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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09화 (209/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09)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문고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교수님.”

똑똑―

“안에 계신 것 압니다.”

[…….]

한참 뒤, 문이 열렸다.

신경질적이고 피로한 인상의 중년 마법사가 나를 반겼다.

사실 반겼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인사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트라우트가 잔뜩 쏘아댔기 때문이다.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내가 학생과 면담 약속을 잡은 적이 있던가? 주말 아침부터 연구실도 아니고 교원 숙소에 찾아오는 건 대체 무슨 경우지요?”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게 교수님의 도움이 꼭 필요해서 이렇게 실례인 걸 알면서도 찾아뵀습니다.”

이제야 트라우트가 의문스러운 눈을 하고 미간을 좁혔다. 당연하게도 여전히 언짢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발로 뛰는 인간 공략에는 한계가 있다.

체계는 내게 뭘 바랐을까. 학기 초 업데이트된 ‘공략 가능’ 기능으로 보아서 체계는 내가 별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 대체 내가 살면서 언제 그런 종류의 게임을 했다고 이런 고난을 주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체계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원래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체계의 의도와 반대로 움직일 생각을 하니 왜인지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진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트라우트가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문을 닫으며 말했다.

“내가 나가지요.”

* * *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칭호: 니콜라우스 경

체력: +4.0 (+0.4) [+7.0]

정신력: +4.3 (+1.3)

마력: ?

기술: +5.1 (+0.3) [+8.1]

인상: -5.8 (+1.2) [+3] [+8.126]

행운: +5.0 (+0.8)

특성: 여명777, 신력, 매력 (Lv.5), 재시도 (Lv.3)

상태창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때가 2주 전 예술제 때였다.

나는 온통 새하얀 트라우트 교수의 연구실에 앉아 상태창을 읽어 나갔다.

‘전부 많이 늘었네.’

이제 체력도 정신력도 제국2교육원의 평균 수준에 도달했고, 기술은 평균을 넘어섰다.

‘어쩐지 시험에서 마법이 더 잘 나가더라.’

지금 중요하게 봐야 할 건 인상값이다.

2주간 1.2점 올라, 이제 전국의 인상값은 -5.8.

-9.9에서 탈출한지 한달쯤 되었지만 저 후한 숫자를 볼 때면 늘 느낌이 새롭다.

그리고 학교 인상값은 2점 올라, +3이 되었다. 지난 2주간 대외 활동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았던 니콜라우스 역시 0.1점 올랐다.

비교해야 하니, 잘 기억해 둬야지.

그때, 연구실 저편에서 트라우트가 귀찮은 목소리로 물었다.

“커피?”

“아뇨.”

트라우트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 신발을 끌며 제 자리에 털썩 앉았다. 한 손에 그야말로 까만색인 커피를 든 채였다.

“교수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들어준 것 없습니다.”

“이렇게 나와 주셨잖아요.”

나는 적당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썩 좋은 대답은 아니었기 때문에, 트라우트는 지금 꼭 골치 아픈 일거리를 보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물론 골치 아프기는 해도 그는 나더러 ‘도울 생각 없으니 가라’고 하지 않았다.

숙소까지 와서 징징거리는 학생이 무슨 고민을 가졌는지 들어 주려는 호의인가?

아니.

‘쫓아낼 수 없는 것에 가깝지.’

이쯤에서, 내가 왜 트라우트를 찾아야 했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스테판 트라우트는 내 방에 워프 마법이 걸린 다음 날, 마법학과 교수진의 긴급회의에 난입해 내게 결백하다고 말할 것을 종용했다.

‘이 모든 일의 죗값을 아스카니엔에 돌리려는 것이냐. 루카스 아스카니엔의 기질이 얼마나 잘못되었든, 남의 피를 먹든 말든, 플레로마에 접근하지만 않으면 그 약을 구할 방법이 없다. 그렇지 않냐.’

이것이 그가 했던 말이었다.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에게 충성을 맹세한 그가 왜 그래야 했을까? 왜 나를 그토록 못마땅해하던 자가 왜 추락을 바라기는커녕 내 결백을 바랐을까.

다각도로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내 입장에서 트라우트는 적이지만, 거기에 집중하면 본질을 볼 수 없다.

트라우트는 왜 내게 감시인을 붙였고, 왜 마법약 실험대회 때 실험실 문을 잠갔을까.

내가 마력을 쓰는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마력을 쓴다는 건 형이 내게 먹이는 약의 성능이 다했다는 말이고, 그건 즉 코어의 고삐가 풀렸다는 말이다.

코어가 정상 범위로 돌아갔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내 기질이 나도 모르는 사이 발현되어, 사람의 피와 마력을 모조리 말려 죽일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트라우트가 가장 경계하던 것이다.

