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95)
불기소.
호엔촐레른 좌석 맨 끝에 앉아 있는 엘리아스와 왼편의 바이에른 자리에 있는 레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오늘 이 자리의 성패에 따라 우리 반 교수가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가 갈리니 당연했다.
내내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던 황태자만이 고개를 기울여 웃었다. 그의 손이 옆자리의 아델베르트에게 향해, 어깨를 감싸 끌어당겼다. 아델베르트가 잔뜩 얼어붙어 있는 게 보였다.
“본 제안은 수사국에서 공인한 수사 결과에 따른 것이며 수사국의 판단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분의 최종 결정권은 검찰과 황제 폐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명확히 짚고 시작하겠습니다. 그간 진행되었던 수사 과정을 순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주일 전, 저는 황족 살해 시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제국2교육원에 방문했습니다. 당시 황제 폐하의 명령으로 수사에 참여했던 에릭 프레이 황실 신관과 아델베르트 호엔촐레른 황자 전하께서 제 심문을 증언해 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손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아직까지는 어떤 반박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시기가 아니었다.
“신력 심문 결과, 두 피의자는 사건 발생 당시 피해 학생들의 방 또는 기숙사동에 방문한 적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검찰 측에서 같은 방식의 심문을 진행하였으므로, 시작 전 나누어 드린 보고서 7페이지를 참고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보좌관이 황제의 보고서를 넘겨 그의 앞에 띄워 주었다.
“피의자는 자신의 범죄는 물론이고 방문한 건물과 장소를 일절 기억하지 못하는 대신, 피해 학생들의 방 세부 워프 좌표를 들은 적 있냐는 질문에 반응했습니다. 이에 대해 황자 저하께서 직접 증언해 주실 수 있습니다.”
내내 굳어 있던 아델베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입니다. 에른스트 경께서 이와 같은 과정으로 심문을 진행하신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이것에 대해 어떤 가능성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
“자신이 어디에 갔는지는 전혀 모르나, 워프 좌표만큼은 들은 기억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추측해 보신 분이 계십니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의 뇌에는 지금 아브라함 생각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아브라함의 능력 말고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두 교수님께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 머리에 명령을 주입했다면 이러한 일이 가능합니다. 초능력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능력이지만, 마법이 전부 해명되지 않은 학문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볼 만합니다. 실제로, 이제 우리는 마르코 슈라이버 전 차관께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압니다.”
황태자의 금색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나는 꼭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신력을 사용해 기억을 지웠을 가능성이 있지 않냐는 질문이 예상되나, 제국2교육원에는 신력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없으며 당시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피의자 요하네스 론의 범행 시각은 1월 26일 10시부터 12시 사이로 추정되나 이 시각에 피의자가 외부로 출입한 기록이 없으며, 피의자는 자정부터 바로 긴급회의에 투입되었기에 신력으로 조작당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가 명확합니다.”
수사국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무언가 표시하는 것이 보였다.
“당시 저는….”
“잠깐.”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태자가 멈추라는 듯이 손을 펼쳐 들고 있었다.
“말씀하십시오, 전하.”
“스테판 트라우트 피의자의 알리바이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싶군요.”
황태자가 희미하게 미소지은 채 나를 바라봤다.
“범행이 일어난 장소가 동일하고 몇몇 공통점이 있기에 두 사건을 하나로 묶어 불명확하게 주장하는 오류를 범한 것은 이해하나, 제국의 안위가 걸린 문제인 만큼 철저히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나는 말없이 그를 보다, 차분히 입을 열었다.
“신력의 영향을 받았다면 좌표 또한 머리에서 지워졌어야 합니다, 전하.”
“음.”
황태자가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른하게까지 느껴지는 여유 있는 목소리가 이 드넓은 공간에 반사되어 울렸다.
“명료하군요. 굳이 좌표만 남길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하지만… 완전범죄를 위해 중요한 키워드를 지웠으나 좌표까지 지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면?”
“…….”
“경의 능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유능하다고 해서 다른 마법사들도 당신과 같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경이 심문할 때 던진 질문들과 그로부터 도출한 답변은 정합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다른 마법사가 피의자들의 뇌에 접근해 정보를 조작할 때에는 그런 논리로 그런 질문까지 받으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몇몇 수사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황태자의 질문은 예리하다. 정당한 질문이다.
목적은 정당하지 않겠지만.
“한마디로, 경이 상대의 사고력을 고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배제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까?”
“…극히 낮기는 하나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의 수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각하.”
