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80)
루도비카는 자기가 뭘 들었는지 믿지 못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뭘 믿고 있다고요…? 당신이?”
“왜요~? 저 이래 봬도 세계 종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이렇게 놀고 싶어도 놀 수 없을 때는 종교로 마음을 다스리는 게 여러 방면에서 효과가 좋거든요.”
“어쩌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안 믿기세요?”
“말이라고 하시나요?”
“…….”
“혹시 그냥 멋져 보여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아뇨. 몇 년 전에 동방의 스님들이 뉴욕에 와서 종교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불교를 접했죠.”
루도비카가 헛웃음을 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부처님께서 이런 신도가 있다는 걸 알면 참 어이가 없으시겠군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리스도교 신자는 확실히 아닌 건가요?”
“네.”
그 말에 루도비카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착잡할 수밖에.
플레로마로 끌어들이기 제일 쉬운 대상은 기독교도다.
종파가 어쨌든 그 신을 믿어야 한단 말이다. 플레로마가 그 종교를 베이스로 한 이단이니 당연하다.
그리고 제국인 99%가 기독교도라는 걸 고려하면, 놈들은 이런 난관을 거의 겪지 못했을 것이다.
루도비카가 이마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아…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지.”
“왜요? 불교 안 좋아하십니까? 불교는 약 2,500년간 인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발전해 온 종교로 우리에게 삶과 우주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파인지는 몰라도 뼛속 깊이 그리스도를 믿으며 사제로 계신 루도비카 씨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불교의 가르침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접근해서는 그 정수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아니, 불교가 싫다는 게 아니고….”
루도비카가 이마를 붙잡고 침묵했다.
그러다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제레마이야 씨가 이렇게 많은 단어를 사용해 말씀하시는 걸 보니 진짜 열성적인 신도인가 보군요.”
“의외세요?”
“네.”
루도비카는 바로 대답해 놓고서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이미 다 봤습니다.”
“하하, 좀 미안하네요.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우리는 알다시피 폐쇄적인 사업을 하거든요. 지도부의 승인을 받은 분들만 참여할 수 있어요.”
“아….”
나는 슬슬 뜻을 파악한 척하며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루도비카가 양손을 잡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개종을 하라는 건 아니지만… 사업 승인을 받으려면 조금은 뜻을 함께해 줄 필요가 있어요. 기독교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아요?”
사업 승인이 아니라, 플레로마로서 살려면 그래야 하는 거겠지.
이교도를 데려다가 비트리올을 심는다고 일이 뚝딱 끝나는 건 아니니까.
집단에 녹아들지 못할 테니 세뇌가 필요할 수밖에.
“많이 압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컸으니까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루도비카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어딘가로 워프했다가 돌아왔다.
이제는 가방 대신 손에 와인병이 들려 있었다.
“테스트 시작할까요?”
“이미 시작 아니었나요~?”
내 능청에 그가 미소지었다.
“사실 제게 선교 활동은 썩 친숙하지 않아요. 저는 선교 담당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종교 이야기는 뒤로하고, 이것부터 말해 볼까요. 강한 마력에 관심이 있나요?”
“딱히요. 전 돈 버는 것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마력보다 돈이다? 그 둘을 따로 보다니 미국인 같은 말이네요. 그러면 더 오래, 더 건강히 사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 부분이라면 말이 달라지죠.”
“오래 살면 더 오래 놀고먹고 즐길 수 있으니까요?”
“네. 그거예요.”
루도비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병의 코르크를 땄다.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자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
조명을 켜지 않고 오로지 창밖의 노을에만 의존한 탓인지 붉은 포도주가 더 붉게 보였다.
그가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구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불교 신자이신 제레마이야 씨에게는 맞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지만요.”
나는 대답 대신 잔을 내려다봤다.
‘테스트라고 했지.’
정말 이제 시작이겠다.
물론 수가 뻔히 보여도 피할 이유는 없다.
나는 뒤늦게 제레마이야가 내뱉을 만한 질문을 꺼냈다.
“하느님이 죽음을 만들지 않았다는 말은 새롭군요. 신이 죽음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겁니까?”
“아퀴나스의 철학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겠네요. 오로지 성서 텍스트만을 근거로 하자면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죽음 주길 원치 않으셨지만 아담의 죄로 죽음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죽음은 원죄의 대가입니다.”
