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04)
“하수도…?!”
“왜?! 거기로 간 건지는 어떻게 알았는데?”
당황한 팀원들이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기에, 쓸모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젠장, 지금 뭐라는 거야? 지금까지 뭘 들었는데?’
레오가 입술을 짓씹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워프 좌표 책자를 파는 가판대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나르케, 루카스가 무슨 좌표 외우면서 갔는지 알아?!”
“185:2…! 완전기억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서 그것까진 기억 못 하겠는데…?!”
나르케가 저도 모르게 제 왼손에 끼운 초록색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눈을 한번 꽉 감은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고, 무작정 공원 바깥의 대로로 뛰어 나갔다.
“얘들아, 가판대 찾아!”
울리케의 우렁찬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팀원들이 다른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가판대를 찾아 뛰는 레오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돌아갔다.
‘오스왈드나 플로리안 같은 평범한 학생이 탈취제 냄새를 정보로 인식했을 정도면 그게 코를 찌를 만큼 강하게 났다는 말이겠지.’
거기에 향수병을 늘 챙겨 다닌다?
둘 중 하나만 있었다면 개인의 유별난 습관일 수도 있었겠지만, 루카스 말대로 두 정보가 겹친 순간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지금은 인위적으로 정보가 주어진 시험 상황이니까.
대체 왜 우리는 나르케의 말을 듣고서도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공무원이 어디 살고 어디서 일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집착하더니, 거지가 어디 살고 어디서 목숨을 연명하려 하는지는 왜 신경을 쓰지 않지.’
알 수 없는 쾌감에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날카로운 질문이다.
이곳저곳 배회하는 거지의 생활 특성상 우리가 그들의 폭주 장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으리라 생각했고, 정말 폭주 장소에서는 정보를 얻을 수는 없는 게 맞다.
하지만 루카스 말대로, 거지가 어디서 사는지 생각해 보자.
길에서 자고 길에서 살지.
그러나 펜탈론 기간이 가까워지면서부터 그들은 지상에서 살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청소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러운 외관으로 길에 돌아다니면 벌금을 내야 하고, 수입이 없는 그들은 막대한 벌금을 낼 수 없다. 곧 그들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힌다.
그렇다면 어디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을까.
불법 투기 벌금 5배, 사복 환경단속원, 구빈원 입소, 상하수도 노후관 교체, 분수대 및 식수대 수질 점검, 노점상 철거, 주류세.
구빈원. 유일하게 말이 된다.
그러나 거지가 구빈원에 입소했다면 이미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졌으므로 벌금 고지서를 줄 이유가 없다.
그럼 과연 거지는 어디로 도망쳤을까.
수도 밖. 좋다. 그러나 거지라 해도 삶의 터전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이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진작 구빈원에 입소했을 것이다.
빈 건물, 인적이 드문 쓰레기 소각장. 위험 요인이 각각 뚜렷하나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인적 드문 산, 다리 밑, 하천.
자연이 오염되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폭주했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폭주 소스가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는 걸 떠올려야 한다.
이제,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택지가 하나 남았다.
하수도.
잘 찾으면 물에 젖지 않은 공간이 있다. 만들어 놓고 사용하지 않는 공간은 실제로 지하실로 활용하기도 하며, 때로는 대피소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장소의 특성상 평소에는 사람들이 들이닥칠 가능성이 낮다.
특히, 상수가 아닌 하수 오염이라면 많은 이들이 폭주하지 않은 것이 설명된다.
즉 그 공무원은 부랑자들이 하수도로 피신했으리라는 추측 하에 거지를 잡으러 들어갔다가, 하수 배관에서 나온 오염된 공기에 장시간 노출되어 폭주했을 것이다. 거지도 마찬가지다.
폭주 건수가 세 건뿐이니, 우리는 시간상 이 사건의 초기에 있다. 이게 실제였다면 이제부터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날 것이다.
끝이다.
이제 마지막 피해자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해진다. 우리가 아예 배제해 버렸던 그 기사가 이제야 활용된다.
