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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08화 (208/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08)

10,000의 0 개수가 몇 개인가?

당연히 4개다.

‘왜 아니지 시X….’

필립은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루카스를 바라봤다.

눈앞의 루카스는 마치 오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멀뚱한 얼굴로 교실에 들어와서는, 자리 앞에서 덜컥 굳더니 어느 순간 털썩 앉아 머리를 싸맸다.

그러고는 갑자기 10,000의 0 개수가 어떻게 되냐는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무식한 나라도 그 정도는 안다.

‘그런데 4개가 아니라니?’

날 놀리기 위한 수작인 건가?

아니면, 시험을 치다 뭐가 어떻게 되어버린 건가?

시험 중 오늘 쓸 운과 지력을 다 써서 돌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필립은 광인을 눈앞에 뒀을 때의 불안이 엄습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뭐가 어쨌든 루카스와는 엮이지 않는 것이 좋다.

“하… 하하, 하….”

천천히 고개를 든 루카스는 이제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필립은 소름이 끼쳐 반사적으로 옆에 앉은 플로리안을 바라봤다. 플로리안도 당황한 채 루카스를 보고 있었다.

이 기행을 지켜본 이가 없나, 더 살폈지만 필립 자신과 플로리안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루카스가 특유의 감정 없는 눈을 하고서 중얼거렸다.

“…충분해. 도전은 해 볼 만해….”

뭘 말하는지 모르지만 도전하게 두면 안 될 것 같다.

‘아, X발 그냥 다 모르겠고 나한테 말 거는 거 보니까 오늘 잘못 걸렸다.’

매일 말없이 노트필기만 주고받는데 가끔 이렇게 대화를 시도할 때가 있다. 물론 루카스는 괜찮은 놈이지만—내가 2차 훈련 때 운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해온 짓이 있으니 종종 안 괜찮아질 때가 있다.

‘그러니….’

종례고 자시고 그냥 짼다.

필립이 어두컴컴해진 얼굴로 가방을 뽑아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무언가가 왼팔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허억…!”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경악에, 학생들의 시선이 필립에게 쏠렸다.

루카스가 아까의 광기는 온데간데 없는 맑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필립.”

“아, 아니….”

“어디 가려고? 앉아. 곧 교수님 오시겠어.”

“…….”

필립은 더 대꾸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평소의 무심한 목소리 그대로지만, 왜인지 묘한 온화함이 느껴졌다. 분명히 뭔가가 있다. 필립의 경계심이 극한까지 올라갔다.

“필립.”

나지막한 부름에 필립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루카스는 딴청을 피우는 필립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 여전히 날 어려워하는구나.”

“…….”

기가 찼다.

어려워하지 않을 수 있나?

제국 최고의 대학에서 레오나르드를 제치고 루카스를 이 시험의 1등으로 꼽았다. 그뿐인가? 황실까지 그를 두팔 벌려 환영했다.

표정이나 말투로 보아서 루카스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의 황실 마실 가는 수준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란 말이다.

루카스는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의 행로를 그대로 밟고 있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그 자신이 의식하지 않아도 상대를 이끄는 힘이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잘 모른다. 그저 어른들이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을 두고 하는 말로는,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회를 창조하는 것, 그게 바로 지도자의 자질이며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이 그 능력을 가졌다고 했다.

중계 영상을 보고 나서 느낀 건, 솔직히 다른 건 모르겠고 이번 1-3팀의 3차 시험은 루카스가 이끈 시험이었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했던 말을 여기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황제가 원하는 마법사.’

내 발밑에 있던 그 찌질한 놈이 이제는 황실까지 눈독들이는 그런 마법사라니.

내 옆자리에 있지만 그는 나와 다른 세상에 있고, 앞으로 더더욱 그렇게 될 테다.

거리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전교생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똑같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을 거다. 1팀 전원에게, 그 중에서도 특히 1등이었던 아스카니엔에게 말이다.

그런데 거리감을 느끼냐니? 본인은 지금 본인의 업적이 자랑스럽지 않은가? 본인 스스로도 기세등등해졌을 테고, 이제는 반 친구들이 바보처럼 보일 텐데 이걸 묻는다는 건….