루도비카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원죄를 씻을 수만 있다면, 죽지 않을 수 있겠지요?”
“…….”
굉장한 비약이다.
그리고 나는 종교인이 아니라서 경전 구절을 들어 사실처럼 확신하는 사고방식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는 슬슬 정신이 흐려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원죄 없는 인간이 신인류라고 생각하는데요. 구인류인 당신께 하기는 미안한 말이지만.”
“단순히 사람 배에서 나는 것을 원죄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진정한 원죄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속죄하고 죄가 아닌 힘으로 바꿀 수 있는지 알고, 그렇게 해서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품에 속하는 좁은 문을 찾아냈습니다.”
“…….”
“죽지 않고 영생하는 법을 안다는 말입니다, 제레마이야 씨.”
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루도비카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이거 정말 사이비 같군요….”
같은 게 아니라 사이비지.
이게 사이비가 아니면 뭐가 사이비냐.
그렇게 생각한 순간, 속에서부터 익숙하지만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멍하니 테이블을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들어 내 잔을 살폈다.
고개를 들어 보려 했지만 시야가 일렁이며 앞에 앉은 인간의 형상도 같이 흔들렸다.
이 순간의 기억은, 여기서 끝이었다.
* * *
[…예레….]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제국식 발음이었다.
나는 누군가 다급히 내 뺨을 치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어났어요? 제레마이야 씨.]
“…….”
[이런 반응은 처음 봐서 죽는 줄 알았어요. 방금 거의….]
나는 비로소 아까 느꼈던 감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프림로즈 패스의 약을 맞았을 때의 느낌이었다.
뭘 탔나 했더니만, 이거였다.
나는 물속에서 대화를 듣는 기분에 눈을 찡그렸다.
[약 해 본 적 있어요, 없어요?]
“…….”
대답하지 않자, 그가 내 눈을 잡아 열고서 작은 랜턴을 눈에 비추었다.
[…좀 더 넣어야겠네.]
죽는 줄 알았다고 놀랄 때는 언제고 더 투약하겠다?
모순이 있다. 왜일까.
답을 생각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하는 효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거겠지.’
아마 동공반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그 ‘원하는 효과’가 무엇인가?
그 어떤 반사 작용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지는 않을 것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다, 나는 엊그제 자정에 있던 일을 떠올렸다.
나르케가 내게 정신조작마법을 걸었을 때, 분명히 프림로즈 패스에서 맞은 약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지.
‘…아.’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이게 이놈들의 진위 판단 심문법이다.’
그래서 테스트라고 부르는 거고?
나는 웃음이 잇새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걸 느끼며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한번 퍼즐이 맞춰지니 플레로마가 이 약을 개발한 이유도 이제 알겠다.
‘회장에게서 자립하기 위해서겠지.’
정신을 조작하는 마법을 널리 쓰기에는 신력 쓰는 마법사들이 흔치 않은 데다 그들을 포섭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회장의 도움을 받으면 그의 입지만 굳건히 해 주는 꼴이 된다.
그러니 놈들은 정신조작마법과 비슷한 효과의 마법약을 개발하고자 했을 것이다.
순간 피가 온통 약물로 변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또다시 시간이 꽤 지난 듯했다.
루도비카가 내 코와 입을 가볍게 누르고 있다가 천천히 손을 뗐다. 그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무어라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어디까지 생각했지.’
그래.
아까 내가 한 추론이 맞다면, 나는 그의 심문에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
경험상 이 약도 약효가 풀릴 때 잠꼬대하는 것처럼 말할 기력이 돌아왔지.
그리고 지금 그는 적정 비율을 찾은 듯했다. 쥐어짜 내면 어떻게든 말할 기력이 있었다.
정신조작마법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으니 연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계시를 줄 수 있다면 이런 짓 안 해도 될 텐데.’
아직 회장을 만날 수는 없다 이거냐?
고맙게도, 신력 덕에 내게는 이 약물이 크게 통하지 않는다. 신체에는 제대로 통했으니 할 말 없지만 적어도 정신 면에서는 그렇다.
즉, 이것도 회장에게 가까워질 기회다.
