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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76화 (176/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76)

‘주정 들어줄 자신 있냐니.’

나르케가 제 앞에 앉은 루카스를 흘끗 바라봤다.

솔직히 당황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뭐든 ‘그래’, ‘아니’로 대답하는 그에게서 듣기로는 낯선 말이다.

‘벌써 시작이구나.’

루카스는 팔로 머리를 지탱하느라 테이블에 상체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기에는 이미 취기가 잔뜩 올랐다. 실제로도 그럴 테고.

그래도….

‘제정신이네~?’

루카스의 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그들이 환히 웃었다.

“아, 고마워요.”

“시간이 이른데 벌써 좀 마셨나 봐요?”

나르케가 제 옆에 앉은 사람의 말에 웃으며 답했다.

“네~ 여기가 2차라서요.”

“아, 1차는 어디서?”

“길에서요.”

낯설게 들리는 나른한 목소리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나르케가 잽싸게 손을 저었다.

“하하하하! 이 친구가 많이 취했네요. 그렇지?”

“으음….”

“하하, 진짜 많이 취하셨네~”

루카스의 불만스러운 표정이 오히려 취했다는 사실을 강화하고 있었다.

나르케가 루카스를 보며 능력을 발동시켰다.

[…그보다, 저쪽은 알콜 한 방울 안 들어간 것처럼 멀쩡한데 굳이 나처럼 의자를 지지대 삼아 인간 행세를 하고 있는 주정뱅이와 합석할 이유가 있나. 게다가 저 인간들은 쭉 여기 있었지만 나는 앉은 지 10분도 안 지났는데?]

‘하하…. 보통은 그냥 마음에 들어서 같이 앉아도 되냐고 물어본 걸 텐데.’

물론 마음에 들었어도 술에 절어 있으면 보통 피해 가는데 왜 앉냐는 의문이겠지.

어쨌거나 루카스도 성직자이니, 엘리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종류의 교제 활동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니 당연히 상대에게 계산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루카스 특유의 사고방식을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니까 어디 한번 나도 루카스처럼 따져 볼까~’

[설마 전도?]

“커헙….”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아요!”

[아니다. 정신머리까지 취했군.]

알긴 아는구나.

그래도 그 외의 생각은 잘 돌아가고 있었으니 크게 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때, 나르케 옆에 앉은 금발 구인류가 쾌활하게 말을 시작했다.

“저는 오이게니 실러고, 이쪽은 루도비카 슈나이더예요. 최근에 이 거리에서 못 본 얼굴인데 이름이 뭔가요?”

“가브리엘 아인츠베른이에요. 이곳에 오래 계셨나 봐요?”

“나름대로 그런 편이죠~ 이쪽은?”

모두의 시선이 루카스에게 향했다.

내내 술잔 위를 잡고 그것을 빙빙 돌리기만 하던 루카스가 이제야 화제를 의식한 듯 구인류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가 눈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름 예쁘네요.”

‘우와~’

살짝 욕할 뻔했다. 나르케가 웃으며 슬쩍 팔을 쓸었다.

진짜 루카스가 절대 안 할 말이다.

본인도 500년 전에 쳐도 안 먹혔을 대사라는 걸 알면서 일부러 입 밖에 냈다.

아마 테이블 엎고 나가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텐데, 역시나 통찰을 써 보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본인 스스로도 못해 먹을 대사인 걸 알면서도 콘셉트를 만들어 나가는 게 대단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대사만 치는 게 아니구나.’

나르케가 루카스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했다.

어딜 보나 제국에서 보기 드문 제스처다. 대륙 건너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표정이지만.

“하하, 둘 중 누구요?”

‘이 멘트를… 받아 주네~’

웃음을 열심히 참아야 했지만, 루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골라야 하나요? 어렵네요.”

“그럼 됐고요. 그쪽은 이름이?”

루카스는 와인을 말 그대로 입에 털고 입꼬리를 씩 올려 웃었다.

“중요한가요?”

“…….”

“그보다 이거 맛있네요. 마셔 보셨어요?”

“마셔 봤죠. 그런데 병으로 주문하셨네요? 단독으로 계속 마시기에는 좀 무거울 텐데요.”

“예에… 뭐, 배가 고파서요.”

그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술로 배를 채운다.

부르주아든 귀족이든 나름대로 교양을 중시하면서 사는 부류에게는 이보다 더 어이없는 말이 없을 수가 없다.

테이블에 반쯤 늘어져 있는 모습에서도, 루카스의 옷차림에서도 느꼈겠지만, 이 분들은 여기서 다시 한번 루카스가 자신들과 급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굶고 다닐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요.”

