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72화 (172/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72)

“설마.”

레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쪽을 본 나 역시 순간 머리가 굳었다.

1초가 억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서야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내가 본 것이 현실인지 확인해야 했다.

‘…질문이.’

부정확했던 건가? 내가 뭘 잘못 말한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말도 안 된다.

왜 그가?

나는 다시 주위를 미친 듯이 훑어 보다, 마법학과 예복을 입은 교수들 사이에서 시선을 멈췄다. 그 중 한 명의 고개가 천천히 기우뚱거리고 있었다.

또 반응을 보이는 자가 있는지 다시 살펴도 내 시선은 몇 번이고 그곳에서 멈췄다.

이제 막 운영팀 직원을 처리하고 이곳으로 돌아온 황실 마법사까지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머리가 기울더니 등받이에 닿아 멈췄다.

툭―

“…….”

우리 반 교수님이다.

단 한 번도 예상해 본 적 없던 사람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입을 뗐다.

“…어제저녁부터 자정 전까지, ‘233.3:808.3:000.1’ 좌표를 듣거나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

또다시 우리 반 교수님 홀로 내 말에 반응해 고개를 떨궜다.

끄덕였다기보다는 등받이에 기댔던 머리를 숙인 것에 가까웠지만, 모두 반응이 없는 상황에서 혼자 눈에 띄게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레오의 얼굴에는 이미 핏기 하나 없었다.

“…….”

+6짜리 호감도만 봐도 그렇지만, 그는 아마 우리 학교 교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를 편견 없이 봐주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내가 아델베르트와 엘리아스를 폭주시킬 리 없다고, 내가 플레로마일 리 없다고 믿었다.

내가 용의자 색출과 트라우트 교수의 기행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그는 나 대신 분노해 빈터 교수를 교원징계위에 넘기려 했다.

이것이 전부 범행을 가리기 위한 연막인가?

‘아니. 애매해.’

계시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나는 이미 안다.

그 구인류는 머리로 직접 명령을 받았냐는 질문에, 그리고 그 명령이 몸을 조종할 수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이 잘못 알았을 수도 있으니 거기까지는 오류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같은 질문을 세 번 함으로써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검증했다.

그가 조종당한 게 아니라면 ‘마법학과 기숙사 1동’, ‘루카스 아스카니엔 학생의 방’에 다녀갔다는 걸 알고 있어야지. 단순 좌표 숫자에만 반응할 이유가 없다.

‘젠장….’

황족 살해 미수죄부터 시작해 제국2교육원의 안전을 위협한 점, 그리고 나를 프림로즈 패스에 넘겨주려 했던 그 모든 일에 대해서 담임 교수 혼자 처벌받게 될 것이다.

진범은 교수의 뒤에 숨고, 교수는 영문도 모른 채 처형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루카스 선배님의 담임 교수님께서 제자 방에 들어가서 워프 마법을 설치했다는 말이군요. 그렇다면 저 교수님이 제 방까지 오염시킨 거겠지요?”

아델베르트가 아무 감정 없이 분석하듯 말하고는, 우리 누구도 대답하지 않자 어리둥절한 눈으로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그걸 알아보아야 한다.

우선 그가 목이 썰리는 걸 가만 두고 볼 수는 없는 데다, 내가 세워 둔 가설대로라면 아무리 조종당했다 해도 그가 선택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교수들 앞에 차음 마법을 걸고 레오에게 물었다.

“저하.”

“…….”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학생의 방 워프 좌표가 어떻게 됩니까?”

알지만 연극을 만들어야 했기에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레오가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교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233.3:805.2:007.1입니다.”

“아델베르트 황자 전하께서는요?”

“237.8:808.3:001.5…입니다. 설마…?”

나는 한번 손가락을 튕겨 차음 마법을 해제하고 스태프를 바닥에 내리쳤다.

신력이 다시 한번 강당에 퍼져 나갔다.

“얼마 전 ‘233.3:805.2:007.1’ 좌표를 들으셨던 분이 계십니까?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 긴 숫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머리가 멍해지니 이제 와서 쓸데없는 고민이 들었지만 프림로즈 패스에서 만났던 멍청한 양아치와 달리 이들은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허.”

아델베르트가 입을 벌린 채 눈을 크게 떴다.

마법학과 교수 전원이 반응했다.

