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68)
“…….”
뭐?
잠시 뇌 가동에 버퍼링이 걸렸다.
‘…들켰나?’
장갑 안쪽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말아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 새끼 설마… 재시도를 간파할 수 있다거나?
아니, 이미 사라진 시간이다. 내 머릿속에만 남은 시간을 그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속이 말이 아닌데.”
“…….”
말투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내가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겠지만.
몸은 분명 알아서 치유가 됐을 테다.
재시도로 인한 여파가 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외의 것을 레오가 알 수는 없다.
“아까 말한 대로 경찰국 정화하고 왔어. 하루만에 신력을 너무 많이 썼으니 당연하지.”
“글쎄.”
“네가 왜 글쎄라고 하는 거냐? 경찰국에 갔다 왔고, 내 권능으로 기숙사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뿐이야. 경찰국 다녀와서 뭘 할 시간이 없었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어.”
레오는 내 말에 대꾸하는 대신 왼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뒤로 뺐다.
“…….”
레오가 허공에 남은 제 손을 내려다봤다.
좋지 않은 수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정신까지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니….’
나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시간을 돌림으로써 전부 무효가 됐다는 걸 알지만, 주사부터 세례까지 전부 이쪽 팔에 이루어졌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 탓에 무의식적으로 방어하게 됐다.
이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놈의 반응만 보면 내가 변명한 것 같지만, 이번 시간 선에서는 진실이다. 정말 경찰국만 다녀왔으니까.
그리고,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게 바로 미친놈 아니고 뭔가? 아무리 마법이 있어도 인간은 시간까지 초월하지는 못했다. 재시도는 당장 실험실 끌려가야 할 능력에 불과하다.
‘…뭐라도 말이라도 좀 해라.’
안 그래도 신경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란 말이다.
레오는 한참 내 표정을 뜯어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래.”
“…….”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일단은.”
나는 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레오의 얼굴에는 아까와 달리 아무 표정도 없었다.
분명 뭔가를 알고 있다. 알지만 내가 말하지 않는 것처럼 그도 말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재시도는 알릴 수 없다. 시간을 돌리는 건 마법의 영역이 아니니까. 나만의 확신이 아니라 학계에 공인된 바다.
그래서 처음으로 재시도 능력이 주어진 걸 확인했던 때도 마냥 기뻐하지 못했던 거고.
문제는 내가 방에 걸린 워프 마법을 학교에 신고한다면, 이러나저러나 그는 내가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의심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기분이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신고를 안 하는 어리석은 경로를 택할 수는 없고, 이 일에는 레오가 적임자다. 그리고 레오 대신 나르케나 엘리아스에게 같은 주문을 해도, 결과적으로는 레오도 전부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우회해도 결과가 같다면 의심을 사더라도 레오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레오가 팔짱을 끼고 물었다.
“내가 뭘 하면 돼?”
“방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고 문 앞에만 서 있다가 교수님 부르러 가면 돼. 최초 발견자가 나인 만큼, 교수님이 상황 파악을 하시면 나도 그쪽으로 갈 테니까 우선은….”
먼저 레오를 보내고, 레오가 교수를 부르는 동안 나는 나르케와 엘리아스가 일어나 있는지, 일어나 있다면 절대 내 방으로 워프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러 가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뒤돈 순간 레오가 내 로브 후드를 휙 잡아당겼다.
“…또 뭐?”
“루카스. 교수님 부르라며.”
“그래.”
“니콜라우스라는 걸 광고하러 갈 셈이야?”
나는 그제야 내 옷차림을 확인했다.
황제를 만나기 위해 입었던 예복 차림이었다.
‘이건 뭐, 하도 뭐가 많이 몰아닥치니 겉모습 의식할 겨를도 없네.’
“많이 피곤한가 보네. 빨리 갈아 입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머리를 짚었다.
교복이 여관에 있다. 가방에 넣어서 다니면 소지품 검사를 하는 황궁에서는 발각될 테니 가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물론 당연히 내 방에도 있긴 한데….
지금 갈 수가 없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지 레오가 헛웃음쳤다.
“…여관 갔다 와. 너 오면 그때 교수님 불러올 테니까 천천히 해.”