‘상하수도 노후관 교체.’
마지막 피해자는, 배관공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습기가 남아 있는 공기가 뺨을 스쳤다. 폐 속 깊이 청량한 비 냄새가 스며들었다. 승세를 내어준 상황인 걸로 모자라 야속하게도 가판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명쾌한 답을 알게 되자 멋대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안일했다.’
다 잡은 승리였는데.
레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달렸다.
손해를 감수할 작정을 하고서 루카스를 우리 팀에 데려온 건, 그에게 분명히 계획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쯤은 막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워프할 수 없는 마법사다. 날개 꺾인 새가 자리를 훌훌 떠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루카스가 혹시라도 워프할 것에 대비해 손의 피를 막아 마력이 통하지 않게 만들기까지 했으니,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되기는 무슨.’
그래, 인정한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다리까지 묶었어야 했는데. 방심했다.
그 대가로 처음부터 끝까지 엘리아스와 루카스에게 놀아났다.
그래도, 다 내준 게임이라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다.
촤악— 쾅!
그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준 루카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마력을 실어 뛰던 레오가 바닥에 발을 굴러 멈춰섰다.
웅덩이의 빗물이 바지로 튀어, 워커 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정신없이 뛰느라 다 내려온 앞머리가 눈을 가렸다.
그럼에도 레오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찾았다.’
* * *
이 자식들은 잠깐이면 끝날 것을 가지고 대체 시간을 얼마나 지연시킨 건지 모르겠다.
나는 비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나 신체는 내 생각과 달리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시야가 점멸한다. 심장 박동 탓에 모든 장기가 흔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난다.
“…….”
내 힘으로 혼자 워프하는 것이 얼마 만이지. 2주? 몸을 풀고서 연습했어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이 2주 만에, 심지어 앉은 자리에서 워프를 시도한 탓인지 있을 리 없는 이명의 진동이 목덜미부터 느껴졌다.
그래도 바닥은 여전히 내 발 아래에 있었고, 나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식은땀이 관자놀이 아래로 흐른다. 희미한 마력등 빛이 흐린 시야에 잔뜩 번지고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역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나는 하수도 광장 한복판에 있다.
“…하하하….”
나는 숨을 고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좋네.
이중공간마법의 중간계도 프림로즈 패스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워프 마법을 썼음에도 나는 안전하다. 이 사실을 직면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다시 또 내 힘으로 혼자서 워프하라면 솔직히 자신 없지만, 적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 잡힐 수준에서는 벗어났다.
‘천천히 회복해 보자고.’
친구들 도움만 받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는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바닥에 다시 머리를 박고서야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걸 깨달았다.
‘뭐, 상관없지.’
나는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다, 다시 거뒀다.
벨트 클러치가 있을 자리는 텅 비어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레오가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이 내 클러치와 옷 주머니를 털어갈 것쯤은 엘리아스도 예측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갑자기 셔츠를 뜯으려고 하더라.’
레오에게 붙잡히기 약 5분 전쯤에 엘리아스는 내 셔츠 안에 뭔가를 넣으려고 했고,—이제 와서는 다행스럽게도—성공했다. 이 미친놈이 분수대 물 먹이는 걸로 모자라 또 뭔 짓을 하나 싶어 씨름했던 덕에 그가 뭘 했는지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완전히 천장을 보고 누워, 셔츠 단추를 풀고 얇은 줄을 잡아당겼다.
반구형의 투명한 아티팩트가 딸려 나왔다.
음각 처리된 숫자 3이 눈에 띄었다. 우리 팀 전용의 여분 아티팩트다. 마력을 불어넣자 그것이 연한 분홍빛으로 변했다.
나는 아티팩트를 귓바퀴에 걸었다.
“…아, 아.”
[어어어! 루카!]
[루카스!]
직접 나를 적팀에 내던졌으면서도 목소리 하나는 다급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 해야 할 말은 딱 하나였다.
“하수도 좌표 찾아.”
* * *
좋아.
엘리아스가 희열을 느끼며 숨을 내뱉었다.
