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01화 (201/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01)

“벌써 왔어? 온 김에 하이케 데려가.”

엘리아스가 하이케를 떠밀고 양손을 들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고는 제 뒤에 서 있던 루카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차피 하이케 스스로 워프해 떠날 수도 있는 데다—1팀에게 타박을 들을 게 무서웠던 하이케가 스스로 결정해 엘리아스 곁에 있었을 뿐이다—, 그에게서 뽑아 먹을 단물은 다 뽑았기에 지금 바로 1팀에 돌려주어도 상관없었다.

레오가 제게 떠밀려 온 하이케를 붙잡아 옆으로 세워 주고 엘리아스 뒤편의 사람을 바라봤다.

진짜 루카스다.

루카스의 손에 워프 좌표 책자가 들린 걸 보니, 계속 그것을 읽고 있었던 듯하다. 지금은 다시 안대를 쓰고 있었다.

루카스는 앞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정확히 레오가 있는 곳을 보았다. 그러고는 저를 바라보는 레오에게 태평스럽게 인사했다.

“이렇게 만나니까 반갑네.”

“반가워?”

레오가 작게 웃음을 흘리고 완드를 들었다.

“그럼 내 얼굴 보고 인사해.”

콰앙—!

마력의 기류가 루카스의 얼굴에 확 닿았다가 꺼졌다. 엘리아스가 루카스 앞을 막아서며 장막을 쳤다.

“친구한테 너무 과격한 거 아냐?”

“그러면 안대 풀어. 너희 3팀이 원하는 대로 이제부터 하이케랑 내 뒤에 붙여 줄 테니까.”

“그냥 머리 굴리는 거 다 들키고 죽으란 소리잖아~ 루카는 숨만 쉬어도 계획 짜서 안 돼.”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앞을 보게 해야지. 그 무수한 가능성을 전부 박살 내 줄 기회를 내가 놓쳐야 할까?

이제 시간이 20분이 넘어가고 있다. 나르케의 진을 다 빼놓을 작정이었다면 성공이다.

레오가 말없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자, 엘리아스가 손뼉을 쳤다.

“자, 무슨 작정일까 생각해 볼까? 우리 레오는 호위받는 데에 익숙해서 단신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을 텐데.”

그 말에 루카스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레오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그들을 바라봤다.

뭘 웃고 있어? 내 호위나 다름없는 인간이 루카스인 건 둘째 치더라도, 호위받는 데에 익숙한 건 여기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다.

레오가 속으로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리아스는 그냥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자, 내가 한번 루카처럼 생각해 볼게. 레오 너는 어떻게 된 건지 아우구스테의 10년 짬이 녹은 환영 마법을 깨부수고….”

“단어 선택부터 루카스가 전혀 아닌데.”

“어쨌든 마법을 깨부수고서 넌 우리가 네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걸 알아챘어. 이때 너는 이렇게 생각했겠지. 아, 벌써 프리드리히 거리에 3팀 놈들이 잠입해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는 중이겠구나. 그리고…. 3팀의 모두가 프리드리히 거리에 가 있지 않은 걸 보면, 나머지 인원은 다른 폭주 장소를 찾으러 갔겠구나.”

엘리아스가 손가락을 펼쳐 들었다.

“여기 가능성이 두 가지 있지. 첫째, 나머지 인원은 아무 정보도 없이 머리부터 들이대는 중이다. 어쨌든 1분이라도 시간을 절약하면 이득이니까.”

“…….”

“둘째, 나머지 인원이 아우구스테를 활용해 하이케 아인시델로부터 폭주 단서를 얻었다. 그렇게 새 포인트를 찾아냈을 것이다.”

레오가 미소지었다.

엘리아스는 그런 레오를 따라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상대를 얕잡아 볼 수는 없으니 당연히 둘째를 골라야지. 마침 나르케에게 하이케 아인시델이 안 온다는 연락을 받았을 거야. 내가 틀려, 레오?”

“…역시 너랑 루카스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니까.”

“아, 그래. 네가 학기초에 그렇게 말했었지. 어쨌든 결론은 이거야.”

엘리아스가 레오를 빤히 바라봤다.

“둘째를 가정한 이상, 넌 여기에 혼자 오지 않았어. 내가 처음으로 아티팩트를 부숴 놨던 1팀 애들이 어딨는지는 몰라도, 밖에 나르케와 힐데가르트쯤은 왔겠지? 그럼 밖으로 조사 나갔던 율리아가 둘을 상대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엘리아스의 손이 귓가로 올라갔다.