“방금 입국했는데 먹을 곳이 마땅치가 않더군요. 한잔 하시죠.”

루카스가 다짜고짜 병을 들어 루도비카가 들고 있던 잔에 부었다.

그도 딱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대신 루도비카는 반쯤 채워진 술잔을 흔들기만 했다.

“이름도 못 듣고 마시기는 좀 그런데.”

“하하…. 제레마이야 카에타니예요. 됐죠?”

루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짧게 내뱉고 다시 술을 마셨다.

“제레마이야? 제국식 발음이 아니군요. 영국?”

“미국이요.”

“오. 제국어에 굉장히 능하시군요? 그런데….”

루카스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턱을 쓸더니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본명 아니죠?”

“유흥업소에서 본명 쓰는 사람도 있어요?”

“하하, 여기는 그냥 술집인데요? 너무 많이 놀다 오셨나 보네요.”

약간은 힐난하는 듯한 눈짓에도, 루카스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기울이기만 했다.

“진짜 이름은 뭐예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고 해도 카에타니는 교황까지 배출한 가문인데. 가명 지을 때 좀 신중히 지으시지 그러셨어요.”

“저랑 안 어울려요?”

“네.”

“너무하네요.”

루카스가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 대답했다.

“마지막 구인류 모계 조상께서 그쪽 가문이시거든요. 거기서 따 왔습니다.”

“아하… 진짜 성직자 혈통이네요~? 이거 괜찮은 건가 모르겠네~”

“아.”

루카스가 짧게 말하고 눈썹을 들어 올려 웃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

나르케가 술을 홀짝이며 구인류의 눈을 바라봤다.

[지금 가문도 꽤 좋겠네. 조상 가문이라고 해도 급이 맞는 사람들끼리 결혼했을 테니….]

‘좋아.’

인맥 부분은 루카스 의도대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아까 루카스가 생각했던 그 의문이 이제 이해가 간다.

아무리 신분제 사회라고 해도 향유하는 문화에 따라 보이지 않는 급이 만들어진다.

지식인 사이에서 교육받고 자란 말투, 온몸에서 풍기는 부르주아 계층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상대가 귀족이라고 해도 이렇게 술과 오락에 절어서 가명 쓰는 사람을 상종하지는 않을 텐데.

성매매든 도박이든 불법 오락에 푹 빠져 사는 인간이리라는 예상이 확 오고 있는데, 왜 접근했을까?

단순히 집안이 좋아 보여서? 아니. 그건 이제야 안 거고.

진짜 문제는 왜 집안이 좋다는 걸 알기 전부터, 아무리 흥미 본위라 해도 굳이 왜 이런 사람에게 접근했느냐다.

“하하, 이해해요. 저도 수녀원 나왔거든요.”

“음…?”

술을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루카스가 헛웃음을 쳤다.

찰나였지만 그는 진짜로 당황했다.

‘그래 봤자 추기경이 양아치 행세하고 있는 게 더 충격인데~’

나르케는 그 말을 삼키고 루카스의 표정을 구경했다.

루카스가 재빨리 표정을 정리하고 웃었다.

“동족이네요.”

“그렇죠. 그러고 보니, 두 분은 친구예요?”

나르케 옆에 앉아 있는 구인류가 물었다.

나르케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부터 많이 친했죠. 이래봬도 마음이 잘 맞아서요.”

“학교 다닐 때부터? 두 분 다 나이가 좀 어려 보이는데… 아니다. 맞춰 보죠. 19살?”

그 말에 루카스가 눈을 찡그렸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다른 사람 양심 생각을 안 하지는 않거든요. 아니면 그렇게 어리길 바라셨나요?”

“하하하! 그러면… 23?”

“흠?”

“이 이상은 아닌 것 같은데.”

루카스가 손가락을 튕기며 미소 지었다.

“고맙네요. 25살인데요.”

“와, 전혀 몰랐어요.”

‘모르겠지~ 18살이니까.’

7살을 늘렸는데 이걸 이해하다니, 레오가 가져온 옷 덕분인가?

나르케는 그들의 안목이 후진 것에 감탄했다.

“학생인 줄 알았는데 아니겠군요. 무슨 일 해요?”

“졸업장 종이쪼가리 만들기요.”

“아, 대학교?”

“고등학교요. 요즘 대학 많이들 간다곤 해도 전 영 적성에 안 맞더군요.”

“뭐 그럴 수도 있죠~ 하고 싶은 게 늦게 생길 수도 있고…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아도 되니까요.”

“물론 그렇죠. 그럼, 루도비카 씨가 보기에 저는 그래도 될 사람인가요?”

그러자 루카스 옆에 앉아 있던 구인류가 또다시 웃음을 지었다.

