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92화 (192/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92)

왜 그여야 했는가?

복잡하지 않다.

우선, 라비린스에서 만난 노란 눈의 어린이. 그가 아브라함이다.

마르코처럼 계시를 받은 자가 아니라 그게 정말 본체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

‘어렵지 않지. 그 아이가 피를 마시고 있었어.’

마르코 같은 존재였다면 피를 뽑아 남에게 가져다 바쳐야 했다.

이제 아브라함의 생김새에 대한 단서 두 개가 생겼다.

첫째, 무서울 만큼 빛나는 ‘노란색’ 눈.

둘째, 잘 쳐 봐야 145cm쯤 되는 키. 10년 전에 10대 초반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현재는 20대 초반일 것이다.

이제 아브라함 후보군은 20대 초반에 노란 눈을 가진 마법사로 좁혀졌다. 이 중 누가 아브라함인지 알려면 행적을 따져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교수들에게 계시를 주어서 아델베르트와 엘리아스의 방에 폭주 약품을 뿌렸다. 내 방에 워프 마법을 설치한 것도 그다.

워프 마법의 목적은 분명했으니, 고려할 것은 이것이다.

‘왜, 아델베르트와 엘리아스가 폭주의 희생자가 되었는가.’

지난 3주간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를 꺼낼 때다.

엘리아스의 가설은 이것이었다.

‘프림로즈 패스의 영업을 방해할 기미가 보이자 자신에게 아델베르트 살인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 ‘압수수색까지 들어간 뒤부터는 아예 자신을 죽이려 한다’.

후자는 반쯤 사실이니 제쳐 두자.

전자의 치명적인 맹점은, 전에도 생각했듯 많은 살인 방법 중 폭주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폭주 약품을 엘리아스의 방에 넣는다든지 하는 증거 제작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굳이 폭주를 사용할 경우 살인죄는 엘리아스가 아닌 플레로마로 여겨지는 내게 향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엘리아스의 추측대로 프림로즈 패스의 보복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아브라함은 왜 둘을 공격했을까.’

아델베르트의 감정 변화는 강렬했다. 폭주 약품이 폭발적인 효과를 보이기에 딱이었다.

그렇다면 왜 필립은, 왜 귄터는 폭주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는가? 1차 선발과 2차 선발에서 떨어진 학생들은?

전부 감정적으로 약해진 상태였는데, 아브라함은 왜 그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까.

‘왜’ 많고 많은 이들 중 아델베르트 호엔촐레른과 엘리아스 호엔촐레른이어야 했는가?

답은 간명하다.

그들이 호엔촐레른이기 때문이다.

엘리아스의 문제는 두 사건을 선형적으로 파악했다는 것에 있다. 아델베르트를 죽이는 데에 실패해서 엘리아스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니다.

두 사건은 병렬 사건이다. 아델베르트도 죽어야 했고, 엘리아스도 죽어야 했다.

대신, 두 사건만의 인과는 없지만 그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제국2교육원의 황족이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이제 황족의 공동의 적을 찾으면 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둘의 정치 진영은 정반대 성향이다.

그것도 극과 극을 달리고 있기에 공동의 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 단서가 하나 더 있지.’

이전에 아델베르트는 술을 먹고 계단에서 떨어져 엘리아스의 다리를 부수려 했다. 이것이 성공하면 ‘황자라는 자가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을 마셔서 제 친척 다리를 영영 못 쓰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그에게 따라다니게 된다. 하급 귀족이면 몰라도 제국의 통치자 가문 사람으로서는 그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할 도구가 되므로 크나큰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엘리아스의 전투마법 커리어도 끊어지게 된다.

다 왔다.

그래서, 그때 아델베르트에게 약을 탄 술을 준 자가 누구였는가?

여기까지 오지 않더라도 중간쯤에서 아브라함의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노란 눈에 20대 초반이라는 점을 안다. 또한 아브라함이 황위 계승 서열 2위와 실질적 3위를 적으로 두고 있음을 안다.

단서의 총합은 단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급하시군요.”

당황하지도 충격받지도 않은 담담한 목소리.

아브라함, 아니, 황태자는 몸을 완전히 돌려 내 앞에 섰다. 빛나는 눈동자가 시선 바로 앞으로 옮겨 왔다.

“또, 빠르기도 하고.”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빠른가.

아브라함이 누군지 알아낸 것은 빨랐고, 황태자에게 당신이 아브라함이라고 말한 것은 급하다.

다만 그것은 그만의 판단일 뿐이다.