삑—

“율리아가 정보를 찾아낼 때까지 매복한 뒤에 덮칠 생각인가?”

[…하하하… 정말 이번이 제일 난감한 시험이네~ 다들 실력이 좋아서 문제야.]

레오가 표정 없이 그를 바라봤다.

루카스를 뒤로 뺐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

율리아와 엘리아스 역시 결코 무시할 상대가 아니다.

율리아는 독창성이 부족해 유효한 전략을 짜는 속도가 느리지만 그 결과물이 치밀하고, 엘리아스는 그걸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능력이 뛰어나다. 심지어 엘리아스는 종종 루카스처럼 미친 발상을 해 오기도 한다.

둘 다 어릴 적부터 본 친구들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루카스도 그걸 파악하고 둘에게 맡긴 거겠지.’

만약 둘이 없었다면, 루카스는 시작부터 나르케를 타깃으로 잡고 그를 행동 불능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굉장한 손해가 예상되나, 팀의 두뇌로 써먹을 인물들이 없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결국 3팀이 우리에게 1점 밀렸으면서도 아직 기세등등한 건….

정말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고 있지만, 진짜 문제가 터졌을 때 루카스라는 히든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그렇기도 할 테고.

때마침 엘리아스가 웃으며 자랑질을 시작했다.

“레오. 그럴 줄 알고 내가 뭘 했는지 알아?”

“뭘 했는데.”

“하이케가 정말 좋은 정보를 주던데. 너희가 잡은 첫 번째 폭주자는 집 없이 돌아다니는 거지였어. 폭주까지 했으니 뭔가를 마셨거나 무언가에 오랫동안 접촉했겠지? 그런데 강물을 마셨거나 빗물을 마셨다면, 사실 말이 안 돼. 그 말고도 폭주해 죽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어야 했단 말이지.”

엘리아스가 빗물에 젖은 바닥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런데 사실 이걸로는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없잖아? 그러니 우리는 이게 시험이라는 인위적 상황이라는 걸 생각해 봐야 해.”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그래서.”

“하이케가 가져온 증거품이 있더라고? 길에 떨어져 있던 다 헤진 겉옷 주머니에 들어있던 종이인데….”

엘리아스가 노란색 종이와 그 아래 붙은 쪽지를 꺼냈다.

벌금 청구서다.

어이가 사라진 레오의 시선이 하이케에게 향했다.

저걸 넘겨?

시험인 만큼 학교가 저걸 넣어 길에 버려 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저게 바로 정답에 가까워질 단서란 말이다.

하이케가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시청 도시미관과에서 나온 벌금 청구서. 그 아래에는 손으로 적은 개인 연락처. 펜탈론 국제대회를 앞두고 정부에서 거지 없애기 운동이라도 하는 건지 별걸 다 뿌리고 다니더라~ 신문에서 본 걸 시험에서 마주치니 보통 반가운 게 아니던데.”

“…….”

“학교가 이걸 그냥 넣어 두지 않았겠지. 아마 너희가 하이케에게 이걸 받아 냈어야 했던 거겠지?”

엘리아스가 전단 맨 끝, 청구인 자리에 적힌 부서명을 가리켰다.

그 아래에 붙인 작은 종이에 손으로 추가해 적어 넣은 듯한 담당 직원의 이름과 우편 주소, 아마도 시청 어딘가의 좌표인 듯한 워프 좌표가 적혀 있었다.

“…굳이 이걸 넣어둔 걸 보면 학교는 우리가 이 사람과 관련된 위치로 찾아가길 바랐을 테니까. 어때, 이만하면 루카처럼 생각하기 성공인가?”

레오가 어깨를 으쓱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돌려받아야겠네.”

“힘내라. 난 안 줄 거야.”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왜 왔다고 생각해? 눈앞에 있는 내 얘기는 안 하고 다른 이야기만 하네.”

“너야 뻔하지. 우리 팀 에이스 찾으러 온 거잖아~ 루카 붕대 풀고 아직 짐작도 못한 마지막 1점까지 루카 힘으로 얻어 내려고.”

“잘 아네.”

레오가 웃으며 완드를 내질렀다.

장막에 푸른 마력이 튀어 빛났다.

