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73화 (173/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73)

“뭘 위해?”

레오가 환호하려는 나르케를 제지하며 내게 물었다.

나는 아까 그가 했던 말을 반복했다.

“네 말처럼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것 같지 않아. 수사국에서는 대체 어디부터 시작해야 그 계시 준 자들을 잡을 수 있는 건지 감도 못 잡고 있겠지.”

“그러니까 네가 움직이겠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루카스.”

레오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서늘했다.

아니.

분명 그 계시라는 것은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플레로마에서도 쓰였지만, 나는 이번에 프림로즈 패스 놈들도 계시를 받고 일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쪽으로 올라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하지만… 이걸 말했다간 또 의심받겠지.’

어쩔까.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설마 무작정 들어가 보겠다? 플레로마로? 시간 낭비에 체력 낭비에 성공 가능성도 극히 낮다는 걸 네가 모르지 않겠지. 사실상 죽으러 가는 것과 같아.”

공허한 목소리로 말을 잇던 레오가 웃었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이번에 하려는 걸 반대해야겠는데.”

“…….”

평소와 다르다.

그는 늘 나를 뜯어말렸지만, 이번처럼 말투나 표정이나 반쯤 맛이 간 상태로 말리지는 않았다.

‘담임교수 일이 많이 충격이었겠지.’

그렇기에 더더욱 여기서 물러나서는 안 된다.

“그럼 내가 정보를 알고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겠네. 그렇지?”

“뭐?”

“알고 있다고.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

레오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우리가 빨리 움직여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야. 첫째로,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결국 수사는 교수님들께 불리하게 돌아가. 둘째로, 교수가 수사국에 붙잡혀 갔다는 소식을 진범이 들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

“여기서 더 움직이려 하지 않을 거야. 아니면 또다른 자에게 계시를 주려 하겠지. 이걸 막지 못하면 앞으로 전국에 또 어떤 일이 더 생길 줄 알고?”

의심받는다 해도, 말해야만 하는 정보가 있고 아닌 게 있다.

이건 말해야만 하는 정보다.

투명한 연하늘색 눈동자가 나를 꿰뚫듯 보고 있었다.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너는?”

“내가 뭐.”

“그 과정에서 네가 죽으면 전부 무슨 소용이야?”

“…?”

말문이 막혔다.

전혀 예상도 못했던 말이었다.

“전국민을 구해도, 네가 이미 죽어서 그 광경을 볼 수도 없는 상황이면 그게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순직한 국민 영웅으로 기억되는 게 최종 목표야?”

“그럴 리가. 갑자기 왜….”

“물론 아니겠지. 그런데 너는 언제나 죽을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해 왔거든. 혼자서 플레로마 의원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을 때도, 구인류 기자로 위장해서 아스만에게 접근했을 때도, 카타콤에 들어가기 위해서 구인류 배우 지망생을 연기할 때도….”

어디까지 하나 싶어 나는 말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나르케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입을 꾹 눌렀다.

“넌 네가 뭘 겪든 상관없어?”

“…….”

“설명이 필요한가? 뇌진탕에 빠지든 목이 졸리든 나흘 내내 피만 뽑히든 효과 두 배짜리 불법 약품을 먹든 배우 지망생 놈들한테 맞든 말든 상관이 없냐고. 더 할까? 플레로마에 거래 대상으로 넘겨지든 스트라우치 염불 외는 주교한테 죽을 뻔하든….”

“그만.”

정적이 한참 이어졌다.

아까부터 그는 주제를 벗어났다.

하지만 이걸 그냥 이야기하는 게 아닐 것이다. 놈은 괜한 걱정을 하지 않는다.

놈이 이전에 내게서 읽은 무언가가 지금 이 대화를 이끌어 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겠지.

‘정확히 뭘 읽었길래.’

나르케가 우리를 바라보다, 병실 밖으로 워프했다. 자신이 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했다.

둘 중 누구도 그가 떠난 자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

“루카스. 네게는 여기가 현실이 아니야?”

현실이 아니냐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나와 달리 레오의 눈에는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아니면 현실이더라도 미련이 없는 거야?”

“…….”

“그러면, 형님에게서 벗어난 뒤에는. 계속 살아 있긴 할 거야?”

틀렸다.

이곳은 또다른 현실이다.

돌아갈 수는 있는지,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왜 이 세계 사람들의 삶을 따 온 소설이 마법 없는 21세기에 존재했는지 나는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런 마당에 안일하게 ‘소설 안이니까 죽든 말든 상관 없지’ 따위의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확히 따지자면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현실은 언제나 내게 현실이 아니었다.

‘…이래서.’

