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78화 (178/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78)

루도비카가 한참 나를 쳐다보다, 마찬가지로 가볍게 대답했다.

“궁금해요? 그런데 아쉽게도 맨입으로 알려 드릴 수는 없어요.”

“맨입…? 투자금이 얼만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 제가 뭘 믿고 투자해야 하죠?”

“당신의 방탕함?”

나는 웃는 얼굴로 루도비카를 응시했다.

루도비카가 어깨를 으쓱이며 상체를 뒤로 뺐다.

“싫다면 됐어요.”

“아닙니다. 싫다뇨~ 그런데 루도비카 씨가 생각하기에도 제 의문은 지극히 정상적인 궁금증이잖아요? 안 그래요?”

나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방금 만났는데 제게 어떻게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거죠? 투자금으로 얼마를 내야 할지 아직 듣지도 못했지만… 제가 그 돈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워낙 재능이 뛰어나니 제안 한번 해 보는 거죠. 하고 말고는 당신 자유예요.”

루도비카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애초에 자본금으로 제 돈을 더 많이 넣을 거고, 1차 자금으로 5,000만 펠 정도는… 당신도 못 낼 것 같진 않은데요?”

5억?

나는 헛웃음을 쳤다.

단독으로 보면 많겠지만 내게 기대하는 액수로는 적다.

특히나 이게 플레로마까지 낀 사업의 투자금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내 표정을 이해했는지 그가 가볍게 웃었다.

“당신 돈만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요. 워낙 놀고먹으면서 살고 싶어 하길래, 그저 당신에게 자리 하나 내주려는 것뿐이에요. 우리도 적임자가 그 자리에 있으면 편하고 좋거든요.”

“…….”

“게다가….”

루도비카가 장갑을 벗고 내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손짓과 함께 손목의 동맥 위에 창백한 손가락이 겹쳤다.

“당신은 다른 쪽으로도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요.”

“…….”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가 기대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

이자나 프라이부르크의 주교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플레로마가 대놓고 마력을 느끼면서 저런 말을 한다, 그건 내 자질을 알아차렸다는 말이다.

‘…제레마이야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니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는 거겠지.’

플레로마가 운영하는 건물이니 그들 세계에서 사용하는 기체가 공기에 깔려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안 그래도 그 주교들도 바로 내 자질을 파악했었지.

‘다행이네.’

분위기를 이런 쪽으로 끌고 가길 잘했다.

본능적인 위기감을 자연스럽게 마음이 동하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

어쨌거나 정보 하나 더 얻었다.

나를 플레로마로 입단시켜 겸사겸사 실적 높이는 데에 써먹을 생각이라면, 그가 내게 접근해 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알려 주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대신, 테스트를 거치고 나면 알려 드리죠.”

“테스트?”

“그래요.”

태평한 얼굴을 유지하면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이놈들… 뭘 시키려고?

“먼저, 여권이랑 통장부터 확인해 볼까요?”

* * *

이번 주 들어 제일 맥이 탁 풀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어이없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대놓고 등쳐 먹고 있는 걸 보아하니, 상황은 순조롭다. 패배는 상대를 무시하는 자에게 향하는 법이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물었다.

“이제 통장은 됐어요?”

“네.”

위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투자자 콘셉트를 잡고 시작했지.

어제저녁부터 레오가 바이에른의 기술자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위조 서류를 만들라 명령한 덕분에 자정쯤 되었을 때 이미 완성이 되어 있었다.

내가 새 신원을 만든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그도 이런 준비는 척척 해냈다.

‘돈이랑 지위로 안 되는 게 없구나.’

이 나라가 그렇게 일 처리가 빠른 나라가 아닌데.

놈의 태도 변화와 별개로, 그의 배려에 있어서는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작년과 달리, 이제는 니콜라우스도 이런 것을 준비할 힘이 있다.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레오와 나 사이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나 스스로 해결할 힘쯤은 있어야 한다.

‘물론 애초에 그놈은… 내가 우려하는 것처럼 나를 배반할 성정이 아니기는 하지만.’