엘리아스가 한 팔로 루카스를 붙든 채 다른 한 팔로 장막을 강화했다.

“안 되지, 레오. 이걸 어떻게 너희에게 내 줘? 메인에 서야 할 루카가 심심해서 우리 따라다니면서 서포트해 주는 줄 알아?”

엘리아스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레오가 손가락 사이로 완드를 돌려 스태프를 만들어 냈다. 엘리아스가 스태프의 위협적인 움직임에 자세를 갖추었다.

레오가 스태프를 위로 높이 들었다가, 힘을 실어 바닥에 내리쳤다.

콰아앙—!

“…?!”

엘리아스가 당황한 눈으로 레오를 바라봤다.

레오의 마력은 제게 오지 않았다. 유도 마법이 걸린 채 루카스에게 향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구석에 서 있던 하이케가 사라졌다.

레오가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오.”

“그럼 뭐 어떻게 막을 건데, 엘리아스.”

‘공간마법을 걸었네.’

하이케를 이동시킨 게 아니다. 우리가 이동한 것이다.

바깥에서 느껴지던 마력의 기류까지 사라졌다.

레오의 공간마법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그렇다고 약하다는 건 아니지만, 엘리아스 그 자신의 힘으로도 쉽게 파괴할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왜 이런 짓을?

“나르케가 붙었어.”

뒤에서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역시.

레오는 질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다. 도움이 있었으니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다.

“엘리아스, 네 논리는 다 좋았지만 뭔가 좀 오해가 있었어. 네가 루카스를 네 팀 에이스라고 칭할 정도인데 나라고 다르겠어?”

“…….”

“루카스 상대하는 데에 나 혼자 투입되었을 것 같냐고.”

“하하하….”

“나르케의 공간 마법 실력이 꽤 좋더라고.”

그 말과 함께, 레오의 마력이 코앞까지 닥쳐왔다.

루카스의 손이 엘리아스에게서 빠져나갔다. 루카스는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흐름을 눈치채고 거리를 벌렸다. 엘리아스가 그런 루카스를 흘끗 돌아보았다.

‘실력 좋네.’

직접 보기만 할 때도 놀라웠지만, 한 필드에서 아군으로 있어 보니 더 확실히 느껴진다. 이제 다섯 달 배운 실력이라고 하기에는 좀 지나치다.

지금도 루카스는 레오가 공격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지 못하도록 거리 조절을 유도하고 있다.

레오가 멀어지면 자신이 몇 발자국 가까워지고, 레오가 내게로 다가오면 더 뒤로 물러나는 식이었다. 단순하지만 거리가 갑자기 벌어지거나 좁혀지면 루카와 내 몸을 둘 다 케어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고려해야 할 것이 늘어나므로, 이렇게 배려해 주면 한결 편리하다.

같은 순간, 레오는 아티팩트로 흘러들어오는 알림을 들으며 완드를 휘저었다.

[하이케 데리고 빠져나왔어. 여기서 폭주가 일어났는지 좀 확인해 볼게.]

“확인하고 시청으로 바로 가.”

콰광—! 쾅—!

‘그나저나….’

레오는 마력에 휘날리는 루카스의 흑갈색 머리칼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가짜보다 진짜가 낫네. 훨씬 사람 같다. 관뚜껑 열고 나올 것 같았던 아까의 분위기와 다르다.

‘아, 그러고 보니 그 환영에는 냄새까지 구현하지는 못하는 건가.’

그럴 수밖에. 루카스는 그와 니콜라우스 신원을 분리하기 위해 타인의 후각까지 신경 쓰는데, 나나 나르케나 엘리아스면 또 몰라도 아우구스테가 그걸 알 턱이 없다.

이제 환영을 구별할 수 있는 도구가 하나 생겼다. 이제 3팀은 내게 또 같은 방법을 써 봤자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 레오는 싸울 때 상대에게 집중을 안 하는 편~? 언제부터 이렇게 됐대.”

콰아앙—! 끼긱— 기기긱—

레오가 스태프로 바닥을 내리친 채 뒤로 밀려났다.

그의 눈이 엘리아스의 표정과 자세를 살폈다. 살짝 땀이 난 얼굴과 무너진 어깨가 눈에 띈다.

루카스가 엘리아스를 배려하고 있기는 하나, 그래도 자신의 몸만 지키는 게 아니라 타인까지 보호해야 하는 엘리아스는 평소보다 더 빨리 지쳤다. 말만 자신 있게 하는 꼴이다.

