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00)
“북쪽? 지금 말한 이곳도 엘리아스에게는 북쪽인데, 더 위로 올라가라고?”
율리아가 제 옆의 루카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 1팀 시계탑 기준으로 북쪽. 이 광장은 우리 탑 기준으로 사실상 동쪽이야.”
“…….”
왜인지 묻고 싶었으나 그걸 물을 때는 아니다.
루카스를 믿는 게 낫다.
“엘리아스. 알렉산더 광장 쪽으로 올라오지 말고, 수도 북동쪽으로 올라가야 해.”
[…오케이~]
율리아가 엘리아스와의 연결을 끊고 루카스를 바라봤다.
“역시 이게 함정이구나. 그럼 하이케에게 내려가 봐야겠는데.”
“아니, 하이케는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을 거야.”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알려 줄게. 조금만 기다려.”
“…….”
무슨 방법으로 알아내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율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루카스 네가 위치를 찾는 동안….”
그가 턱을 쓸며 말했다.
“우리는 전략을 조금 새로 짜야겠네. 내 고유능력이 낙뢰고, 오스왈드는 후각이 좋지. 플로리안은 전처럼 식물에 관한 능력을 쓸 수 있고…. 아우구스테는 환영을 만들 수 있다고 했어. 맞지, 루카스?”
“맞아.”
“좋아, 자리를 옮겨서 시작해 볼까? 엘리아스와 다시 만나야겠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하이케 아인시델은 우리가 데려가야겠는데.
율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웃었다.
* * *
동쪽은 남쪽.
동쪽에서 폭주 흔적을 찾으면 하이케는 남쪽으로 워프해 거짓 보고를 한다.
그것이 내가 처음 준 명령이다.
두 시계탑 사이의 거리는 약 10km. 심지어 양옆으로 이만한 길이가 더 있다. 시험 하나의 필드로는 굉장히 넓은 편이다.
그러나 워프가 자유롭고 도심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는 이점 덕에, 우리에게 이만한 너비는 아주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조금 부담이기는 해도.
그러니 이 전략은 어딘가에 숨어 하이케 아인시델을 뒤쫓고 있을 3팀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
레오가 입을 꾹 깨물며 달렸다. 바람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벌써 파악하다니.
분명 코어 때문일 거다.
안 그래도 루카스가 아까부터 계속 장난질을 치고 있는 건지, 불규칙적으로 코어에 통증이 닥치고 있다.
코어에 치유 마법을 쓰는 중이라 아주 아프지는 않았으나….
‘…엄청 신경 쓰이네. 방해 작전인가?’
신경 쓰이는 걸로 모자라 이제는 위치까지 들켰다.
루카스에게 아티팩트를 끼우고 이미 일주일쯤 지난 터라 레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예속 마법을 그대로 따라 한 그 아티팩트로, 내 마력이 대략 어디에 있는지쯤은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루카스가 엘리자베트 전하를 만날 때에도 문제가 생기면 내가 바로 뒤따라가겠다고 약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원본인 예속 마법도 추적이 가능할 터다.
문제는 시험 중에 개인 아티팩트를 착용할 수 없어, 지금 나는 루카스의 코어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불공평해.’
유치하게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불공평하다.
루카스의 코어를 다룰 권리는 내가 정당히 얻은 권리였다. 루카스가 내 코어를 쥐락펴락하는 것쯤이야 많이 양보해 상관없다 쳐도, 내게서 통제할 능력이 사라진 건 학교로부터 자유 의지를 빼앗긴 느낌이라 짜증이 나서 뱃속이 뒤틀렸다.
결국 지금 시험 중에 혼자만 불리해지지 않았던가? 지금 루카스가 쓰는 모든 능력이 내게도 있었으면 우리 팀은 한참 유리한 상황에 있었을 것이다.
나르케가 깔깔대며 말했다.
[그러게 왜 허락했어!]
“허락한 적 없어.”