“그건 더 만나 봐야 알겠는데요.”

“음, 좋아요.”

루카스가 씩 웃으며 술잔을 테이블로 밀었다.

“그런데 오늘 안에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답을 못 들을 텐데요.”

“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저도 좀 놀아야죠.”

루카스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입었다.

그러고는 아직 따지 않은 와인병의 목을 잡았다.

‘으으음~’

그래.

이런 이미지를 내려고 했지.

같이 앉아 있던 구인류 둘이 웃는 낯을 유지하며 그대로 굳었다.

루카스는 그러든지 말든지 반쯤 풀린 눈으로 실실 웃기만 했다.

“아, 여기 이 시간에 도박장 영업하는 곳 있어요?”

주변 테이블에서 이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연기가 진짜 같아, 나르케는 계속 그가 취한 건지 아닌지 통찰을 써야만 했다.

“소식 못 들으셨어요? 수도 도박장은 전부 문 닫았어요.”

“아. 이런…. 그것만 기다렸는데 아쉽네요.”

“잘 곳은 있어요?”

“아직 입국한 건 비밀이라서요. 이제부터 사정하러 다녀야죠.”

나르케가 그 구인류 둘의 눈빛을 읽어 나갔다.

완전히 문제아로 여기고 있다.

의외로, 루카스가 대놓고 그들을 까 버린 것에는 딱히 기분이 상한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제국에는 언제까지 있을 건가요? 지낼 곳도 없는데.”

“저 이제 미국 못 돌아가서요. 아마 계속 있어야겠죠?”

“이제 못 돌아간다고요?”

“예에. 그런 게 있어요. 몇 번 테이블이에요?”

“낼 필요 없어요. 도박장뿐 아니라 여기 있는 업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으니… 제가 오히려 제국인을 대표해 위로해 드려야 할 판인데요.”

“뭐라고요?”

“전부 문 닫았다고요. 자정까지 기다려도 아무 데도 안 열려요.”

루카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 극적인 표정에 구인류 둘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진짜 못 들으셨나 보네요. 신인류인데 그런 쪽에 흥미가 있나요?”

“문을 닫았다고요? 이럴 수가…. 왜요?”

“압수수색 들어온 거 모르세요? 집안도 좋아 보이시는데 누구 하나 말해 준 분이 없나 봐요?”

“하하하….”

루카스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팔꿈치에 걸친 채로 대강 입었던 재킷이 흘러내려 가는 것을 붙잡았다.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 보이는 광경이었다.

“좋아요. 믿을 수가 없네요. 아니, 그래도 믿어 볼게요. 정보 고마워요.”

“뭘요, 도움이 필요하면 내일 이 자리로 오세요.”

구인류는 언제 당황했냐는 듯 주도권을 잡은 얼굴로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루카스가 들고 있던 와인병의 코르크 마개를 따 테이블에 던지고서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걸요. 대화 즐거웠어요.”

* * *

나는 재빨리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나르케가 내 옆으로 바싹 따라붙었다.

―“어때, 나르케. 저 사람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하하….”

나르케가 웃음으로 얼버무리기에, 나는 다시 물었다.

―“일반인은 아니지.”

―“그래.”

나르케의 깔끔한 대답에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어울리는 상대가 아냐. 나이 차이도 꽤 나는 데다 문화적인 급도 맞지 않아.”

―“하하, 어린 애인 하나 만들고 싶었을지도?”

―“그거참 사고방식이…. 너 추기경 맞아?”

나는 진심으로 마신 술이 올라오는 느낌에 손을 펼쳐 입을 꾹 눌렀다.

―“방금 네 대화를 들은 입장에서 내가 이런 말을 듣는 게 조금 놀랍네~ 단추부터 여며!”

—“여기 엘리아스 하나 더 있네….”

—“너무 토하지 마. 아까 그건 그냥 해 본 말이야. 사실 네게 뭔가를 시키려는 듯한 느낌은 있었는데, 알다시피 나는 첫 만남보다는 두 번째 만남이, 두 번째 만남보다는 세 번째 만남이 더 정확해.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해서 그와 관련된 대화 주제가 나와야 하기도 하고.”

너무 토하지 말라는 건 뭔 말인지 싶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신력으로 알콜을 전부 태워 버렸어도 놈도 좀 취한 것 같았다.

마침 나르케가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장기가 필요한가….”

―“뭐?”

―“아냐. 그래서, 이제 돌아갈 거야? 벌써 7시 넘었는데.”

―“돌아가야지. 다른 곳 들러서 한 잔만 마시고 바로 돌아가자.”

―“아, 이번엔 병으로 주문할 생각은 없는 거지?”

그랬다간 진심으로 죽을 수도 있다.