알고 있다. 그와 나의 군신 관계는 당장 뒤바뀌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는 레오의 충성심과 신뢰를 잘 안다.

소설에서부터 그는 자신보다 낮은 자리에 있던 친구를 제국 제일의 자리로 올리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엘리아스를 황제로 만들어 주겠다는 무의식적인 일념 하나로 정치에 발을 들인 17살 때부터 27살까지 모든 순간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무시한 채 중립을 유지했고, 그러면서도 기회주의적으로 보이거나 자신의 의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유연하게 대처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 10년간 쌓아 온 무게를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감췄던 패에 배치했다. 엘리아스의 쿠데타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건 엘리아스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내가 읽은 레오의 그 모든 감정은 전부 엘리아스에게 향했던 것이다.

그것이 내게 동일하게 향해 있을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특히 그가 루카에 관한 모든 사실을 안다면?

“…….”

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고, 그는 자신의 진실한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 자신도 본심이 무엇인지 의식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엘리아스 앞에서의 레오는 잘 알지만, 내 앞에서의 레오는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을 파악하기 전까지 적정 거리를 두는 것밖에 없다.

“…안 들리세요? 저기요.”

장갑을 낀 손이 내 눈앞에서 흔들렸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루도비카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여권이 여기에 없네요.”

아까 여권은 보여 주지 않았다. 통장은 내가 마법으로 성씨만 덮어서 보여 줬고.

놈들이 내 뒷조사를 하지 않게 하려면 아무리 가명이라도 그에게 풀네임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아직은.

“루도비카 씨가 제게 숨기는 것이 없을 때에 보여 드릴 거예요. 이 정도 고집은 받아 줄 수 있잖아요? 자, 그래서.”

나는 루도비카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테스트는 이게 끝이 아닐 것 같은데, 맞나요?”

“눈치가 빠르네요.”

“…….”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다음 테스트가 진짜다.

루도비카가 온화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니면 이것도 의도가 있는 말이었나요?”

작업 멘트냐는 말이지. 그럴 리가?

물론 알아서 상황을 만들어 줬는데 그냥 버릴 이유는 없다. 나는 부정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루도비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자러 가죠. 대신 내일 새벽에 만나는 걸로 해요.”

* * *

새벽 5시쯤, 우리는 수도 밖으로 워프했다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여러 장소를 거쳐서 학교로 이동했다.

담임이 사라진 탓에, 이제 우리 학교는 오전 수업마저 사라졌다.

결국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쭉 훈련만 해야 하는 셈이었다.

‘대신 저녁 훈련이 사라졌으니 나쁘진 않지.’

담임 교수 구할 단서를 찾을 시간이 생긴다.

저녁 6시, 훈련이 끝난 뒤 나르케가 내게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컨디션 나쁘지 않네~ 어제 알코올을 그렇게 들이부었는데 말이야.”

“하하….”

나는 가볍게 웃음으로 답했다.

나르케가 뒤돌아 우리 팀원들에게 인사했다.

“얘들아, 오늘도 잘해 줘서 고마웠어. 이제 저녁 훈련은 없으니까 내일 보자~”

어차피 1분 뒤 점호할 때 볼 것이다.

하이케 아인시델을 제외한 우리 팀 친구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밖으로 나갔다.

하이케는 3차가 시작된 뒤부터 말없이 나와 나르케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기에, 아마 우리가 나갈 때쯤에야 같이 나갈 것이다.

어쨌거나….

‘순조롭네.’

처음 팀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3차 시험 준비를 위한 훈련은 2차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순조로웠다.

훈련장 밖으로 나오자, 로비에 레오와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레오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다른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2학년 3차 진출자 전부 모였지? 인원 체크하고 저녁식사 하러 가자.”

오늘부터는 모든 활동의 시작과 끝마다 인원 체크가 이루어진다.

레오가 제 이름에 체크 표시를 하고 명부에 적힌 순서대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뒤쪽으로 왔다.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어.”

“나르케.”

“으응~”

레오가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흘끗 보고, 내 어깨를 툭 치고 뒷줄로 넘어갔다.

어깨에 마력이 스며들었다.