“전하께서 참지 못하시고 신문에 광고까지 하시기에 일찍 나타나 드렸습니다. 전하께서는 본인의 조급증을 인지하지 못하시는 듯하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눈썹을 올렸다.

아델베르트와 비슷하게 생긴 얼굴.

라비린스에서 보았던 얼굴은 아델베르트의 주관이 들어간 모습이라, 지금 내가 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그를 직접 보고서야 사람들이 그에게 내리는 평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울 만큼 빛나는 아델베르트와 달리, 그는 이지적인 분위기와 기품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잊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딱 하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노란 눈동자만 빼고.

그 눈동자는 그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씩 변할 때마다 마치 응시하는 이를 삼키려 하듯 강렬하게 빛났다. 보고 있으면 그의 존재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신부님께서는 처음 본 사람 얼굴을 정말 오래 관찰하시는군요.”

“살면서 황태자 전하를 볼 날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이미 동물원 원숭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구경한 지 오래다. 무례하다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노골적인 시선과 대답에도, 황태자는 여전히 처음의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잠깐 고개를 기울였다가, 아까의 내 말을 떠올린 듯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광고라 하셨지요. 내게는 신민을 안심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신민이 아브라함 탓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황태자가 아델베르트를 닮은 얼굴로 온화하게 웃었다.

“나는 마땅히 내 신하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다시 만났으니 통성명부터 하죠.”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엘리자베트 호엔촐레른입니다.”

꼭 누군가 음량을 줄인 것처럼 세상의 소리가 고요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차음 마법이 씌워져 우리의 말이 외부에 닿지 않았을 텐데, 그가 손을 내밀자 주위에서 수사를 지켜보던 이들이 전부 우리를 보기 시작했다.

윗사람이 격 없는 인사를 제안했다.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로서도 딱히 무시할 이유가 없고.

나는 그의 손을 가볍게 맞댔다. 금방 빠져나가려 했지만 황태자의 기다란 손가락이 내 손날을 잡아 눌렀다.

“…….”

겨울바람에 굳어진 가죽 장갑을 놓으며 나는 미소 지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하.”

“같은 마음입니다. 내 장례를 성대히 치러 준 분을 다시 만나다니, 이처럼 기쁜 일이 또 없군요.”

내 표현을 사용해 말한다.

역시 그는 누가 뭐라 해도 회장이다. 회장의 통찰력은 이자의 것이었고, 껍데기가 바뀌었어도 그는 늘 그랬듯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차가운 바람이 차음 마법을 흩고 그와 나 사이를 지난다. 나는 바람을 느끼며 웃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10년을 무너뜨리는 재미가 꽤 좋더군요.”

“내 죽음이 당신의 행복이 되었군요.”

“나뿐 아니라 프림로즈 패스에 갇힌 수많은 구인류들의 행복이고, 당신에게 사용당한 자들의 행복일 겁니다, 전하.”

황태자는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빤히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여기서는 조금 어렵겠군요. 이런 곳에서 깊게 대화하기는 어려우니, 자리를 옮기지요.”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내 팔을 마력으로 휙 끌어당겼다. 온기 하나 없는 무언가가 내 팔꿈치를 감싼 순간, 내게 펼쳐진 공간이 바뀌었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것을 목격했다는 듯한 중얼거림이 불쑥 들려왔다.

그가 내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미세한 웃음을 섞어 가며 말했다.

“겁이 많으신가 봅니다. 다섯 살도 아니고….”

“…….”

“누가 워프에 거부감을 가지게 만들었을까요.”

나를 좀 긁어서 다혈질적인 반응을 보고 싶었겠지만 사람 잘못 골랐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전하께서 알 바는 아니지요.”

“이 정도면 그냥 말을 놓으셔도 되겠군요.”

나는 그에게 반응하는 대신 천천히 심호흡해 심장 박동을 늦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옮긴 장소는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도서관인가.’

옅은 달빛이 기다란 창 사이로 비쳐 들어와, 약간은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바이에른보다 더 어두운 베를린 블루 색깔의 휘장과 장식품이 곳곳에 걸려 있다.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은 걸로 보아서 아마도 황실 별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리에 앉지 않고 문가에 다가갔다. 귀족가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그도 추적을 피하기 위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다른 곳에 워프한 게 분명했다.

그가 도서관 문에 손을 대자, 어둠에 가려져 있던 남색 문에 빛이 일었다. 마력의 파동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나는 사람의 걸음이 거의 닿지 않은 듯한 체스판 무늬 타일을 흘끗 보고, 앞을 향해 걸었다. 바닥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새것 같았다. 바깥은 그저 황궁일 텐데, 창의 풍경에서는 왜인지 위화감이 들었다.

