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07화 (207/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07)

교수는 자신 있게 미소를 지으며 청중을 바라봤다.

발표장 안은 순식간에 찬물을 들이부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가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교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삑—

마력 구동 카메라의 셔터음이 들려왔다.

플래시가 다시 한차례 터지기 시작하면서, 청중들은 이제야 막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처럼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어?!”

“황실?”

사람들이 쏟아내는 외침이 모여 귓가에 큰 진동으로 다가왔다. 그 탓에 귀에 미세한 통증까지 느껴져,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혼란이 온통 머리를 잠식했다.

‘무슨?’

황실이라니. 당황스러운 건 저들뿐이 아니다.

다들 황실에 취직하기 위해 대학을 졸업하고 피나게 준비하는 마당에, 내세울 것이라고는 1년 반짜리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밖에 없는 우리의 소속을 황실로 옮겨 주겠다고?

물론 좋은 일이다. 정말 더없이 좋은 기회다.

내게는 없어도 그만인 데다 형과 황태자 등의 문제로 골치 아파지는 부분이 있긴 하나, 적어도 타이틀 면에서 최고의 기회인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뭔가 있다.’

하이케 아인시델이 부족한 실력으로 1팀에 든 것부터 학교가 갑자기 우리를 황실에 넣겠다는 것까지,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미성년자가 황실에 입성한 경우는 마법 이후의 시대에서 다섯 건도 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최연소로 13살에 황실에 입성한 형이었는데, 형이 지금의 명성과 위상을 가진 데에는 일찍 황실에 입성했다는 타이틀이 한몫했다. 저 타이틀을 따낸 뒤부터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만큼 가치가 큰 경력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는 고등학생 일곱을 한꺼번에 황실에 넣으려 하고 있다.

‘율리아까지는 이해가 돼.’

그는 당장 현직에 있는 마법사들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나르케와 엘리아스, 레오도 마찬가지다.

통치가문 자식들이 한꺼번에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 다니는 경우는 드무니 아예 각국 학생들을 끌어모아 황실 손에서 길러 내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 넷 다 대졸까지 기다릴 이유가 전혀 없는 실력이다.

다만 울리케와 하이케.

이 둘은 전혀 아니다.

그토록 깐깐하던 황실이 무리수를 둬 가면서까지 우리를 집어넣어야 했다?

그것도 2월 10일은 당장 내일이다.

‘뭘 알아볼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황실로 옮겨 버릴 생각이군.’

여지는 없다. 그들의 의지는 확고하고, 거기에 우리의 의견이 반영될 자리는 없다.

“…황실?”

넋이 나간 엘리아스가 차음 마법을 다시 칠 생각도 하지 않고 속삭였다.

그 순간 레오의 마력이 공기 중에 짙게 퍼져, 숨이 턱 막혔다. 동의도 없이 마력을 공기에 채우는 것이 그리 예의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래야 했다.

율리아까지도 엘리아스를 흘끗 바라보고서는 다시 정면으로 눈을 돌렸다.

[이는 우리 제국2교육원의 다시없을 쾌거이자 영광입니다. 프리드리히 황제 폐하께서는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학생 마법사들이 제국의 안전을 우선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하셨으며, 현직 마법사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우리 학생들의 실력에 크게 감탄하셨습니다. 우리 대표팀 에스체트는 10일부터 황실 소속으로 변경되며, 이에 따라 월요일인 12일부터 황궁에서의 출범식을 통해 첫 대외 활동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제국2교육원 학생들의 뛰어난 능력과 열정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교수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끝났다. 그가 우리를 향해 반쯤 돌아, 손을 펼쳤다.

[제국2교육원 대표팀에게 큰 박수 보내 주십시오.]

곳곳에서 희미한 박수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내가 선 자리가 잘게 흔들릴 만큼 커졌다. 이곳에 와서는 들어본 적 없는 커다란 함성과 손뼉 소리가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목소리가 끝에서 들려왔다. 울리케의 감탄이었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이깟 망할놈의 학교 진작에 자퇴했어야 했는데.”

엘리아스의 살기 어린 목소리가 울리케의 감탄을 끊었다.

모든 걸 묻어 버릴 기세로 맹렬히 들려오는 소음 속에서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제는 엘리아스의 살기를 띤 마력이 레오의 마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맨 끝에 서 있던 하이케가 입가를 누르고 휘청거렸다. 한참 앞에 서 있던 교수도 그 기류를 느꼈는지 당황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레오가 엘리아스에게 손을 뻗으려 할 때, 나는 입을 열었다.