―“생각보다 깔끔하네~ 오늘은 정말 얼굴만 비추러 온 거였구나.”

그렇다고 말했어도 놈은 뭔가를 기대했나 보다.

물론 ‘오늘은’ 그렇지만, 내일은 아니다. 오늘처럼 눈도장 찍으러 다니되, 슬슬 행동을 시작해야지.

―“다시 올 거야. 새벽 2시에.”

* * *

나는 나르케의 도움을 받아 병실로 워프했다.

내 침대에 드러누워 파이와 놀고 있던 엘리아스가 벌떡 일어났다.

레오는 할 일이 많아 다른 곳에 불려간 모양이다.

“아, 왔구나. 우리 제리~”

“다른 별명 생각해라.”

“그래, 제롬~ 목소리가 벌써 맛이 갔네. 내 방에서도 그렇게 마시지.”

살다살다 가명에 별명을 만드는 인간이 다 있다.

S로 끝나는 이름만 줄이는 줄 알았는데 또 아니었다.

“그래서, 어땠어?”

“오늘은 별 거 없었어.”

접근한 인간이 둘 있긴 했지만 무슨 목적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의미 있게 여기기엔 이르다.

대신 적어도 그 술집에 있던 인간들에게 관심 하나는 제대로 끈 듯했다.

아무래도 행색부터 답이 없는 인간이 프림로즈 패스가 압수수색 당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으니 시선이 갈 수밖에.

그들이 조금이라도 소문을 내 주길 바랄 뿐이다.

“대신 2시에 한 번 더 나갈 거야. 학교는 어때?”

“11시에 점호야. 그런데 넌 신경 안 써도 돼. 레오가 너 입원 기간 늘렸거든.”

그래?

잘 됐네.

그걸 알아봐야 했는데, 내 문제는 벌써 해결이 되어 있으니 이제 나르케만 변명을 만들면 된다.

나는 나르케를 바라봤다. 엘리아스도 그를 보고 있었다.

나르케가 웃으며 저를 가리켰다.

“아, 나만 해결하면 되는 거구나~?”

* * *

―“파이를 두고 올 생각을 하네.”

―“하하, 자주 그랬는데~ 누구 오면 바로 다시 워프하면 되고 좋지.”

새벽 2시, 우리는 아까처럼 프림로즈 패스로 이동했다.

나는 한 손에 든 술병을 입에 가져다 댔다.

종일 알코올만 섭취하고 있으니 이제 진짜 토가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작할 거지?”

―“그래.”

콰아앙—!

나는 바닥을 발로 굴렀다.

거리에 걸려 있던 마법은 우습게도 쉽게 깨졌다. 방금까지 흙바닥이었던 땅이 대리석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압수수색 이후에 방어가 약해진 건지, 뭔지.’

나르케도 같은 생각인지 헛웃음치며 고개를 젓기만 했다.

하지만 이렇게 허술하면 오히려 내게 좋지 않다.

프림로즈 패스 고객들에게만 나를 인식시켜서는 안 된다.

업주, 혹은 관리자들에게 나를 인식시키는 게 훨씬 좋게 먹히지.

그러려고 왔는데 보는 인간이 하나도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뒤에서 빛이 닥쳐왔다.

콰앙—!

“누구야? 이 주정뱅이는.”

마법이다.

누군가 뒤에서 마법을 썼다.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누군가 발로 내 등을 걷어찼다.

‘역시.’

있긴 하군.

그래. 지키는 사람이 없을 리가 없지.

바닥을 훑어보니 나르케는 이미 다른 경비에 의해 바닥에 짓눌린 상태였다.

누군가 내 허리춤에서 완드를 뽑았다.

“뭐야, 신인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온 거야?”

“수사국에서 나온 놈 아냐? 잘 확인해 봐.”

누군가 등을 또다시 거센 힘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기회인데.

아까 술집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러지 못했지만, 이들에게 정신조작마법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하다.

폭력은 적당한 선에서 멈추게 하고, 그들의 상사에게 데리고 가게 하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몸에서 힘을 뺀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우리를 붙잡고 있던 사람 셋이 일순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신부님?”

신부님?

아까 들렸던 목소리는 구인류 여성의 목소리였다.

‘프림로즈 패스에 사제가 발을 들여?’

아니.

운이 좋네. 벌써 잡을 수 있을 줄이야.

일반적인 가톨릭 사제가 아니다.

여기에 발을 들이는 사제가 어디 소속이겠는가?

“여기서 또 만나네요, 제레마이야 씨.”

바닥을 비추던 하얀 빛이 눈을 찔렀다.

하지만 목소리로 충분히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까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문 닫았다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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