“어딘지 알고 싶으시겠지요. 왕세자궁 5층입니다.”

앞서 걷던 황태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왕세자궁은 3층짜리 건물로, 5층이 없다. 불친절할 만큼 어떤 설명도 없는 말이었지만 충분한 단서였다.

“장치가 정교하군요.”

그가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

“신부님께만 알려 드리는 겁니다.”

“이런 국가 기밀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지요.”

“매정하시군요.”

“…….”

작정하고 속 긁으려 할 때는 타깃 분석이나 더 하고 오지 싶었는데, 오히려 이렇게 나오니 어처구니가 없어 짜증이 나는 효과가 있다.

물론 그마저도 흥미로운 정보였다.

눈앞의 그는 회장이지만, 그런 동시에 회장 같지 않다.

마르코 슈라이버의 몸을 쓰고 있을 때와 본모습을 쓰고 있을 때는 인격마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분명하다.

이 층에는 사람도 없는지, 한참 지나 방에 들어갈 때까지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황태자가 복도 맨 끝 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하인이 우리 앞에 차를 끓여 내려놓고 간식을 놓았다.

황태자가 손짓했다.

“드시지요. 이전에 대접해 드리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 잔을 가져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마시고, 옆에 대기하고 있던 하인에게 손짓했다. 하인이 내 앞에서 새 잔을 꺼내 직접 차를 붓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비록 제정신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사회화가 된 것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어떤 의심을 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검증해 준다 해도 마실 생각은 없다. 나는 차에 관심을 끄고 내가 알아야 할 것을 물었다.

“무슨 말을 하러 불렀는지 들어나 봅시다.”

“당신과 같은 이유입니다.”

“같은 이유라.”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신부님께서는 나를 죽이러 오셨습니까?”

쉬운 질문이다.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렇겠지요. 적어도 오늘은 아닐 겁니다. 신부님께서 그리 계산력이 떨어지는 분이 아니시라고 생각했는데, 제 예상이 맞아서 즐겁군요.”

나는 최대한 그가 입을 많이 열도록, 내 입을 닫았다. 함부로 입을 놀려 그에게 정보를 줄 생각은 없었다.

“신부님은 내게 그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론의 영역이죠. 당신이 확실히 아는 것은, 지금의 정보로는 아브라함을 처치할 수 없으며, 가장 쉬운 방법인 살인을 택한다면 당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황태자 살해죄로 대대손손 숙청당하리라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살인은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멍청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의 육신을 죽이는 데에서 끝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의 말대로 아직 추론의 영역이지만, 내게는 확신이다.

“당신은 오늘 내게 선전포고를 하러 왔을 겁니다. 내가 허튼짓을 할 경우, 내가 아브라함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공표할 거라고 말이지요. 내가 그에 대비해 당신을 음해할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 당신은 가능한 빨리 나를 죽일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내 동향을 파악하려 하겠지요.”

창에 비쳐 들어온 달빛이 그의 눈에 반사되어 태양처럼 빛났다. 그가 더없이 고요한 표정을 하고서, 제 눈빛처럼 강렬한 확신을 담아 물었다.

“틀렸습니까?”

“전하께서는 답을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내 입장 역시 근본적으로는 당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예상하는 바와는 꽤 다를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지요.”

그가 손가락을 튕겨 무언가를 잡아챘다.

금속 원, 아니, 팔찌였다.

“초대 마법사들이 피부에 아티팩트를 넣을 때 썼던 도구입니다. 내가 사람을 심문할 때 쓰려 개량한 것인데, 꽤 좋더군요.”

그가 제 오른손에 그것을 끼웠다. 그가 사각형 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손목 안쪽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나는 내 잘못을 후회하고 모든 것을 뒤로 돌리길 바랍니다.”

푹—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가 장갑을 벗고 손을 테이블 위로 옮겼다. 피가 그의 흰 소매를 적시고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졌다. 잘 보니 팔찌가 있는 자리의 피부에서부터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반응하는 겁니다. 마력의 흐름으로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라 가끔 오류를 보일 때도 있지만, 잦지는 않습니다. 내가 자작극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면 당신이 직접 사용해도 좋습니다.”

“이런 도구가 수사국에서 사용되지는 않을 텐데?”

“넘기지 않았으니까요. 플레로마조차도 모르는 도구죠. 당신이 나라고 생각하면 이걸 함부로 남에게 넘겨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

아브라함에게는 제가 속한 황실도 플레로마도 전부 경쟁자일 수밖에.

