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89화 (189/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89)

나는 천천히 얼굴을 쓸었다.

거칠고 두꺼운 피부가 손끝에 느껴졌다.

10년 후의 마르코와는 달리, 이 시기의 마르코는 머리칼이 더 검었다.

나는 새 몸의 균형감을 계산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독일 제2제국은 조약을 이행하지 않고 후안무치한 태도로 패악을 부리는 프랑스 제3제국에 맞서 우리 영토와 신민 여러분을 지켜 낼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신민 여러분, 프리드리히 황제 폐하와 제국은 언제나 그랬듯 승리할 것입니다.]

언제 퇴임했는지도 모를 옛 마법부 장관의 목소리가 거대한 아티팩트에서 흘러나왔다.

‘10년 전이라니.’

내가 지금 어떤 시간대에 떨어졌는지 안다.

지금 아티팩트에서 들려오는 사건은, 프랑스가 보불전쟁 이후 독일 제국에 빼앗긴 알자스-로렌 지방을 되찾기 위해 마법사를 이끌고 국경의 워프 마법 제한을 부순 사건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랬지만 보불전쟁은 프랑스 제2제국의 멸망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우리 역사와 달리 공화국이 수립되지 않고 군주정이 유지된—패전 당시의 황제는 폐위되고 더 강한 마법사가 황제로 즉위했다—프랑스 제3제국은 패전의 상징과도 같은 엘자스-로트링겐을 되찾을 기회를 더욱 노골적으로 노렸다. 간판만 바꿨지 결국 안에 든 건 제2제국때와 다를 게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이 상황의 무엇이 문제길래 마르코 슈라이버가 10년 전의 기억에서 눈을 떴는가.

짐작은 간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마쳤고, 그 준비 중에는 마르코 슈라이버에 대한 조사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보게 될 광경은 아마 아델베르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신 나간 광경일 것이다.

무슨 미친 광경을 보더라도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러려 했다.

[…Was habe ich….]

생각을 관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마르코 슈라이버의 생각이 내게 들려왔다.

아델베르트 때와 비슷한 일이었다.

대신 그때와 달리 말이 해석되지 않았다. 분명 제국어였음에도 내게 외국말로 들렸다.

‘아직 동화가 덜 됐나 보네.’

짐작일 뿐이지만, 마르코의 기억을 읽다 보면 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르코가 그의 기억을 온전히 재생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얼어붙어 있던 마르코는 신민을 위한 유의 사항이 방송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 거대한 아티팩트를 잡아 들었다.

그러나 그 직후 방송은 끝났다.

황제는 10년 전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금 흘러나오는 것은 제국의 국가였다. 이 전쟁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에 국민 대피 요령과 현황이나 반복해서 알려 줄 것이지, 경보를 딱 한 번 날리고 한가하게 국가를 틀 정신이 있는가?

나는, 아니, 마르코는 고개를 들었다.

노을이 질 시간도 아닌 이 새벽에 창밖이 붉었다. 정부에서 확성 마법으로 내보낸 파상음이 몸을 관통하고 있다. 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안 돼. 정확히 어디가 침략당한 거지?]

엘자스-로트링겐 지방은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로트링겐이 맨 위, 그리고 북부 엘자스와 남부 엘자스 순서대로 아래로 내려온다.

[남부라고 했지. 로트링겐은 제일 위니까 아니겠지. 아닐 거야. 남부 엘자스를 말하는 건가?]

콰앙―!

마르코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텅 빈 복도를 가로질러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가 미친 사람처럼 달려 저택 부지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는, 허공에 호외가 뿌려지고 있었다. 마르코가 하늘에서 날려오는 전단을 하나 낚아챘다.

[프랑스군 엘자스—로트링겐 공습 현황]

그의 눈은 곧장 민간 피해 현황 칸으로 향했다.

[부상 1명 / 실종 0명 / 사망 0명]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망 0명.’

[신이시여.]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고 거리를 바라봤다.

우편국. 우편국을 찾아야 한다.

당장 최북단 로트링겐에 사는 내 딸과 아들의 안부를 묻고 그곳에서 빼내 주겠다고 알려 주어야 한다.

프로이센은 민간의 진입을 막겠지만, 나는 군에 연이 있으니 잘 부탁하면 내 아이들을 먼저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안 되면 프랑스군에 뇌물이라도 주지.

그러면, 반나절 뒤에는 이곳에 같이 있을 수 있을 터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알 수 없는 희망이 차올랐다.