“…….”

이 새끼 전에도 애들 앞에서 악수하더니만 자꾸 무섭게….

어쩐지 조용히 넘어간다 했다.

나르케는 그저 피식피식 웃음만 터트리고 있었다.

그의 이상행동을 다른 학생들이 눈치채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뜻이겠지.

고유능력이 발현된 마력이 스며든 걸 보니 내가 약속을 지켰는지 확인하려는 듯해 보였다.

“하이케까지 다 왔네. 자, 이제 돌아가도 돼. 다들 내일 아침에 보자.”

레오가 다시 맨 앞으로 가서 손뼉을 쳤다. 학생들이 흩어지면서 그의 친구 몇이 레오 곁으로 다가갔다.

“오늘 바이에른 음식 나온대! 빨리 가자.”

“그래? 난 오늘 안 먹을 거라서. 너희끼리 먹어.”

“어? 왜?”

“할 일이 많아서.”

‘할 일 많겠지.’

곧 학생회장 선거도 있고, 이번 일로 학교가 학생회를 계속 호출하고 있기도 하니까.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서 병실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병실 문을 열고 침대 옆에 앉은 인간을 발견한 뒤 굳었다.

“…….”

“왔어?”

내가 적어 놓은 노트를 읽고 있던 레오가 고개를 들었다.

“할 일이 많아?”

“학과장 교수님께서 매일 병문안 가라고 하셨어.”

핑계 아닌가 싶긴 했지만, 그가 그렇다는데 더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대답 없이 자리에 앉았다.

“어제는 잘 다녀왔어? 네가 써 준 노트는 아침에 다 읽었어.”

“그런데 왜 또 읽고 있냐?”

“내가 잘못 알고 조사했나 싶어서. 그 루도비카 슈나이더라는 사람, 그거 가명이야. 검찰에서는 프림로즈 패스에 그런 사람에 대한 증언도 기록도 없다고 했어. 네가 들어갔던 호텔도 사업주는 구인류 남성이야.”

당연한 일이다. 사업장이 남의 명의인 것도 마찬가지고.

기록에 옳은 정보가 올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21세기에도 세금 때문에 호적을 남의 집에 옮겨 놓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 시대에, 그리고 이런 범죄 집단이라고 다르겠는가?

“아마 루도비카 슈나이더라는 사람은 네 연기 덕에 경계가 많이 풀렸던 모양이야. 어쨌거나 비트리올까지 받은 플레로마를 발견했으니 이제 너는 빠지고 황실과 정부에 수사를 맡겨도 될 듯한데.”

“…….”

공적이 그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수사가 성공적일 거라는 보장이 없다.

황실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법, 즉 신력 마법사를 이용해 루도비카의 정신에 개입하려 할 것이다.

“알잖아.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었으면 내가 나서지도 않았어.”

“…….”

“오늘은 의원들에게 가야 해. 여기에 희망을 걸어 보자고.”

나는 레오가 가져온 서류 뭉치 가운데 끼어 있는 편지를 뽑아 흔들었다.

전에 찾아냈던 두 검사에 대한 심문을 추가적으로 요청해, 그들과 함께 프림로즈 패스 이야기를 나누었던 의원들을 파악해 냈다.

“안 그래도 루도비카 슈나이더는 내게 정보를 알려 줄 생각이 없어. 내가 직접 새로운 정보를 얻어야 할 상황이야.”

“이미지가 너무 확실히 잡혔구나.”

그렇다.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생겼다.

루도비카는 한량에게 여러 설명을 해서 뭣하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게다가 초기에 계산했던 그들의 필요, 즉, 돈과 인맥은 이제 와서는 크게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다. 그들이 계시를 통해 일을 해결해 보려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회장까지 대면할 수 있도록 새로운 필요를 찾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눈 앞을 가리는 검은 머리칼이 밝게 변했다. 아마 눈도 푸르게 변했을 것이다.

레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항상 적응 안 되네. 벌써 반년이나 지났는데.”

“그럴 만도 하지.”