“하, 하수도? 왜?”
“분수대 진짜 아니었냐? 왜 갑자기 하수도야?”
“아니, 루카가 맞아.”
엘리아스가 지도를 펼쳐 손으로 짚었다.
이보다 더 시원할 수가 없다. 내가 혼자 추론할 때는 정답을 찾을 수 없어도, 정답을 알고 나서 역으로 올라가는 것은 쉽고 즐겁다.
루카의 결론은 언제나 깔끔하다. 왜 나는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지? 엘리아스는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웃었다.
아우구스테가 물었다.
“하수도에서 거지 말고 또 누가 터져 죽는다고?”
“배관 기술자겠지.”
마찬가지로 미소를 짓고 있던 율리아가 대답했다.
그래, 그거다.
상하수도 노후관 교체 기사가 있었으니까!
엘리아스가 콧노래를 부르며 워프 좌표책을 펼쳤다.
약 10,000km의 거대한 하수도 중에서 출입이 허용된 곳은 제한적이다. 물론 몰래 여기저기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학교는 거기까지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 욕을 두고두고 먹고 싶은 게 아니면 그럴 수는 없지~’
지엽에도 정도가 있다.
비록 지필 등수는 꼴등이지만, 그런 등수를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읽기는 하니 엘리아스 그도 학교가 어떤 스타일의 문제를 내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엘리아스가 지도를 펜으로 툭툭 치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하수도에서는 문이 네 개 있어. 동서남북 하나씩. 전부 우리 필드 안에 존재해. 워프 좌표는 하수도 중앙광장까지 총 다섯 개 있지. 루카는 그곳으로 워프했을 테니, 우리는 동서남북으로 한두 명씩 워프해야 해.”
오스왈드가 손뼉을 치며 외쳤다.
“좋아! 그럼 내가 시계 방향으로 다 한 번씩 돌면서 피해자 찾아볼게!”
그 말에 율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아냐?”
“한 번씩 다 도는 건 좋아. 하지만 피해자를 찾을 필요는 없어. 아우구스테랑 같이, 1팀 친구들이 나올 때까지 계속 빙글빙글 돌아.”
율리아의 말뜻을 알아들은 오스왈드가 입꼬리를 슬슬 올렸다.
그러니까 결론은 1팀 발목을 다시 한번 잡으라는 말이었다.
엘리아스가 테이블을 양손으로 짚고 학생들을 바라봤다.
“좋아, 얘들아. 루카가 다 잡아준 물고기를 놓칠 수는 없겠지~?”
“아, 당연하지~”
팀원들의 기운찬 대답에, 엘리아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 보자고. 결론은 이미 난 것 같지만.”
* * *
하수도 동문 첫 워프 좌표.
울리케가 완드를 내저으며 아티팩트를 두드렸다.
“첫 번째 타깃이 누군지 알지. 기억해.”
아까의 장난스러운 기색은 찾을 수 없이 진지해진 울리케의 목소리가 아티팩트를 타고 흘렀다.
그 옆에 선 나르케가 잔뜩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부여잡았다.
‘1시간 20분째….’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쏟아부었다. 코피가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점막이 따끔거렸다.
어쨌거나 치료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 빨리 끝내고 가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시작할게.”
나르케가 피를 훔치며 말했다. 그걸 보는 울리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르케의 장식 없는 흑갈색 완드가 한 바퀴 돌려지더니 교황청의 스태프로 바뀌었다. 아직 별것 하지 않았는데도 바람이 일어, 울리케는 팔을 들어 눈을 살짝 가렸다.
스태프 맨 위를 장식한 금빛 비둘기 아래, 십자가에 걸린 수많은 열쇠들이 서로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콰아앙—!
성큼성큼 걸어 나가던 나르케가 스태프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빛 없이 닥친 돌풍에 울리케는 다리에 마력을 실어 중심을 잡아야 했다.
하수관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거 환영이었어?!]
지하도 서쪽 입구에 연결했던 아티팩트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나르케는 미소지으며 계속해서 통로를 걸어 나갔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남의 정신, 더 나아가 영혼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신력뿐이다.