이런 식으로 나를 막겠다, 이건가.
아니, 막는 게 아니다.
그는 호엔촐레른의 안전을 앞세워서 내 한계를 테스트하고 있다.
능력의 한계인지 인내심의 한계인지는 앞으로 지켜보면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델베르트 호엔촐레른 폭주 사건의 발생 일자는 1월 17일이었으며, 엘리아스 호엔촐레른 폭주 사건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월 24일 오전에 발생했습니다. 이 경우 스테판 트라우트 교수가 2차 시험 감독을 마친 1월 24일 6시부터 아스카니엔 워프 사건이 발생한 1월 26일까지 교외로 출입한 기록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교수진의 교문 출입 기록을 꺼내 공중에 크게 띄웠다.
“해당 기간 기록은 1건 존재합니다. 비품 구입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것이 조교이고 직원인데 왜 교원이 직접 나갔는지 궁금하군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요. 경. 진짜로 비품을 구입했다고 해도, 나간 동안 신력 마법사를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사관들은 이제 보고서가 아닌 나를 보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트라우트의 외출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지난 시간인데다, 정말 뇌가 청소되었다면 신력 마법사를 만났다는 사실 역시 트라우트에게서 뽑아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소명하지 못한다면 교수들이 워프 좌표에만 반응한 사실은 더 이상 아브라함의 허점과 유의미한 연관을 가질 수 없게 되며, 아브라함이 아닌 타자의 범죄일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충분히 그럴 수 있겠습니다. 전하의 말씀대로, 피의자가 나가서 기록 외의 활동을 하거나 누군가를 만났는지는 지금 이 상황에서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흠.”
순순히 인정하자, 엘리아스와 레오가 나를 바라봤다. 황태자는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이 제국을 통틀어 신력 마법사의 수는 저를 포함해 93명이며, 기억을 지울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마법사는 93명 중 24명입니다. 이는 호엔촐레른이 반, 비텔스바흐가 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모두의 능력으로 알아낼 수 없는 것을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나는 한 템포 쉬었다가, 내 말을 경청하고 있는 레오에게 고개를 돌렸다.
“친애하는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바이에른 왕세자 저하. 국가 기밀에 가까운 조사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황태자 전하께서 주신 질문을 마무리 지어 황제 폐하와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정부 고관께 명료한 답을 드리기 위해 이렇게 요청드립니다. 비텔스바흐의 신관 33명 중 특별 관리 등급 신관 12명의 지난 한 달간의 행적을 전수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
레오의 입꼬리가 살짝 움찔거렸다. 무엇에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몰라도, 그는 금세 여유로운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하겠습니다. 경의 뜻대로 하십시오.”
아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
어렵지 않다.
역으로 접근하면 된다.
트라우트가 신력 마법사를 만나 범죄 흔적을 머리에서 지웠다면?
그 상대 신력 마법사의 기억에 트라우트를 만난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1억 인구 중 24명.’
이 정도도 조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황태자가 천천히 입매를 비트는 것이 보였다.
빈정상하거나 당황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건 즐기는 얼굴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이 순간의 패배는 그에게 있다.
나는 미소지으며 호엔촐레른 일가를 바라봤다.
“황제 폐하, 그리고 황태자 전하. 프로이센의 특별 관리 등급 신관 12명을 전수조사하게 해 주시면 명료한 답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왜 패배가 그에게 있느냐.
이 범죄는 아브라함의 범죄가 맞으니까.
24명을 모두 조사해도, 트라우트에게 범죄를 사주하고 기억을 지운 신력 마법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즉 황태자는 굳이 질문을 던져서 이 사건이 자신의 범행임을 공고히 해 주었다.
“하하하….”
황태자가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황제는 누가 봐도 ‘황태자의 의문은 적절하긴 하나 뭘 또 수사까지 하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황태자가 황제 대신 내 요청에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회담이 끝난 뒤 따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각하께서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계신 것을 확인받았으니, 우선은 이대로 진행하시지요.”
패배를 패배로 보이지 않게 포장하는 광경 잘 봤다.
나는 예의상 감사 인사를 건네고, 바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당시 저는 피의자에게 어떠한 변화나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했고, 제국2교육원의 교원관리처장께 1월 둘째 주에 이례적으로 비정기 건강검진이 실시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처장님.”
내가 부르자, 교원관리처장이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시 상황을 그대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일단은… 1월 7일, 교원들의 건강을 점검하자는 취지에서 황립 중앙병원에서 직접 비정기 검진을 제안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1월 10일에 검진을 실시했고요.”
