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94)
“아, 이곳에서 수집한 물건들은 황태자 전하께서 황궁으로 옮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뇨, 규정대로 하시지요.”
내 단호한 말에 형사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주위 형사들을 바라봤다.
“전하께서는 검찰이 한번 프림로즈 패스의 수사를 종료한 전적이 있어, 황궁으로 옮기고 전담 수사반을 꾸리겠다 하셨습니다.”
‘어이구.’
이 새끼 웃기네. 전담 수사반?
이득 볼 수 있는 부분에서는 그 자리 덕을 충분히 보겠다 이거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형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하실 말씀이 그리 많습니까?”
“예?”
“하실 말씀이 그렇게 많냐고 물었습니다.”
내 말뜻을 알아챈 형사가 빠르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검찰국 안전조사는 끝났습니다. 에리히 리브 검사장과 크리스티나 헤링겐 형사총괄부장이 이번 사건으로 경질되었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겁니다. 사건의 수사는 필요한 경우에 외부 인력을 동원하되, 그 수사물 원본이 보관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검찰과 검찰 산하의 수사국입니다. 규정대로 검찰에 보내시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황태자는 본인이 아브라함이라는 사실을 황제에게 밝힐 수 없으므로—그렇게 되더라도 처벌받지 않겠지만, 황제가 황태자 직위를 아델베르트에게 넘길 가능성이 커지는 등 불필요한 리스크가 생긴다—황제의 힘을 빌려 이번 사건을 제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 수는 없다. 오직 그의 권력으로만 판을 짤 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나는 플레로마로 모자라 아브라함까지 등장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황제를 등에 업고 있다.
황제는 지지율이 더 떨어지길 원치 않고, 펜탈론 국제대회 이전에 쓸데없는 잡음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럴 줄 알고 바로 제국신문에 때려 버렸지.’
황실의 압력을 많이 받는다지만 그쪽도 기본적으로 언론사라 특종에 눈이 멀어 있다.
황제의 컨펌을 거쳤다면 아브라함에 대한 주제는 절대로 보도되지 않았겠지만, 나는 당장 실시간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면 이걸 해외 언론사에 넘기겠다고 압박해 바로 1면을 따냈다. 인터뷰에 출연할 플레로마 의원이 충실한 친황제파라서 더욱 손쉬웠다.
원격으로 남의 머리를 조종할 수 있는,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능력에 이미 대중의 우려는 폭발적으로 올랐다.
다른 누구도 아브라함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없고, 안전을 확보해 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황제는 반강제적으로 내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 수사에 있어 황태자와 내 위치는 동등하다.
‘제국 2인자 상대로 싸우려면 이 정도 준비는 해 둬야지.’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전체 23개 업소 중 압수수색이 들어간 업소는 17개였습니다. 나머지 일반 주점에 대해서는 수사가 끝난 것으로 압니다.”
“예, 그렇습니다.”
“종업원 전원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뇌에 바로 명령을 준 만큼,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물증은 그리 많지 않았던 걸로 압니다. 이제 이곳에 들어와 있는 수사관 다섯을 제외하고 거리 전체에 결계를 설치할 것이니, 이쯤에서 정리하고 먼저 종업원 심문부터 진행하죠.”
“예,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진행하실 생각이시라면, 가장 죄질이 나쁜 구역부터 준비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각하께서도 보고받으셨다시피 4동에서 인신매매로 데려온 아이들 일부를 영업에 동원하고 일부는 플레로마에 넘긴 정황이 발견됐습니다.”
“음….”
프림로즈 패스는 사업 성격과 위치에 따라 총 6개 동으로 이뤄져 있고, 한 동에 있는 종업원 수는 약 100여 명에 달한다.
당연히 이걸 하루에 다 심문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나눠서 진행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죄질로 나누지 말죠. 전체 23개 업소 전부, 각 업장에서 실장급 이상으로 셋씩. 오늘 새벽까지 전부 끝낼 것이니 일선에 나가 있었던 매춘 인력과 사업신고서에 적힌 사장들은 심문에서 제외할 겁니다.”
“예. 말씀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형사가 수첩에 내 말을 갈겨 적으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냐.
황태자는 이들이 구속되어 검찰에 도착하는 순간 그들을 빼돌릴 것이다.
어쩌면 지금부터 손댔을 수도 있겠지만, 황태자가 이 일에 연관된 증인들을 빼돌리라 지시했다는 것이 밝혀질 수 있으므로 검찰에 오자마자 본인이 황실 마법사들을 데리고 수사하겠다고 말하겠지. 이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그러니, 한가하게 업종의 위법성 순서로 격파할 수는 없다. 중요도순으로 무조건 관리자 이상부터 턴다.
업종 불문 관리자들이 아브라함의 계시를 받았을 테니까.
그리고 거기서 끝낼 수는 없다.