신력이 아닌 마력으로 타인의 정신에 삿된 영상을 보여 준다는 건, 곧 부정한 방법이 개입되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악의 힘이다.
나르케 개인의 의견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교황청의 해석이었다.
‘아우구스테의 고유능력이라는 걸 알고, 또 교회의 해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내가 믿는 것은 성서이지 교회가 아니다. 물론 교회는 교회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미 돌이키기에 너무 멀리 온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교황청이 해결책을 마련한 능력이라는 점까지 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르케가 입 안으로 들어온 피를 손으로 닦아 내고 계속해서 스태프에 신력을 실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콰앙—!
나르케가 중얼거리며 다리에 마력을 싣고는 땅을 박찼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시험 치는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3팀 학생 하나의 뒤통수가 보였다.
나르케가 스태프를 내리찍었다.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새하얀 빛이 터지듯 나타나자 학생이 당황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부터 능력이 나오지 않아 충격에 빠져 있던 아우구스테의 눈이 나르케의 시야에 가득 찼다. 나르케가 그 감정을 들여다 보며 웃었다.
“아우구스테, 여기까지 하자.”
콰아앙—!
아우구스테가 뒤로 물러나며 완드를 검으로 바꿔 냈다.
언제 왔는지 모를 속도로 나르케 앞을 가로막은 울리케가 아우구스테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쓸 수 있는 신력이 얼마 없으므로 최대한 빠질 수 있는 부문에서는 빠져야 했다.
나르케가 뒤로 물러서 체력을 보충하며 아우구스테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잘하긴 하는데… 왜 6등 안쪽에 들지 않았는지 알겠네.’
고유능력은 훌륭하지만 거기까지다.
아우구스테가 인상을 쓴 채 눈을 부릅떴다. 그간 모든 훈련을 고유능력 중심으로만 해 왔는지, 그외의 실력은 잘 쳐봐야 상위권에 해당했다.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시간도 없는데 이런 상대에게 기술적으로 맞춰 줄 수는 없다.
울리케도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그의 마력이 검 주위로 튀기 시작했다.
“시험 끝나고 보자.”
“…!”
아우구스테의 눈이 커졌다. 마력이 이 자리에 선 모두를 압도할 세기로 불어났다.
까앙—! 쨍그랑—!
부서지는 마력 사이로 울리케의 손이 아우구스테의 심장께로 날아갔다.
울리케가 그의 코어에 마력을 확 흘려보냈다.
콰앙—!
코어에 충격이 가해져 정신을 잃은 아우구스테가 바닥에 쓰러졌다.
나르케는 아우구스테가 금방 회복할 수 있도록 신력을 불어넣어 주며 울리케를 칭찬했다.
“30초만에 이렇게 만들다니 대단하네.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나?”
“하핫, 그때는 필드가 넓었잖아~”
“그래도. 아무튼, 이제 남은 3팀은 네 명이네.”
아우구스테와 루카스는 이제 3팀의 전력에서 제외한다.
루카스는 워프의 여파로 정신을 잃은 건지, 아무런 정보도 잡히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당장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는 절대 혼자 워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마 학교도 루카스가 갑자기 워프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험 전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이미 전부 체크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교수들도 루카스가 워프에 이상반응을 보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그때, 레오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스왈드랑 플로리안도 끝날 거야.]
“응?”
[울리케. 남문 좌표로 이동해서 직진해. 혼자서 둘 처리할 수 있지?]
“아, 당연하지.”
울리케가 자신 있게 웃으며 워프했다.
처음부터 아티팩트를 깨 먹은 탓에 큰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년째 1분반의 1등을 차지하고 있는 건 그냥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시작할 때부터 통찰을 썼기에 그의 실력을 아는 나르케는 전략을 수정했다.
이제 3팀에서 남은 사람은 엘리아스와 율리아뿐이다.
‘둘 다 난감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레오랑 울리케 둘이서 해낼 수 있겠지.’
이제는 더 움직이고 싶어도 안 된다.
