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98)
“알겠어.”
학생들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가 미메시스 조작창을 건드리며 필드 가짓수가 나온 창을 학생들 앞에 띄웠다.
“어떤 필드를 받을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야. 우리 팀이나 3팀이나 모두 시험 시작 후부터 필드 전략을 세울 수 있으니, 시작 직후 5분, 아스카니엔이 필드를 보고 전략을 세울 시간에 우리가 그대로 치고 나가서 승기를 잡아야 해.”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 율리아랑 엘리아스는? 그쪽도 전략 세울 수 있잖아. 나르케 능력 복불복이라 저 팀에서는 루카스만 원거리로 통한다며.”
루카스에게만 얼굴을 보지 않고도 능력이 통한다는 특이한 사실을 그대로 드러낼 수가 없어, 이곳에서 나르케는 여지를 좀 더 남긴 채 학생들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다.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율리아도 엘리아스도 무시할 수 없는 상대인 건 맞지만,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몰라도 팀의 컨트롤 타워가 무너지는 상황이라면 말이 달라져. 평지에서 게임을 치르는 것과 붕괴되어 가는 땅 위에서 게임을 치르는 건 당연히 천지 차이지. 혼란 속에서 손을 쓰려 해 봤자 이미 상황은 우리에게 우세하게 돌아가 있어.”
루카스를 무너뜨리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다른 이들도 뛰어나지만 루카스를 중심으로 전략을 꾸린 만큼, 한번 무너지면 복구에 시간이 걸리므로 당장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이었다.
한 학생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스카니엔이 그렇게까지 중요해? 3팀 애들이 다 걔한테 의존하고 있진 않을 거 아냐. 이렇게까지 계속 걔 얘기만….”
나르케가 생각에 잠겨 있다가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잘 모르나 보네.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래…?”
“3차에 들어 온 24명이 세울 수 있는 모든 전략 중에서 루카스가 세우는 전략이 제일 완성도 높고, 또 제일 파괴력 높아. 성공 확률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레오도 동의하지?”
레오는 루카스와 친한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지,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루카스가 전략을 짜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아무 문제 없다는 거 알잖아~”
나르케가 다들 알지 않냐는 듯 눈썹을 올리며 웃었다. 질문한 학생을 제외하고, 나르케 앞에 둘러앉은 세 학생 모두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아와 엘리아스, 다른 3팀의 누군가가 전략을 짜도 어차피 그건 루카스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루카스를 팀 활동에서 아예 배제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렇다면 그 뒤에는?
루카스가 인식한 전략은 그대로 나르케에게 전달된다.
즉, 누가 전략을 짜든 3팀은 1팀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얘들아. 1교육원 선배님들께서 그러셨듯이 3팀 일부는 우리를 찾고, 나머지는 피해자를 찾으러 다니겠지. 여기서 하나 더 분명히 하고 가자.”
학생들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레오가 테이블에 손을 짚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는 3팀 중 누구도 이 필드에서 마주치지 않을 거야.”
“…….”
같은 필드에 떨어졌는데 마주치지 않겠다니.
학생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1분반 1등인 울리케만이 웃음을 흘렸다.
“아, 재밌네. 3팀이 우리를 찾으러 오면 그걸 읽어서 먼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겠다 이거잖아.”
“그래. 대치하면 대치할수록 처리 시간은 길어지고 우리 전력에 불필요한 피해를 내게 되지. 게다가 시험의 주제가 피해자 구조 활동인 만큼 1초라도 더 빨리 마무리해야 해. 그러니, 우리는….”
레오가 음소거한 1교육원 훈련 영상을 응시하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3팀이 우리 발목을 잡는 걸 1분도 용납할 수 없어. 3팀이 헛발질하게 두고, 우리 팀은 피해자 찾기에 집중한다.”
정적이 흘렀다.
과에서 늘 1등을 다투는 이는 다르다,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눈으로 레오를 바라봤다. 물론 이 자리에는 이미 실력자들만 모인 만큼, 그들의 생각도 레오와 다르지 않았다.
그때, 울리케가 웃으며 말했다.
“와, 율리아랑 오늘 아침까지 같은 팀이었으면서 엄청 살벌하네. 그러고 보니 반장 너 루카스도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그런가?”
“…….”
“마법약 대회 때 보니까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 보네.”
그 말에 레오는 무언가를 참듯이 숨을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잡담할 시간 없어. 질문할 사람?”
“루카스도 지금쯤 나르케 능력까지 생각해서 전략을 짜고 있을 텐데. 걔네도 안다며?”
울리케의 말에, 레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지. 필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머리 돌아갈 텐데, 생각은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렇지~”
나르케가 동조했다.
여기에는 방법이 없다.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인간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무엇보다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걸 생각해 볼 수 있지.