내가 사람을 죽이면 루카를 사람답게 키워 보려 노력했던 형의 평판이 바닥까지 떨어지게 된다.

형에게 줄을 댄 트라우트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제 분명해졌다.

트라우트의 목표는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게’ 나를 감시하는 것이였다.

그렇다면, 언론플레이가 심화되어 모든 언론이 나를 플레로마로 물고 늘어지는 지금, 표면상 나를 사회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형은 무엇이 되는가?

이제 트라우트와 내가 공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 어떤 공통점도 없었다면 그를 감방에 처넣는 것 외의 선택지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처음부터 내 좋은 도구가 되어 줄 싹을 보이고 있었다.

남은 건, 그를 구슬리는 것뿐이다.

그때 트라우트가 김이 나는 커피를 바로 입에 들이붓고 말했다.

“출범식 연습이 시작됐을 텐데.”

“예. 그래서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무슨 일이길래 주말 아침부터 날 찾아온 겁니까?”

나는 가져왔던 파일철 사이에서 신문을 꺼냈다.

“확인하셨겠지요.”

루카스 아스카니엔을 경계하는 신문 기사들이 그의 앞에 놓였다.

내 말투가 썩 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트라우트가 눈썹을 올렸다.

“그래요, 확인했습니다.”

“사실과 다르게 신민들은 내가 사회에 해악을 끼칠 것을 우려하는 듯합니다.”

트라우트가 미간을 좁힌 채 나를 바라봤다.

약간은 뜬금없게까지 느낀 모양이다.

물론 그렇겠지. 내가 그와 이런 대화를 할 사이인가? 제대로 인사도 나눠 본 적 없는, 사실상 초면이나 다름없는데.

나는 웃음기 없이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는 종교도 마법의학도 치료하지 못한 내 기질을 위해 직접 전국을 돌며 약을 구해오셨습니다. 그게 이제 10년도 넘었군요. 그 정성 덕에 나는 지금 건강한 코어로 살게 되었는데, 신민들은 형님의 노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아니, 토요일 아침부터 이 얘기 하려고 나를….”

나는 의아한 얼굴로 항의하려는 트라우트의 말을 잘랐다.

“나는 평생 형님께 은혜를 입어 온 사람으로서, 형님의 노력을 폄훼하는 이런 기사를 두고볼 수 없습니다.”

트라우트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차관 각하께 분명히 실례이지요. 학생에게도 그렇고요. 그런데 뭡니까? 내게 갑자기 이런 말을 왜 하는 거지요?”

“내가 뭘 부탁하는지 알지 않습니까?”

트라우트는 대답하는 대신, 그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하는 나를 보며 눈가를 좁혔다.

“교수님께서는 참으로 발이 넓으시더군요. 교수님이시라면 충분히 우리 가문에 쓰이는 누명을 벗겨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트라우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말뜻을 파악한 트라우트가 눈으로 욕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시죠. 내가 아스카니엔에서 후원을 받았다고는 해도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의무까지는 없습니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형에게 줄을 댄 자가 내게 호의적일 리가 없지.

하지만 포기하기는 이르다.

“말은 끝까지 들으셔야지요. 남의 동맥에 저주술을 걸다니, 좀 놀랍더군요.”

“…?”

자리에서 일어나던 트라우트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했냐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채 나를 내려다봤다.

“고작 용의자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교수님께서는 마법약 실험대회 날 나를 실험실에 가둔 범인이 누군지 아시지요.”

“…….”

“아무리 생각해도 위르겐 벡 씨가 나를 음해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아서 좀 더 면밀한 수사 기록을 요청했습니다. 수사국이 전하기를, 위르겐 벡 씨의 입에서 교수님의 성함이 나왔다고 하지 뭡니까?”

나는 양손을 맞잡은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의 얼굴은 이제 평정을 잃고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아스카니엔의 후원을 받아 교수직까지 얻어낸 마법사가 아스카니엔을 방해한다? 형님께서 아시면 참 놀라시겠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아스카니엔의 안전을 위한 거지….”

“안전? 우리 형님께서 동생을 실험실에 가두라 명하신 건 아닐 테고.”

이건 사실이다.

그때도 생각했던 것이지.

아드리안 아스카니엔은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동생의 기질이 다시 발현될까 두렵다’는 뉘앙스의 편지를 보낼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을 대놓고 명령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그 의심병과 완벽주의로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 불가능하다.