내 생각은 잘 읽지도 못하면서 잘도 맞췄다. 나르케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그는 이미 통찰로 사정을 다 알아 버린 게 분명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아닌데~]
“뭐가 아냐?! 안 그래도 그때 얼마나 당황했는데….”
[그럼 부숴, 레오.]
할 말은 많았으나 내뱉을 수 없었다.
대체 이 주제로 대화는 왜 하고 있는 건데? 안 그래도 두 명이나 신호가 끊겨서 혼란스러운 상황에 잡담할 시간은 없다.
뭐라 쏘아붙이려 숨을 크게 들이쉬자마자, 나르케가 웃으며 말했다.
[아아아! 알겠어~ 건물 수색 중인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 이 거리에서 폭주자가 뛰어다닌 건 확실한데, 우선 1층에서 신력 쐈을 때 잡히는 게 없어. 그렇단 말은 지하나 2층 이상의 공간에 피해자가 있다는 말이겠지. 진입 방향부터 좌우 세 번째 건물까지 수색 중이야.]
“그래. 그보다, 루카스가 이걸 알았다고 했지.”
[응.]
루카스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라.
우리 팀에서 먼저 한 명의 피해자를 찾으면 모두의 미메시스 시야에 그 신호가 간다.
루카스를 찾아 후방으로 진입하기에는 낭비가 크므로, 우리는 먼저 피해자를 찾고 3팀을 압박해 루카스를 꺼내 올 생각이었다.
전략은 변하지 않았다.
레오는 미친 듯이 뛰다, 한 안내판 앞에서 멈춰 섰다.
‘음, 찾았다.’
[오라니엔베르거 거리 - 128:333:456]
워프 좌표가 적힌 안내판.
하이케는 내게 속임수용 연락을 보내기 전, 오라니엔베르거와 프리드리히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폭주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글자가 좌우로 뒤집혀 있다. 내가 선 구역은 복제된 구역이므로 당연했다.
레오는 잠깐 고민하다 손가락을 튕겨, 워프 좌표로 이동했다.
금세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 남쪽이군.’
오라니엔베르거로 워프하는 사람은 모두 이 지점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다.
이제, 위로 뛰어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방을 한번 둘러본 순간, 레오는 익숙한 누군가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
하이케 아인시델이 방금까지 누구와 싸웠던 건지 아니면 함정에 걸린 건지, 마력에 짓눌려 있었다.
완드를 휘두르자 그를 짓누르던 마력이 부서졌다. 하이케가 뺨에서 피를 흘리며 인상을 쓰고 레오를 올려다봤다.
“…레, 레오.”
‘환영?’
4팀에서 올라온 우리 팀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이전 4팀이었던 아우구스테 로젠하임은 환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같은 팀원들조차 진짜가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실감 나는 환영인 데다, 또 그것의 진위를 의심하는 정도로는 풀리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들은 내용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 일단 이 하이케가 진짜 우리 팀원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오라니엔베르거 워프 좌표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발견됐다는 건, 이게 나를 노리기 위한 환영일 수도 있겠지만….
하이케 스스로 자신이 들켰다는 소식을 듣고서 속임수를 쓰길 포기하고 이곳으로 지원 왔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레오, 빨리 결계 쳐. 그리고 나 신경쓰지 말고 프리드리히 거리로 올라가. 빨리.”
주위를 확인했지만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레오가 손가락을 튕겨 결계를 치고 말했다.
“무슨 상황인지부터 말해.”
“…율리아가 날 쫓아왔어. 율리아랑 루카스가 알렉산더 광장 옆 그랜드호텔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나르케에게 들었어?”
“사실이야?”
하이케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나르케가 다른 데에 집중하다 온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뭐가?]
“루카스랑 율리아가 알렉산더 광장 옆 그랜드 호텔에서 하이케를 봤냐고.”