“좋습니다. 1월 10일. 이는 아델베르트 황자 전하께서 피해를 입기 일주일 전입니다. 저는 병원을 수색해, 앞서 제시한 의문을 풀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수사국으로부터 받은 자료입니다.”
나는 ‘1/10 제국2교육원 검진 기록지’라는 이름으로 묶인 파일철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그다음 장에 있던 마력 검사 항목을 펼쳤다.
빽빽한 글씨 사이, 딱 두 칸만이 깨끗이 비어 있었다.
“보시다시피, 유일하게 두 피의자의 혈액 검사 항목이 비어 있습니다.”
“…….”
“저는 이것이 결코 위의 의문과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두 피의자의 피가 사라진 것과 호엔촐레른 학생 둘이 ‘폭주’ 위험에 빠진 것을 통해 사건의 배후에 플레로마가 있을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알렉산더 클루거 의원님께서 제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내 말에, 그 플레로마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렉산더 클루거 의원은 플레로마에 몸담고 있다는 위치를 활용해 황실에게 플레로마 정보를 넘기며 도움을 주었기에, 친황제파 정치인으로서 입지가 좋았다.
내보내도 되는 정보는 교단의 허락을 받아서 팔아먹고 두 집단에서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플레로마가 대부분의 정보를 극비로 하므로, 이 분야는 정보의 검증이 느릴 수밖에 없다. 알렉산더 클루거나 베르너 스트라우치 같은 의원들은 오래 전부터 플레로마의 사소한 정보를 흘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받은 과거가 있어 신뢰성 있는 정보원으로 활용될 가치가 높았다.
그의 발언 자체가 증거라는 말이다.
알렉산더 클루거는 비장한 얼굴로 발언을 시작했다.
“플레로마는 그들의 자의적인 뜻에 따라 사람을 부활시켜 영생을 살게 하겠다는 모토를 가진 적그리스도 종교 집단입니다. 그들은 교단의 성직자들에게 그들만의 광적인 사상을 빠르게 납득시키기 위해 ‘사명’이라는 능력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플레로마 창립 당시부터 존재했던 그레고리오라는 마법사에 의한 능력이었습니다. 그자가 아브라함이지요.”
자기가 속한 집단을 저렇게 말하다니 역시 스파이짓으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 철판을 깔아야 하는구나 싶다.
“저와 연락하는 정보원의 증언에 의하면 그레고리오는 사명을 줄 때에, 사명 대상의 피를 마시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른스트 각하께서 혈액 분실 사건을 가지고 플레로마와의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냐 질문해 오셨을 때, 저는 이것이 아브라함의 짓임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사명을 내리는 방식과 아주 유사합니다.”
대부분의 수사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대신, 한 사람. 경찰국장이 잠깐 멈춰 보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누구에게서 정보를 얻었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의원에게 향했다.
의원은 자주 들은 질문이라 당황하지 않은 듯, 진지한 얼굴을 연기하며 말했다.
“언제나 그랬듯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제게는 플레로마에서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는 정보원이 있으며,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었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누구인지 말할 경우 바로 사람이 특정되므로, 더는 플레로마의 동향을 파악할 수 없게 됩니다.”
“아하.”
모두의 시선이 가운데 자리로 돌아갔다.
꼭 엘리아스가 생각나는 목소리였지만, 그가 아니었다.
황태자가 흥미를 담은 목소리로 짧게 탄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옳은 말씀입니다. 알렉산더 클루거 의원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우리 제국의 안녕에 크게 이바지해 오신 분이고, 의원님께서 데리고 계신 정보원은 지난 5년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정보원의 이름과 신원을 밝힌다면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는 플레로마에게 먹이를 주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 그런 근시안적인 방식은 사용하지 말도록 하지요.”
클루거 의원이 황태자의 두둔에 감사를 표하듯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가 든 순간, 황태자가 나를 향해 말했다.
“에른스트 각하. 지금 이 자리에서 알렉산더 클루거 의원의 결백을 증명하십시오.”
“…….”
“…예?”
의원은 자신이 뭘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 황태자는, 내게 신력을 쓰라 요구하고 있다.
“저, 저는, 지난 5년간 늘….”
“의원님.”
내가 그를 부르자, 그가 다급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요구가 그의 간절한 표정에 녹아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도 그가 동요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력을 사용하면 죽는다.