“엘리.”

엘리아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을 보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살기와 달리 표정은 완전히 고요했는데, 그 괴리 탓에 더욱 오싹함이 더해졌다.

그가 이렇게 굴 만도 했다.

그는 평생 황제에게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소설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황실 마법사연합회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

자존심 상하게 황제의 아래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이것이 엘리아스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이유였다.

늘 그렇듯이, 그런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었다.

마법은 권력의 기반이다.

황제 아래 종속된 마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강한 황권을 상징한다.

강한 마법사들이 알아서 황실로 기어 들어오는 것, 그것이 황제와 황가가 바라는 그림이다.

엘리아스는 그것을 깨부수려 했다. 그는 황제의 이름으로 인정받지 않아도 마법사들이 각자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원했고 그것을 실현해 황권을 약화시키고자 했다.

그럴 기회를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박탈당했다.

모두가 기뻐하는 상황에, 그만큼은 절대로 기뻐할 수가 없다.

나는 푸른 불처럼 타오르는 그 형형한 눈을 보며 정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해 보자.”

이미 이렇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한번 끝까지 가 보자고.

그의 눈동자가 한번 일렁였다.

내 말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아챘다. 다시 한번 바뀐 그 눈빛에는 평소 같은 웃음도 아까의 살기도 없었다. 이제 소름이 돋을 만큼 강한 집착과 확신만이 느껴졌다.

됐다.

그에게는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집념이 있었다.

모든 것이 저번처럼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는 이번에도 승리할 것이다. 근거 없는 확신이 들자 나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엘리아스 역시 이제 레오와 율리아처럼 표정 없이 정면을 응시했다.

그 뒤로는 아무 문제 없었다.

우리는 그대로 무대 위에 서 있었고, 순서가 바뀌어 총장 대리의 상패 수여식과 축사, 그리고 폐회사가 이어졌다. 그제야 우리는 무대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동하세요.”

무대 뒤 대기실로 향하는 통로로 빠져나가자 스태프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짧은 폐회사가 끝나고, 사회자 교수가 다시 무대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흘끗 보고 대기실 문을 닫았다.

[여기까지, 제국2교육원 학생군사단 최종 발표식을 마칩니다.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교수의 목소리가 잔뜩 울리며 들려왔다.

길었던 한 달 간의 선발은, 이걸로 완전히 끝이 났다.

* * *

“이게 현실인가?”

울리케가 중얼거렸다.

제국2교육원 학군단 합격자 55명은, 11시에 있을 점호 직전 종례 전까지 학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새로 쓸 기숙사 앞으로 와 있다.

‘지금이… 10시네.’

금방 둘러보고 돌아갈 수 있겠다.

울리케가 새하얀 건물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새 기숙사 엄청 크다. 근데 너무 뒤에 처박혀 있는데?”

“우리에게 줄 용도로 만든 게 아니니까.”

레오가 답했다.

그렇다.

원래 학군단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안 쓰는 건물 하나를 치워 새 숙소를 만들었다. 결계를 넘어가면 1교육원 학군단 기숙사가 나오는 거리상의 이점 덕에 여기로 정해진 듯했다.

“하하, 좀 멀긴 해도 공기 맑고 좋네~”

나르케가 건물 뒤, 학교 결계 너머의 하천과 숲을 보며 웃었다.

그러고는 뒤돌아 물었다.

“루카스는 여전히 학교 밖에 사는 거지?”

“아마도.”

“좋겠다~ 우린 여전히 2인 1실인데.”

“그래도 4인에서 벗어난 게 어디야.”

“그렇긴 해.”

나르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학생들이 직원의 안내를 받아 위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하기에, 나는 아예 무리에서 빠져 휴게실로 향했다.

대강 휴게실 문을 뒤로 밀어 닫은 순간, 무언가 쾅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음?’

“루카….”

“뭐야.”

엘리아스가 내 뒤에 바싹 붙어 서 있었다. 그는 문에 부딪혔음에도 아무 항의 없이 따라 들어왔다.

왜 저러는지는 분명했다.

나는 휴게실 소파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괜찮냐?”

“…….”

쾅—

심드렁한 얼굴로 자리에 앉던 엘리아스가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허어엉….”

“왜.”

엘리아스는 대답 대신 테이블에 박았던 머리를 90도 돌리기만 했다. 왜인지 오싹한 광경에, 나는 그냥 고개를 저었다.

‘변경 가능성이나 확인할까.’