‘내 능력을 고려한 루카스가 자진해서 전략가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루카스라면 이것까지 생각해 보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루카스만 마크한다는 전략 하나만 세워 두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수많은 변수에 대한 대비책이 있다.
루카스가 뒤로 물러나는 이 경우에도 우리의 대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남의 전략에 따르더라도 루카스는 언제나 같은 상황에서 더 성공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늘 그랬듯이 그는 팀원들의 전략에 따르다가도 언제든지 주변 환경을 고려해 계속해서 판단하고 생각할 것이다.
‘2차 때처럼 말이야.’
율리아의 지시를 듣기만 하다 순식간에 팀장 자리를 바꿔 버린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궁지에 몰렸거나 대치 상황이 길어지는 등, 3팀에 있어 가장 난감하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전략이 등장할 것이다.
전략 수립에 시작부터 참여하든 결정적인 순간부터 참여하든, 아니면 그 빛나는 발상을 일부러 입 밖에 내지 않고 나를 의식해 생각을 지우려 하든, 우리는 그것이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루카스의 발상을 우리의 것으로 가져올 것이다.
그것이 루카스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다.
‘좀 미안하지만… 시합은 시합이니까.’
나르케는 그렇게 생각하며 권능을 사용했다.
[…그때 거대한 물결이 밀려와 소년을 휩쓸었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 설마 밀려갔냐? …소년은 사라졌고, 모래사장은 평온했다. 진짜네….]
뜬금없는 생각이다.
물론 선명히 읽히지는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두루뭉술하게나마 들어왔다.
‘역시, 내가 읽을 걸 고려해서 벌써부터 생각을 피하고 있구나.’
그래도 한계가 있는데.
지금은 의도적으로 소설책이라도 펼친 모양이지만, 시험을 시작할 때가 되면 어쩔 수 없게 된다.
물론 루카스가 이대로 속수무책으로 우리에게 당해 줄지, 아니면….
‘또 예상도 못 한 발상을 해 올지.’
그건 정말 궁금하다.
예지를 써도 지금은 우리 팀이 우승하는 광경만 그려진다.
레오가 회람판에 손을 두드리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자, 그래. 마지막으로 정리 한 번 하자. 아스카니엔의 전략을 그대로 반전시켜 3팀과의 직접 접촉을 최소화한다. 부딪히지 않아도 원거리에서 전략을 알아낼 수 있으니, 그대로 돌파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끝낸다. 이것만 기억하자.”
“아, 좀 얌체 같기도 한데. 사실 그쪽 전략 그대로 빼앗아서 15분 컷 하겠다는 거잖아.”
울리케가 웃으며 말했다.
2차 때 엘리아스네 팀 팀장이었을 때는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더니, 그 뒤로 각성이라도 한 건지 마법약 대회 때처럼 장난기가 늘기 시작했다.
레오는 고개를 저으며 울리케의 가볍고 비딱한 말투에 눈치를 주었다.
“정당한 전략이야. 적의 수를 읽었는데도 그대로 행동하게 두는 건 양심이 아니라 오만이자 실책이지.”
“그래, 맞아.”
레오의 말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울리케가 벌써부터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의자에 팔을 턱 걸쳤다.
“이야, 게임 끝이네. 마법약 실험대회에서 나랑 루카스 사이좋았는데.”
“정에 휘둘리지 마.”
“그거야 당연하지. 적 생각 읽어서 내가 그대로 사용하는 이 재밌는 기회를 어떻게 정에 휘둘려서 날려.”
어차피 울리케 그 자신도 1분반에서 줄곧 1등만 해 왔던 만큼, 시험 중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때마침, 상황실의 불이 차례로 나갔다. 벽 한 면을 이루고 있던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만이 완전한 암흑이 오지 않도록 이곳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삐이이익—
[시험 시작 5분 전입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는 지금 바로 대기실로 이동하십시오.]
학생들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지만, 그들의 실력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자신감이 눈빛에 흐르고 있었다.
이내 그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나르케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됐네. 가자.”
* * *
“나르케 학생 능력이 루카스 학생에게 더 잘 통하는 모양이군요.”
출제자 대기실에서 상황실의 영상을 지켜보고 있던 1교육원 교수가 웃으며 옆자리를 바라봤다.
“교수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돌파구가 없지 않습니까?”
“없지요. 이야, 이거….”
“교수님이 출제하시고도 막막하신가 보군요.”
“그래요.”
그 말에 상황실 카메라를 구경하고 있던 1교육원과 2교육원 교수들에게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 출제자였던 1교육원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쓸었다.
