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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75화 (175/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75)

“내가 뭘 들은 거지?”

엘리아스의 물음에 나르케가 웃으며 대답했다.

“한량이래.”

“단어 선택 옛날 사람 같은 건 둘째치고… 뭐?!”

“옛날 사람처럼 말해서 미안하다.”

“루카.”

엘리아스가 내 쪽으로 몸을 가까이하며 조곤조곤 말했다.

“너 전혀 그렇게 안 생겼어.”

내내 어이없는 표정으로 있던 레오가 말을 얹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나도 동의한다.”

“뭐가 그렇게 안 생겨. 바꾸면 되지.”

“아냐! 단순히 옷 갈아입는 걸로는 부족해! 네 눈빛에서 건실함이 느껴진다고. 게다가 한량은 아까 나르케 말처럼 완전 도움 안 되잖아.”

“도움 되게 만들면 될 일이야. 그렇지?”

나는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너희 말에 답이 있었어. 투자자, 연방위원회 의원 보좌관이나 조카, 거기서 일하고 싶은 양아치, 이 세 가지였지?”

“응.”

“전부 하나씩 걸리는 점이 있었지. 그런데 세 가지를 다 합치면?”

“으으음?”

엘리아스가 나를 빤히 보며 턱을 쓸었다.

“꽤 쓸 만한 인간이 나오지 않겠어? 재력이나 인맥 덕분에 활용가치는 높지만 ‘멀쩡한’ 인간이라면, 그놈들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아. 대신 배운 것 없이 놀고먹기만 한 데다 생각까지 없는 한량이라면 압수수색 들어간 업장에 돈 주겠다고 하는 상황이 그리 이상하지도 않고, 상대적으로 등쳐 먹기도 쉽겠지.”

“루카. 왠지 내가 마음이 너무 아픈데~?”

“아니니까 찔리지 마. 내가 말하는 건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갱생시키길 포기한 부류를 말하는 거라고.”

“허, 허허… 허엉….”

마지막 뭐냐?

아무튼 말하면 말할수록 점점 엘리아스를 가리키는 것 같아, 나 역시도 더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 그를 의도한 건 아니었다.

놈은 일부러 허술하게 말하고 행동하긴 해도 생각까지 허술하지는 않고,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게 티가 난다.

‘카타콤에서 이미 한번 그랬지.’

이번에 내가 연기할 인물에서는 그런 찰나의 계산까지도 없애야 한다.

“자, 그러면 이제 나와 이미지가 맞지 않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겠지. 우선, 이것부터 따져 보자. 1-1차 시험 중계 때문에 내가 신문에 나간 적이 있었지. 날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좀 되는데.”

“걱정 마~ 위에서 찍은 거라 얼굴은 잘 안 보여.”

나르케가 답했다.

그렇긴 하다.

게다가 이곳은 휴대폰이 없고 신문으로만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기에, 인터넷처럼 남의 얼굴 사진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는 않는다. 접근성이 낮고 내가 제국2교육원 학생 신분인 만큼 언론 통제가 확실히 이뤄졌기 때문에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 프림로즈 패스 놈들이 ‘나를 프라이부르크에 바치려 했다’는 것이 곧 ‘내 얼굴을 안다’는 말은 아니다. 놈들은 그저 기록을 이용해서 내게 접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심은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이미지와 정반대의 인물상을 고르는 것이 좋겠지.

“엘리. 이 분야에 대해서 네가 제일 잘 알 것 같은데.”

“변장 도와달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양아치처럼 생긴 놈의―행실보다도 생김새가 그렇게 생겼다―의견을 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으으음…. 우선….”

엘리아스가 한참 고민하다가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머리색 눈 색 갈색으로 바꿔 봐.”

‘음? 여러모로 무난한 색깔인데 좀 거리가 멀지 않나.’

정직한 갈색은 좀 그렇기에 채도 빠진 밝은 갈색으로 색을 바꾸었다. 그러자 나르케가 손뼉을 짝짝 쳤다.

“우와~ 파이 색이네!”

“음, 좋아.”

엘리아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 나르케가 완전히 마음에 든 듯한 얼굴로 말했다.

“루카스, 이거 색상 주문 뭔지 알려 줄래? 나도 나중에 할래.”

“그래….”