레오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루카스를 향해 말했다.

“살다살다 별 광경을 다 보는군. 눈 막고 시험 치는 인간이 어디에 있어?”

“여기 있는 거 봤잖아~”

엘리아스의 깐족거림 뒤에 루카스가 담담히 말했다.

“상식적으로는 어이가 없겠지. 이해한다.”

“어이없는 수준이 아냐, 루카스.”

“그건 네가 아직 상식을 못 버려서 그래. 상식대로 시험쳤다간 우리 쫄딱 말아먹게 생겼다고. 이럴 땐 아무리 네가 상대팀이라도 그렇지 좀 미쳐 보이는 비주얼도 용납해 주고 그래야 비록 이렇게 좀 안과 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술래잡기하는 느낌도 들고 루카도 루카 입으로 이제 피라미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바람에 그 이미지가 잊히지 않긴 하지마는 어쨌든 네가 이 비주얼에도 포용력을 가져야 우리 팀도 먹고살지. 안 그래?”

“날 놀리고 싶은 건지 레오를 놀리고 싶은 건지 하나만 해라.”

이런 답없는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닐 텐데.

그들의 말을 자연스럽게 무시한 레오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을 감고 시험에 임하는 짓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팀의 진로를 막고 방해꾼이 되겠다는 각오가 아니고서야. 눈을 감는다, 아주 그냥 귀도 막지 그러냐는 생각이 들긴 해도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야. 그런데 보통은 감으면 감는 대로 망한 처지나 다름없거든.”

“…….”

“내 생각에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음산해졌다.

“내가 루카스 네게 물리적으로 너무 많은 걸 가능하게 만들었어. 그렇지?”

엘리아스의 푸른 눈에 밝은 하늘색 빛이 채워졌다. 그냥 보기에는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은 레오의 옅은 마력이 이제는 살기에 가까운 기류를 가지고 닥쳤다.

콰아앙—! 드득….

장막이 흔들리는 소리에, 엘리아스가 이를 악물었다.

레오의 공격은 엘리아스가 아닌 루카스에게 향하고 있다. 시야 바깥의 공격에 장막을 치려니 엘리아스 자신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빈틈을 내줄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의 한계가 어딘지 시험하는 중인가 본데…. 이미 매일 시험하게 해 주지 않았나? 그걸로는 모자라? 한계가 어딘지 그렇게 알고 싶으면 훈련 때 이랬어야지.”

누가 들어도 명백한 비꼼이었다.

엘리아스의 장막을 치우고 마법을 난사해대던 루카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헛웃음을 쳤다.

“이제 알았는데 너 생각보다 말투는 그다지 모범적이지가 않구나.”

“딴소리할 때야?”

레오가 완드를 휘둘렀다.

계속 후퇴하던 둘은 아예 건물 후문으로 빠져나와, 뒤편의 작은 거리에 몰렸다.

마력끼리 부딪히는 굉음 속에서 엘리아스가 고개를 돌리고 루카스에게 소리쳤다.

“루카, 뒤쪽에 맨홀 조심~ 뭔데 아까부터 공사중 표시가 있는 거야?”

안 그래도 뒤쪽에서 마력이 바닥으로 쑥 빠지고 또 그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한 기류가 느껴진다.

그보다….

루카스는 햇빛 덕에 묘하게 밝아진 시야를 느끼며 생각했다.

‘너무 소모적이야.’

루카스는 자연스럽게 완드를 스태프로 바꿔, 바닥에 내리찍었다.

여전히 공간은 균열 하나 없었다. 두 명의 마력이 합쳐진 공간인 데다 루카스 그 스스로가 공간 마법 탈출에 능하므로, 친구들이 이곳을 대충 만들어 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엘리아스를 서포트하려던 순간, 루카스는 움직임을 멈추고 땅이 있을 자리를 바라봤다.

“…!”

지금 나르케가 신경을 다른 데에 쏟고 있다.

이 공간을 이루는 신력이 들어왔다가 나가길 반복한다.

마치 누군가가 쏟아내는 공격을 받아 내고 있는 것처럼 적당한 박자를 갖추고 있었다.

공간의 안정성이 떨어진 게 미세하게나마 느껴진다. 마력의 흐름이 평소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들어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엘리, 지금 이 타이밍이야. 조금만 더 가면 되겠어.”