[…이 테스트 방법은 당신에게는 못 쓰겠네요. 약에 거부감이 심하시군요. 이런 약 매일 하고 살 것처럼 생겼는데 의외로….]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사이비 같다고 하셨죠.]
“네.”
[마법이 이 세상에 생겨난 지가 언젠데 이 정도에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신의 뜻이라면 우리 인간이 못하는 게 있었던가요? 하지만 말했듯이 개종을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지도부에 계신 분들 앞에서만 뜻에 맞춰 준다면 개종하지 않아도 사업할 수 있어요. 건강히 오래 사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했죠. 맞춰만 주면 당신도 영생을 살게 해 줄게요.]
“제게 왜 그렇게까지 해 주시는 거죠?”
[종교는 달라도 우리의 일원이 되는 셈이니까요. 즐기면서 살고 싶다면서요.]
루도비카가 술을 마시며 나를 바라봤다.
선심 쓰는 척 잘 봤다.
회장에게서 독립하려는 시도는 좋았다.
그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줄 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했다.
“아뇨.”
[…….]
“그건 좀 무섭군요. 영생이라니.”
정신조작의 효과를 내는 상황, 즉 진실만 말할 상황에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놈도 이제 받아들이겠지.
“전 그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진 않아요.”
루도비카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슬슬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질 즈음, 루도비카가 산뜻하게 말했다.
[그럴 수 있죠. 괜한 부담을 주었군요.]
“이해한다니 좋네요.”
[사업은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대답 대신, 먼저 차분히 고민했다.
물러나는 것도 정도가 있다.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는 게 낫다.
“종교 활동만 아니라면 좋지만, 두렵긴 하네요. 루도비카 씨처럼 포용적인 분들만 계신 게 아니잖아요? 솔직히 이제는 이렇게까지 사업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거든요….”
나는 말끝을 흐리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루도비카가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먼저 이렇게 하죠.]
루도비카가 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책임질게요. 싫다 하시니 허락하실 때까지 그 누구도 당신에게 비트리올을 주지 않게 하겠습니다.]
“…….”
나는 표정 없이 그를 바라봤다.
말같잖은 소리다.
하지만, 거의 다 왔다.
[대신, 안전장치 하나 깔고 가죠.]
콰앙―!
루도비카가 발로 바닥을 굴렀다.
순식간에 공기가 새까맣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혹의 바다에서 안온함을 취할 수 있으리라 희망하는 자여, 축복받았도다.
속이 울렁거리며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나는 천천히 입꼬리를 비틀었다.
환영이다.
나는 레오와의 약속을, 이 시간대에서는 어길 수밖에 없다.
그와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평화로운 해결책. 나라고 그게 싫을 리가 있나.
이 과정 없이는 회장을 만날 수 없다.
루도비카는 나를 회장에게 넘기고 싶지 않을 테고, 회장 역시 플레로마와 결이 비슷한 종교인이라면 나를 포섭하려 들 테다.
그렇다면 이자는 당연히 나를 플레로마에 한 발 걸치게 한 뒤 사상 교육을 시키려 들겠지. 이게 안전장치다.
반대로, 이 과정만 거치면, 이제 내 목표물을 만나기까지 머지않았다는 말이다.
무언가가 왼손 손바닥과 손목을 한 줄로 주욱 그었다. 이어 내 것이 아닌 살 잘리는 소리가 나더니 낯선 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루도비카의 서늘한 손이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이거 보통이 아니네.]
루도비카가 내 손목을 꾹 누르며 웃었다. 미묘하게 다른 피 냄새가 섞여 진동했다.
[세례받은 적 있잖아요. 23년 전에 한 번, 15년 전에 한 번.]
“…….”
[어쩌다 세례를 두 번이나 받고 또 그런 마당에 어떻게 개종을 했는지도 궁금한데요.]
“…….”
[이제 와서는 큰 의미가 없죠. 눈 뜨면 다른 곳일 거예요.]
―이 마지막 술잔, 내 영혼을 바쳐 여명을 위해 축복의 경배를 올리노라.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만족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루도비카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따 봅시다.]
* * *
나는 한참 뒤 번쩍 눈을 떴다.
이미 약으로 인한 통증도, 칼에 베인 통증도 깨끗이 사라졌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전형적인 노인이었다.
“…….”
다소 뜬금없는 광경임에도 그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날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