아우구스테의 환영을 저지하는 것이 내가 이 시험에서 마지막으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었다.
나르케가 쓰러지듯 바닥에 앉아, 통로 벽에 몸을 기댔다.
* * *
중앙 광장에서 북쪽으로 10분 거리.
엘리아스가 속으로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이야, 날 어떻게 찾았대? 이 하수도 10,000km 짜린데~”
“정보 공유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레오는 반쯤 이성이 나간 눈을 하고 있었다. 저런 상태가 언제 찾아오는지, 엘리아스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승리욕에 불이 붙었을 때, 그것도 아니면 훈련에 진심으로 몰입했을 때나 나오는 얼굴이다.
“공유? 하긴 우리 레오는 우리가 여기 온 지 한참 지나서 왔지. 정보가 없기는 할 거야, 분명히.”
“…….”
우리 3팀은 1팀이 뒷북치기 전에 일찍 이 자리에 도착했고, 이미 상당 부분 수색을 끝냈다.
이제 남은 곳은 딱 하나. 엘리아스 자신이 선 거리 뒤쪽이다. 저기에 무조건 피해자가 있다.
그런데 이 얌체같은 1팀은 또 우리가 얻은 정보를 훔쳐 갈 작정인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정보를 줄 수는 없고.’
엘리아스가 킬킬대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부터 동서남북 다 찬찬히 돌아봐~”
“싫은데.”
레오의 마력이 엘리아스 바로 앞으로 닥쳤다. 마력뿐만이 아니었다. 엘리아스는 가볍게 레오에게서 물러나 완드를 검으로 바꿔 냈다.
“하이케랑 다른 팀원들은 어쨌냐~?”
“…….”
“아, 알지. 너희 팀 애들이 우리 팀 친구들 썰어 버린 것처럼 우리 팀도 똑같이 했겠지.”
엘리아스가 웃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오의 완드는 큰 호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수를 읽히기 쉬운 공격이다. 레오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움직임에, 엘리아스의 눈이 찡그려졌다.
‘지금 설마….’
레오는 그대로 엘리아스를 피해, 그 옆을 통과했다.
역시나. 엘리아스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콰앙—!
엘리아스의 푸른 마력이 레오의 자리 바로 앞에 내리찍혔다. 어두운 통로가 잠시나마 번쩍이며 밝아졌다.
“못 가지. 이제 1:1인데 왜 이렇게 급하지? 나 하나쯤은 쉽게 제칠 수 있다, 이건가~?”
“그럴 리가.”
레오가 고개를 기울이며 저 너머를 바라봤다.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을 줄이야. 루카스는 왜 데려왔어? 나르케 말로는 기절한 것 같다던데.”
“뭐? 이야… 너도 초감각 능력자 해라. 아주 그냥 승부 앞에서는 못 하는 게 없구나.”
엘리아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팀원인데 안 챙기면 어쩌냐~ 어? 레오 다시 보니 의리가 없네.”
레오는 앞에 엘리아스가 있다는 걸 잊은 사람처럼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꼭 신경이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느낌이었다.
엘리아스의 다리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탁—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레오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엘리아스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린 채 뒤돌아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지금 레오는 내 뒤로 워프했다.
정확히는 북문으로.
북문에서부터 좌표를 한 칸씩 조절해 워프할 작정이겠다.
이 통로는 일직선으로 크게 나 있지만, 양 옆으로 갈라진 길도 많다.
2차 피해자가 어디에 쓰러져 있을지 아직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엘리아스는 무작정 앞을 향해 뛰었다.
촤악—
“어이쿠.”
엘리아스가 제 발치를 잡으려 드는 풀 줄기를 뛰어넘고 바닥을 스태프로 쾅 내리쳤다.
마력에 눌리자 레오의 고유능력은 힘을 쓰지 못했다.