그때, 한 순간도 눈을 돌리지 않고 필립을 관찰하던 루카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내가 널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하지는 않고 좀 어이없긴 하다. 아무래도 찔리는 게 많으니 불편하겠지. 난 널 그렇게까지 용서하지는 않았고 너의 지난 행동이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늘 떨칠 수가 없는 데다 지금도 네 인성과 자존감 수준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만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됐으니 얼굴 보고 지내는 동안에는 관계를 원만히 쌓아 보고 싶거든.”

“어? 천천히 다시 말해 봐.”

“필립.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대학 때까지 계속 볼 거잖아. 그러니까….”

그러기로 했나?

분명 아스카니엔이 일방적으로 ‘그러려고 생각했다’고 말한 적은 있었는데.

물론 그것에 대한 고민은 잠시였다. ‘그러니까’라니.

내게 무엇을 말하려고 이 말 없는 놈이 이렇게 길게 밑밥을 깐 건가. 분명히 뭔가가 있다.

전에도 분명히 날 용서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혹시….

‘설마 이제 나한테 복수할 시기가 온 건가?’

황실에 들어가기까지 했으니, 나 같은 놈을 매장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하니 이제 슬슬 죗값을 치러? 아니면 이 자리에 남겨 주는 대신 따까리 노릇이나 해?

필립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렸다.

필립의 표정을 관찰하며 뜸을 들이던 루카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1학년 때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자신있고 여유로운 미소가 지어졌다.

“2팀 축하한다.”

* * *

필립은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를 늘어뜨리며 나를 바라봤다.

꼭 시간이 멈춘 듯한 표정이었다. 필립이 한참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삐걱거렸다.

“…그, 그래. 본론은?”

“무슨 소리야. 많이 피곤해?”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을 이었다.

“비록 같은 팀은 아니지만, 앞으로 같은 제국2교육원 학군단으로서 잘 해 보자.”

“…….”

“우리 계속 볼 건데 이 정도 인사는 괜찮지?”

“…어, 물론이지….”

필립이 잠깐 얼굴을 찡그렸다가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

나는 잘됐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 방금 혼자서 엄청난 번뇌를 겪었는데.’

표정에서 읽힌다. 마치 내가 통찰 능력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 번뇌를 입 밖으로 냈다면 저번처럼 내가 넌 줄 아냐고 하려 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그때, 필립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염치없지만 잘 부탁해.”

“음?”

띠링—!

[호감도 +2]

‘…쉽네.’

이제 좀 다루는 법을 알겠다.

이전에 놈의 호감도가 3점이었으니, 지금은 5점인가.

다같이 모인 장소에서 버려지는 시간을 활용해 조금씩 모아 둘 필요는 있겠지.

그럼 이제 놈을 부른 진짜 목적을 말할 때다.

나는 0.0002% 채워진 제안 창을 날리고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필립. 2팀에서도 지금처럼 조용히 생활할 수 있지?”

“…갑자기?”

“갑자기라니.”

더 설명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응시하자 필립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

놈도 내가 뭘 말하는지 눈치챈 게 분명하다.

눈치를 챌 수밖에 없지.

변하는 얼굴색을 구경하는 재미가 꽤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거겠지? 학교 위상이나 떨구는 기부입학생이라고 내게 별 짓을 다 하던 네가 이제 와서 제국2교육원의 이름에 먹칠할 리가 없지.”

“…다, 당연하지.”

필립이 눈을 굴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격려의 의미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걸로 멜빈이 팀에서 괴롭힘 당할 가능성은 꽤 낮아지지 않았을까. 필립이 헛짓을 하면 학기 초 떼어 놨던 소견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놈의 징계위를 열 생각이다.

필립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러면서도 호감도가 낮아지지는 않았다. 이제 놈에게 내가 어떤 위치로 자리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끼익— 드륵—

앞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잔뜩 떠들던 학생들이 입을 헙 다물고 앞을 바라봤다.

줄어들었던 목소리는 금세 다시 커졌다.

“교수님!”

“어어?!”

몇몇 학생들이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주일 전보다는 좀 더 안색이 좋아진 우리 반 교수가 학생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2주만이지요?”