그렇다면, 이제 늦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군이 통신을 언제 끊을지 모르니 1분이라도 빨라야 한다.

평소 편지나 전보에 관한 모든 건 하인들에게 맡겼지만, 그래도 이 거리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덕에 우편국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았다.

‘수도에서 제일 큰 우편국이 이 주변에 있지.’

거기라면 빠르게 워프 우편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시도 쉬지 않고 뛰어 우편국 앞에 도착한 순간, 절망이 온몸을 덮쳤다.

‘안 돼.’

이 거리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던가. 언제부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지 우편국 앞은 인파로 가득 찼다. 누군가는 닫힌 철창을 뜯어 버리려 톱을 들고 와서 난도질을 하고 있었다.

자다 깨서 정부의 긴급 요청을 받고 출근한 우편국 직원 수십 명이 저들에게 달려드는 시민 무리를 보고 경악했다.

“아니, 이러시면 못 엽니다! 빨리 보내고 싶으시면 줄을 서세요. 밀지 마시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더더욱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누군가 뒤에서 등을 어깨로 짓누르는 게 느껴졌다. 다들 서로를 밀치고 있었다.

콰앙―!

“악!”

누군가 밀쳐져 바닥에 쓰러졌다. 한쪽에서 어떤 젊은이가 목에 피가 나도록 외쳤다.

“먼저 들어가게 해 주세요. 제발요. 바덴에, 아니, 남부 엘자스에서 3분 거리에 어머니가 살고 계신다고요!”

나는.

나는 바덴이 아니라 엘자스 로트링겐에 아이들이 있다. 아직 침공당하지도 않은 바덴 대공국에 가족이 있다고?

“너만 그런 줄 알아! 나도 라인에 내 가족이 있어!”

“여기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다면 좀 더 기다려도 되지 않는가. 프랑스군이 바덴의 결계와 마법까지 급속도로 해제할 재주를 가진 것도 아니잖은가. 체링겐 가문은 변경에 위치한 만큼 여느 가문보다 강하고, 그 옆의 바이에른 역시 프로이센에 견줄 수 있을 만큼 강한 국가다. 결국에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들어갈 자격이 없다. 그래야만 한다. 저들은 절박하지 않다.

하지만 당신들이 얼마나 절박하냐고 따질 힘도 그럴 의지도 내게는 없었다. 절박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말싸움할 힘이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곳에 쓸 힘이 없었다.

순식간에 이곳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귓가가 멍해졌다.

고성이 줄어들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사람들의 속삭임이 크게 들려왔다.

“어디까지 점령됐대요?”

“남부 엘자스요.”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이미 300년 동안 프랑스 땅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조약 하나로 독일인이 될 리가 없었다고요.”

“그 미친 프로쉬프레셔 놈들이 본토와 결탁해서 우리 황실이 세워 준 결계를 무너뜨린 게 분명합니다. 그것도 12월 31일에 이런 짓을 하다니. 당신도 가족이 거기에 있나요?”

“바덴에 사촌 동생이….”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우편국의 싸구려 만년필을 손에 쥐고 있었다. 촉이 망가져 잉크가 다 새, 손이 검게 물들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으로 펜촉 위에 맺히는 잉크를 훔치며 글씨를 갈겨 썼다.

급한 대로 수중에 현금으로 있는 돈을 모두 보낸다. 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부쳐 줄 테니, 프랑스군에게 주고 빠져나올 수 있으면 그쪽을 통해서라도 빠져나와라.

나는 거기까지 쓰고 편지지를 찢었다.

이런 내용이 발각되었다가는 프로이센에 처형당한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 완곡하게 편지를 썼다.

내가 글씨를 제대로 썼는지 어쨌는진 모른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국군 청사에 있었다.

“안 됩니다.”

“마르코 슈라이버라고 하면 들여보내 줄 겁니다.”

“공무 수행 중이니 함부로 민간인과 접촉할 수 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내가 누군지 모릅니까? 10분, 아니, 5분… 아니, 정말 1분이라도 괜찮으니 딱 한 번만….”

“압니다. 전임 마법부 차관이시죠. 차관님의 자제분들께서 엘자스 로트링겐에 계신 것을 압니다.”

“그냥 있는 게 아닙니다. 프로이센 정부의 차출 명령 때문이었지 않습니까. 본토 독일인은 아무도 이주하지 않는 그 발전도 덜 된 땅에, 그놈의 엘자스 로트링겐 동화 계획 때문에요! 내 아이들은 정치인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거기에 끌려간 겁니다!”