그가 팔찌를 낀 손을 그대로 테이블에 놓은 채 말했다.

“말씀드리지요. 나는 당신이 내 사회적 목숨을 쥐고 있다는 걸 압니다. 당신의 폭로 하나면 나는 끝날 겁니다.”

“…….”

“당신이 회장인 나를 만난 건 엊그제고, 어제 당신은 폐하를 만나 황궁에 들렀죠. 나는 당신이 뭘 더 준비했는지 압니다. 내가 아브라함이라는 증거를 뒷받침해 줄, 그러면서 증언하는 자조차도 그게 아브라함에 대한 것임을 전혀 모르는 일상적이고 결정적인 증언을 수집했겠지요. 나는 그것을 막지 않을 겁니다.”

막지 않을 것이다.

가짜처럼 들리는 말에도 그의 장치는 혈관을 뚫지 않았다. 피는 말라붙은 그대로였다.

내 눈이 단 한 번도 목표물이 아닌 곳으로 향하지 않고 줄곧 그만을 뜯어보고 있는데도, 황태자는 어떤 감정의 동요 없이 깨끗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나를 죽이시죠.”

“…….”

“어떤 살인을 말하는지 알 겁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황태자로서의 나를 죽인다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런 내 얼굴을 보는 황태자의 눈은 속내를 읽을 수 없도록 고요했다. 그럼에도 그의 말 이면에 무엇이 있을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분명한 제안이군요. 당신은 나를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전혀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군요.”

“내가 당신을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경우, 당신은 내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어디까지 알며 무엇을 모르고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어떤 공격 방식을 선호하는지 알 기회가 된다는 뜻입니다.”

“…….”

“당신에게 손해인 제안이 아니지요. 피차 이득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니 선심 쓰듯 말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하하하….”

황태자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신부님이시군요. 세례를 주고 라비린스에 진입해 슈라이버 각하의 정신력에 장벽을 설치하신 분께서 평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정말 사고 과정이 남다릅니다.”

“…….”

“앞서 그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했지만, 그건 이제부터의 이야기입니다. 이제까지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냈습니다. 아니, 사실 앎이라고 칭하기도 어려운 사소한 것을 종합해서 알아서 답을 찾아내셨지요. 덕분에 우리가 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이렇게 만날 수 있었으니 고맙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군요.”

“과찬입니다. 겸손을 떠는 것은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모든 단서가 답을 말해 주고 있는 이 상태에서 제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방황하길 바라셨습니까?”

“아무래도 그런 일반적인 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편하지요.”

“아쉽게 되셨겠습니다.”

“편한 거지 재미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황태자는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창밖을 바라봤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예레미야 카에타니 신부는 교황청에 소속되어 있고, 작년까지는 전산에 존재하지 않던 자였습니다. 이탈리아 모계와 바이에른 부계를 가지고 있고, 30년 전부터 집안 전체가 미국에 있는 것으로… 딱 한 줄, 올해 만들어진 기록을 발견할 수 있더군요. 유일하게 전국에서 프로이센의 손이 닿지 않는 바이에른 공항을 통해 날아왔고, 여행자 비자를 받아 그길로 바이에른 국경의 프로이센 검역국을 무사히 통과했으며, 그곳에서 한나절을 대기한 뒤 베를린까지 만석 시간대에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숙소 내역도 전부 남아 있더군요. 앞서 말한 것을 제외하면 어떤 이상함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정말 정교하지 뭔가. 알아보는 것에 얼마가 들었는지 아나?”

말투가 바뀌었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 지은 채 침묵했다.

“한창 다스로테에서 제국 최고의 추남일 거라고 떠들어대던 게 우스워질 지경이야. 아니, 여태까지 모든 언론에서 성자나 다름없는 국민 영웅이라고 칭했던 것이 솔직히 제일 우습군. 실상은 프림로즈 패스에서 플레로마나 꼬셔서 목표를 이루려는… 또 그걸 사흘만에 보란 듯이 성공시키는 인간인데.”

“…….”

“사창가와 카지노에 발을 들일 기회만 노리는 망나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는 표현도 모자랄 정도로 상황 판단력이 좋은 데다 실행력 또한 부족하지 않아. 어떤 것을 상상하든 정도가 지나치네. 결국 내가 아는 사람 중 이만한 판단력을 가질 자는….”

나는 말없이 아까의 표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황태자만이 계속해서 흥미롭다는 듯 표정을 시시각각 바꾸었다.

노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딱 한 명이지. 니콜라우스 경, 이런 식으로 경을 만나다니 기분이 새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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