* * *

내게는 일주일만이었다.

돌아올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니 더 반가웠는지, 학생들은 교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더 커진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좀 놀라운 건, 교수님이 날 보자마자 호감도 2점을 줬다는 점이다.

요하네스 론

호감도 +8 [공략 가능 (4단계/5단계)]

그렇게, 이제는 8점이 되었다.

그 갑작스러운 반응이 의아해 4단계 창을 열었으나 나타난 건 물음표 뿐이었다.

체계가 그의 생각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론 교수님 스스로도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신기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내 앞에 선 학생의 질문을 들었다.

“학교는 매일 출석하는 거야?”

“글쎄, 조례 정도는 매일 나올 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도 최소 학점은 채워야 해서, 가끔 수업 들으러 와야 해.”

“그렇구나. 야, 진짜 좋겠다…. 그럼 난 이제 곧 점호니까 들어갈게. 황실 입성 축하해~”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금 나와 대화한 학생은 우리 반에서 한두 번 대화했던 학생이었다.

‘호감도 1점 고맙다.’

저번 호감도 수급 미션 때 알았던 것이지.

웃으면서 살가운 말투를 쓰기만 해도, 호감도가 음수였던 친구들은 내게 쉽게 점수를 준다.

사실 당연한 말이다.

딱히 근거는 없지만 막연한 꺼림을 가지고 있었던 학생들은 내가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기만 해도 그 반감이 어느 정도 풀렸다.

별 생각 없던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저렇게 1점이나 2점씩 툭툭 주기도 한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루카스!”

“울리케.”

“너도 애들한테 붙잡혔어? 종례 끝난지 30분 넘었는데 왜 아직 여기 있어~”

울리케가 살짝 피곤한 얼굴로 가방을 둘러멘 채 서 있었다. 놈도 나처럼 학생들의 축하 인사를 들어주다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다 그렇지, 뭐. 이제 적당히 들어가자.”

“그래. 그나저나, 루카스.”

“응?”

울리케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처음으로 같이 시험 쳤던 게 마법약 실험대회 때였는데. 기억해?”

“기억하지.”

“그냥 한번 시험 치고 끝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계속 같이 활동하게 되니까 기분이 묘하네. 오늘 시험 진짜 즐거웠어.”

“나도.”

그외에 딱히 할 말은 없었기에 그냥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제대로 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띠링—!

호감도 +1

창에 나타난 정보와 달리, 울리케는 아무 표정 없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그의 말을 기다리다 어깨를 으쓱였다.

“왜?”

“아니, 나 지금 이런 표정 처음 보는데? 옛날엔 분명히 맨날 죽상이었는데?”

“별 걸 다 기억하는구나.”

“기억 못하는 사람 없을걸? 생각보다 인상이 좋네. 아무데서나 웃지 말고 이제 빨리 들어가~”

“뭐, 그래. 내일 보자.”

나는 손을 흔들고 울리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건 뭐 합격 인사만 나눠도 1점씩 주네.’

그렇게, 지금까지 총 35점을 모았다.

이처럼 쉬울 수가 없다.

‘내가 모아야 하는 게 10,000점만 아니면 말이지….’

헛웃음만 난다.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한 달 만에 나타난 포인트 30점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으니까.

저번에는 호감도 500점에 포인트 25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호감도 10,000점에 30점이지.

이 체계가 두 눈 다 뜨고 있는 내 코를 베어갈 생각인 것인가? 꼬우면 빠지든가 마인드인가? 아니면 호락호락하게 주지는 못한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제는 분명하다.

이 요구는 전과 다를 게 없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개개인보다 대중에 집중해야 할 뿐이다.

이제 루카스 아스카니엔 신원의 활동 무대가 베를린 전체로 넓어지게 됐다. 10,000점이라는 숫자는 나의 활동 범위에 맞춰 넓어진 것이다.

결국 불특정다수의 환심을 사라, 이 말이지.

그런 것이라면 이미 자신 있다.

“갈까?”

나는 저 멀리서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나르케에게 다가갔다.

나르케가 내 손을 잡고 워프하는 동안에도, 나는 눈을 감고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만만하게 봐선 안 되겠지.’