그리고 강당 끝, 온통 붉은 예복을 입고 있는 무리 속에서 누군가 가슴께로 손을 펼쳐 들었다.

“내려도 좋습니다. 그리고 ‘237.8:808.3:001.5’ 좌표를 들으셨던 분이 계십니까?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 주십시오.”

반응은 똑같았다.

엘리아스 방 좌표를 들어 본 적 있는 이들이 아델베르트 방 좌표까지 들었다.

두 사건의 용의자 풀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이것이다.

‘이미 사건 당일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났어.’

정보를 얻기에는 오염이 많이 된 상태다.

당장 어제 일어났던 워프 사건과 달리, 폭주 미수 사건은 이미 터진 지 한참 되었다. 범행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수사 과정 등등에서 워프 좌표를 들었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질문을 해야 진범만 남길 수 있는가.’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답은 내야 했다. 나는 잠시 이마를 붙잡고 서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233.3:805.2:007.1’이 어느 학생의 방인지 아시는 분은 손을 내려 주십시오.”

원칙상 비공개인 좌표를 들은 적은 있으나, 엘리아스의 방이라는 건 모른다.

뭘 의미하겠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법학과 교수들은 이제 누구도 손을 들고 있지 않았다.

“…….”

내 눈은 손을 펼쳐 들고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향했다.

기사학부, 그 중에서도 마법검술학과 교수.

당장 어제 내게 ‘플레로마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고 다그쳤던 그 인간이 폭주 미수 사건의 범인이다.

‘…그래.’

이쪽은 예상대로다.

엘리아스는, ‘나를 정치적으로 죽이기 위해 프림로즈 패스에서 아델베르트를 공격했을 것이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나는 매번 그 의견을 보류하기만 했다.

그곳에 다녀오고 나서는 연관이 아주 없지 않다는 확신이 생겼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엘리아스를 정치적으로 보내기 위해서 아델베르트를 죽여야 했다면, 폭주를 이용하는 대신 사람을 보내 죽여도 되고, 물과 음식에 독약을 치사량까지 타도 되며, 엘리아스에게 계시를 주어도 되었을 것이다.

아니, 무조건 그래야만 한다.

왜냐?

폭주를 이용할 경우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몰릴 사람은 한평생 플레로마로 여겨진 채 살아온 루카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우스의 파트너이자 플레로마 처리반으로 받아들여지는 엘리아스가 아니라.

만약 이미지를 역이용해 타격을 키울 생각이었다면—폭주를 이용해서 엘리아스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다면, 용의자로 몰릴 만한 증거물을 만들기라도 했어야 한다.

바로 이 허술함이, 그동안 내가 엘리아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다.

그리고 아델베르트를 넘어 엘리아스에게까지 똑같은 일이 일어난 순간 확신했다.

최종 목표물이 뭐든간에 이 일은 나를 향해 칼끝을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1차 플랜이 실패해 루카스 아스카니엔이 용의 선상에서 빠져나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바로 지금이다. 내가 순순히 누명을 쓰지 않는 지금 말이다.

이야기는 인과로 이루어져 있다. 범죄 시나리오 또한 그래야 한다. 아니, 세상의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욱더 치밀한 인과로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내게 누명을 씌우려 할 수 있는가.

내 입장에서 가장 확실한 범인은 스테판 트라우트다.

제국2교육원의 안할트 공국 출신 학자, 형에게 줄을 댄 교수,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성공해야 이득을 보는 부류.

아스카니엔의 공작위 계승자가 불확실해진 지금, 형의 추종자들이 나를 반기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그들은 스테판 트라우트에게 계시를 주었을 것이다.

이것이 내 추측이었다.

“에른스트 각하, 그러니까 지금 범인이 하나가 아닙니까?”

“그렇네요.”

나는 아델베르트 쪽을 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아델베르트는 범죄자가 둘이나 되는 상황에 납득할 수 없었던 건지, 이제야 충격받은 듯 고개를 저었다.

“저와 엘리아스 선배님 방에 약을 뿌린 사람과 루카스 선배님 방에 워프 마법을 건 사람이 다르다니요? 한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짓을 둘이나….”

“아뇨. 양심 문제는 됐습니다.”

나는 흥분한 탓인지 잘못된 논리로 들어간 아델베르트에게 짧게 말했다.

조언해 줄 여력은 없다.

항상 겉으로는 평정을 잘 유지하던 레오가 드물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내 그가 황자를 제외하고 나를 둘러싸 차음 마법을 걸었다.