황태자는 그가 플레로마라는 걸 알고, 그에게 어떤 마법이 걸렸는지도 안다. 일부러 내 주장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이러는 것이다.
‘왜냐.’
내 능력은 세상에 납득시킬 수 없는 능력이므로, 그걸 통해 알아낸 정보를 설득시키려면 지금처럼 순서를 재배치하고 원천을 꾸며 내야 한다.
내게 논리로 흠집을 낼 수 없으니, 내가 지금 플레로마를 이용하고 있음을 밝히려 한다. 터져 죽는 것만으로도 그의 소속을 증명하는 셈이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응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빛 아래서 벗어나, 객석으로 다가갔다. 의원이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나는 그가 더 도망가지 않게 구두 앞코를 밟고 어깨를 붙잡았다.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인 반응을 보니 어째 더 역효과가 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고 완드를 빼 들어 겨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아악…!”
비명을 다 외치기도 전에, 눈의 초점이 풀렸다. 쓰러지기 전에 그를 자리에 앉히고 나니, 이제 이 공간에는 적막만이 흘렀다. 모두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마력을 일정한 세기로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의원님. 오늘 이 자리에서 하신 말씀은 전부 사실이어야 합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까?”
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좋아.’
이 정도면 됐다.
마력과 신력을 동시에 운용하느라 식은땀이 난다. 나는 빠르게 완드를 거뒀다.
“…흐억…! 허억! 지금 무슨…!”
의원이 발작하듯 몸부림치며 휘청거렸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미친 듯이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자신이 살아 있을 수 있는가. 그의 표정은 그것을 묻고 있었다.
나는 의원의 의문에 대답하는 대신 황태자와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의원님께서는 결백하며, 이분의 증언은 신뢰할 만합니다. 폐하, 이제 다시 돌아가서 발표를 이어 가도 되겠습니까?”
황제는 그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는 아까보다 더 놀라운 광경을 봤다는 듯, 잔잔한 미소 속에서 눈을 번득이며 이 광경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그의 시선이 계속해서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흥미롭겠지.’
터져 죽었어야 할 인간이 죽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뜻대로 되지 않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수밖에.
그 의원은 애초부터 죽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 그의 코어를 내게 예속시켰지. 내 마력을 그의 코어에 씌워 멋대로 주무를 수 있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지금 나는 그의 몸 안에 주입된 내 마력의 기류를 적절히 다듬었다. 코어가 신력에 반응해 터지기 전에, 그 위에 덮인 내 마력이 플레로마의 저주 마법을 흡수해 시간을 벌어주었다.
물론 저기서 더 지체했으면 당연히 터져 죽었을 것이다. 내 마력은 해독제가 아니라 완충재 역할을 해 주고 있었을 뿐이니, 그게 다 닳으면 저주 마법이 몸 전체로 퍼졌겠지.
황태자의 방해 시도는 좋았으나….
이제 끝이다.
그때, 황태자가 양손을 맞잡고 내게 말했다.
“각하.”
“말씀하십시오.”
“전부 끝나면 잠깐 보죠.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 같지 않았다. 무언가를 꿰뚫어 보느라 주의가 이 자리에 있지 않은 듯한,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레오와 엘리아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엘리아스는 당연히 그가 입을 열 때부터 얼굴이 사나워져 있었으니 됐다 치고, 레오마저도 목소리가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그를 탐색하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겠습니다.”
나는 선뜻 대답했다.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교수님들의 정신에 개입했으리라는 가설을 세우고, 프림로즈 패스의 23개 업소 종업원 중 중간관리직 이상에 위치한 69명을 심문했습니다. 이는 황실 신관 일곱과 함께 행한 심문입니다.”
“니콜라우스 에른스트 각하의 심문과 그 기록에는 이상이 없음을 맹세합니다.”
신력 마법사 중 대표 격인 마법사가 일어나 말했다.
나는 증언이 기록된 페이지를 펼쳐, 마법으로 띄웠다.
“어제저녁 7시부터 오늘 새벽 3시까지 심문하던 중, 일관적인 부분 몇 가지를 찾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프림로즈 패스의 ‘회장’에게 ‘머리로 직접 명령을 전달받았다’고 했으며, 회장이 정확히 누군지 모르고 직접 만난 적도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고 객석을 둘러봤다.
“만난 적도 없는 자에게 사명을 받는다. 교수들이 학교에만 있었음에도 명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과 유사하지요.”