같은 시각, 레오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앞을 향해 뛰었다. 약간은 굽어져 있어 엘리아스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마력이 바닥을 타고 밀려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있을 리 없는 나무 냄새가 또다시 느껴진다.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루카스가 깨어났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엘리아스가 저기서 방황하는 걸 보니 처음에는 구역을 나누어 둘이 수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즉 루카스는 지금 피해자를 찾고 있을 것이다. 내가 당연히 루카스를 찾을 것이니, 엘리아스는 나를 향해 직진하겠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내가 가는 길을 다 알고 계신다.]
콰앙—!!
유도마법식을 왼 레오가 바닥에 스태프를 내리찍었다.
백향목 냄새가 더 짙게 나는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타격음이 나는 곳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지 않다.
저 멀리, 오른쪽 길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레오는 다리에 마력을 싣고서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반대쪽 통로 바닥에 쓰러진 루카스가 보인다. 그리고 길 중간에, 작업복을 입은 누군가가 엎어져 있었다.
끝이다.
‘186:056:348.’
레오가 속으로 병원의 워프 좌표를 외며 손가락을 튕겼다.
하수도 벽돌 틈에 있던 흙에서부터 식물 줄기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솟구쳤다. 레오가 손에 워프 마법에 필요한 마력을 담고 다른 손으로 반동을 이용해 피해자의 코앞까지 착지했다.
손을 뻗어 피해자의 팔을 잡은 순간, 한쪽에서 붉은 섬광이 일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되지.”
“…!”
쿠웅—!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레오가 인상을 찌푸린 채 눈을 떴다.
엘리아스 특유의 자신만만한 웃음이 보였다.
어디로도 이동하지 않았다.
동시에 같은 좌표를 왼 탓이다. 아니, 정확히는….
레오가 이를 악물었다.
삐이이이—
0.1초 차이로 다른 자에게 먼저 기회를 내 준 탓이다.
새하얀 글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1팀: +1]
[3팀: +2]
+2.
루카스가 지하도로 워프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예상해 본 적 없는 숫자가, 분명한 빛을 내며 눈 앞에 떠 있다.
안내창 너머의, 레오의 멱살을 잡은 엘리아스가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하하하…. 데자뷔 들지 않냐?”
“…….”
“이번에도 루카한테 밀린 기분이?”
끝이다.
마지막 1점까지 3팀에 내주었다.
완벽하게 우리의 패배다.
[소요 시간, 96분 01초.]
‘…그렇지만….’
패배했음에도 이렇게 억울하지 않았던 적은 살면서 처음이다.
인정할 수 있는 패배였다. 루카스가 하수도로 워프한 순간부터 예감하고 있었다.
숨을 내뱉으며 창을 보던 레오의 입꼬리가 천천히 휘어졌다.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었다.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동시에,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했다.
* * *
삐빅—
[제국2교육원 학생군사단 시험 참가자 학생 여러분께 알립니다. 2학년 1팀, 3팀 학생 여러분께서는 오후 7시 30분까지 합격자 발표장 대기실로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가자.”
휴게실 의자에 앉아 있던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프도 못 하는 친구를 왜 적진에 떨구냐는 잔소리를 한바탕 들어 입이 비죽 튀어나온 엘리아스가 느적느적 일어나 레오 뒤를 따랐다.
“나 왜 이겼는데도 기분이 좋지가 않지~? 이게 다 레오 때문 아닐까?”
“뭘 나 때문이야. 나르케 병문안 가서도 똑같은 소리 들었잖아.”
“…그건 그래~ 그래도 나라고 좋아서 그런 줄 알아? 루카는 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워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걸!”
엘리아스가 아까도 했던 변명을 다시 내뱉었다.
그건 맞는 말이다.
루카스라면 승리를 택하겠지.
레오가 대답하지 않고 루카스와 나르케를 제외한 다른 모든 학생들을 이끌고 대기실로 향했다.
시험이 완전히 끝난 시각은 저녁 7시.
중간중간 채점과 식사 시간을 가지니 시작으로부터 거의 한나절이 지나 있었다. 물론 이렇게 오래 지연되게 만든 주요인은 다른 것이었다.
