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84)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는 내 표정을 해석했는지 힘없이 웃었다.
“모를 줄 알았어? 학교에서도 남들 다 워프할 때 걸어 다니고, 워프할 일이 생기면 우리를 내보내고 나르케만 데리고 있는데 모를 수가. 아마도 나르케가 네 워프를 도와줬겠지. 당장 3일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기 워프하고 다니던 네가 갑자기 왜 그래야 했을까.”
“…….”
“아무 일도 없었는데 워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리는 없고. 아마도 함정에 빠진 직후부터 민감해진 거겠지. 단순히 문 앞에서 이상기류를 감지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안에 빠져서, …무언가를 겪고 왔으니 더는 혼자 워프하고 싶지 않을 수밖에.”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왜 네가?”
내가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굳이 알아야 한다면, 그걸 아는 건 레오가 아니라 나르케여야 했다.
그런데 그의 통찰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레오가 어떻게 나르케조차도 모르는 것을 알아냈는가.
레오가 내 말에 침묵하다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거 상처인데.”
“…미안하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왜 다른 친구들은 모르고 나만 아는지도, 마찬가지로 몰라. 나도 지금 혼란스러워. 너와 함께 있는 동안 점점 내게 들어오는 다른 시간의 정보는 넘쳐나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정신이 없어. 그래도, 내가 아는 비슷한 사례를 말해 보자면….”
레오가 턱을 쓸며 말했다.
“루카스, 나는 마법의학에 재능이 있어.”
“…? 그래….”
“…아니, 잘난 척하려는 건 아니고…. 끝까지 들어.”
레오가 헛기침하고 말을 이었다.
“마법의학에 재능이 있다는 건 곧 마력의 공격성이 낮다는 말이야. 대부분의 마력은 공격성을 기본 특성으로 하기에 다른 마력에 닿기만 해도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키지. 하지만 난 아니야. 나는 전투마법에 완벽히 불리한 체질을 가졌어. 의식하지 않으면 내 마력은 상대를 온전히 공격하는 대신 반쯤 상대방의 마력에 스며들거든.”
알고 있다.
어쩌면 신력과도 비슷한 힘이지만, 소설 속의 레오가 한평생 저주했던 능력이다.
“그런데 거기까지야. ‘반쯤’ 스며든다고 했지. 아무리 마법의학에 적합한 체질을 가졌다고 해도, 피나게 노력하지 않으면 내 치유 마법은 상대를 일부 공격해. 루카스 너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치유 마법을 쓰는 걸 본 적 있어?”
“생각해 보니… 없네.”
“그럴 거야. 실력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쓸 생각이 없었으니까. 카타콤에서 널 보조하기 위해 쓴 게 처음이었어. 그런데 그때 넌 내 불완전한 치유 마법에 어떤 거부감도 못 느꼈지. 안 그래?”
그렇다. 대답하지 않았지만 레오도 이미 잘 아는지 쭉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때는 마법의학을 정식으로 배우기 전이었는데도. 배우고 있는 지금도 나와 가장 비슷한 성질을 가진 인간, 그러니까 내 어머니에게 능력을 써도 치유 마법이 온전히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네게는 내 마력이 신력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걸까.”
“…그래.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가 뭔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이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르케의 능력으로도 접근하지 못하는 네 능력을 내가 아는 것과, 어머니조차도 공격하는 내 치유마법이 네게는 온전히 통하는 것 사이에…. 연관이 없지는 않겠지.”
레오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루카스. 네가 몇 살 때 날 처음으로 만났지?”
“…음. 6살 때지. 정확히 하면 생일 지났던 때니까 7살 때였지. 넌 6살 때고.”
따지자면 그건 내가 아니지만….
굳이 분리하자면 난 작년에 놈을 처음 만났다.
“그게 맞아?”
“맞지 그러면 그전에 언제 또 봤냐? 봤어도 잠깐이지. 너는 프로이센이랑 바덴과는 어릴 때부터 교류했어도 안할트와는 딱히 교류한 적 없잖아.”
“…뭐, 그건 그렇지. 모른다면 됐어.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니까.”
그 뒤로는 자연히 주제가 끊겨,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벽난로에서 불꽃 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내 레오가 생각이 났는지 웃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루카스. 앞으로는 시간 돌려도 안 통해.”
“…안다….”
약속 얘기하는 건가 보네.
나는 말이 나온 김에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레오. 아까 나랑 했던 대화 전부 기억해?”