“아니. 너 교복 몇 벌이냐?”
“다섯 벌. 왜?”
교복 다섯 벌 입는 새끼 처음 본다.
역시 이게 왕족?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나만 빌리자.”
“뭐, 그래.”
다행히 레오는 이런 쪽에 결벽은 없는 듯했다.
사실 다녀오는 게 더 낫긴 하다.
하지만, 이제 더는 워프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방금 밟은 건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다.
여기까지 온 것도 빨리 현장을 보존하지 않으면 시간을 또 돌려야 해서 그런 거지, 그런 문제가 없었다면 걸어왔을 것이다.
레오가 내게 교복을 떠안겼다.
“여기. 여관까지 오고 갈 마력도 안 남은 거야?”
“그렇게 됐다.”
나는 간단히 대답하고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는 동안 레오는 내 말을 반복했다.
“문 열지 말라고 했지. 문 앞에서 마력 감지만 하면 되는 건가? 그리고 바로 교수님 부르면 되는 거고?”
“그래.”
“대체 뭐길래?”
“누가 내 방에 마법을 설치한 것 같다.”
“뭐?”
“권능으로 알아낸 거야. 우선 다녀와 줘.”
나는 그대로 나가 복도 끝에 있는 엘리아스의 방 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이 잠보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문틈으로 마력을 불어넣고 한참 기다렸다.
[으어….]
됐다.
자고 있으니 문제 없다.
나는 구름다리를 건너 나르케의 방이 있는 건물로 넘어갔다.
나르케의 방문도 두드려 봤지만,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루카스!”
파이가 내 어깨 위로 워프했다.
역시 동물이라 그런지 내가 온 걸 바로 안다.
“나르케는 자?”
“응!”
“그래, 그러면 됐어.”
“뭐가?”
[교수님. 여깁니다.]
[이곳에….]
그때, 이 건물과 이어진 반대편 건물에서 사람 여럿의 발소리가 났다.
동시에 눈앞의 문이 조용히, 그리고 잽싸게 열렸다. 손 하나가 내 멱살을 잡고 안으로 끌어당겼다.
“…?!”
잠옷 차림의 나르케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루카스! 놀랐잖아~”
“지금 멱살 잡은 사람이 누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치?”
“…….”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나르케는 졸음기가 가득한 눈을 꿈뻑거렸다.
“나르케. 어디까지 알아?”
“글쎄….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하나는 알겠어.”
나는 미소지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다른 흔적은 없고?”
“지금은 모르겠네~? 왜?”
“아냐. 네 말이 맞아. 네 도움이 필요해.”
“아! 내가 맞춰 볼게. 니콜라우스 탓에 공백이 생겼으니 말을 맞춰 둬야겠지. 그렇지?”
나르케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그저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봤다.
이렇게 간단히 말할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는 내 생각 중에서 자신이 알면 곤란할 정보, 혹은 결정적인 정보를 빼고 모든 걸 말해 준다.
왜지?
정말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배려한 것인가.
방금 일을 겪고 나니 아무것도 그냥 넘길 수 없게 됐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뭘 했는지 알 수 있을까?”
“흠~ 아무것도. 너는 어차피 저녁을 혼자 방에서 먹으니까 6시에서 7시까지 사라진 건 아무도 모르겠지. 7시부터는 확실히 말을 맞춰야 하는데, 7시부터 8시까지 나는 팀 친구들과 훈련했고, 너는 아파서 쉰다고 말했지.”
나르케가 눈을 굴리며 기억을 끄집어내려 애썼다.
“그리고… 8시부터 11시까지는 자습했어. 11시부터는 알다시피 취침 시간이니까 잤고.”
“그래, 그게 전부구나. 나르케, 7시부터 8시까지는 네 방에서 쉬었다고 해도 돼? 파이 보러 갔다고 하자.”
나르케가 동물을 키운다는 건 많이들 안다.
그게 멋대로 워프하고 말한다는 건 모르지만.
“좋아! 그 다음에는 8시부터 루카스 네가 나랑 전략회의 했다고 하면 되겠다. 너나 나나 리더격인 건 마찬가지니까 3차 진출하는 애들은 다 납득할 거야. 그렇지?”