“경. 트라우트 교수가 폭주 미수 사건의 범인입니다.”

“그래요.”

“경은 어제 있던 사건까지 모조리 그의 짓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았습니까? 폭주 사건이 루카스 아스카니엔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는데, 역시나 그는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듯한 말을 내뱉었다.

“…….”

“그런데 왜 이번에는 론 교수님이 계시를 받았단 말입니까? 이렇게 누명이 벗겨지고 범인이 밝혀질 상황을 가정해 이중으로 타깃을 설정했다면, 오히려 이번에야말로 루카스 학생의 적인 그를 골랐어야 합니다. 이번 상황에서는 루카스 학생이 피해자가 되어야 하니까요.”

레오는 내가 답을 주리라 믿고 있는 게 분명하다.

믿고 있던 어른이 이 일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테다.

“이따가. 지금은 아닙니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어 짧게 답하고, 차음 마법을 깨뜨렸다.

그때,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황실 마법사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총 두 분이죠. 연행하겠습니다.”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교수들이 방금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목소리로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내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황실 마법사가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에른스트 각하? 방금 각하께서 추려내신 대로 범인 둘을 그대로 수사국으로 인계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나는 교수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마법을 걸기 전처럼 피곤한 기색이지만 여유로운 표정이었던 교수들이 우리의 대화에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수사국?]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황실 마법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들은 진짜 범인이 아닙니다.”

“예? 범인으로 잡아내셨잖습니까.”

“플레로마의 방식대로 계시를 통해 범죄가 이뤄진 만큼, 이들은 어디까지나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제국2교육원 학생들을 공격하려는 악의를 가진 자는 따로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 말에 황실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말을 했다.

“우선 계시라는 게 실존하는지, 진짜 받은 게 맞는지 알아내는 게 우선입니다. 저기 앉아 계신 교수님께서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가 우리 반 교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교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당혹스러운 눈을 하고서 물었다.

[아니, 저 말씀이십니까?]

“예.”

[…요하네스 론입니다. 왜 그러시죠?]

황실 마법사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트라우트가 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이 줄, 맨 앞에 앉은 교수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트라우트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스테판 트라우트입니다.]

“두 분께서는 지금 바로 수사국으로 이동해 주셔야겠습니다.”

[뭐라고요?]

[잠깐, 지금 범인을 찾은 겁니까?]

빈터 교수가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른스트 각하! 우리 제국2교육원 교원이 학생을 위협하는 행위를 했단 말씀이십니까? 조사가 잘못되었을 겁니다!]

[잠깐만요! 저는 어제 기숙사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제가 왜 학생의 방에 프림로즈 패스로 향하는 워프 마법을 걸었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루카스 학생은 제가 맡은 학생인데, 우리 반 학생에게 왜 그런 짓을…!]

우리 반 교수가 외쳤다.

트라우트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황실 마법사가 곧바로 그쪽에 차음 마법을 쳤다. 여간 예의 없는 행동이 아니었다.

“교수님께서 어느 반 담임이시든 두 분께서는 스스로 범인이심을 자백하셨으니 더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황실 마법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완드에 손을 올렸다. 상대가 마법사인 만큼 빠르게 제압해 강제로 끌고 가려는 게 분명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 반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우리 반 반장 학생의 신고를 받고서야 기숙사로 이동했습니다. 10시까지 저와 함께 있던 교수님도 이 자리에 계시다고요. 자정 전까지는 오늘 수업할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아니, 애초에 제가 뭘 위해…!]

그가 말문이 막혔는지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 나를 보았다.

[에른스트 각하, 저는 정말 제 제자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나는 참담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러실 겁니다.”

[예?]

“교수님께서는 그저 계시를 받았을 테니까요. 한 시간 전에 말씀드린 대로 말입니다.”

[…잠깐, 그러면, 설마 학생의 방에 마법을 설치한 사람이 제가 맞다는 말입니까?]

정적이 흘렀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확실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그건 교수님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

교수님은 이제 영혼이 나간 얼굴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계시’라는 것도 내가 임시로 붙인 이름인 데다 그걸 누가 주었는지, 어떻게 줄 수 있는 건지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므로 그에게 더 해 줄 말이 없었다.

황실 마법사가 나를 나무랐다.