[으음, 그랬지~]
하이케가 특유의 느릿느릿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러면서도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티팩트도 부서졌어. 여분 있어?”
“응. 이따 줄게.”
“지금은?”
“안 되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바닥에 아티팩트를 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어나.”
레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잡으려던 하이케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뒤!”
“…!”
콰앙—!
레오가 뒤돌아 팔로 시야를 막았다.
황금빛 마력이 눈앞에서 흩어졌다. 이게 누구의 것인지는 잘 알았다.
건너편 건물의 꼭대기 층에 율리아가 서 있었다.
아까는 분명히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하긴, 놈은 실력이 좋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나저나… 아예 거리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을 작정인가.’
“율리아.”
“으음.”
“루카스는 어디에 두고?”
“엘리아스에게 넘겨주고 왔지. 왜?”
“아니야.”
레오가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손을 내질렀다.
무언가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솟구쳐 올라, 율리아에게 닥쳤다.
콰앙—!
율리아가 장막을 쳤지만 때는 늦었다. 건물 벽에서부터 자란 두껍고 질긴 식물 줄기가 그의 팔목을 붙잡아 바닥으로 내던지려 했다.
율리아가 잽싸게 마력으로 그것을 끊고는 바닥으로 뛰어 착지했다.
“여전하네, 레오.”
“여전해야지.”
“아, 사실 너랑은 일대일로 대련하고 싶었는데.”
“지금이 기회네. 원하는 대로 여기서 풀어.”
“그럴 시간 없는 거 알잖아.”
말과 달리, 하얀 검날이 레오의 눈에 비쳤다.
채앵! 끼긱—
율리아 특유의 무게감 있는 공격이 그대로 레오의 검에 실렸다.
여태 레오 자신이 느껴 왔던 그 감각 그대로였다.
‘환각이 아닌가.’
아직까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율리아가 익숙한 목소리로 웃었다.
“역시 방학 때마다 우리 집에 와서 훈련받은 보람이 있네.”
3교육원 중반까지는 방학마다 바덴에 가서 훈련받긴 했지.
레오가 손목에 들어가는 힘을 조절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언제 적 이야기야? 그리고 너한테 훈련받은 게 아니잖아.”
“언제 적이냐니….”
콰앙—!
율리아가 바닥을 발로 쾅 굴렀다.
땅으로 솟구친 마력 탓에, 레오는 중심을 유지하며 제 검 밑으로 흘러내려간 율리아의 검과 그의 동세에 집중했다.
그러자 율리아에게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까부터 이런 식으로 뒤는 확인 안 하는 게 좀 걸리네. 다시 바덴 와서 훈련받을래?”
율리아는 앞에 있으나, 파공음이 뜬금없이 뒤에서 들려왔다.
옆으로 몸을 돌려 두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한 순간, 순식간에 눈앞에서 율리아가 사라졌다.
인간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싸우던 중 사라지다니.
이건 목적이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역시나, 있어야 할 자리에 하이케가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하이케에 집중할 때는 아니었다.
아까의 파공음. 그것이….
까앙—!
레오는 손목을 비틀어 제게 날아오는 날붙이를 막아 냈다.
그것이 남아 있으니, 하이케는 일단 나중이다.
“집중하지 그래.”
“…….”
집중했는데.
그런 태클을 걸기엔 상황이 좋지 못했다.
나타난 건 루카스였다.
눈을 막은 천을 빼지도 않은 상태였다.
‘…아.’
미끼군.
하이케를 쫓는 대신 루카스의 안대를 벗기라 이건가.
아까도 생각했듯이, 그의 눈을 자유롭게 해 필드를 살피게 하는 그 순간부터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된다.
좋은 제안이다. 물론 여기서도 가능성이 두 가지로 나뉜다.
“나르케. 당장 하이케 찾아. 율리아랑 사라졌어.”
[이따가! 아아아, 정말, 3팀 도둑질 너무 잘하는데~? 그보다 너도 빨리 와서 도와! 3팀 오기 전에 끝내야지!]