“그래.”
“자정까지는 좀 기니까 그 뒤로는 전략회의하다가 보드게임으로 빠졌다고 하지 뭐~”
나르케가 침대 밑에서 상자를 꺼내 두드렸다.
그래, 대충 줄기는 생겼다. 그가 훈련 이후 다른 학생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가 그냥 웃기만 하자 나르케가 따라 웃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교복은 어쩌고 레오 걸 입었어? 정 필요하면 내 거 입지~ 지금이라도 바꿔 입을래?”
확신하는 걸 보니 통찰 썼나 보네.
키 차이가 많이 나는 레오 대신 나르케와는 크게 차이나지 않으니 이 편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긴 하다.
그런데 어쨌거나 니콜라우스 예복 차림으로 복도를 활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 교복이 필요하긴 했다.
어쨌든, 방금 이 말은 좋은 단서였다.
레오 교복을 빌린 것까지 파악했는데, 그는 내가 그래야만 했던 이유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내가 나르케나 엘리아스를 깨우러 가지 못했던 건 그들 방으로 워프해서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필요하면 내 거 입지’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즉, 나르케는 재시도 이전의 기억을 읽지 못했다.
“아니. 얼추 사이즈 맞아. 그리고 네 것까지 입으면 세탁 두 번 해야 하잖아.”
“하하, 괜찮은데~ 그보다 레오도 밝은 색 재킷 있구나.”
학생회는 일반 학생과 다른 재킷을 입는다.
레오라고 1학년 1학기 첫날부터 학생회였던 건 아니니 있기야 하지.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르케. 정말 내가 뭘 하다 왔는지 아무것도 안 읽혀?”
“…….”
나르케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 웃으며 물었다.
“그래. 경찰국만 다녀온 게 아니야? 그렇게 물어보면 난 궁금해지는데~ 머리 터질 때까지 능력을 써 보고 싶어진다고.”
“쓰면 알 수는 있고?”
“하하하, 언젠가는 될지도? 진짜 어디 다녀왔는데?”
“아니, 됐다. 경찰국 다녀온 게 맞아. 그냥, 혹시나 해서.”
결과적으로 모른다 이거지.
이게 정상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나는 이제 가 볼게.”
“루카스, 잠깐만.”
나르케가 내 재킷 끝을 잡아당겼다.
“왜?”
물을 필요도 없었다.
나르케가 바로 제 옷장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그와 한참 실랑이하다 교복을 바꿔 입고서야 나르케의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루카스! 어차피 하루도 안 입을 건데 그냥 세탁하지 말고 줘~”
그래, 이쪽이 훨씬 안전하긴 하다.
적어도 어제까지 정사이즈였던 교복이 갑자기 왜 거지핏이 됐냐는 의문은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남의 교복 사이즈까지 기억하고 있겠냐마는.
“하하하, 너무 비꼬는 거 아냐~? 그 정도는 아닌데. 아무튼 최대한 의심 사지 말아야지!”
“그래, 고맙다.”
고마운 건 진심이다. 세탁 맡기기 귀찮을 뿐 통찰 능력 있는 놈 말 들어서 손해 볼 건 없지.
나르케가 내 어깨의 파이를 보며 말했다.
“파이, 너도 들어가야지~”
내가 어깨에 들러붙은 파이를 떼어 내자, 파이가 입을 다시다 방 안으로 워프했다.
내가 뒤돌려던 순간, 나르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루카스.”
“왜?”
“조심해.”
“…….”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건너편 건물로 이동했다.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건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다리 너머, 새하얀 대리석 복도에 방문 하나가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표정을 관리하고 있는 레오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교수들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 반 교수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말했다.
“학생. 무사하군요.”
* * *
‘무사하지.’
재시도는 최고의 능력이다.
이들에게 알려질 경우 내 빙의 사실에 이어 두 번째로 내 발목을 잡는 능력이 되겠지만.
‘물론, 지금은 재시도가 아니라 다른 것이 내 발목을 잡겠지.’
나는 삭막한 분위기의 회의실을 둘러봤다.
자정이 넘었음에도 긴급 회의가 열렸다.