목소리를 높이자 보좌관이 손을 내저었다.

“국가와 황제 폐하를 위해 봉사하고 계신 걸 잘 압니다. 제가 잘 말씀드릴 테니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아직 베를린은 안전하니 다음 현황 보고가 나기 전까지 아는 분들이라도 만나서 진정하시지요.”

“당신이 말해 준다고요.”

“예.”

“꼭 말해 주셔야 합니다.”

보좌관이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사람처럼 휘청이며 청사를 나섰다. 문에 비친 내 눈이 시뻘게져 있었다.

탁―

나는 하늘에 날리는 전단을 붙잡았다.

갱신 시각이 바로 방금 전이다.

[부상 2명 / 실종 0명 / 사망 0명]

부상자가 한 명 늘었지만, 실종자도 사망자도 없다. 그 지역에 연고 없는 자들의—예를 들어 아까 그 보좌관. 그는 제국 남서부에 연고가 없을 것이다—태평스러운 반응이 이 때문일까.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려 웃음이 실실 났다.

그 뒤로 나는 계속해서 우편국에 드나들고, 또 줄을 서고, 편지를 기다리고, 또다시 줄을 서고… 하인들을 시켜 우편함을 확인하게 하고, 호외를 확인했다.

네 시간이 지나 통계가 두 번 갱신되는 동안 사상자 수는 거의 여전했다.

[부상 4명 / 실종 0명 / 사망 0명]

아무도 죽지 않았다.

본문에는 제국군이 남엘자스 지방에서 프랑스군을 반쯤 처치했다고 적혀 있었다.

[적군의 집중적인 공세 속에서 우리 제국군은 결연한 의지로 반격하여 프랑스군의 병력을 절반으로 감소시켰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우리 제국군의 뛰어난 전략과 전투력이 발휘되었으며, 적군은 제국의 강력함 앞에서 비참히 후퇴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군 저지선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남하하고 있습니다.]

망가진 워프 제어 마법을 수복했고, 결계도 차차 늘리는 중이라고 했다. 북엘자스와 로트링겐으로 진군할 통로가 막힌 셈이었다.

제국의 방어력은 믿어 볼 만했다.

프랑스군이 로트링겐에 가지만 않으면 된다.

오직 로트링겐에만.

달칵—

누군가 내 앞에 수프가 든 접시를 내려놓았다.

“주인님. 이제 통계는 그만 보십시오. 저희가 보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보다 이럴 때일수록 가볍게라도 식사를 하셔야 합니다.”

“…….”

“작은 주인님들께서 오시면 무슨 대화를 나눌지 생각해 보세요. 사상자가 많이 늘지 않는 걸 보니 다들 안전히 복귀할 수 있을 거예요. 특히 작은 주인님들께서는 귀족 아닙니까. 가장 안전하실 겁니다.”

보다 못한 집사장이 내 곁에서 나를 위로했다.

‘…그래.’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생각을 고쳐먹어야지.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되었으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아이들은 그쪽에 5년이나 살았으니, 내게 엘자스 로트링겐의 불쌍한 구인류들을 도울 방법을 알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름 오래 있어서 정이 들었겠지만 다시는 그런 미친 땅에 가서 살지 말고, 제국 정부가 베를린으로 이주하는 걸 막는다면 다 같이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자.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차관직을 내려놓은 지 오래고 돈은 썩어난다. 전쟁의 위험에 아이들을 내몰지 않을 수 있다면 당장 미국으로 출국할 자신도 있었다.

그래. 차라리 미국이 좋겠다. 그곳은 좀 더 자유롭고, 대영제국만 가만히 있으면 딱히 전쟁할 주변국이 있는 것도 아니지.

“내일이면 새해지.”

“예.”

“오랜만에 새해 아침을 아이들과 같이 맞을 수 있겠어.”

“…….”

내 말이 내게 거는 주문과 같다는 걸 알았는지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 누군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예. 그러실 수 있을 겁니다.”

저 사상자 수가 말해 주고 있다. 보불전쟁의 설욕을 갚기에 아직 프랑스인들은 모자라다.

안도감과 별개로 이미 늙은 나이에 신경을 오래 썼던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야 했다.

일어났을 때는, 벌써 오전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나는 하인을 불러 물었다.