“그래.”
“…….”
그럼 대화뿐 아니라 뭘 봤는지도 전부 기억하고 있는 건가.
직접 보지는 않았어야 했는데, 아직 다 크지도 않은 놈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남겼다. 나까지도 내 손을 볼 때마다 아까의 광경이 오버랩 되는데. 아무리 자기가 겪은 게 아니라 타인이 겪은 일이라고 해도 피바다 된 방을 보고서 충격받지 않았을 수가 없다.
나는 그가 더 깊이 생각하기 전에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몇 시야?”
“이제 12시네.”
“…잠깐. 여기 학교 아니잖아. 너 점호는 어쩌고 여기 있어?”
“허락받고 너 점호하러 왔는데. 나르케는 신력을 쓸 줄 알아서 같이 허락받았고.”
“…?”
레오가 제 학교 친구들에게 하듯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루카스.”
“…….”
“앞으로 이 건물에서 통학해야 해.”
여기? 통학?
동네 두 개 크기 캠퍼스 안에 번듯한 기숙사가 널리고 널려 있는데 내가 왜 통학을?
그리고 이제 보니 방이 완전히 바이에른풍이다. 어딜 보나 남색 물건에 사자 장식이 있다. 설마 바이에른에서 여기까지 기차 타고 다니라는 건 아니겠지?
“…여기가 어딘데 이 새끼야…. 하루에 왕복 16시간은 말도 안 되는데 이왕이면 한 번에 똑바로 말해 줘라.”
“베를린이야. 사 둔 땅이 있어서. 바이에른 왕실에서 수도에 들를 때마다 사용하던 저택인데… 학교는 널 다시 기숙사에 뒀다가 또 문제가 생길까 봐 껄끄러워하고 있는지, 책임 떠넘길 곳을 찾고 있더라고.”
“그래서 네가 맡았다?”
“그래야지. 반장이니까.”
“…….”
그놈의 반장은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우려먹네.
놈이 더없이 선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쥐어박기도 뭐하고 또 나름대로 생각해서 내린 결정인 듯해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
“걸어서는 이동 못 할 거야. 나랑 나르케가 아침저녁으로 워프시켜 주기로 했으니까 통학은 걱정 말고.”
“걸어서 못 나간다고? 뭘 자꾸 네 마음대로….”
“걸어서 나갈 거면 차라리 기숙사에 있는 게 안전하지. 결계만 일곱 겹이고 이 건물에 사용인 포함해서 세 명밖에 없어. 공간 자체는 학교보다 훨씬 안전할 테니까 좋은 일이지?”
누구 마음대로 내가 나가는 것까지 통제해?
하지만 그의 말이 맞다. 아예 학교 밖으로 빠져나온 이상 걸어서 나가는 게 더 위험한 일인 건 사실이다. 바이에른에 안할트 둘째 사고 소식을 전해 누를 끼칠 생각이 아니라면… 조심해야 한다.
나는 그저 미소만 지으며 놈을 바라봤다. 레오는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약속 지키겠다고 했잖아.”
“…….”
“뭐… 솔직히 말하자면 준비는 전부터 했어. 나도 네가 약속을 그리 잘 지키지 않을 것 같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까지 널 내버려 둘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말했음에도 내가 헛웃음을 치자 레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음, 참고로 지금 학교 기숙사 전부 4인 1실제로 바뀌었어. 1인 1실은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파악하기 어렵고… 또 범죄 타깃이 되기도 쉬우니까.”
“…!”
2인도 아니고 4인?
사람 넷이 한방을 쓰라고? 이게 말이냐?
그렇다면 말이 달라진다.
“고맙다.”
“뭘.”
레오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헛웃음을 치며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댔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하냐. 안할트도 베를린에 건물 있는데 굳이 바이에른에서 지원을? 네가 반장 직위를 남용… 아니, 이용한 건 알겠는데 네가 니콜라우스도 아니고 루카스 신원까지 대놓고 돕는 건 좀 그런데.”
“…….”
레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냥 대화하길 포기하고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어차피 건물 하나 통째로 혼자 쓰면 나야 이득이지. 엘리아스와 나르케가 이런 짓을 벌였다면 모를까, 레오라면 생각이 있을 테다.
‘아닌가. 없나?’
이거 제2의 악수 사태 아니냐?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냥 머리를 비우기로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깔끔하다. 약속 못 지키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을 때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되묻길래 살짝 의문스러웠는데, 다행이다.