“에른스트 각하, 수사국에서 결론내지 않은 사항을 그리 확실히 답변하시면 안 됩니다. 저자가 진짜 범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완드를 뽑아 교수에게 겨누었다.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콰앙―!

나는 그의 마법을 쳐내고 황실 마법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 입맛에 맞는 말만 듣고 가시면 안 되겠지요. 제 추론을 믿지 못하시는데, 지금까지 들으신 제 유도 방법은 믿을 만하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라?”

“…….”

그가 한참 답하지 못하기에 나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자의로 벌인 일이라면 왜 둘 중 누구도 자신이 기숙사에 발을 들였다는 걸 모릅니까?”

“스스로 기억을 지웠을 수도 있고…. 한패인 다른 범인이 그들의 기억을 지워 주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수사 기록지는 확인하셨습니까? 제국2교육원에는 신력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없는 데다, 어젯밤 사건이 있었을 시간에 외부로 나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 교수님은 당장 어젯밤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좌표에만 반응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십니까?”

“그건….”

황실 마법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주위만 둘러보았다.

그때 그가 부른 수사국 마법사들이 이곳으로 워프해 왔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수사하지 말라는 것도, 죄가 나왔는데도 처벌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일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확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왔으니 섣불리 결론짓지 말고 가능성을 열어두시라는 말입니다.”

아마 루카스 아스카니엔이 말했으면 듣는 체도 안 했겠지만, 그래도 니콜라우스 신원으로 말하니 상황이 달랐다. 황실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그를 보내 주었다.

그가 아래로 내려가 교수들에게 내려오라 지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때, 다른 마법사 하나가 아델베르트에게 인사하고는 내 앞에 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에른스트 각하. 저는 아우구스테 몰트케입니다. 수사국으로 전해진 소식은 폐하께서 바로 전달받으셨습니다. 폐하께서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기뻐하시다니요.”

레오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썩 바른말은 아니었으나 마법사는 자기 앞에서 황제를 깠다고 생각하지는 못한 듯했다.

“하하, 역시 각하께서는 겸손하시군요. 폐하께서 이후의 일정이 없다면 황궁에 방문하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함께 가시겠습니까?”

* * *

나는 황제와 거의 10분 대화하고 바로 학교로 돌아왔다.

어차피 니콜라우스 상태로 학교 병원에 돌아갈 수는 없었고, 마차가 학교 밖에 대기하고 있었기에 방문은 해야 했다.

“계시라니. 머리 하나는 잘 굴렸네.”

나르케가 침대에서 나와, 옆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병실에 나로 위장해 앉아 있던 나르케와 이제야 자리를 바꾸었다.

내가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나와 레오의 얼굴만 보고도 알아서 기억을 읽어낸 듯했다.

그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아무도 모르지?”

“그래. 앞으로도 보도는 안 할 거야.”

그나마 다행인 점이다. 세간의 관심을 받지 않고 수사할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범인을 잡든 말든 황족이 제국2교육원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알려져서는 안 됐다.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도, 아마 교수가 휴직했다고만 전해질 것이다.

레오는 아까부터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이놈도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나르케가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보통 문제가 아닌 듯한데.”

“정보가 너무 없어.”

레오가 입을 열었다.

“트라우트 교수와 우리 반 담임 교수가 그저 체포용으로 쓰인 꼭두각시에 불과하더라도 다들 그걸 알 턱이 없지. 누군가 그 계시 준 놈을 실제로 잡아 와서 능력 시연을 펼치지 않는 이상 수사가 순조롭게 이어질 것 같지 않아.”

“…….”

“솔직히 나도 루카스 말이니 납득한 거지, 아니었다면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야.”

동의한다.

계시 자체가 납득이 어렵고 생소한 개념인 만큼 그렇다.

나는 나르케와 레오가 대화하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 구인류가 ‘플레로마’과 ‘우리’를 정확히 구분했지.’

플레로마와 프림로즈 패스는 이어져 있긴 해도 같은 집단이 아니다.

그 지점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그에게 ‘우리’ 측에서 이번 일을 명령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마도 회장님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 뒤 들은 것이 머릿속으로 지시를 받으며 일했다는 이야기였다.

플레로마까지 들어갈 것도 없다.

프림로즈 패스 쪽을 타고 올라가면, 계시를 주는 자를 만날 수 있다.

‘높은 확률로 그 회장이라는 놈이겠지.’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얘들아.”

“응?”

“신원 하나 새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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