레오가 루카스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르케의 말을 들었다.
상상만 하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눈을 가린 걸 직접 보니 생각보다 본능적인 공포심에 소름이 돋았다. 나르케가 미라니 관짝이니 하는 소리를 혼자 중얼중얼거릴 때는 흘려들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진짜로 관짝 열고 일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직접 미끼 자처하고 왔는데 이렇게 대하면 온 사람 짜증 나지, 반장.”
“반장?”
쌔액— 쾅!
레오가 루카스의 검을 피해 옆으로 물러났다.
루카스 입으로 반장 소리 들어 본 적이 얼마 만이더라. 연기인가? 이것 역시 가능성이 두 가지다.
레오가 검을 거둬 완드로 바꾸며 계속해서 루카스의 공격을 막기만 하고 말했다.
“그럼 그거 풀어.”
“…….”
“뭘 말하는지 알겠지. 미끼로 왔다며. 하이케도 빼앗겼는데 너라도….”
콰아앙!
레오가 발을 크게 굴러 옆으로 몸을 빼며 손을 다시 한번 내질렀다.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무언가가 꼭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요동쳤다. 마력을 느낀 루카스가 뒤를 홱 돌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시간 끌어 줘야지.”
식물 줄기가 정확히 머리 뒤의 끈을 붙잡아 당겼다.
레오가 말을 마치고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봤다.
뒤늦게 중심을 잡고 몸을 낮춘 루카스가 혀를 한번 차더니 이쪽을 바라봤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햇빛이 따가운지, 그가 눈을 찡그리며 눈썹뼈 부근을 눌렀다.
평소처럼 무덤덤한 얼굴의 루카스다.
마찬가지로 늘 그렇듯,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분홍색 홍채가 시선 끝에 닿았다.
“…….”
레오가 그 얼굴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내내 두 가지 가능성이 50대 50 비율로 이 상황을 양분하고 있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다.
레오가 귓가의 아티팩트를 두드렸다.
“나르케. 아우구스테가 이 주변에 있다.”
그 말과 함께, 루카스가 아까의 율리아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시 아까의 율리아도 환영이었다.
[…이제 건물 네 개 남았어! 빨리 수색해! 잠깐, 뭐? 아우구스테? 너 설마 안 오는 게….]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나르케. 거기에 3팀 애들 있어?”
[아니.]
“있어. 3팀이 기껏 찾은 포인트를 버릴 리가 없거든. 다시 찾아봐. 그리고 하이케가 거기 없다고 했지?”
[응.]
하이케는 처음 우리에게 진짜 정보를 보고할 때, 우리에게 사소한 정보까지 전부 불러 주었다.
그건 폭주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알 단서가 된다.
폭주 사건이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에는 분명히 오염된 소스가 어딘가에 있었고, 그게 여러 사람의 몸에서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는 뜻이다.
즉, 여러 건이 일어났대도 원인은 하나다.
그리고 루카스라면 또 몰라도, 내가 생각할 내용이면 엘리아스도, 율리아도 전부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
“지금, 하나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살짝 시차가 있었거든. 네가 내게 ‘루카스가 알아챘다’고 말했던 것과 내가 이 거리에 도착해서 아우구스테를 만나기까지의 시간 말이야. 체감상 5분쯤 차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레오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상황을 파악했는지, 나르케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좋아. 알겠어.]
* * *
‘아, 젠장.’
아우구스테가 혀를 차며 벽에 붙였던 뒤통수를 떼 창밖을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어떻게 알아챈 거지. 분명 하이케랑 율리아 단계까지는 속았는데.’
하이케는 내가 원래 알던 친구였기에 그가 어떤 인간인지 알았고, 그래서 환영을 보여 주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율리아도 내게 필요한 정보를 주고 갔기에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막힐 줄이야.
루카스와 레오의 관계가 어떤지는 전교생이 잘 알고, 나 역시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았는데.