“이미 알코올 해독은 나르케가 해 준 것 같고, 건강도 나쁘지 않네. 나는 이제 가 볼게. 할 일이 많다는 건 진짜라서.”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간단히 인사해 그를 내보냈다.

그리고, 어제 워프 사건이 있던 때부터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슬슬 올려 볼까.’

재시도 특성 레벨 말이다.

지금 상황이 썩 안전하지 않으니, 조금은 투자해서 올려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재시도 Lv. 1]

― 내 직전 체크 포인트로 이동

― 1회 이용 2.0 포인트

― 다음 레벨까지 2.0 포인트

* 보유 포인트: 19.0 포인트

* 다음 포인트 획득까지 행운 0.6점

‘19포인트.’

이 정도면 충분하다.

레벨 좀 올리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눈앞의 글자가 바뀌었다.

[재시도 Lv. 2]

― 내 직전 체크 포인트: ‘501호 워프 마법’

― 1회 이용 2.0 포인트

― 다음 레벨까지 4.0 포인트

* 보유 포인트: 17.0 포인트

* 다음 포인트 획득까지 행운 0.6점

“…!”

직전 체크 포인트가 어딘지 나왔다.

나는 혹시나 해 한번 더 레벨을 올렸다.

[재시도 Lv. 3]

― 내 직전 체크 포인트: ‘501호 워프 마법’

― 6시간 이내 일회성 체크 포인트 수동 설정 (0/3)

― 1회 이용 2.0 포인트

― 다음 레벨까지 6.0 포인트

* 보유 포인트: 13.0 포인트

* 다음 포인트 획득까지 행운 0.6점

돌릴 지점을 내가 직접 고를 수 있다고?

이번 챕터 내에서 기회가 딱 세 번뿐인 건 아쉽지만 어차피 자주 쓰지 않으니 쓸 만하다.

‘미친 거 아냐….’

진작 할 걸 그랬네.

물론 작년에는 포인트가 넉넉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긴 했다.

그때, 나르케가 병실로 워프해 들어왔다.

“엇, 방금 레오가 왔다 갔나 보네~ 이제 의회로 가자고 하려고 왔는데, 준비는 됐어?”

“그래.”

나는 나르케에게 편지를 넘겨주며 말했다.

[루돌프 티르피츠]

[알렉산더 클루거]

“읽어 봐. 그 검사들하고 프림로즈 패스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던 연방위원회 의원이야.”

“아, 이번에도 많지 않네~ 부담은 없겠어. 자, 그럼 가자.”

나는 니콜라우스의 예복으로 갈아입고 나르케의 도움을 받아 검문소를 경유해 연방위원회 청사 안으로 워프했다.

여기까지 3분도 걸리지 않았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 새하얀 로브를 두른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황실에서 나온 신력 마법사다.

올 때마다 사람이 달라지는 걸 보니, 황제는 이 마법사들이 니콜라우스와 결탁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나 보다.

“바로 시작하죠.”

“예, 이쪽으로 오세요.”

마법사가 우리를 이끌고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더니, 먼지가 쌓인 문손잡이를 잡았다.

“먼저 루돌프 티르피츠 의원님부터 시작하시는 게 맞지요?”

“예.”

마법사가 문을 열었다.

회의실 맨 앞자리에, 한 중년 마법사가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이 검사들과 프림로즈 패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연방위 의원 둘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안전상의 이유로 나중에 데려올 것이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아, 니콜라우스 경. 갑자기 이렇게 보자고 하신 이유가…?”

“별 이유는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완드를 빼 들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의원의 눈이 잠깐 풀렸다가 돌아왔다. 그가 당황한 눈으로 입을 벌렸다.

“잠깐, 경! 이게 무슨…!”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거기까지 읊자, 그의 눈이 풀렸다.

나는 쓰러지려는 그의 머리를 붙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마법이 바로 통하지 않은 탓인지, 황실에서 나온 마법사가 당황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반면 나르케는 감을 잡은 듯했다.

‘이 정도면….’

플레로마다.

정부 내 플레로마.

정확히는 정부가 아니라 의회지만, 그들은 혼용해서 쓰고 있다.

‘우선 한 명만 부르기를 잘했네.’