“사상자 현황은? 두 시간 간격으로 갱신되던데 9시에 하나 나왔겠군. 그래, 아이들에게서 편지는 왔나?”

“…….”

나는 눈을 누르던 팔뚝을 떼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봐.”

“아직 나온 게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야 그의 손에 들린 회색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낚아채자마자 보인 것은 불어였다. 숫자를 제외한 모든 것이 불어로 쓰였다. 나는 한 글자라도 잘못 읽을세라 꼼꼼히 그 글자를 해석했다.

프랑스 제3제국의….

“…….”

[프랑스 제3제국의 압도적 승리: 남부 알자스-북부 알자스 탈환에 이어 로렌 지방 진군]

“…로트링겐?”

내가 잘못 읽은 것인가?

로트링겐. 로렌. 로렌? 내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자 하인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프랑스 제국신문이 30분 전에 발행한 신문입니다. 친우분께서 급히 찾아와서 전해 주셔서….”

하인이 말을 잇지 못하고 끝을 흐렸다.

‘이게 무슨?’

분명 프로이센은 남엘자스에서 프랑스군 절반을 처리했고, 진로를 막았다고 했다. 그런데 언제 북엘자스를 거쳐 로트링겐까지 닿았단 말인가?

나는 미친 듯이 떨리는 눈으로 본문을 읽으려 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나지움 시절에서 멈춘 프랑스어 실력이 원망스러웠다.

급한 대로 숫자가 있는 부분을 집요하게 들여다봤다. 더듬더듬 읽어 나갈 수는 있었다.

[프랑스군 사상자는 총 10명, 모두 경미한 부상에 그쳐….]

“…….”

“주인님.”

“분명히….”

분명히, 아까는 제국군이 프랑스군 절반을 처치했다고….

나는 천천히 몸을 침대에 기댔다. 눈앞이 핑 돌았다.

“…….”

아니, 저 프로쉬프레셔 놈들의 가짜 선전일 것이다. 우리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전략이겠지. 물론 그럴 거다.

하지만 왜 내 아이들에게서는 단 한 통의 답장도 오지 않는가? 왜 우리 군의 통계는 이제 더 나오지 않지?

‘제국이.’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아니, 상상하기 싫었던 결론 앞에서 눈을 떴다.

제국이 가짜 보도를 했다면?

“…….”

우리 자랑스러운 독일 제국과 프로이센과 호엔촐레른 황실이 신민들에게 당당히 거짓을 말했다.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거의 늘지 않는 부상자 수를, 환상적인 ‘사망자 0명’을 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느냔 말이다. 그 말도 안 되는 수치가 나올 수 없는 게 당연한데.

내가 멍청했다. 내 희망이 지극히 당연한 의심을 파괴했다.

귀가 찢어지는 것만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내 친우가 옆에 앉아 있었다.

“자네 괜찮은가?”

“…….”

“바보 같은 질문이었군그래.”

친우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잘 듣게, 마르코. 절대 이건 네 자녀에게 벌써 변고가 생겼다는 뜻은 아니야. 알겠어?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은 어디까지나 수치에 불과하고, 황제 폐하의 승인을 받은 정보도 아니야.”

황제의 승인?

이제 와서 그런 게 신빙성을 가질 리 없었다.

“이미 프랑스는 로트링겐 주도에 깃발을 꽂았어. 로트링겐의 사상자는 몇이 나왔는지 몰라. 하지만 엘자스는… 하아…. 내 이걸 자네에게 말해도 될는지….”

“말해!”

목에서 나조차 처음 듣는 외침이 나왔다.

내 친우가 비통한 얼굴로 말했다.

“그놈들이 엘자스를 지나오면서 본토 독일인을 전부 죽였어.”

“…….”

정보부에서 아직 보도하지 않았지만 우리 측에 집계된 사망자만 300명이 넘는다, 프랑스가 보불전쟁의 설욕을 갚기 위해 칼을 갈았다는 말이 들려왔다.

누군가 내 등과 목을 붙잡았다.

‘아니다.’

아니야.

이건 꿈이 아니겠지만, 아직 로트링겐은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로트링겐에 있는 내 자식들은 어쩌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네는 우선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건 프랑스의 선전이야.”

“…내 방금 프로이센 정보부에서 듣고 온 걸세. 아직 폐하의 승인은 나지 않았지만….”

“아직 모르는 일이야. 내 아이들이 그렇게 갈 리가 없어.”