“이것도 전달하시죠. 오늘 수사한 내용은 각국 정부 수사국으로 전송될 겁니다.”
“예?!”
형사가 눈에 띄게 놀라며 고개를 홱 돌렸다.
“각하, 이 일은 어디까지나 프로이센 수사국과 프로이센 검찰에서 담당하는 일이니 타국에 수사 내용을 공유하는 건….”
“공유하는 건?”
“…보안상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니, 틀렸다.
공유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정보를 독점하고 있으면 그 대가로 뜯어낼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국가더라도 이제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으니, 이놈들은 이런 식으로 이기심을 발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나는 표정 없이 대답했다.
“보안상 문제라고 하셨습니까? 제한 규정은 없습니다. 프로이센만의 문제가 아닌 제국 신민들의 안위가 달린 문제이므로, 미리 공유해 두어야 앞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각국 정부와 공조해 처리할 수 있습니다. 내 말이 틀립니까?”
털고 나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충분히 증언을 조작하거나 자료를 제거할 수 있는 놈이다.
싹을 잘라야지.
형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있다가, 순순히 대답했다.
“각하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분부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오늘치 수사 내용에 대한 보고를 들으며 걸었다.
6시 반쯤 되었을 때, 코어에 약하게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났다. 레오의 마력이 내 코어 위에서 날뛰고 있었다.
‘살다살다 연락을 이런 식으로 하는 놈을 다 보네.’
나는 아티팩트를 두드려 레오의 회선으로 돌렸다.
신호음이 한번 제대로 들리기도 전에, 바로 연결이 되었다.
“저하.”
[…에른스트 경.]
내가 경칭을 사용하자 레오는 지금 내가 누구로 있는지 바로 알아챘다.
[제정신이 아니시지요.]
“갑자기 뭡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놈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안다.
내가 학교를 반쯤 쨌기 때문이다.
‘학교 짼 걸로 제정신이 아니라니.’
역시 모범생이다.
물론 이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레오는 아까 학교에서 내게 훈련 끝날 때쯤에 만나자고 했지만, 나는 2시쯤 3차 훈련을 끝내고 나르케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빠져나갔다. 레오네 팀은 모범생 둘이 이끄는 팀이라 그런지 정석적으로 6시까지 훈련했기에 붙잡히지 않고 황실로 튈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 기다리면 저택에 들어가야 하는데, 한번 들어가면 놈의 동의 없이는 나올 방법이 없으므로 학교를 일찍 째는 게 안전했다.
‘느긋하게 있다가 언제 증거 보존하냐.’
빨리 황태자 현장에서 치우고 남은 일 처리해야지.
6시까지 학교에 있다가 이제 나왔으면, 나는 이제 막 수사반장 자격을 따러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시간 낭비인가.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지요. 저하께서는 저를 못 막습니다. 막으시려면 땡땡이 좀 치는 융통성을 가지는 게 좋겠군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심장에 격통이 닥쳤다. 상체를 푹 숙이자 나와 보조를 맞춰 걷던 형사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
[훈련 끝나고 찾아가겠다고 했는데 바로 프림로즈 패스에 가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훈련 끝나고 보니 경께서 공동 수사반장 자리를 가져가셨다고 보도가 나와 있더군요. 아프다는 핑계로 점호 전에 나가셨던데, 나르케가 빼 준 겁니까?]
“예.”
[후우….]
이놈은 역시 예측 밖의 일을 싫어한다.
어제 황태자를 만날 때에 계속 내 코어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었는지, 놈은 이제 황태자와 만날 때는 누구든 한 명 대동하고 만나라고 당부했다. 레오가 훈련 끝나고 찾아갈 테니 학교에 있으라고 했던 것은 그것 때문이다.
물론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만, 나는 그의 당부에 대답한 적 없다.
즉 약속한 적 없다.
‘…애들처럼 굴어서 미안하긴 한데….’
일은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지.
레오는 치유 마법 좀 받고 계획도 같이 세운 다음에 정상적으로 일정을 잡아 움직이길 바라겠지만, 지금 내 상대가 만만치 않은 만큼 그렇게 ‘정상적으로’ 느긋하게 움직였으면 따낼 것도 못 따내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레오가 차분히 말했다.
[이미 판도는 각하께 기울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그럴 때에 빨리 끝내야지요. 내일 새벽까지 학교에 관한 일은 전부 마무리할 겁니다.”
[…….]
“연락 받으셨겠지만 내일 새벽에 이번 사건에 대한 기밀 회담이 열립니다. 저하도 오려면 오시지요. 자리 하나쯤은 있습니다.”
[경이 어디 소속인지 잊으셨습니까? 오려면 오는 게 아니라 가야 하는 겁니다.]
레오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통화를 끊었다.
‘아델베르트 챙겨서 오라고 하려고 했는데.’
뭐, 알아서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 순간,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약속을 이런 식으로 지킬 줄은 몰랐습니다.”