“루카스. 그때 어떻게 될 것 같냐고 했지.”
“…….”
끝이 아냐?
레오가 서류 뭉치 위에 있던 작은 상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미소가 왜인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잠깐 나와.”
* * *
“너 진심으로 국왕 전하께 안 혼났냐?”
나는 저택 부지 안의 화원에 들어와서 그 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달빛이 투명한 유리 천장을 통과해 화원의 식물을 부드럽고 희미한 빛으로 비추었다. 달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마치 차분한 회화를 보는 듯했다. 화원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오히려 고요함을 더 깊게 만들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사람 혼자서 쓰냐.’
“내 명의야.”
“…….”
뭔 말을 할 때마다 이렇게 막히네.
그래. 국왕의 유일한 자식이니까 벌써 건물 가질 수 있지…. 그것도 제국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국가인데 왕세자에게 아무것도 없어서 쓰나.
‘그래도 루카는 아직 없는데 부럽네?’
루카 명의가 곧 내 명의인 지금, 좀 아쉽긴 하다.
니콜라우스로 번 돈도 다시 바이에른 국고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딱히 사 둔 건물은 없다. 그래도 이걸 보고 나니, 플레로마의 미친 짓이 끝나 예산이 덜 필요하게 되면 베를린에 저택 하나 사 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건물 매입해도 되나.’
안 되겠지. 왕실이 쓴다는데 잘도 팔겠다.
레오가 이미 자주 와 본 듯 익숙하게 화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그래도 아마 혼나겠지. 그런데 니콜라우스에게 빌려줬다고 하면 어머니도 뭐라 안 하실 거야. 전하께서는 니콜라우스를 그분 자식보다 더 좋아하시거든.”
지금… 내가 자기 어머니 사랑 독차지했다고 비꼬는 건가.
당연히 그 정도는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국왕 전하가 내 편의를 봐주려 노력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내게 특임장관과 대책본부장 자리를 넘겨줬지.
바이에른을 넘어 제국에서 니콜라우스의 입지가 점점 더 굳세지고 있는 것도 그분의 도움 영향이 크다.
레오가 어디선가 멈추어, 마력을 화원의 천장에 쏘았다.
위에 마력을 빛으로 바꾸어 주는 아티팩트가 걸려 있었다. 이제야 나무로 된 흰 테이블과 의자가 보였다.
레오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 온 뒤로 코어가 가볍지?”
“어.”
“여기 있는 식물들 전부 우리 가문 마력으로 만든 거거든.”
마법의학에는 생명력이 필요하고, 비텔스바흐의 마력과 고유능력은 대부분 생명력에 관련된 것이다.
알려지기로는 그렇다. 레오도 식물의 생명력을 자유자재로 끌어오고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그렇다고 해도 전부 생명력에 관한 고유능력을 갖고 있진 않던데. 여기 네 지분 좀 많겠네.”
“그래. 아무튼… 비텔스바흐의 마법이 걸려 있는 공간인 만큼, 치유할 공간을 찾자면 아까 누워 있던 방보다 이곳이 제일이야. 나도 이 공간의 생명력이 필요해서 여기로 온 거고.”
그렇군. 나는 등받이에 기대 숨을 들이쉬었다.
시간을 돌린 뒤부터 빨라졌던 맥박이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편안하네.
이런 휴식은 오랜만이다. 당장 내일부터 담임 교수를 검찰에서 빼내야 하고, 곧 3차 시험도 있으니 언제 또 쉴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해야지.
지금 단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면 놈이 통학에 이어 약속 어긴 대가로 뭘 들이댈지 모른다는 것이다.
‘황당한 거면… 아무리 그래도 들어주기 좀 그렇지.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한 것과는 별개로.’
물론 하루아침에 기숙사를 잃고 통학해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충격적인 주제를 또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4인 1실에서 탈출해 이득이기는 해도 황당한 건 황당한 것이었으니, 이미 내성이 생겨 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
“왜 여기로 왔어? 이 공간의 생명력이 필요하다는 게 네게 고작 쉬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 텐데.”
“음, 역시 매번 정확하네, 루카스.”
레오가 희미하게 웃으며 자세를 편하게 고쳤다.
“전에 카타콤에서, 네가 리히트호펜 선배님과 의장의 코어에 마법을 썼지.”
“…그랬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예속 마법 이야기다.