“자네는 30살도 넘은 마법사를 아직까지 아이들이라 칭하는구먼. 하기야 이제 곧 100살을 앞둔 우리에게는 아직 어리지만.”

“그래.”

“…….”

“그러니까 이렇게 갈 수는 없어. 그건 자연에 위배되는 일이야.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떠나다니.”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전부 자연에 위배되지, 마르코.”

“…….”

“네 첫째 딸이 30대 초반인가? 아직 젊어도 그 나이면 이제 슬슬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대체 내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굉음과 함께 주먹으로 내리친 협탁이 부서졌다.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온통 역류한 마력이 솟구쳐 흘렀다. 핏줄이 터져 나갔다. 시야가 잔뜩 일그러져 검게 변했다가 붉게 변하길 반복했다. 강한 대비의 줄이 그어지고 세상이 온통 조각조각 깨졌다. 이럴 수는 없다. 제국은 10년 전부터 엘자스 로트링겐이 프랑스로부터 안전하다고 했고, 안전하다고 했고… 우리 독일 제2제국은 ———에 맞서 우리 영토와 신민 여러분을 지켜낼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Meine Untertanen… 신민 여러분, Kaiser Friedrich und? 제국은 언제나 그랬듯 승리할 것입니다.

“마르코! 나는 네가 네 자식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그러니 나는 어디까지나 그, 그, 그, 그, 그?@!^%!—… [Der Zug nach Lothringen fährt jetzt ab.] De rZu gnach Lothr¡n&*n fährtje tztabDerZugnach%&rin%@@¿fährtjetz=tab¿ + Vater!

끼익— 쾅!쾅!쾅!쾅!콰앙—!

.batztejtrhafnegnirhtoLhcanguZreD .ba tztej trhaf negnirhtoL hcan guZ reD .ba tztej trhaf negnirhtoL hcan guZ reD….

치이이익―

증기기관차 소리가 귀를 때린다.

나는 눈을 떴다. 새하얀 빛이 시신경을 찔렀다.

“믿기 힘드시겠지요.”

나는, 아니, 마르코는 제 발치를 내려다봤다.

프로이센 국기에 싸인 커다란 관이다.

아니, 이것이 관인가? 이것은 상자다.

[왜 신민들에게 거짓 보도를 하셨습니까?! 사망한 353명은 모두 민간인이었습니다!]

“자제분들을 잃으신 슬픔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예… 말씀을 드리자면…. 본토 제국인 300여 명은 모두 마법사로, 제국의 예비군력에 해당하기에 민간인 통계가 아닌 참전 군인 통계에 포함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참전 군인 통계에 대한 자료를 민간에 공개한 적이 없으며, 신민 여러분께서 받아 보신 통계에 적힌 사상자 숫자는 어디까지나 민간인에 한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로트링겐이 점령된 순간까지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일각에서는 엘자스 로트링겐 신민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것이 군의 전략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답변해 드릴 수는 있겠지만 당신은 이 질문이 반역의 소지가 다분한 질문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

“마르코 슈라이버 각하, 프리드리히 황제 폐하의 신하로서 자제분들이 흘린 숭고한 피가 간악한 프랑스 제3제국으로부터 엘자스 로트링겐 지방을 지켰습니다. 우리 제국은 그들의 희생에 많은 빚을 졌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우리 제국의 일원이자 프리드리히 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민 353명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제국을 위해 엘자스-로트링겐을 지켜 낸 그들의 희생과 충심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소리가 끊임없이 겹쳐 들렸다.

열차는 돌아오지 않았다.

“많이 후회되십니까?”

남자도 여자도 신인류도 아이도 노인도 젊은이도 그 무엇도 아닌 괴상한 목소리. 여럿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듯했다.

마르코는 고개를 돌렸다.

햇빛이 뇌 끝까지 닿았다. 고개를 돌렸지만 사람은 눈높이에 없었다.

“마르코 슈라이버 씨. 전임 마법부 차관이자 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심복이시지요. 폐하의 영토 확장을 위해 자녀들을 변경에 보내 주었는데 이런 대가를 받으셔서 마음이 참 좋지 않으시겠습니다.”

“…….”

“이미 떠난 로트링겐행 열차를 돌아오게 할 방법은 없지만, 만회할 방법은 있습니다. 어떠십니까?”

마르코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키가 제 명치쯤에 올까 말까 하는 작은 아이가, 무서울 만큼 샛노란 눈동자를 빛내며 미소 지었다.

“당신의 피 한 줌만 있으면 모든 걸 돌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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