“정말 1팀의 분석 그대로입니다. 3팀에서는 어떤 말을 하든, 아니면 말없이 어떤 장소로 이끌든, 그게 전부 루카스 학생의 뇌에 생각의 형태로 전달될 테니까요. 기밀이랄 것 없이 모든 것을 적에게 공개하는 셈이니 완전히 3팀에게 불리한 상황이지요.”
“어쩌시려고 이런 짓을….”
“나르케 학생의 능력이 루카스 학생에게 더 잘 통하는 줄 알고 한 것은 아니니까요.”
교수가 웃으며 주위 교수들을 바라봤다.
“그래도 잘됐습니다. 완벽한 대책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위기 상황에서 3팀 아이들이 얼마나 좋은 차선책을 내놓을 수 있는지 파악할 기회가 되었으니까요.”
차선책.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던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선책이라도 찾으면 다행이다.
이 게임은 3팀이 져도 어쩔 수 없다.
아니, 출발 지점부터 다르니 지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 상황을 이겨 내려 노력했느냐다.
‘3팀 학생들이 벌써부터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교수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학생들이 이동하는 장면을 바라봤다.
같은 시각, 3팀 대기실.
[시험 시작 3분 전입니다.]
“으아아아악!”
“우리 어떡해에에에에….”
대기실에 도착하자, 우리 팀 학생들이 절규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어진 전략 수립 시간을 날리지는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고유능력과 공격 및 방어 방식을 공유했고, 이제 우리 팀이 된—어제까지는 다른 팀이었던—학생들에게서 1팀 구성원에 대한 정보를 뽑아내 종합했다.
물론 나는 듣기만 하고 책을 읽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저놈들은 전부 제대로 해 놓고 저러고 있다.
“루카스! 너 왜 이렇게 태평한 거야!”
오스왈드가 책을 읽고 있던 내 어깨를 콱 붙잡고서는 우는소리를 했다.
“나도 울어야 해?”
“아니… 나르케가 우리 생각 다 읽는다며! 특히 너는 실시간으로 생각 읽힌다고 했잖아! 거기서도 책 읽을 거야?!”
“귀청 떨어지겠어, 오스왈드.”
“아니, 미안. 근데 네가 네 머릿속에 떠오른 전략을 쓰든 안 쓰든, 네가 생각하는 가능성이면 다 쓸 만한 걸 텐데 그걸 전부 그쪽에서 털어먹을 기회가 생긴단 말이잖아. 네가 2차 시험 때 보여 줬던 그런 획기적인 가능성이 수십 개 사라지는 거고! 어쨌거나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시작부터 망했다는 거잖아?!”
“율리아랑 엘리아스 있잖아.”
내 심드렁한 대답에 오스왈드가 절망적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근데, 루카스. 들어 봐. 율리아랑 엘리아스가 떠올릴 전략이면 너도 이미 떠올렸겠지?”
“뭐?”
엘리아스가 헛웃음 치며 뒤돌았다.
오스왈드는 엘리아스고 뭐고 죄다 안중에도 없는지 나만 보며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그게 아니라 해도, 우리가 너한테 공유하는 전략이 죄다 나르케 뇌로 들어가는 거잖아? 그러면 밑천 다 털리는 걸로 모자라서 매 순간 영업 방해 들어오겠지? 너라면 이미 여기까지 파악했을 거 아냐!”
“좋게 평가해 줘서 고맙다.”
“아냐! 이게 아냐!”
“그래. 맞아. 진짜로 망했어. 우린 끝장이야. 이 말이 듣고 싶었구나.”
“으아아아….”
오스왈드가 이제는 나를 놓고 벽에 가서 머리를 박고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대로 끝이라고?”
아우구스테와 플로리안은 살짝 걱정이 되는 듯해 보였지만, 그래도 오스왈드보다는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엘리아스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웃었다.
“하하, 루카 태평하네~”
“태평해야지. 시작 전 30초까지.”
“음, 나르케에 대한 전략을 30초 전부터 세우려고? 지금 미리 세워 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고, 진짜 30초 전부터 머리 굴릴 거란 말이지?”
“그래. 지금은 그냥 텅 비워 놨어.”
“이야, 기대되는데~”
“그러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체링겐이 은은한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내 안일함과 딴청에 화가 날 법도 한데, 그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지켜봤다.
엘리아스처럼 날 완전히 믿고 있었다.
[시험 시작 1분 전입니다.]
“으아악!”
[59, 58….]
지잉—
우리와 시험장을 가로막고 있던 문이 열렸다.
붉은 안내등만이 점멸하던 어두운 대기실에 눈부신 빛이 밀려왔다.
[55, 54, 53….]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새하얀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나는 문득 든 생각에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음.”
“응…?”
오스왈드가 흙빛이 된 얼굴로 반응했다.
나는 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조금 일찍 생각났네.”
[45, 44, 43….]