어차피 마법학과 교수 중 누구도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어제 오후부터 황제에게 아델베르트의 폭주 미수 사건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 마당에 또다시 교내에 범죄가 일어났다.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제국2교육원 사상 제일 어두운 밤이 될 것이다.
제국에서 제일 안전해야 할 학교에 범죄가 세 건이나 연달아 터졌으니까.
그리고 나는 여기서 이야기가 어떻게 흐를지 알고 있다.
마법학과 학과장 교수가 금세 어두침침해진 얼굴로 레오에게 물었다.
“레오나르드 학생은 방에 위험 마법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문 앞에서 마력이 느껴졌습니다.”
레오가 표정 없이 말했다.
학과장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더군요. 문을 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
“레오나르드 학생은 이걸 느꼈다는 말이지요. 학생은 굉장히 기민한 감각을 지녔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느껴집니다만, 교수 넷 중 누구도 그 마력의 여파를 느끼지 못한 점은 조금 놀랍군요.”
저 교수는 지금 문제가 연달아 터져서 미쳤는지 레오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렇다고 레오가 용의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 듯했다. 애초에 플레로마와는 정반대에 있는 놈이니, 용의 선상에 올리는 건 무리지.
단지 범인이 누군지 알지 않느냐고 어떻게든 답변을 쥐어짜 내고 싶은 심정인 듯하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는 엘리아스가 폭주할 뻔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 틈이 날 때마다 우리 학과 학생들의 기숙사를 점검하려고 했습니다. 그 첫날부터 이런 일이 터졌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요, 몰랐겠지요. 학생은 범행이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까? 루카스 학생의 방 앞에 누군가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냐는 말입니다.”
역시나 교수는 내 추측대로 말했다.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루카스 학생.”
학과장은 정말 성질이 급해진 모양이다.
그가 레오의 말에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나를 불렀다.
“학생은 몸이 좋지 않아서 훈련을 빼고 쉬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누군가 방에 접근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요. 자정쯤에 학생은 방에 없었지요. 몇 시부터 방 밖으로 나가 있었습니까?”
“7시부터 나가 있었습니다.”
“어디로?”
“나르케의 방으로요. 그때부터 자정까지 있었습니다.”
그때, 3학년 마법학과 1분반 교수가 손을 내밀었다.
잘 대화하던 중 말을 끊는 행위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가 당연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저는 호엔촐레른 가문 학생들의 폭주 미수 사건 범인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겠지만 우선은 가능성을 넓게 잡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범죄를 저지르려면 외부에는 극비인 우리 학교 기숙사의 워프 좌표를 알아야 하고, 그중에서도 세부 좌표를 알아야 하지요. 어쨌거나 하나의 통로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그가 교수진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델베르트 학생에 대한 혐의 조사에서, 우리는 교수진 중 그 누구도 용의자로 지목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왜입니까?”
교수진 사이에서 얼마 전부터 자체 수사가 이뤄졌으나 용의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교수 중에는 범인이 없다.
둘째, 교수진의 수사가 미흡했다. 눈감아 주거나 일부러 조사를 거의 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둘째의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황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가정할 경우, 이 경우에는 신력을 제외한 모든 수사 방법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친황제파 정치인만 모인 이곳에서 수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리는 없으니, 결국 이들의 결론은….
“우리는 교내에서 플레로마와 접촉할 수 있는 대상을 ‘성인 마법사’로 한정 지어 놓았습니다. 그게 황제 폐하께서 노하신 원인입니다. 결국 지난 사흘간 수사에 아무런 진척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첫째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뒤로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뻔한 일이다.
교수들이 슬슬 그의 뜻을 파악해, 눈썹을 구겼다. 3학년 마법학과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범인은 교수가 아니라 학생일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좋은 선배와 친구로 위장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학생 말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를 최초 목격자로 위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피해자로 위장하기로 결심한 학생이 범인일지도 모르지요.”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그의 눈을 바라봤다. 이렇게 될 줄은 한참 전부터 알았지만 역시 직접 겪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나는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막아야 했다.
3학년 마법학과 교수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 그렇습니까, 루카스 아스카니엔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