파이랑 똑같은 색이 되고 싶은 건가?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협탁에 놓여 있던 수첩에 공식을 적어 그에게 넘겨주었다.

엘리아스가 열심히 내 머리카락을 만져 보더니 머리 옆으로 가르마를 타 옆으로 쓸어넘겼다.

‘이거 맞나.’

거울은 없지만 느낌만으로도 뭔가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엘리아스가 내 셔츠의 맨 윗단추를 잠갔다.

“단추 왜 잠그냐?”

“…….”

엘리아스가 대답 없이 리본을 풀어서 다시 꽉 조여 맸다. 슬슬 엘리아스가 뭘 구상했는지 감이 왔다. 엘리아스가 공허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루카는 이래야 해….”

“아니, 양아치 같은 행색 좀 만들어 보랬지 누가….”

“루카. 살면서 무단결석 60일 해 본 적 있어?”

“있겠냐?”

“그래. 모든 건 거기서 출발하는 거야. 단순히 어떻게 꾸민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난 이거 용납 못 해!”

나는 대답 대신 엘리아스를 떨쳐내고 레오에게서 거울을 받았다.

“…….”

거의 레오와 비슷한 행색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하다. 200년 된 학교 기숙사에 처박혀서 공부만 해야 할 것처럼 생겼다.

‘이래서 둘이 친구인가?’

그래.

본인은 60일 무단결석하면서 살아도 남을 볼 때는 건실하게 사는 놈이 그럴싸해 보일 수 있지. 자기가 살아본 적 없는 삶이 더 멋져 보이는 법이다.

“그냥 내가 한다. 말 얹지 마.”

“내가 잘 꾸몄는데… 이상하다?”

웬만해서는 그의 말을 듣겠지만 이번은 아니다.

그때 레오가 입을 열었다.

“언제 나갈 거야? 나랑 엘리아스가 교내 상황 전달해 줄게.”

지금이 6시다.

자율훈련시간인 7시부터 12시까지는 조심해야 한다.

이제부터 학교가 경계 태세를 더 높일 것이다. 지금은 정신이 없지만 오히려 밤에, 기숙사에서 모두 잠들 시간대가 더 위험하다.

그동안 우리 기숙사는 사감이 없는 것처럼 운영했지만 이제부터는 점호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나갈 거야. 나르케. 한 시간만 다녀오자.”

“앗, 나도?!”

나르케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한 시간이라는 게 지나치게 짧아 보이지만, 얼굴을 들이밀어 눈도장을 찍는 행위를 몇 번 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본게임은 며칠 뒤가 될 것이다.

레오가 엘리아스를 자리에서 몰아내고 내 침대 옆에 앉았다.

“내가 도와줄게.”

“음?”

“그 전에, 나르케, 엘리아스. 잠깐 나가 줄래?”

엘리아스가 어깨를 으쓱이자 레오가 눈으로 욕했다.

“하하, 그래. 우리 레오 표정이 험악해서 이 18년 지기 친구가 마음이 너무 아프네~ 아니다, 17년이지?”

“나가.”

나르케와 엘리아스가 사라지자, 레오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루카스 원래 눈썹 색이 검은색인가? 그럼 머리만 노랗게 할 수 있어?”

“머리만? 그러면 형님 생각 날 텐데.”

“괜찮아. 탈색시켜 만든 금발은 자연 금발하고 다르잖아. 그 색깔로 바꿔 봐.”

탈색 느낌 나는 금발을 하라고?

21세기에서도 학생들이 하기 좀 그런 머리이긴 하지.

이제 이 시대에서도 과산화수소를 이용한 탈색법이 개발된 지 100년에 가까워지고 있긴 하다. 생각보다 21세기의 많은 것은 이 시대에도 있었다.

그런데 귀족인 신인류가 탈색을 하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봐도….

‘그래.’

이해했다.

그러니 하라는 거지.

나는 변화식을 외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는 사이 레오는 누군가와 통화하더니 말도 없이 바이에른으로 사라졌다.

그가 10분쯤 지난 뒤 난생 처음 보는 패턴의 옷을 가져와 침대에 내려놓았다.

“이거 입으라고? 고맙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앉았다.

“루카스. 내가 아까 부탁이 있다고 했지. 기억해?”