“아, 이해했어.”

“안대 풀 테니까 조금만 시간 벌어 줘.”

나르케가 여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면 앞을 보기에 무리가 있었겠지만—레오에게 실시간으로 내 생각을 전할 것이므로—지금 그럴 정신이 아닌 듯하다.

명순응과 거리감 조절까지 약 30초만 벌어 주면 된다. 내가 눈을 떠야 각각 0.5인분씩 하던 것을 넘어 그제야 제 몫의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아스에게서는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으음, 아니.”

“뭐?”

“오기가 생겨서라도 그렇게 못하지. 지금 쟤가 여기까지 온 건… 우리가 찾은 폭주 현장으로 모자라서 아예 남은 1점까지도 네 힘으로 얻으려고 온 거야. 그렇지?”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콰앙—!

레오의 방어 주문 이후에 들려온 충격음은 깔끔했다. 장막이 밀리지도, 균열이 생기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엘리아스의 공격에서 이제 슬슬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 뭘 하겠다?

“네가 직접 완드 들고 싸우면 당연히 우리가 이기겠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속 보이는 상황에서 레오 뜻대로 하게 둘 수는 없단 말이야, 루카.”

“그래서.”

맞는 말이다.

내가 직접 나서서 싸우도록 일부러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길래?

“그냥 지켜보고 있어. 나 쟤 신경 분산시키는 법 알아.”

콰아앙—!

루카스의 코앞에서 충격음이 들려왔다. 바람에 머리칼이 휙 날렸다가 차차 가라앉았다.

엘리아스의 장막이 루카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같은 순간, 레오는 장막 앞으로 나와서 제 공격을 맞은 엘리아스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는 짓이야.”

“레오. 들어 봐.”

레오는 말없이 완드만 까딱였다.

수십 갈래로 뻗어나간 그의 공격이 엘리아스 뒤의 장막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엘리아스가 완드를 까딱여 그것을 쳐냈다.

그러나 이번 타깃은 따로 있었다.

연이어 나간 레오의 마력이 엘리아스를 저 멀리 내던졌다.

레오가 그를 마력으로 짓누른 채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엘리아스의 로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야, 뭐야. 전단 찾아?”

“…….”

“근데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말이야…. 바이에른보다는 제국이 더 낫지 않나? 재능을 펼치기에는 제국쯤 되는 넓은 세계가 제일 좋지.”

“언제는 싫다면서. 헛소리할 거면 조용히 해.”

레오가 한 손은 엘리아스의 로브를 뒤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계속해서 루카스 앞의 장막을 향해 완드를 내지르며 말했다.

하늘색 마력이 점점 짙어져, 벌써 엘리아스가 쳤던 장막을 완전히 깨뜨렸다. 이제 남은 건 루카스가 그 안쪽에 보강해 쳐 뒀던 장막뿐이다.

“헛소리? 아니. 잘 들어야 할 걸.”

엘리아스가 굉음 속에서 목소리를 키우며 손가락 사이에서 완드를 굴렸다. 그의 완드가 길게 늘어나, 황가의 스태프로 변했다.

레오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음에도 엘리아스는 여유로운 얼굴로 입만 열었다.

“그거 아냐? 네가 뭐라고 해도 내가 왕홀을 드는 순간부터 루카는 호엔촐레른에서 데려갈거야.”

“…?”

“루카가 말 안 해 줬나 보네. 이 제국의 1억 인구를 다스릴 수상은 루카가 될 거야. 나랑 약속했는데, 몰랐나?”

엘리아스가 레오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있게 씩 웃었다.

불신이 깔려 있는 그 눈동자가 미세하게 동요하기 시작한 순간, 엘리아스의 눈동자 색과 같은 푸른 마력이 레오의 시야 아래에 희끗하게 비쳤다.

콰아아앙—!

“…!”

양팔로 얼굴을 가리고 물러난 레오가 미간을 구겼다.

‘…이런.’

엘리아스의 농간에 넘어갔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엘리아스의 스태프 끝에서부터 공간 마법이 깨져, 공기의 마력이 무너지고 있었다.

엘리아스가 레오를 향해 발길질하고 땅을 박차 일어났다. 그러고는 루카스를 마력으로 끌어당겨 뛰었다.

“루카! 가자!”

[어어?!]