“난 말이지.”

다른 생각을 하자마자, 가라앉은 목소리가 아래서부터 들려왔다.

“프리드리히 호엔촐레른의 이름 아래서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그래.”

“난 큰아버지의 신하가 아니고 큰아버지의 학생도 아냐. 그 자식이 멋대로 다룰 수 있는 마법사도 아니야.”

“그래, 당연하지.”

그가 왜 날 쫓아와 이러는지 안다.

처지가 같기 때문인지, 그는 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내게 좀 더 곁을 내주는 경향이 있었다.

날 편히 여겨 준다면 나야 고맙지.

나는 턱을 괴고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아까 했던 말은 여전해?”

“그럴 리가.”

대답은 곧바로 들려왔다.

“그만둘 생각 없어.”

엘리아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양손을 펼쳐 맞대고 살짝 깍지를 꼈다. 그러고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피하는 건 내 방식이 아냐. 대신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는 있겠지.”

“음, 좋은데.”

엘리아스가 한참 가만히 있다가, 불쑥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평소의 장난기가 다시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다.

“안에서부터 뚫어 나가자고.”

나는 그 말에 미소로 답했다.

그래야지.

학교와 황실이 뭘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 황실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이용해 우리에게 무언가 새로운 누명을 씌워 합법적으로 처벌하려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통치가문 혈통 네 명에 신력 쓰는 마법사 하나를 한방에 끌어모으자는 계산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도 충분히 불순하다.

“야~ 이렇게 된 거 지원금이나 쪽쪽 빨아먹고 가야지. 호엔촐레른 금고랑 국고 털어서 바이에른 지원이나 할란다.”

“바이에른?”

“제국에서 프로이센의 최대 적수 아니겠냐~”

엘리아스가 하얀 머리칼을 대강 쓸어넘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황실 소속, 그것만 빼면 솔직히 엄청 재밌어. 이제 너랑 활동할 수도 있고, 레오랑 율리아랑도, 나르케와는 더 친해질 수 있겠지.”

“울리케랑 하이케는.”

“…뭐~ 그 애들이랑도 친해지겠지. 그리고 조례 출석만 하고 학교에 안 나가는 삶을 합법적으로 살 수 있다니? 이야~ 팀명은 좀 구려도 해 볼 만한데? 그렇지?”

엘리아스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래. 네가 생각하기에도 좀 구리냐?”

“팀명이 아베체데 같은 건데 구리지 않을 수가 있어~? 헉… 잠깐.”

“왜?”

“이제 학교 다음 팀 이름 아베체데로 지을 것 같아.”

“…….”

팀명이 ABCD라면…. 난 그냥 그 팀 안할란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꽤 높아 보이기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죽은 눈으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나르케가 눈을 빛내며 우리가 있는 휴게실을 두리번거렸다.

“얘들아~”

“일찍 왔네.”

“응, 다른 팀 애들 다 돌아가고 있어. 우리 팀만 좀 더 둘러보는 중이야. 교직원 분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레오가 지금 못 나오고 있거든.”

“마침 잘 왔다, 나르케. 학교 무슨 꿍꿍이야?! 읽어 줘!”

“그것부터 묻는 거야? 하하, 그래도 아까보다 훨씬 진정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

나르케가 내 옆에 앉아서 엘리아스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둘의 대화가 시작되자 의자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다시 눈을 떴다.

‘아까 생존 가능성 확인해야겠다고 했지.’

옆에 뜨는 포인트 증가폭을 한눈에 확인하고 싶어서 되도록 자주 확인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제는 참았던 궁금증을 풀 때가 됐다.

1월 초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생존 가능성은 30.3%.

지금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고, 학생군사단 선발부터 아브라함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형이 완전히 돌아오기까지도 6개월 반쯤 남았다.

어떻게 됐을까.

나는 묘한 긴장을 느끼며 여명 특성창을 불러냈다.

여명777

— 최종 결말 ‘Chapter X. 사망’까지 605일 13시간 57분 13초

— 변경 가능성: 45.9% (+15.6%p)

45.9%.

나는 말없이 그것을 응시하다, 절로 터지려는 웃음을 죽이며 미소만 지었다.

‘좋아.’

한 달만에 15%p가 올랐다. 30%까지 올리는 데에 4개월이 걸렸던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증가폭이다.

불이 붙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도, 한번 제대로 붙기만 하면 불은 폭발적으로 타오를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더 올랐을 거라 생각했는데.’