“다른 의원님도 불러 주시겠습니까?”

“예? 지금…?”

“지금 당장 부르세요. 1분이라도 빨리!”

나는 마법사에게 버럭 소리쳤다.

1분이라도 빨리 데리고 오라고 했더니 이걸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놀랍게도 1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의원이 당황한 낯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오셨습니다!”

“황명이라 하셔서 왔는데, 잠깐.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각하께서 여긴 왜…?”

황명?

융통성 고맙네.

나는 완드를 뽑아 빠르게 주문을 읊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 순간 의원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나는 완드를 까딱여 그를 붙잡았다.

옆에서 먼저 쓰러진 의원을 붙잡고 있던 나르케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둘 다 플레로마였구나. 느낌이 안 좋다 했어.”

―“아마 둘 다 플레로마 내부에서는 스트라우치처럼 고위직에 있는 놈들일 거야. 아니면 그것보다는 좀 낮거나.”

이렇게 주문이 안 먹는 놈은 적어도 일반 사제는 아니다.

애초에 스파이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한 인물에게 좋은 자리를 주지 않을 수가 없지.

작년 10월, 곤충 건으로 연방위원회에 방문했을 때에 호감도 변화가 잡히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스트라우치와 다른 교구 소속이기 때문일 테다.

이미 교구 간 경쟁이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

“크억….”

먼저 조작 마법이 걸린 사람의 입에서 괴성이 나기 시작했다.

“…!”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이것이다.

심문을 마친 뒤에는 시간을 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플레로마 지도부에게 방어할 시간을 벌어 주는 꼴이 된다.

아까, 레오에게 ‘정신조작마법으로 루도비카를 통해 회장과 접촉하기는 어렵다’는 뉘앙스로 답변했지.

이 얼마나 손쉽고 시원한 방식인가?

하지만 이것을 떠올려야 한다.

겔다 아스만을 플레로마로 만들었던 사제와 겔다 아스만의 뇌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제에게 정신조작마법을 걸었을 때 겔다 아스만이 상황을 바로 알아차렸지.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특히 루도비카 슈나이더는 계시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제다.

그에게 안전장치가 깔려 있지 않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나는 두 의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 빠르게 끝내 보도록 합시다. 프림로즈 패스의 ‘회장’이 누굽니까? 이름이 뭐죠?”

“크으으….”

“그레고리오…. 잠깐, 이제 그만….”

“좋습니다. 그레고리오는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습니까?”

그가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르케가 빠르게 해석해 주었다.

“저 사람도 모릅니다, 경.”

“으아아아아아악!”

퍼억—! 투둑, 툭—

“허, 허억…!”

황실 마법사가 경악에 빠진 채 뒷걸음질 쳤다.

먼저 조작 마법에 걸렸던 의원의 몸에서부터 비트리올이 잔뜩 터져 나왔다. 비트리올이 닿은 부분이 부식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진흙이 의원의 몸을 뒤덮은 순간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콰아앙—!

나는 먼저 조작 마법에 걸렸던 의원을 마법으로 짓누르며, 다른 의원의 머리에서 조작 마법을 해제했다.

“자폭 마법인가요? 당신들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아는군요.”

“그만, 그러니까 그만…! 경, 그레고리오에 대해서는 우리도 아는 게 없습니다!”

내가 무어라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는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그레고리오는 플레로마 소속이 아닙니다…! 그자는 우리에게 도움을 줄 뿐이지….”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줍니까?”

“사명 외에는 우리도 모릅니다! 당신도 우리 교계 제도를 잘 알겠지만 난, 난 주교도 아니라서 그것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아니, 주교라도 모를 겁니다. 보통은 그레고리오의 존재까지도 모릅니다.”

굉장히 횡설수설하지만,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술술 분다.

내가 다시 정신조작마법을 걸면 그는 죽을 것이다. 그렇기에 놈도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내게 모든 걸 불기로 결정했다.

“그럼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레고리오를 알고 있습니까?”

“…….”

그가 주저하기에, 나는 멱살을 잡고 입을 열었다.

―좁은 문으로….