그와 단둘이 남거나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목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던 건데. ‘제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플레로마가 아니라고 해도 계시를 받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했지. 계시를 통해 사람을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도 믿었고. 그 근거가 뭐지? 내 기억에 우리가 그걸 알아낸 적은 없었는데.”

“…….”

“항상 그랬지. 넌 매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아 와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해. 그러고는 보란 듯이 성공하지.”

“…….”

“뭐가 네게 그런 것을 알려 주는 거야? 얼마나 쓸 만한 정보를 알려 주든, 그건 절대로….”

레오가 허공을 보며 입을 달싹였다.

“절대로 네 편이 아닐 거야.”

“알고 있어.”

내 대답에 레오는 한참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보기만 했다.

이내 그가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희미하게 웃기 시작했다.

“가만 보면 나는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너는 어느 순간부터 날 오래 봐 온 것만 같은 눈으로 봤는데.”

그랬나.

딱히 그런 기억은 없지만 무의식까지 감출 수는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계속해서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끼며 인상을 썼다.

“1학년 때, 널 그렇게 대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네가 날 믿었을까?”

“…….”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

단지 내 문제다.

레오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조차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이 비상식적인 일의 연속을 뭐든 FM대로 행동하는 그에게, 아니,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는가.

사실 나는 내가 아니다. 이 말이 얼마나 미친 사람처럼 들릴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것도, 이 세계와 똑닮은 내용의 소설을 다른 세계에서 읽었다는 것도, 상태창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정보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전부 마찬가지다.

레오가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뜻대로 해. 네가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나도 널 도울 테니까.”

“…….”

“네 선택은 만민에게 이로운 선택이야. 반면 널 말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의 도움이 있어야만 하는 건 맞다.

반대를 들을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계획을 말한 건, 니콜라우스가 바이에른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프림로즈 패스에 투입되어 생기는 공백을 그가 처리해야 한다.

어쨌거나, 이렇게 흔쾌히?

레오가 내 의문을 읽었는지 알아서 말을 이었다.

“네가 옳아. 나는 불의를 행하고 있어. 만민을 지켜야 할 자리에 올라서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으니 그게 불의가 아니고 무엇이지? 엘리아스도 나르케도, 심지어는 율리아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널 말리지 않겠지. 그게 지도자의 역할이니까.”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봤다.

그가 어깨를 툭 치며 미소지었다.

“안할트는 훌륭한 군주를 뒀네.”

그리고 레오는 별로 좋지 않은 친구를 뒀다.

친구로서는 좋은 인간일 수가 없다.

“이제 나르케랑 엘리아스 데려올게.”

“다 끝내고.”

내 말에, 병실 밖으로 나가려던 레오가 뒤돌았다.

“그때 얘기해 줄게.”

“…….”

이대로 손을 놓을 수는 없다.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니콜라우스가 여기서 손을 뗀다 해도 플레로마는 이미 루카스 아스카니엔을 노리고 있다. 그들이 나를 노리는 건 어디까지나 야심 때문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덴의 주교들이 나를 찾는다는 그 정보, 그리고 어디를 통해야 이 문제를 잡아낼 수 있는지 알고 있는 지금은 승산이 있는 편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알겠어.”

뭘 이야기해 줄 건지, 뭘 다 끝낸 뒤 말할 건지 알리지 않았지만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레오의 얼굴을 보지 않았기에 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한참 뒤, 그가 나르케와 엘리아스를 데리고 다시 병실로 워프했다.

아까 눈치 보던 건 잠깐이었는지 나르케는 이제 다시 미소짓고 있었다.

문제라면 엘리아스였다. 그의 눈빛이 평소와 달리 무시무시했다.

‘벌써 다 들었나 보네.’

내 방에 프림로즈 패스로 향하는 워프 마법이 설치된 것부터, 교수들이 이 일에 이용된 것까지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그의 새로운 표정을 구경하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엘리아스가 날 보자마자 입꼬리를 구기며 올렸다.

“음, 루카 여기 있었네~”

“그래.”

“지금 전교에 니콜라우스 왔다가 갔다는 소리 쫙 퍼졌어. 네가 애들 난리치는 걸 봤으면 재밌었을 텐데, 아쉽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상태를 관찰했다.

언제나 장난으로 뭉개 버리는 게 그의 주특기인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애써 가벼운 화제를 꺼내는 태도와 달리 말투가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엘리.”

“응?”

“네 잘못 아니다. 네가 시작하지 않았어도 전부 이렇게 됐을 거야.”

“…….”

바덴, 정확히는 프라이부르크 주교들이 나를 타깃으로 삼은 만큼, 엘리아스가 프림로즈 패스를 건드리지 않았어도 이 일은 비슷하게 흘러갔을 테다. 오히려 그가 프림로즈 패스를 초토화시킨 덕분에 그들이 조급하게 계획을 실행에 옮겼고, 허점이 많아져서 내가 쉽게 그들의 의도를 추론할 수 있었다.

