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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83화 (183/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83)

“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너무 오래 맞아서 미친 건가. 혹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돌아가길 바랐나? 내 앞의 이 인간도 사실 내가 만든 가짜일지도 모른다. 이미 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들릴 리 없는 소리를 듣는 것일지도….

콰아앙—….

순간 레오가 상체를 돌려 공격을 막았다.

이미 귀는 일정 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차단했지만, 그가 처음 보는 표정으로 이를 악무는 것이 빛으로 번진 시야 속에서 보였다.

“…….”

알았다.

눈앞의 레오는 진짜다.

나는 그가 공격에 여유롭게 대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는 내게 있어 언제나 마법의 표준이었고, 언제든지 나를 이기는 선생이었으므로… 내 상상을 뛰어넘는 이 레오나르드는 진짜일 것이다.

레오가 발을 굴러 등 뒤에 장막을 쳤다.

코앞까지 닥치던 진동이 멀어졌다. 그가 장막에 온 마력을 싣고서 내 뺨을 쳤다.

“안 들려?! 루카스…!”

들린다. 나는 가능한 빨리 입을 열었지만 내 시간과 그의 시간은 속력이 다른 듯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레오는 내 목을 감싸고 미친 듯이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어버리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으며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평소의 깔끔했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평정이 완전히 무너진 것을, 나는 레오의 목소리가 잔뜩 떨리기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그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마지막 주문을 읊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로다.]

콰앙—!

끊임없이 닥쳐오는 굉음 속에서 레오가 얼굴을 떼고 내 어깨를 붙들었다.

“돌려. 이제 됐잖아, 루카스. 이제 그만 하고 돌아가.”

“…….”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겠지만, 이건 아니야. 이런 게 대의라면 나는….”

그가 재시도를 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이런 게 대의라면, 나는 이제 뭐가 정의인지 모르겠어. 나는 아직 부족해서 몰라. 난 어머니처럼 훌륭한 정치인도 아니고, 반발심에서 비롯된 고집이든 뭐든 엘리아스처럼 정의를 악착같이 좇지도 않아. 나는… 언제나 모두가 깔아 놓은 길을 따라 걸어왔고, 그 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이의 생명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구인류가 유대 민족을 학살할 것이라 했지만, 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말대로 신인류가 초월적인 존재였다면 그는 구인류를 억제해야 한다는 개소리 따위를 지껄이지 않았겠지.

대상을 단순히 흑과 백으로 나누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그자가 얼마나 스스로 생각을 해 본 경험이 적은지 말해 주는 단서가 된다. 생각보다 세상의 많은 것은 칼로 베듯이 반으로 나눌 수 없다. 내 사고의 총체를 0과 1로 나눌 수 없는 것을 알면서 내가 남을 무슨 지혜로 정의하는가?

비록 이제 같은 인간종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졌지만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인을 짓밟고 일어서길 원한다는 점에서, 신인류는 구인류와 다를 것 없다.

그는 그가 그토록 열등하다 비난한 구인류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같은 자들이 구인류를 학살하게 될 자다. 단순히 교수를 구하는 데에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그런 말을 할 것을 알고 있는지 레오가 내 생각에 대답하듯 말을 이었다.

“알아. 나도 알아. 저들은 조상의 피로 만들어진 평화 위에 서서 고작 이득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어. 그런데….”

레오는 내가 해석할 수 없는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왜 너여야 해?”

“…….”

“왜 네가 그들을 처단해야만 해? 단순히 이 일에 뛰어든 것을 말하는 게 아냐, 루카스. 무엇이, 왜 네게 시간을 돌릴 힘을 주어서 네가 저들의 악행을 해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거야? 무엇이 네게 이런 기회를 주는 거야? 이건 절대로 네 편이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너를 불태워 평화를 얻으려 하는 존재가 네 편일 수가. 설령 그게 이 세상의 신이라 해도 그가 널 위하지 않는다는 건 변하지 않아.”

레오가 빨라진 숨을 억눌렀다.

회장은 나로 하여금 다시 태어난 것을 믿지 못하는지 아까와 달리 흥분한 채로 레오의 장막을 공격했다. 놈도 내가 심심해서 세례를 건 게 아니라 무슨 꿍꿍이가 있음을 알아차린 듯했다. 아마 다시 붙잡히면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한 심문이 기다리고 있겠지.

