌가 잘 먹힌 모양이다.
“나랑 진실게임이나 해 보자고. 너는 어떻게 내 방에 워프 마법이 걸렸는지 알고 있나?”
[모, 모, 모릅니다. 그, 그건 제 소관이 아니라….]
시간 없다.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좋아. 그러면, 너희 측에서 먼저 나를 잡아가겠다고 결정한 건가? 너희의 지원 세력이 먼저 요청한 게 아니고?”
[그, 글쎄요…. 전 아는 게 애매해서….]
그가 눈을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에서 마력을 이끌어 냈다. 붉은 마력이 주위로 튀었다.
“다섯 시간 동안 뭘 겪고 싶길래? 배짱이 좋네.”
[아아악! 말할게요!]
“최대한 빨리 말하지.”
그가 숨을 고르고 잽싸게 말했다.
[그,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는 한 달 전부터 그쪽에서 먼저 꺼낸 걸로… 압니다. 우리는 그냥 니콜라우스 경이 황궁에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엘리아스 공작의 주변인 중에 마침 그쪽에서 원하던 사람이 있길래….]
횡설수설거리지만 결론은 알겠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지. 이번 일을 정확히 누가 명령했지?”
[아마도 회장님께서…]
“회장? 이름은?”
[저희도 모릅니다.]
내가 눈에서 힘을 풀자 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정말로 모릅니다. 정말이에요…! 이 거리에서 일한 지 오래되었지만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
우선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한 가지 짚이는 게 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약 탓에 계속 날아가려는 정신을 붙잡고, 이번에는 완전히 그의 정신에서 의식을 뺐다.
“이봐. 너는 통보를 받아서 일을 진행하고 있었지. 이번에 그 통보를 준 사람과 직접 만나서 지시를 받았나?”
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연락은 서면으로 주고받았나?”
“…….”
“아니면 아티팩트로 전달?”
“…….”
“그것도 아니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뭐든, 매개 하나 두고 전달 받았나?”
놈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짚이는 건 딱 하나였다.
“아…. 설마?”
나는 비식비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마침, 시계가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추론한 바를 묻기 위해 그의 멱살을 끌어당겨, 귓속말했다.
“…….”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정보 고맙다.”
이제는 준비해야 한다.
다 엎을 수 있어도 기다려야 하고, 성질이 뻗쳐도 참아야 한다.
시간을 돌릴 수 있으니 뭐든 참을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언제 이렇게 값진 정보를 얻을 기회가 또 오겠는가?
누가, 뭘 원해서 날 여기까지 불렀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
투둑―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군가 워프한 게 분명했다.
[이런. 잘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유혹의 바다에서 안온함을 취할 수 있으리라 희망하는 자여, 축복받았도다!
성서가 아니다.
오랜만에 들려온 파우스트의 구절에,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빠지면 섭하지.
아스카니엔도 호엔촐레른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집단.
그러면서도 정계를 완전히 장악한 것은 아니라서 압수수색과 수사를 피할 수는 없는 집단.
완벽하게 하나의 집단을 가리키고 있었다.
프림로즈 패스의 지원 세력은 플레로마다.
나는 그들이 건 마법에 눈이 감기는 것을 느끼며 쓰러졌다.
* * *
‘…더.’
[제대로 중독됐나 보군.]
잠깐, 뭘 더?
누군가 내 눈꺼풀을 뒤집고 있었다.
[이거 프림로즈 패스에 공급할 때는 효과 좀 떨어뜨려야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신인류가, 그것도 아스카니엔 사람이 이렇게까지 정신을 못 차릴 줄은….]
[아니. 이대로 해야 하네. 중독성 있는 것들은 처음부터 세게 퍼붓는 게 이득이야.]
플레로마다.
로마 가톨릭의 주교복을 그대로 입고 있지만, 플레로마의 표식이 목걸이로 걸려 있었다.
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중얼거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일세. 동방에 아편 팔던 것들도 선택을 잘못했어. 그쪽도 마법사 있다니까 하여간 영국 놈들은 콧대만 높아 가지고….]
[결국 철수했으니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자질은 좀 어떻습니까?]
[자네도 알 텐데?]
팔에 무언가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피를 뽑은 듯해, 나는 그 틈을 타 정신을 깨웠다. 피 냄새가 조금이나마 정신을 맑게 했다.
이제야 아까 했어야 할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동공반사 일어났을 텐데?’
그걸 못 봤다니, 이번에도 겉보기에는 정신을 차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 보다.
그렇다면 환영이지. 관찰할 시간이 있을 테니까.
플레로마가 제 손가락에 피를 살짝 흘려 보더니, 중얼거렸다.
[이건 무조건이야. 무조건 우리 교구가 가져가야 해.]
“…….”
아까 주교복을 입고 있었지.
플레로마 주교를 다시 만날 줄이야.
다만 이들의 얼굴을 보니 오스나브뤼크 교구 사람이 아니다.
다른 교구, 그리고 교구장 주교가 아니라 부주교나 보좌주교일 가능성이 크겠지. 이런 누추한 곳까지 직접 걸음한 걸 보면 그렇다.
그보다….
‘가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