수사관들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황태자의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아브라함의 사명 조건에 타인과의 교감이 있다고 밝혀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피의자는 학교에만 있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마르코 각하의 신체를 사용했을 텐데… 어떻게 아브라함과 피의자가 교감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렇네요. 이 부분이 궁금하군요.”
검찰 측에서 누군가 동조했다.
‘음.’
이건 수준이 심각하다.
비록 나를 긁기 위해 일부러 던진 질문이었다지만, 황태자의 질문이 훨씬 양질의 질문이었다는 게 확 느껴진다.
역시나 황태자도 뭐 이런 질문을 하냐는 듯한 얼굴로 웃고만 있었다.
나는 아까보다 부드러운 어조로 천천히 설명했다.
“피와 달리 교감은 그야말로 말만 할 수 있다면 타인 몸으로도 조건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몸이 아니라서 문제가 된다면, 아브라함은 마르코 각하의 몸으로 동의받으러 다니지 않았겠지요?”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사관을 시켜 두 피의자가 그간 했던 대화를 살폈습니다. 글로리아 클라인. 이번에 기밀 좌표를 열람한 대가로 구속된 기숙사 운영팀 직원은 유별나게 교수들과 대화가 잦더군요. 이자도 현재 아브라함의 피해자로 알려져 있지요.”
경찰국장이 물었다.
“단순히 사교성이 좋은 것은 아닙니까?”
“그렇기에 아브라함의 또 다른 타깃이 되었거나, 아브라함께서 그분 몸에서 친히 사교성을 펼치셨거나.”
나는 황태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둘 중 하나일 겁니다.”
“흠.”
“이것으로, 제가 주장한 불기소 처분의 근거는 끝입니다. 더 질문이 없다면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황태자는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이제 딴지를 걸려 해도 그럴 건수가 없을 거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역시 그는 아브라함이다.
기대하겠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실현하다니 웃음만 난다.
물론, 그의 질문과 시도는 역설적이게도 내 신뢰성을 더 높여 주었다. 위기는 곧 기회지. 자충수가 될 걸 기대하고 이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미안할 따름이다.
황태자가 반쯤 체념한 듯, 반쯤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옆자리의 황제를 바라봤다.
“폐하. 이쯤에서 직접 결단을 내려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황제가 말없이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검사 몇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앉은 객석과 나 사이에 차음 마법이 걸리고, 한참 뒤에야 회의가 끝났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그제야 객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내내 발언 한번 하지 않고 제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던 황제가, 내가 서 있던 강단 앞으로 나갔다.
그가 우리를 천천히 둘러본 뒤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 사건에 대한 프로이센 수사국의 불기소 처분 제안에 대해, 우리 제국은….”
* * *
나는 레오의 도움을 받아, 검찰국 구치소 앞으로 워프했다.
우리는 짧은 수속을 받고 면회실로 이동했다.
덜컹— 끼익—
두꺼운 철문이 옆으로 열리고, 나는 간수 둘의 사이에 끼어 이곳에 오는 한 마법사를 발견했다. 레오가 그의 어두운 눈가를 보고서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나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교수님.”
마법사가 나를 올려다봤다.
이번 사건이 많이 충격이었는지, 일주일 새에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얼굴이 변해 있었다.
“에른스트 각하?”
“알아보시는군요.”
“각하를 모를 수가 있습니까.”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체념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 개인으로서도 모를 수 없지. 그를 구속시킨 것도 사실상 나니까.
그러나 나를 보는 시선에서 원한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단지 제 손으로 학생을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는 그 믿을 수 없는 사건과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한 일주일간의 긴 수사가 그를 피로에 시달리게 했을 것이다.
교수는 이제야 내 옆의 레오를 인식한 듯 조금이나마 밝아진 표정으로 아는 체를 했다.
“옆에는… 레오나르드 학생이군요. 우리 반 학생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교수님께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수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지 그대로 입을 닫았다. 무죄를 소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당연하다.
나는 착잡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레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가져온 봉투를 열었다.
“아셔야 하실 것이 있어 직접 전하러 왔습니다.”
붉은 인장이 찍힌 빳빳한 백색 종이가 그의 앞으로 내밀어졌다.
내가 그걸 내밀었음에도 그는 멍하니 나를 보고 있다가, 한참 뒤 천천히 시선을 책상에 고정했다.
“…!”
그의 눈이 커졌다.
“폐하께서 불기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가 고개를 번쩍 들어 나와 레오를 번갈아 바라봤다.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서 미소지었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