레오의 아티팩트에서 나르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율리아를 비롯한 3팀 팀원들과의 대치 탓에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 상황에, 루카스를 붙잡아 오기로 한 레오에게 연결해 둔 공간 마법까지 깨져 사라졌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오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는 엘리아스의 뒤에 대고 버럭 소리쳤다.

“그걸 나보고 뭐 어쩌라는거야?!”

“하하하! 뭘 어쩌긴. 넌 빠져!”

레오가 뒤늦게 고유능력을 발동시켰지만, 이미 엘리아스는 평생 그것을 다뤄 온 덕에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식물을 잘라 내고 냅다 뛰던 엘리아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레오!”

엘리아스가 입에 한손을 대고 소리를 키우며 말을 이었다.

“뭐 잊은 거 없냐?”

[레오! 거기 그냥 안 됐으면 끝내고 나와! 율리아랑 아우구스테가 이 거리 기억 읽는 걸 방해하고 있어! 으아, 얘들아~]

나르케가 공격을 막으며 우는소리를 했다.

아티팩트를 고쳐 끼운 레오의 표정이 굳었다.

‘방해?’

루카스와 엘리아스는 저 거리 끝에 있고, 플로리안과 오스왈드는 아티팩트를 부순 뒤 첫 번째 현장에 버려 두고 왔다.

그럼 이제 남은 3팀은 율리아와 아우구스테다.

‘율리아랑 아우구스테가 우리 팀 진입을 막는 상황이면, 3팀 중 누군가는 거리 안쪽에서 피해자 수색을 하고 있어야 해.’

그런데….

3팀에는 남는 사람이 없다.

거리 안쪽에서 수색할 만한 사람이 없단 말이다.

그런데 우리 팀이 들어가길 방해하는 이유로 무엇이 있을까.

“…나르케!”

[응?!]

엘리아스가 벌금 청구서를 가져간 시각과, 거기 찍힌 내용을 팀원들에게 공유한 시각은 똑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은 내가 아우구스테에게 붙들렸던 시각이므로, 그때로부터 거의 15분은 지났다.

레오가 아티팩트에 대고 소리쳤다.

“당장 나가! 거기 있으면 안 돼!”

나르케의 아티팩트에서는 몇 초간 공격을 막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나르케가 처음 듣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이런.]

15분이 지났다고 했지.

처음 엘리아스가 정보를 안 시각, 즉 팀원들에게 정보를 공유한 시각은 지금으로부터 15분 전.

그리고 내가 플로리안과 오스왈드의 아티팩트를 부수고 여기에 온 건 약 10여 분 전이다.

5분이 빈다.

율리아와 아우구스테가 하이케 아인시델의 진입을 막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니라….

이 거리에서 폭주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 직원의 신상정보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또 다른 유력한 폭주 장소가 있다.

시청으로 가야 한다.

당장.

삐이이이—

아까 들었던 그 알림음.

레오가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 * *

[1팀: +1]

[3팀: +1]

동점이다.

붕대를 위로 든 루카스가 햇빛 탓에 눈을 찡그렸다.

똑같이 +1이라 적힌 것을 보고 있자니 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자~ 이제 마지막인데 말이지.”

그래. 마지막이지.

율리아와 엘리아스의 전략만으로 여기까지 왔다.

동점이니 이제 마지막 승부가 여기서 날 것이다.

그보다….

“엘리아스.”

“응?”

엘리아스가 들뜬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루카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썩 긍정적인 말이 아니었다.

아까의 혼란에서 빠져나온 루카스가 이제야 웃는 얼굴로 타박했다.

“왕홀이고 수상이고 그걸 여기서 말하면 어떡해?”

“하하하~ 일단 이겨야지. 안 그래? 애초에 공간 마법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는 교수님들도 못 볼 테고….”

엘리아스가 한 템포 쉬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내 말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아, 루카. 걱정할 필요 없어.”

웃음 섞인 말이었음에도 왜인지 묘한 기류가 느껴졌다.

루카스는 대강 말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네가 그렇다면 됐다.”

“하하, 말하다 만 거 계속 말해도 되지? 이제는 루카 네 전략이 필요해.”

“알아.”

그러나 지금 생각해서는 안 된다.

평범하게 나에게 정보를 알려 주고 답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전부 나르케에게 넘어갈 테니까.

루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아스에게 짧게 말했다.