니콜라우스도 많이 준비되었고, 루카스도 마찬가지다.

신원의 완성도로 보아서는 이미 변경 가능성이 50%, 아니, 인간적으로 80% 이상을 찍었어야 했다.

그러나 저 Chapter X, ‘사망’의 원인은 여럿이 될 수 있다.

아인시델과 아브라함, 그리고 점조직처럼 곳곳에서 각자 세력을 키우는 다른 플레로마들. 이들이 내 생존가능성을 45%까지 깎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이전보다 급격히 값이 오른 지금, 이제 중요하게 봐야 할 건 수치가 아니라 경향이다.

적의 수준이 만만치 않은 데다 수적으로 내가 완벽하게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내 생존 가능성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는 말은….

‘승산이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틀리지 않았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내가 이미 확보한 승세를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네.’

위험이 내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하니 맥박이 점점 빨라졌다. 고조되는 긴장에 왜인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재시도라도 올려 볼까.

‘아니, 포인트가 10점 안팎이니 솔직히 위험하지.’

포인트가 모일 때까지 지금은 아끼는 게 낫겠다.

그때, 엘리아스가 눈앞에 손을 휙 흔들었다.

“루카 혼자 웃네~ 무슨 생각 중?”

“기숙사 2인 1실 안 써서 좋다.”

“아… 놀리려고 했는데 그건 진짜 부럽네.”

나는 웃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10시 50분이네. 슬슬 돌아가자.”

밖으로 나가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같은 팀 팀원들이 손짓했다.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인 나르케가 내 팔을 붙잡고 교실 앞으로 워프했다.

“…어.”

먼저 돌아와 저들끼리 대화하고 있던 2분반 학생들은 우리를 보자 조용해졌다.

정적이 당황스러워질 때쯤, 오스왈드가 몸을 뒤로 기울이며 손뼉을 쳤다.

“야, 우리 반 1팀 왔네~”

학생들이 아까의 진지한 발표식 분위기 탓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조금 난감해하는 걸 느꼈는지, 웬일로 레오가 저 호들갑스러운 말투에도 미소를 지었다.

그 덕에 긴장감이 올랐던 분위기가 한결 풀려, 학생들은 웃으며 레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2분반에서만 다섯 명 나온 게 말이 되냐?”

“1분반 배 좀 아프겠어?”

학생들이 1분반 학생들이 봤다면 상당히 열 받았을 게 분명한 표정을 지으며 깐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등수가 밀린 것에 대해서 반응이 떨떠름한 학생은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하다.

‘사실 분위기가 안 좋을 이유가 없지.’

안 좋아야 한다면 1분반이 그럴 상황이다. 합격자가 두 명뿐인 데다, 한 명은 왜 뽑혔는지 모를 학생이니까.

가볍게 웃으며 자리의 의자를 빼 앉으려던 순간, 꽤 오랜만에 듣는 알림음과 함께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띠링—!

< Chapter 6. 올바르게 행하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말라 >

[제안 2: 기한 내 호감도 +10,000 (0/10,000) (167시간 59분 59초)]

* Route 1 — < +30.0 포인트 >

* Route 2 — < 제안 3 >

음?

“…….”

“루카스 왜 그래~?”

뒤따라 오던 나르케가 내 어깨를 툭 두드리고는 자리로 나아갔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잊었다.

물론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도 믿을 수 없었다.

‘아, 시험에서 진을 너무 뺐나.’

나는 눈을 문지르고 다시 앞을 바라봤다.

[ 제안 2: 기한 내 호감도 +10,000 (0/10,000) (167시간 59분 52초) ]

‘그래, 역시 미쳤어.’

끝나면 저택에 돌아가서 치유 마법 풀떼기 속에 좀 파묻혀 있어야겠다.

나는 나름대로 개운함을 느끼고 창을 끄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똑같은 창이 다시 나타났다.

“야.”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싸매고 옆자리의 필립을 불렀다.

왜인지 또다시 나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던 놈은 어떻게 저를 부른 줄 알고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만에 0이 몇 개 있지?”

“만? 알면서 왜 물어…? 네 개잖아.”

“아닌데?”

이 시끄러운 교실 속에서 우리 둘 사이에만 정적이 흘렀다.

필립이 이제는 다른 의미로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왜… 왜 이러지?”

“…….”

현실부정은 10초 만에 실패했다.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 할 수 있지.’

그래, 10,000점 일주일 안에 충분히 채울 수 있지.

그까짓 거 못 할 게 뭔가.

나는 천천히 손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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