물론 그건 내가 개량해 만든 마법이라 그런 이름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지. 그 마법은 상대의 코어 위에 내 마력을 덧입혀, 코어를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마법이다.
놈은 리히트호펜과 국회의장의 반응을 보고서 그들에게 무슨 효과가 나타났는지 알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자식은 내 코어를 마력으로 묶어 두려 하고 있다. 내가 이 저택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모범생이라 그런가 이걸 직접 허락받으려고 하는 거냐?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 주자면 그런 협박용 마법은 기습으로 써야 하거든, 레오.”
“하하….”
“그리고 그 마법 신력으로만 걸 수 있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냥 날 믿지 그래. 나라고 위험을 찾아다니는 건 아닌데.”
레오가 그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난 작년부터 쭉 믿었어, 루카스.”
“…….”
“그래. 신력으로만 걸 수 있겠지. 마력은 쉽게 흩어질 테니까. 게다가 너보다 격이 낮은 자가 걸어 봤자 의미가 없고.”
잘 아네.
하지만 놈이 저렇게 태평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테다.
그렇게 생각하며 팔짱을 끼고 놈을 관찰한 순간, 그가 가져온 상자를 열고 내 앞에 들이밀었다.
“신력도 못 쓰면서 어떻게 할 거냐고 했지.”
“…….”
“네 동의만 있다면 가능하지.”
나는 놈이 내민 상자를 보고서 그대로 굳었다.
정적이 흘렀다.
아까처럼, 레오가 학교 친구들에게만 보이던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카스, 귀 좀 뚫을까?”
“…….”
나는 이마를 짚었다.
내 행동의 뜻을 알아챘는지 레오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를 유지하며 내 손목과 목을 가리켰다.
“아마 전교에서 너만 그런 아티팩트 쓰고 있을 텐데. 슬슬 네가 원래 원했던 자리로 옮겨도 되겠지.”
그래.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생각했던 것이다.
초기의 마법사들은 더 강해지기 위해 피부를 잘라 칩 형태의 아티팩트를 넣고 다시 살을 봉합했다. 좀—내 생각엔 많이—미친 짓 같지만 이곳의 아티팩트는 피와 가장 가까울수록 효과가 좋아지니 이해는 간다.
그러나 마법사도 사람인지라 되도록 거부감이 덜한 방법을 찾으면서도 아티팩트의 효과를 100% 활용할 수 있길 바랐다.
‘욕심이 더럽게 많다.’
그렇게 마법사들이 택한 것이 귀다.
전 세계적으로 몇천 년 전부터 장신구 끼우는 자리로 써먹은 전례가 있어 적어도 아티팩트 봉합술보다는 거부감이 덜했다.
그 레오마저도 귀를 뚫고 그 자리에 아티팩트를 끼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광범위한 문화인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말 그의 말대로 전교생 중에서 나만 아직 시계 같은 아티팩트를 끼고 있다.
그래서 여기 처음 왔을 때 나도 귀를 뚫을까 고민하다가 형에게 들키기 쉬운 자리라 그냥 목걸이와 시계로 대체했지.
‘이래서 아티팩트 효과 제대로 보려고 여기까지 왔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그가 만든 이 화원이 피로를 싹 다 날려 주고 있다는 걸 느꼈다. 피로감 탓을 하고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나는 생각을 고쳐먹고 고개를 들었다.
“음, 이게 내 코어에 접근하나 보지?”
“그래.”
나는 한 손으로 그 상자를 들어 아티팩트를 살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은 허리춤의 완드에 가져갔다.
아티팩트 풍년이네. 안 그래도 날짜상 어제 율리아도 내게 아티팩트를 줬는데. 그가 준 아티팩트는 이전 시간대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파괴되었지만, 시간을 돌린 덕에 지금은 내 심장 위에 제대로 있다.
그나저나, ‘협박용 마법은 기습으로 걸어야 한다’는 내 의견은 변하지 않았다. 좀 미안하지만 내가 레오 입장이었으면 그냥 자는 사이에 뚫어 놨을 거다.
나는 뚜껑을 덮고 그것을 레오 쪽으로 밀었다.
“기술 좋네.”
그리고, 곧바로 오른손으로 완드를 뽑아 들고 외쳤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레오가 당황한 채 있다가, 경악한 얼굴로 다급히 코어를 붙잡았다.
나는 갑자기 공격당한 탓에 입을 벌리고 어깨를 움츠린 그를 내려다보며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하는 거다. 알겠냐? 허락을 받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