동시에 이 방에 수많은 마법사들이 워프해 왔다.

레오가 나를 공격으로부터 막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 능력이 있어 고맙다고 할 수밖에. 네 능력이 널 목 졸라 죽이고 있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기대야만 하는 상황이 진심으로 증오스럽지만….”

“…….”

“약속해, 루카스. 그러겠다고 해.”

레오가 피로 범벅이 된 내 손을 붙잡아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그의 마력이 완전히 불안정했다. 깨닫기 무섭게 그가 등 뒤로 펼쳤던 장막이 깨지기 시작했다.

“돌아가. 과거에서 만나자.”

* * *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원래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던가.

저 멀리 붉은 해가 지고 회빛 하늘이 내려오고 있었다.

비록 피로는 여전했지만, 꼭 새 눈을 얻은 것처럼 시야가 맑았다.

나는 이제 두 발로 땅을 밟고 서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반사적으로 손을 말아쥐었다. 모든 뼈가 멀쩡했다. 손톱이 빠져 피로 물들었던 손끝도 귀의 감각도 물을 마신 탓에 계속 얼얼하던 목과 머리도 전부 원상태로 돌아가, 더없이 가벼웠다.

“루카스?”

내가 우뚝 멈춰서자 앞서가던 나르케가 뒤돌았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이제 보니 나르케의 까만 머리칼이 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눈을 찌르는 머리칼은 그보다 더 밝은 금색이었다. 급히 시선을 나르케 너머로 던졌다.

저 멀리, 프림로즈 패스로 진입하는 골목이 보인다.

돌아왔다.

두 번째 테스트를 위해 루도비카를 만나러 가기 전, 그 상황으로.

‘끝났다.’

긴장이 풀려 웃음이 났다.

피로로 졸음이 쏟아져 시야가 좁아졌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르케가 놀란 얼굴로 입을 벌렸다.

* * *

‘…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방금 길에 있었건만 눈을 뜨자 뜬금없이 이불 속이었다.

피곤해서 그냥 잠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

‘뭐야.’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눈을 뜨고 보이는 것은 내 방이어야 했다. 아니, 사건 이후 내 방은 폐쇄되었으니, 내가 눈을 뜨는 곳은 내 병실이어야 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기숙사에서는 볼 수 없던 남색 융단 커튼이 커다란 창마다 걸려 있다. 방의 넓이도 기숙사의 두 배는 되었고, 쓸데없이 오래되어 보이는 가구들이 마치 안할트의 내 방을 연상시켰다. 아니면 아델베르트의 방이든지.

그러나, 결론적으로 처음 보는 곳이다.

‘설마, 또…?’

또 누가 날 워프시킨 건가?

안 된다. 이 미친 일을 두 번 다시 겪을 수는 없다. 인간적으로 그래서도 안 되고 이제 내 인내심도 바닥나다 못해 핵 뚫고 들어가고 있다. 나는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마력을 집중시켰다. 다행히 마력의 운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번엔 그냥 다 쓸어버려야지.’

본능적으로 주먹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왜 멍청하게 마력을 안 막았는지는 의문이지만 고맙게 됐다.

콰앙—!

“어, 루카스!”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나르케가 불쑥 나타났다.

그를 본 순간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탁 풀렸다.

“…나르케?”

“일어났네. 하하, 갑자기 길에서 엎어지길래 놀랐잖아~”

그가 내게 다가와 이리저리 내 얼굴을 돌리며 통찰 능력을 썼다.

“술 한 병 한꺼번에 마신 게 문제였던 건… 아닌 것 같고. 괜찮아?”

“멀쩡해. 그런데 너 왜 여기 있어? 아니, 여기가 어디야?”

“아.”

나르케가 혼자 애매한 미소를 짓다가 문가를 바라봤다.

방이 조용해지자 바깥에서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끼익—

아까처럼 상아색 머리칼을 단정히 정리한 레오가, 늘 그렇듯이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서울 만큼 색이 옅은 눈동자에서는 어떤 생각도 읽을 수 없었다.

“…….”