“전략 필요하다고 했지. 평범한 방식으로는 생각 못 하는 거 알 테니까 써먹을 방법이나 잘 구상해 둬라.”

“아~ 그래야지. 어떤 방법을 쓰든 상관없지?”

“그래. 성공만 할 수 있으면 마음대로 해.”

“좋아. 시청 워프 좌표 좀 불러 줘. 거기 플로리안이랑 오스왈드가 있을 테니까 거기서 모이자고.”

“188:231:425.”

루카스는 주머니에 넣어 둔 워프 좌표 책자를 꺼내려다 그냥 기억을 되짚어 수를 불렀다.

아까, 이 필드 곳곳에 놓인 신문 가판대에서 워프 좌표 책자를 하나 가져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 뒀다. 모르면 안내판을 발견할 때까지 뛰어야 하므로 외우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워낙 정신 없는 정보라 그런지, 이걸 외울 때만큼은 나르케도 통찰 능력을 꺼 둔 것 같기도 했다.

“오케이~ 워프할게.”

엘리아스가 루카스를 데리고 시청 앞으로 워프했다.

이동하자마자, 유난히 들떠 보이는 3팀 학생 둘과 만날 수 있었다. 오스왈드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엘리아스!”

“야~ 잘했다. 2차 피해자 몇 층에 있었어?”

“건물에 없던데? 시청 뒤에 있는 공원에 쓰러져 있었어.”

그때 율리아와 아우구스테가 엘리아스에게 워프 좌표를 전달받고 이곳으로 워프해 왔다.

그들을 이끌고 적당히 텅 빈 건물 안에 들어가 앉을 자리를 찾은 엘리아스가 루카스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자~ 이제 루카는 다시 눈 막고 귀도 막고 있어!”

“…계속 이러니까 뭔가 기분이 영 별로인데.”

루카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시 눈을 가렸다.

마지막 1점.

이것이 승패를 가를 결정적인 단계에서 나르케에게 정보가 흘러들어가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물론, 이제는 이걸 쓸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차음 마법을 친 엘리아스가 팀원들을 바라봤다.

“자, 얘들아. 정보 종합부터 해 보자. 나머지 한 명 찾으려고 또 동네방네 뛰어다닐 수는 없어. 아마 그렇게 해도 안 풀릴 거야. 풀린대도 1팀은 분명 머리를 쓸 테니 그쪽에 밀리겠지.”

“그러겠지. 학교가 벌금 딱지까지 구현해서 증거물로 넣어 준 이유가 있을 테니까.”

율리아의 말에 엘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폭주자는 거지랑 그 벌금 딱지 준 사람일 거야. 이 둘이 접점이 확실히 있었지. 그러면 이 둘에 연관된 사람이 하나 더 있단 말이야.”

“근데 벌금 딱지 주는 데에 얼마나 걸린다고 둘이 폭주해? 서로 같은 물 마셨대?”

오스왈드가 하나도 짐작가는 게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그게 확실히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지.”

“그래서 신문 하나 가져왔는데, 펜탈론 관련해서 도시미관과에서 내보낸 기사야. 한번 읽어 봐. 난 잘 모르겠는데, 너희라도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을까 해서.”

율리아가 손에 말아쥐고 있던 신문을 그들 앞에 밀어주었다.

내용은 평범했다.

펜탈론을 앞두고 상하수도 정비가 진행될 예정이고, 도심 쓰레기 투기 규정을 강화할 것이며, 함부로 도심 조경을 해치는 행위를 하면 막대한 벌금을 물리겠다는 이야기였다.

엘리아스가 그것을 찬찬히 읽고는 옆의 친구들에게 건넸다.

“…너희도 읽어 봐. 나도 잘 모르겠는데. 여기 뭐 딱히 관련된 게 있나?”

“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거지랑 공무원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길래 학교가 둘을 엮어서 증거물을 넣어 놨는지….”

율리아가 옆자리에서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루카스를 슬쩍 바라봤다.

“짐작이 안 되는데. 벌써 시험 시작한지 25분쯤 지났지. 더 지체해도 괜찮은가?”

“…….”

학생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의 시선이 율리아의 시선 끝으로 옮겨갔다.

엘리아스가 차음 마법을 깨고 루카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루카.”

루카스가 안대를 들고 엘리아스를 바라봤다.

엘리아스가 묘하게 불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공만 할 수 있으면 어떤 방법을 쓰든 상관없는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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