학교의 1,000여 명과 베를린의 2,000만 명은 규모부터 다르니까.

그래도 다행히 기회는 있다.

“아, 맞다. 내일은 6시에 찾아올게. 괜찮지?”

나르케의 말에 눈을 뜨니, 어느새 저택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아.”

“하하, 오늘 시험 쳤는데 내일부터 바로 출범식 준비라니 좀 너무하네.”

나르케가 웃으며 나를 저택 안으로 이끌었다.

월요일인 12일에 에스체트 출범식이 있다. 거기에 2월 12일 출범식 저녁부터 13일 아침까지, 제국2교육원 학생군사단 참가자 전원을 대상으로 축하연이 열린다.

‘좋아.’

전에 경험했던 룰이 그대로라면, 이 호감도 제안은 내가 쉽게 접근 가능한 범위에 있는 인간들의 호감도 변화만을 포착한다.

바덴에 있는 사람이 내 기사를 보고 좋은 인상을 가졌다고 해서 10,000 안에 카운트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수도의 수많은 인간들을 직접 만나는 출범식 날을 이용해야 한다.

“어어?”

그때, 저택의 내 방 문을 연 나르케가 놀란 웃음을 지었다.

“어, 얘네 이제 왔네~”

“왔어?”

엘리아스가 술병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 뒤에 바로 한숨 섞인 인사가 들려왔다. 레오는 이미 포기한 얼굴로 멀찍이 앉아 있었는데,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방 테이블에 처음 보는 술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너희 어쩌려고 30분이나 늦게 왔어~”

“30분이나? 아직 11시 30분이다.”

“그래. 술 마실 시간이 고작 6시간 30분밖에 남지 않았잖아.”

“…….”

정말 우리는 6시간 30분 동안 깨어 있어야 했다.

엘리아스의 의도대로 내내 술을 마신 것은 아니었다.

‘술 마실 시간이 있으면 상황 분석이나 해야지.’

아마 체계는 심심해서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과 같은 상황이라고 해서 안일하게 있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새벽 6시.

왜 내게 그런 제안이 왔는지, 나는 그 필요성을 통감했다.

[루카스 아스카니엔, 안할트 공국 계승 2위 황실 입성]

[제국2교육원 대표팀 ‘에스체트’ 10일 출범]

[‘플레로마를 제국의 수호자로?’ 베를린 반플레로마연합회, 제국2교육원 맹비난]

[‘아직 확인 되지 않은 것 많아… 사상 검증 필요’ 베를린 김나지움교사연합회 우려 표명]

[안할트교육인노조 “제국2교육원 결정 용납 불가”]

미리 사 두었던 오늘자 제국신문과 각종 지역지에 마력으로 입력한 글씨가 빠르게 적혔다.

‘음.’

역시나.

문제는 이렇게 되면 이번 제안은 그냥 날려야 한다는 점이지.

내가 말없이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자,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엘리아스가 상황을 눈치챘는지 벌떡 일어나 내 신문을 빼앗았다.

“…아~ 이 인간들 또 왜 이럴까. 분명히 전에도 똑같은 반응을 봤는데?”

“하하, 그러게….”

엘리아스 옆에 앉아 있던 나르케가 난감한 얼굴로 신문을 읽으며 내 안색을 살폈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이야.”

“응?”

“오래 안 가. 엘리 네 말대로 이미 전에 한번 소모된 주제거든.”

그 말이 태평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엘리아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불씨 끄기 전까지는 알아서 꺼질 리가 없을 텐데, 루카.”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 좀 다른 방법을 써볼까 한다.

언제까지고 내가 발로 뛸 필요는 없다.

살갑게 사람을 대해 호감도를 얻는 것, 좋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언제까지 내 태도로만 때워야 하는가?

다른 도구가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런 날이 올 것에 대비해, 아직 사용하지 않은 패가 하나 있었다.

나는 출범식 준비에 앞서, 자료를 모아둔 파일철을 챙기고 다시 학교로 이동했다.

처음 오는 교원 숙소였다.

똑똑—

“스테판 트라우트 교수님.”

토요일 오전 9시.

나는 트라우트 교수의 숙소 문을 두드렸다.

“루카스 아스카니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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