멍하니 나를 보고 있던 오스왈드가 눈을 크게 떴다. 아우구스테와 플로리안도 같은 반응이었다.
“뭐?! 생각났어? 뭐가?!”
“그런데 리스크가 좀 있어. 약속해 줄래?”
“뭔데. 약속할게.”
엘리아스가 제멋대로 입을 열었다.
다행히 다른 팀원들도 그와 생각이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래! 저 사기 능력을 막아야 하는데 리스크가 없겠어?! 있어도 되니까 뭔지 말만 해!”
오스왈드가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외쳤다.
그러나 그 리스크를 입 밖에 내 생각을 구체화하기에는 때가 일렀다.
[23, 22, 21….]
나는 팀원들을 보며, 간단히 말했다.
“너희를 믿을게. 날 믿어 줘.”
* * *
[3, 2, 1. 시작합니다.]
콰아아아앙—
나르케는 세찬 바람 속에서 눈을 떴다.
1팀 학생들이 저처럼 눈가를 막으며 주위를 살피는 게 보였다.
위로 창공이 있으며, 붉은 벽돌로 된 구조물이 하늘을 가로막고 있다. 아래로는 도심이 내려다보인다.
“시계탑이네. 나르케.”
레오의 지시에 나르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부터 앞으로 약 15분간 능력을 쓰기 위해 아껴 뒀던 힘을 풀 때였다.
한참 머리를 짚고 눈을 감고 있던 나르케가 눈을 번쩍 떴다.
“…으음?”
레오를 비롯한 1팀 학생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오가 나르케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나르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제가 뭘 읽었는지 믿지 못하는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어어어어?!”
“왜. 뭔데?”
“뭐지? 뭐야, 왜….”
이상한 반응에, 1팀 학생들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 뒤죽박죽이지? 꼭 눈 감고 사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리고 웬 관짝?”
“에엥? 비유법 쓰지 말고 제대로 말해 봐!”
울리케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듯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나르케가 그대로 굳은 채 멍하니 허공을 보다, 레오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필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머리 돌아갈 텐데, 생각은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아까 레오가 이렇게 말했지.”
“그래.”
“맞는 말이야. 생각을 막을 수는 없어. 그런데… 필드에 들어가되, 상황 판단을 지연시키고 감각을 교란할 방법이 있다면?”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차라리 아까 나르케 네 말대로 눈 감고 들어가는 게 효과적이겠….”
거기까지 말하던 울리케가 말을 멈췄다.
그와 팀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당황한 낯으로 서 있던 레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
‘미라 체험 제대로네.’
이제 관짝 찾아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내 선택을 반쯤 비꼬며 주위의 마력과 소리에 집중했다.
스트라우치를 만났을 때 들었던 것과 같은 바람 소리. 그리고 인적이 닿지 않은 듯 희미한 마력.
“시계탑이구나.”
“그래, 루카. 그건 아는구나~”
뒤쪽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앞으로 옮겨졌다.
엘리아스가 내 앞에 서 있는 듯했다.
“알긴 알아도 느리지. 너희보다 한 박자 늦게 알았을걸.”
“맞아! 우리가 아래 구경한 지 5초쯤 지났는데 넌 이제야 알더라고~ 그나저나….”
손가락 같은 무언가가 내 콧대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거즈의 감촉이 피부에 느껴졌다.
“1팀 반응이 궁금한데~”
나는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이쯤에서, 레오의 사고방식을 좀 따라 해 볼까.
내가 레오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그쪽은 출제 의도와 시험 포맷에 집중했을 것이다.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피해자 여럿을 구조한다, 다른 시험보다 이 시험에서 가장 효과적인 승리 포인트는 소요 시간이다.
들인 시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팀의 단합력과 실력을 증명할 수 있으며, 피해자 구조 활동이라는 시험 주제에 충실히 따른 것이 된다.
그러니, 레오는 내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우리 팀의 모든 정보와 전략을 그대로 역이용해, 우리 팀에게 손도 대지 않고 피해자만 빠르게 찾아내 모든 것을 정리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루카 네 전략은?”
그렇게는 안 되지.
손대지 않고 코 풀게 둘 것 같은가?
맞다이를 떴으면 떴지, 쉽게 가게는 못 둔다.
방법은 하나다.
내게 들어오는 정보를 흙탕물로 만든다.
쓸 만한 정보를 읽어 낼 수 없게끔.
앞으로 내 운신이 자유롭지 않을 것과 놈들의 전략 수립 시간 한 시간이 수포가 되었다는 것쯤은 비슷한 값으로 퉁쳐 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제야, 출발선이 동등해졌다.
나는 눈을 가렸던 천을 살짝 들어, 엘리아스와 팀원들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뭐긴. 정석대로 각개격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