어제 들었던 고요한 목소리.
주인을 닮아 텅 비어 있는 목소리가 적당한 리듬감을 가지고 흘러왔다.
레오와 통화하느라 크게 의식하지 못한 주위가 이제 눈에 들어왔다. 주위에 있는 자들이 모두 정자세로 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곁에 있던 형사가 몸을 곧게 펴고 인사했다.
“황태자 전하.”
나는 뒤돌아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동요하지 않은 평온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제가 어제 분명히 오늘 이 시간에 뵙자고 했잖습니까.”
“그게 이런 식일 줄이야.”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지었다. 레몬색 머리칼이 노을에 반사되어 빛났다.
“황태자 전하 홀로 수사반장직을 맡으시기에는 전하께서 너무 바빠 보이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바쁘셨으면 수사 증거물로 취합된 물품을 전부 황궁으로 옮기시고 전담 수사반을 꾸릴 계획을 하셨습니까. 제가 규정에 맞게 다시 처음부터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황태자가 재미있다는 듯이 거짓 없는 웃음을 흘리고, 내게 고개를 가까이했다.
그의 황금빛 홍채가 붉은빛으로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역시 날 생각해 주는 건 경뿐이군.”
“…….”
나는 그를 흘끗 보고서 시선을 돌렸다. 거리 곳곳에 있던 수사관들은 아직도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 정도면 가서 친구나 사귀라는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티 나게 긁을 수는 없었다.
“영광입니다.”
“그래.”
그가 격려하듯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열심히 하게. 자네가 준비한 회담도 기대하고 있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 간단히 인사한 뒤 그가 대동하고 있던 수행원들과 함께 우리를 앞질렀다.
별 얘기 없이 끝난 걸 보니, 이렇게 사람 많은 장소에서는 그도 내게 딱히 뭔가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물론 회담을 기대한다는 말은 그냥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기대하고 있다니. 나도 그렇다.
나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자리를 떴다.
* * *
다음날 새벽 3시, 나는 검찰에서 마련해 준 내 심문실에서 나와 기밀 회담이 열리는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회의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늘 입을 열 사람은 나 하나뿐이기에 내가 있는 자리는 거의 작은 강당과 닮아 있었다.
“시작합시다.”
황제의 보좌관이 회의장에 마법을 설치하고 있다가, 새벽 3시가 되자 주의를 집중시켰다.
나는 맨 앞 공간으로 나가 좌석을 바라봤다. 한가운데 자리에 황제와 황태자를 비롯한 호엔촐레른 일가가 앉아 있고, 프로이센 검찰과 수사국, 그리고 경찰국 수사관들이 오른편에 앉아 있다.
왼편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사람이 적었는데, 전부 바이에른 왕국에서 나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는 정치인들 중 누가 왔는지 자리를 훑다, 바이에른 왕실의 예복을 입은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약속—한 적 없으나 도의적으로—을 지키지 않은 탓인지 레오의 연하늘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썩 바르지 않은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그의 항의성 시선에서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구경하며 생각했다.
‘바이에른이 프로이센 일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네.’
이래서 황제가 나를 탐탁잖게 여기는 것이고, 이래서 바이에른이 내 존재를 환영하는 것이다.
동등한 국가였던 프로이센과 바이에른은, 프로이센이 제국을 결성하면서 미묘한 위계가 생겼고, 바이에른은 근본도 없는 호엔촐레른 대신 자신들이 제국의 맹주가 되어야 하며 예전의 위세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의견일 뿐이지만 바이에른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프로이센과의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 걸 생각하면 경향은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지역감정이 아니다.
나는 턱을 괴고 자연스럽게 앉아 내가 말하길 기다리고 있는 황태자를 바라봤다.
아브라함 건은 대중에 터트렸지만, 황실의 지원을 받는 학교에서 황족이 공격당한 이번 사건은 대중에 공표할 수 없는 사건이기에 교수들의 무죄를 밝힐 기회가 없다.
그걸 위해, 내가 수사반장직과 함께 황제에게 제안해 만든 자리다. 원래 없던 기회인 만큼 다른 생각에 버릴 시간은 없다.
나는 가져왔던 자료를 정리하고 강단 앞에 섰다.
그리고, 정부에서 뭔가 발표할 때면 수사관들이 으레 내뱉는 말을 내뱉었다.
“먼저, 저는 본 회담에서 진실만을 말할 것을 제국의 충성스러운 신민이자 정의의 수호자로서 맹세합니다.”
이제 의례상 제국과 황실에 대한 칭송을 늘어놓을 차례였지만, 말을 꾸미고 싶지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인사치레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피의자 제국2교육원 요하네스 론 교수 외 1인에 대해, 범인이 피의자가 아닌 타인으로 명백히 확인되어 검찰의 능력으로 기소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것을 강력히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