사람으로 환영을 만들 때는 미세하게 감정을 여러 층으로 쌓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밋밋하고 꼭 인형 같은 환상이 만들어진다. 고유능력이 발현된 어릴 적부터 10년 넘게 쌓인 데이터였기에 분명히 알고 있었고,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루카스 단계에서 혐오감을 섞었던 게 잘못이었나?’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면 상대방도 똑같이 날 싫어할 거란 각오쯤은 되어 있는 게 보통 아닌가?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대도 그 감정에 전염되는 게 일반적이다. 레오를 보는 루카스는 그를 혐오하는 눈빛을 하는 게 당연하다.
혹시 나는 루카스를 싫어하되 루카스는 날 좋은 감정으로 대하길 내심 바란 건가?
‘…아냐. 그런 느낌으로 화풀이하는 모습은 또 아니었다고.’
정말 환각이라는 걸 알아챈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이럴 시간은 없다.
당장 율리아와 엘리아스에게 상황을 알리러 가야 한다.
그렇게 건물을 뛰어 내려가 엘리아스의 아티팩트에 신호를 보내려던 순간,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커다란 안내음이 들려왔다.
삐이이이—
아우구스테의 눈이 커졌다.
눈앞에 붉은 글씨가 홀출해 깜빡였다.
[1팀: +1]
[3팀: 0]
* * *
1점 내줬다.
[…엘리아스. 미안하다. 약속한 시간까지 거의 붙잡아 놨는데… 레오가 마지막에 눈치챘어.]
“으으음~ 괜찮아. 자책하지 말고.”
엘리아스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어깨동무한 친구에게 속삭였다.
“야~ 우리 나르케 진짜 대단하네. 아닌가, 레오가 대단한 건가?”
“…….”
“환각에 4분을 붙잡혀 있다가 마지막 1분에서 눈치챈 게 말이 돼? 레오인지 누군지가 1분 만에 오스왈드랑 플로리안 아티팩트 박살 냈는데, 이걸 어째야 하나 몰라. 걔네들도 그렇게 못하는 놈들이 아닌데 어떻게 이러냐고~”
영혼이 털린 얼굴로 하얗게 질린 하이케가 엘리아스 곁에 붙들려 휘청거렸다.
“…너도 내 아티팩트 부쉈잖아. 울리케랑 요제핀 것도.”
“그러게 날 레오로 착각하면 어떡해, 하이케. 아우구스테 고유능력 진짜 좋다. 그렇지?”
쓸데없이 온화한 목소리에 하이케가 눈을 질끈 감았다.
평소에는 감정을 잘 느끼지도 못하는데 왜인지 열이 뻗쳤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라지만 역시 이렇게 놀려대고 있으니 화가 나긴 한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가짜 보고를 보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남쪽에서 레오가 뛰어 올라왔다. 아티팩트가 고장났다고 해서 다시 5분간 처음부터 이것저것 설명해 줬더니만, 그게 사실은 엘리아스였다.
여기에 아우구스테가 능력을 쓰고 있다고 알리려 했더니만, 아우구스테는 진짜 레오에게로 가고 엘리아스는 제 아티팩트를 부쉈다.
하이케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엘리아스는 대수롭지 않게 건물 안의 시계를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이제 레오 여기로 오겠네.”
“…뭐? 어떻게?”
엘리아스가 하이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혼자 장난스러운 말을 중얼거렸다.
“아~ 우리 왕자님 머리만 피나게 굴리는 바람에 이 친구는 똥줄 탄다고. 서쪽이 언제부터 북쪽인데? 어? 방위 블러핑이냐?”
“블러핑이라니.”
“…!”
엘리아스가 몸을 휙 돌렸다.
그러고는 뒤에 선 자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웃었다.
레오가 웬일로 비린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난 나쁜 패를 쥔 적이 없는데 표현은 똑바로 해 주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