“…그래.”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날 돕겠다고 했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돕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레오가 한참 말없이 있다가, 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이 상태 그대로 돌아와.”

“…….”

살짝 들어갔던 힘이 탁 풀렸다.

이게 부탁?

“그럼 당연히 이 상태로 돌아오겠지.”

“언제나 말이야.”

그러니까,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 적어도 일주일은 계속 그쪽으로 드나들 테니 그때 전부를 말하는 거지.

“당연히 매번 이 상태로 돌아올 거야.”

최대한 신뢰감 넘치는 얼굴을 연기했지만 놈은 어디까지 나불대나 보자 하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다시 말해 내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것은 전략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데다, 그게 아니라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게다가 이놈이 이렇게 쓸데없는 것을 부탁하는 놈이 아닌데.

“레오. 네가 이런 걸 신경쓰는 사람이 아닌 건 잘 알고 있어.”

“뭐? 인간적으로 이 말은 좀 어이가 없는데.”

“무슨 말인지 알잖아. 계속 이 상태라면 묻지 않을 수가 없네. 무엇 때문에 아까부터 이러는 거지?”

그러니까, 정확히 뭘 봤길래.

이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바람이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가 표정 없이 입만 달싹이다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내게 말하기 전까지는 나도 아무것도 못 말해, 루카스.”

“…….”

“내 부탁이 납득이 안 돼? 그럼 이렇게 할까? 루카스, 네가 바이에른에서 뭘 맡았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

“국민들은 이제 국왕 전하를 보는 것처럼 네게 의지하고 있어. 심지어는 이제 제국 전체가 네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모르지 않겠지.”

나는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미 니콜라우스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이니, 이전보다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 알겠다.”

“이렇게 말해야만 납득하는 거야?”

레오가 힘없이 웃더니 혀를 찼다.

“그래. 뭐든 납득했다면 상관없지. 약속해. 언제든지 이 상태 그대로 돌아와.”

“최선을 다해 볼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 텐데.”

사람 일이라는 게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 뭘 믿고 확답을 주냐?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하겠지만, 혹시나 하니까 물어나 보자. 못 지키면 어쩔 건데.”

아티팩트를 만지작거리던 레오가 내 말을 듣고서 잠깐 고민했다.

이내 그가 나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글쎄. 어떻게 될 것 같아?”

그 순간 엘리아스가 연락을 받았는지 레오처럼 아티팩트를 툭툭 두드리며 병실에 나타났다.

나르케도 함께였다. 놈은 우리가 대화하는 사이 나갈 준비를 했는지, 벌써 행색이 학생답지 않았다.

엘리아스가 나를 구경하더니 중얼거렸다.

“워….”

반응만 봐도 알겠다. 레오가 엘리아스보다는 성공적으로 바꿔 놓은 게 분명하다.

“이렇게 하는 거야, 엘리아스.”

“아니, 부족해. 네가 만들어야 하는 건 예술가가 아니라 양아치라고. 어~?”

“너한테 그런 소리 듣긴 좀 그러네. 어쨌든 보는 사람이 한번 의문을 느끼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야? 엘리아스 네가 조끼는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맨날 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는 내 느낌처럼 말이야.”

레오가 아까 엘리아스가 쓸어넘겼던 머리를 앞으로 내렸다.

“나머지는 루카스가 알아서 잘하겠지. 자, 이 정도면 되겠지?”

“안 돼. 어차피 루카는 표정에서 지성이 넘친다고. 그게 제일 큰 문제야.”

엘리아스가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방법이 있다. 나는 손을 내젓고 그에게 말했다.

“엘리아스. 네 방에 술 있어?”

“있지.”

“한 병만 부탁해.”

* * *

“으웩….”

내가 세면대에 대고 헛구역질을 하자 나르케가 내 등을 붙들었다.

“빈속에 그걸 다 마실 줄은 몰랐네…. 아니, 그게 가능한 줄도 몰랐어. 의지력이 대단하구나.”

엘리아스 말대로, 제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눈빛에서 티가 날 수 있다. 계속 태클 거는 걸 보아하니 눈빛을 죽이고 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이런 건 그냥 소주로 해야 제일인데.’

진이나 럼 같은 술이라도.

프리미엄 딱지 붙은 와인으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자니 좀 미안하다.

나는 물을 틀고 손을 대려다, 정신을 차리고 뒤로 뺐다.