“그, 그레고리오가 변절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레고리오가 플레로마를 돕지 않고 종교를 만들 수도…! 그러니까 감시만….”

“…….”

순간 나르케와 눈이 마주쳤다.

입꼬리가 절로 비틀려 올라갔다.

굉장한 정보다.

“종교 말이지요.”

“예, 예.”

“타깃은?”

“그, 그런 것까지는 모르는데… 아마도 프림로즈 패스에 있는 구인류들 상대로 시작하겠지요….”

“왜 그레고리오가 플레로마 안에 있지 않는 겁니까?”

“그쪽이 원하지 않았습니다.”

“신흥 종교를 만들 거라는 증거는?”

“모릅니다. 그런 것은 아마도 지도부에 계신 분들의 고유능력으로 알아냈을 겁니다.”

아는 게 없군.

확실히 여기나 저기나 회장에 대해서 잘 아는 자들이 없다.

대신, 그레고리오에 대한 플레로마 내부의 흐름은 잘 알고 있다.

“아직도 당신들은 그레고리오를 잘 활용하고 있는 듯했는데. 변절할 게 뻔한 사람을 곁에 둔다?”

“그만큼 강력한 정신 계열 마법을 쓸 수 있는 자가 없으니까요. 우, 우리도 그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닙니다.”

그렇겠지. 잘 알았다.

“이해했습니다. 그레고리오가 머릿속으로 명령을 주는 자가 맞습니까? 당신들의 ‘사명’은 그를 통해서 주어집니까?”

“예, 예.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 이상으로는 저도 모릅니다! 저는 프림로즈 패스 전담반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면 그 프림로즈 패스 전담반은 그레고리오에 대해 잘 알고 있겠군요?”

“그렇겠지요….”

그가 제 동료를 흘끔거리며 거의 울먹였다.

이미 옆에서 내 장막에 눌린 그 의원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녹는 걸 직관한 탓에 거의 기절할 것처럼 얼굴이 새하얘진 황실 마법사와 달리, 나르케는 덤덤한 얼굴로 그것을 내려다보며 정화하고 있었다.

일단, 나 역시도 맨정신으로 보기에는 께름칙한 광경이었다. 나는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참고 다시 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묻고 끝내겠습니다. 절대 죽을 일 없게 만들어 드릴 겁니다. 믿을 수 있습니까?”

“예, 예에!”

“이런 자폭 마법은 모두에게 걸려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우리 같은 정치인에게만….”

“정치인 중에서 주교는 없나? 주교는? 프림로즈 패스 전담반은?”

제 목숨을 위협하는 자폭 마법이 주교에게도 걸려 있었다면, 그때 그 프라이부르크 교구의 몬시뇰이 그렇게 어리바리하게 ‘왜 학생 하나 처리를 못 해서 이대로 가느냐’고 여유 넘치게 항의하지는 않았겠지.

“예, 예. 맞습니다. 그 정도로 높으신 분께는 해당되지 않는 게 맞습니다. 그쪽 전담반은 정치인이 아니니 걸려 있지 않을 거고요…. 이, 이제 된 겁니까?”

잘 알았다.

기밀을 발설하기 쉬운 위치에 있고, 그러면서도 대체 가능한 인력에게만 이런 마법을 걸어 두는 거겠지. 애초에 주교는 일반적인 신력 마법사들의 정신조작마법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테고.

“그래요. 됐습니다.”

나는 그의 멱살을 놓고 재시도 창을 불러냈다.

“30분 전으로, 재시도.”

* * *

나는 병실에서 눈을 떴다.

아까처럼 나르케가 침대 앞으로 워프해 왔다.

“엇, 방금 레오가 왔다 갔나 보네~”

“…….”

“이제 의회로 가자고 하려고 왔는데, 준비는 됐어?”

대답이 없자 나르케가 내 앞에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너 지금 상태가….”

“아니, 갈 필요 없어.”

“으응~?”

변절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도 아직은, 필요에 의해 서로를 이용하는 중이고?

답 나왔다.

“프림로즈 패스로 가자. 더 지체할 필요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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