“그래. 고마워.”

엘리아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싸늘한 감은 남아 있었지만 진심인 듯했다.

‘그보다 또 으어어엉거리면서 침대에 엎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네?

나르케도 같은 감상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하하! 루카가 그렇다면 진짜 그런 거겠지. 루카는 남 위로 안 하거든. 진짜 사실만 말해.”

“아~ 그건 그렇지.”

“…….”

위로 안 한다고? 그렇게 팍팍하게 살아오지 않았는데.

아무튼, 지금 이러는 걸 보니 의지 하나는 충분히 차 있나 보다.

“자, 지금부터 하나씩 생각 좀 해 보자고.”

엘리아스가 의자를 빼 내 옆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레오가 아까 오면서 나한테 트라우트 교수하고 우리 반 교수님이 여기 엮였다고 했어. 그런데 레오는 왜 우리 반 교수님이 그놈들한테 선택된 건지 모르더라고?”

엘리아스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마 나 때문이겠지.”

“……..”

모두가 생각만 하고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 담임이니까. 루카가 타깃이 된 것도 내 친구이기 때문일 거고.”

“너 아까는 내가 사실만 말한다며?”

“나 때문이긴 해도 내 잘못은 아니지~ 잘못은 그놈들이 저지른 거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가 손톱으로 피부를 꾹 누르면서 중얼거렸다.

“자책하면서 버릴 시간은 없어. 이제 그쪽이 훨씬 더 미친 짓을 벌이기 전에 막아야 해. 그리고 그걸 막을 수 있다면 놈들의 목을 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야.”

나는 가만히 그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래서 루카 의견은~? 되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미리 알아본 바로는, 프림로즈 패스를 타고 올라가면 그 계시를 준 사람을 찾을 수 있어. 그곳에서 회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부터 찾아야 해.”

그가 아니라 말단에서 회장 사이에 그 능력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중간 관리자를 찾는 것보다는 회장을 타깃으로 잡고 올라가는 게 여러 의미에서 수월하다.

“…….”

레오의 시선이 따갑게 닿는 게 느껴졌다.

내가 주의를 돌리려 노력할 필요 없이, 고맙게도 엘리아스가 손뼉을 쳤다.

“이야~ 되게 좋은 정보인데. 어디서 알아냈는지는 안 물을게. 어차피 루카가 하는 말이면 뭐든 믿을 만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내가 끼기는 어렵겠는데.”

“그래. 네가 프림로즈 패스로 잠입하는 건 어려워. 그쪽에서는 네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그보다, 애초에 잠입 이전에 해야 할 게 있지.”

가만히 듣고 있던 레오가 말했다.

“자료 조사부터 해야지. 어떻게 해야 그 회장이란 작자를 만날 수 있는지 알려면 그자의 니즈부터 알아야 할 거 아냐.”

“정확하네. 난 지금부터 검찰에 가야 해. 엘리아스 너도 검찰과 치안본부에 다녀와 주면 고맙겠어.”

“음, 뭘 알아야 하는데?”

내내 죽은 눈으로 앉아 있던 엘리아스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르케와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다, 일단 루카는 검찰에 뭐 하러 가는데?”

“프림로즈 패스와 유착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야지. 플레로마에도.”

“지금 바로 가야 해?”

“아니. 마지막 점검만 하러 가면 돼. 다른 마법사들이 그쪽에서 심문하고 있어서.”

“아, 좋아. 그러면 그건 좀 이따 가도 되는 거지?”

엘리아스가 순간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종이 뭉치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뭐냐?”

“검찰에서 복사했지~”

“뭐?!”

레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자료 돌려보낼 것처럼 굴길래 내가 먼저 잠입 한번 했다. 겸사겸사 황실 자료실도 오랜만에 한 번 더 털었지.”

“…….”

각오를 다지고 잠입하려 한 나와 달리 얘는 이게 일상이네.

놀랍지도 않다.

“자, 말해. 뭐가 필요한데?”

“프림로즈 패스는 지금 다시 활용하기 어려울 만큼 무너져가고 있지. 그런데 거기에 플레로마까지 엮여 있어. 분명 그 회장이라는 놈은 여기서 프림로즈 패스를 버리지 못할 거야.”

“그래. 그 노다지를 쉽게 버릴 수 있는 놈은 없지~ 그래서?”

“그럼 이제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일어날 생각이지? 그것도 알고 있어?”

한참 눈을 깜빡이고 있던 엘리아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내 의도를 알아챈 모양이다.

잠입 전에 그것부터 막아야지.

내가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내 앞에 친히 내려오게 만들려면, 그들이 일어나지 못하게 기회부터 걷어차야 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