1시간 30분만에 시험을 끝내고 나온 우리 1-3팀과 달리, 그 뒤에 시험을 치른 2-4팀은 6시간 넘게 헤매기만 했다.
‘그것도 학교가 강제로 시험을 종료해서 그나마 6시간만에 끝난 거지.’
경기 시작으로부터 3시간이 지난 뒤, 4팀이 홀로 2점을 득점했다.
그러나 또다시 3시간이 지나는 동안 2팀도 4팀도 마지막 1점을 풀어내지 못했고, 하루가 다 지나도 답이 나지 않을 것 같자 결국 학교가 강제로 시험을 종료했다.
모두 똑같은 필드에서 시험을 치렀기에, 결국 이건 학교가 1-3팀의 수준에 맞춰 시험을 출제한 탓에 생긴 문제였다.
‘6시간이 지나서야 조기 종료를 시켜 준 학교도 참 대단하다….’
레오가 헛웃음을 치며 대기실의 풍경을 바라봤다.
반대편 의자에 2-4팀 학생들 열둘이 앉아 있다. 뒤늦게 1-3팀 경기 영상을 전부 확인한 2-4팀 학생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1시간 30분만에 끝낼 수 있는 시험을 6시간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우리 팀 친구들은….’
레오가 팔짱을 끼고 1팀 학생들을 바라봤다.
졌음에도 다들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언제 팀 구분이 있었냐는 듯 친한 친구 곁에 가서 놀고 있기만 했다.
루카스가 하수도로 워프한 순간부터 끝났다는 걸 직감하지 못한 학생은 없었다. 다른 학생들도 레오와 똑같이 느꼈던 것이다. 그럼에도 팀의 주축이 되는 학생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최선을 다했고, 다 같이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임한 덕에 더 복기하고 되짚어 곱씹을 것이 남지 않아 가능한 분위기였다.
“그러고 보니까 루카랑 나르케는 언제 온대?”
“이미 왔을걸.”
간단히 답한 순간, 직원이 발표장으로 향하는 대기실 문을 열었다.
“2학년 입장하세요!”
학생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마지막이다.
한 달간 있었던 기나긴 시험은 이걸로 끝이었다.
레오는 내심 개운함을 느끼며 통로를 따라 걸었다.
[…제국의 안전을 위하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시험에 성실히 참여한 각 학년 24명의 학생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결과 여하에 관계없이 학생 여러분 모두 멋진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서류 평가부터 참여해 주신 제국2교육원 전교생께….]
통로를 따라 나오자, 직원은 우리를 어두컴컴한 객석으로 안내했다.
레오는 객석을 한 바퀴 둘러 보았다.
2교육원의 모든 학생들이 학과별로 앉아 있었다. 저 멀리, 제일 뒤편에는 1교육원부터 3교육원 학생들도 몇몇 무리 와 있었다.
“레오, 엘리아스~”
나르케가 객석 맨 앞줄에 앉아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 앉은 루카스가 습관적으로 인사를 하려다 고개를 돌렸다.
둘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병원에 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만나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레오는 나르케에게 미소지으며 인사하고 그 뒷줄을 찾아 앉았다.
[이제, 제국2교육원 학생군사단 최종 선발 결과를 순서대로 발표하겠습니다. 3학년 1등입니다. 막스 리히트호펜.]
“와아아아아—!”
익숙한 이름이 불렸다.
실력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들으니 영…. 레오가 그렇게 생각하며 루카스와 나르케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그들도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20여 분이 지나, 3학년 합격자 18명의 이름이 전부 불렸다.
[축하합니다. 이것으로 3학년 1팀부터 3팀 발표를 마칩니다. 다음으로, 2학년 합격자 순위를 발표하겠습니다.]
딱히 3학년에게 관심 없던 2학년 좌석이 급격히 조용해졌다.
긴장감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2학년 1등입니다.]
우리 반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향하고 있다.
레오는 따갑게 닿는 시선을 무시하며 사회자를 응시했다.
저들이 뭘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히 이어질 이름이 무엇일지 안다.
그 이름이 아니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루카스 아스카니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