자연스럽게 세수하려고 했다. 어떻게 이 상태를 만들었는데 바로 깨울 수는 없지.

나는 세면대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중얼거렸다.

“한 번에 마실 줄 몰랐다고? 예지 안 썼구나.”

“방금은 썼어. 토하려면 변기에다 해야지 여기서 하면 안 되니까….”

“토 안 한대?”

“응!”

“다행이네.”

이게 뭔 대화냐.

나는 적당히 물을 끄고 고개를 들었다.

준비는 끝났다.

엘리아스가 작명까지 해 준 덕분에 이대로 가도 문제는 아니다.

나는 대충 입가를 훔치고 나르케에게 손짓했다.

붕 뜨는 느낌에 잠깐 눈을 감았다 뜨자, 처음 보는 거리가 시야에 펼쳐졌다.

“이 방식으로 워프하면 그래도 괜찮나 보네. 그렇지?”

“그렇네.”

나는 바닥을 가볍게 딛고 주위를 돌아봤다. 나르케가 내 어깨를 붙들어 중심을 잡아 주었다.

저 멀리, 굽이진 골목이 보인다. 이미 검찰에서 찍어 온 사진 덕분에 저 골목이 어디로 향하는 골목인지는 잘 알았다.

나는 나르케와 함께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참 꺾어서 들어가자, 점점 빛이 들지 않게 거리와 거리 사이의 하늘을 막아 둔 길이 나타났다.

나르케가 점점 포장 안 된 흙바닥이 나오는 걸 보고 웃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야…. 여기서 억대 매출이 나왔다는 게 신기한데~?”

―“제국에서 제일 큰 거리니까.”

확실히 낡아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이건 위장 마법을 써서 만든 외관일 뿐, 마법을 한 겹 벗기면 깔끔한 거리가 나타난다.

―“슬슬 저녁 시간대가 되어서 그런지 불 들어온 가게들이 있긴 하네. 어디서부터 시작할 거야?”

―“압수수색 영향을 덜 받은 곳부터 시작해야지.”

어차피 오늘은 ‘이 거리에 이런 사람이 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광고하기 위해 가는 것이니, 어딜 들어가든 문제는 아니다.

애초에 압수수색 영향으로 단단히 털려버린 곳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예 문을 닫은 건지, 몇몇 가게는 딱 보아도 먼지로 가득했다. 지금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는 애초부터 불법이 끼지 않은 그냥 술집이었을 테다.

나는 어두컴컴한 거리 끝, 초록색 간판을 달고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 먼저 시작하자고.”

* * *

“이 상태로 보틀을 세 개나 시킬 줄은… 몰랐네~ 오늘 다 마시고 갈 수 있겠어?”

“죽어도 마셔야지.”

나는 주위를 곁눈질하며 중얼거렸다.

가게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이 층에만 어림잡아 15명쯤은 있는 듯했다.

‘압수수색 이후에도 이 정도면 이전에는 꽤 됐나 본데.’

“이야~ 의지가 대단한데. 나는 좀 태우면서 마실게.”

신력으로 태워 버리겠다는 말이다.

나는 그저 가볍게 웃음으로 답변을 때웠다.

‘좋겠네….’

진짜 속이 썩 좋지 않다.

이제 와서 그냥 글라스로 시킬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나약하게 나가서는 안 된다.

단순히 외관 좀 바꾼다고 이미지가 바로 잡히는 게 아니다. 며칠에 걸쳐서 행실을 통해 천천히 쌓아 나가야 한다.

‘오늘은 딱히 뭘 하려고 온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앞으로 이 짓거리를 며칠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웃음만 난다.

그때, 나르케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실례합니다.”

불쑥 들려온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구인류 둘이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나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나는 그들의 행색을 훑었다.

둘 다 구인류 여성이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넓게 잡아 30대 중반까지.

유흥업 종사자는 확실히 아닌 듯하고, 입은 옷과 특유의 엘리트 계층 말투를 종합하면 부르주아 집안 출신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흠.’

벌써 사람이랑 엮이는 건 계획에 없었는데.

하지만 입이 많아지면 나야 이득이다.

나는 대답 대신 잔에 남아 있던 와인을 입에 한번에 털어넣고 말했다.

“주정 들어줄 자신 있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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