“둘이 대화 좀 해~”

나르케가 내 말에는 제대로 답해 주지도 않고 그대로 웃으며 방 밖으로 나갔다.

레오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뭉치와 잡동사니를 대강 손으로 정리하고 내 옆의 소파에 앉았다.

“잠 좀 잤어?”

“…….”

“그 침대 왕궁에서 가져온 건데, 너한테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레오가 나와 같은 표정으로 내 눈을 들여다보다,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약속 지켰네.”

“…….”

그가 알고 있다.

이미 사라진 시간에서 제가 내뱉은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먼저 한 약속은 전혀 못 지켰지만.”

나는 이번엔 다른 의미로 대답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다.’

시간을 돌리고 나르케에게 치료를 먼저 받고서 그를 만나면 완전범죄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변수가 생겼을 줄은 몰랐다.

레오는 나를 추궁하는 대신 미소만 짓고 있다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말없이 놈의 손에 내 손을 턱 얹었다. 내 손을 휙휙 돌리던 레오가 나지막이 말했다.

“멀쩡하네.”

“멀쩡해야지.”

손뼈도 손톱도 다 제자리에 있다. 피부색도 원상태로 돌아왔다.

레오가 내 손을 다시 침대에 놓고 말했다.

“몸이 멀쩡하다고 전부 멀쩡하지는 않겠지.”

“…….”

“그래서, 원하던 정보는 다 얻었어?”

“그래. 전부 다.”

“고생했어.”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다른 친구면 몰라도 레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들리다니.

이건 거의 레오가 엘리아스에게 ‘네 행동이 옳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급으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다 끝나면 그때 말해 준다고 했지. 무엇이 끝나야 한다는 건진 몰라도, 네 말을 듣기까지는 아직 오래 남은 것 같은데. 내 생각이 틀려?”

“아니. 하지만….”

그가 옳다. 아직 전부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말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발뺌할 이유가 없다.

그 시간은 레오와 나만이 아는 시간이 되었고, 서로가 어떤 것을 아는지 이미 알고 있으니 굳이 입 밖으로 낼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나의 친구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네가 알고 있는 대로야. 나는 시간을 돌릴 수 있어.”

“…….”

“비록 돌아가는 시점을 내가 매번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네 말대로, 그날 프림로즈 패스에 떨어져서 정보를 얻고 다시 돌아온 게 맞아.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나는 내 다리에 덮여 있는 이불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이럴 수 있었냐고 묻고 싶겠지. 스트라우치를 만난 날 얻은 능력이야. 나도 이게 무슨 이유로 내게 주어졌는지는 몰라.”

한참 나를 보던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해 줘서 고맙다.”

그가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오랫동안 말이 없던 레오가 허공을 보며 말했다.

“네가 날 믿고 말해 주었으니 나도 그래야겠지. 루카스, 나는 네가 없앤 시간을 볼 수 있어.”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예상했지만 직접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다짜고짜 내 앞에 나타나 ‘돌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정확히는 너에게 남은 시간, 그리고 너와 관련된 시간만을 볼 수 있어. 추측이지만… 그 능력을 가진 건 너니까, 이미 사라진 시간의 흔적은 네 정신에만 남아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나는 그것을 읽어 낼 수 있는 것뿐이고.”

“언제부터.”

“네가 프림로즈 패스에 끌려갔다가 시간을 돌리고 곧장 내 방으로 워프해서 돌아온 순간부터.”

“…….”

나는 헛웃음을 칠 뻔했다.

‘…다 알고 있네.’

“처음에는 네가 경찰국에 다녀오는 대신 어디선가 약을 하고 온 건가, 싶었지만 우리 학교에 와서 교수님들을 심문할 때 확신했어. 아… 지금 너는 다른 시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그것만으로?”

“네가 아무리 잘 감춘다 해도 넌 꼭 그 안에 떨어졌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굴었고, 알 리가 없는 정보를 알고 있었거든.”

이미 지워진 시간의 흔적을 느꼈다.

‘경찰국에 다녀오는 대신 약을 했다’니. 놈들의 신약을 맞았던 흔적은 시간을 돌리면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레오가 알 턱이 없었다는 말이다.

내 침묵을 증거불충분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레오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워프도 혼자 못하지, 루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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