“당신이 형님의 줄에 섰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님께서 고등학교 마법약 실험대회 우승 따위에 공작위 계승권을 빼앗길 것 같으며, 내가 아버지나 다름없게 여기는 형님의 자리를 빼앗을 거라 믿습니까? 또 형님께서 일곱 살이나 어린 동생을 그런 식으로 경계하실 분이라 생각합니까? 하하, 형님께서 이걸 아시면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물론 이런 이유로 날 실험실에 가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정된 범위의 나라면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만하고, 트라우트 역시 자신의 진의를 납득시킬 수 있는 변명거리가 없다.

트라우트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했다.

나는 그것을 구경하며 말을 이었다.

“참 모욕적이군요. 나에게나 형님께나 말입니다.”

“…그, 그러려던 게 아니라….”

“나를 믿지 않는 것은 그렇다 쳐도, 당신이 모시는 주군만큼은 믿어 보시지요. 아, 아닙니다. 형님이 내게 먹이는 약의 효과도 믿지 못하는 당신에게는 너무한 요구일지도 모르겠군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되셨겠군요.”

“…….”

“아시다시피 나는 나의 문제로 형님의 이름에 먹칠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형님께서는 부족한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주신 은인입니다. 이제는 내가 그분의 정성에 보답할 때가 왔습니다. 교수님도 나처럼 형님을 존경하고 계시지요. 그럼 지금 저 기사들이 얼마나 아스카니엔에 위협이 되며, 형님의 사랑을 모욕하는 기사인지 잘 아시겠습니다?”

트라우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자존심 센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동요하고 있었다.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 건 거짓이 아니다. 그는 내 말에 따를 준비가 되었다.

단,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거나, 아예 짓밟아 눌러 버릴 때에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채찍은 거둘 차례다.

“나는 교수님을 믿습니다. 이 학교에 입학하고 친구 하나 없이 죽은 사람처럼 학교에 다닐 때, 동향 어른이 같은 학교에 계시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요.”

트라우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아.’

이 포인트에?

처음으로 유의미한 반응이 나왔다.

나는 미소가 지어지려는 것을 누르고 말을 이었다.

“실험대회 날 수사 결과를 듣고서, 믿던 분께 배신당한 것만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나는 그의 눈을 응시했다.

신뢰에 죽고 신뢰에 사는 자가 분명하다. 배신당한 것 같았다는 말이 나오자, 그의 눈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살짝 방황하기 시작했다.

“교수님께서 우려하시는 바를 압니다. 나는 형님을 마음 깊이 존경하며, 그분께 해가 되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수님께서도, 나와 형님께 다시 확신을 주십시오.”

“…….”

침묵하던 트라우트가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자존심을 세우는지 나를 빤히 본 채였다.

“좋습니다. 앉죠.”

나는 웃으며 책상에 놓여 있던 파일철을 마법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적당한 페이지를 펼쳐 그에게 내밀었다.

이전에 위르겐 벡에게 ‘트라우트 말고, 정보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자들의 명단을 적으라’고 했었지.

이건 그때 얻었던 명단이다. 형의 영향권에 있는, 트라우트와 뜻이 비슷한 자들.

전부 조사할 것이니 거짓으로 적으면 안 된다고 말은 했지만 당연히 그걸 지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기에 전부 뒷조사했고, 모두 트라우트와 결이 같은 자들이라는 걸 알았다. 이들끼리의 연결도 꽤 활발했다.

“마침 위르겐 벡 씨와 트라우트 교수님 사이에 많은 인맥이 있더군요. 제국신문 정치부와 사회부에 각각 둘씩. 또 베를린 일간지 편집국장, 그리고… 심지어는 다스로테 베를린 지부까지.”

웃음을 짓고 있는 나와 달리, 트라우트의 안색은 다시 나빠졌다.

내가 종이를 넘겨 가며 그들의 인적사항을 보여 줄 때마다, 그는 침을 삼키며 표정을 풀려 노력했다.

‘그러겠지. 내가 자기 범행을 상기시켰으니까.’

직접 신랄한 말로 그의 자존심을 짓밟지는 않더라도, 그가 기세등등해지거나 복수를 준비하지 않게끔 위치를 확인시켜 줄 필요는 있었다.

나는 파일철을 다시 회수해 덮으며 말했다.

“48시간.”

“…?”

트라우트가 두려움과 불편에 전 눈을 옮겨 나를 바라봤다.

또 뭘 말할지 경계하는 눈빛에, 나는 양손을 맞잡고 입을 열었다.

“월요일 오전까지 베를린의 분위기를 정반대로 만들어 주셔야겠습니다.”

* * *

내가 살려 줬는데 이 정도 대가는 받아야지.

이번뿐이냐?

앞으로도 사골처럼 우려먹을 것이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이동합시다!”

저 멀리서 누군가 소리쳤다.

황실에 도착해 별 의미 없는 자리 바꾸기 연습만 수십 번 하고 있던 나는, 뇌를 반쯤 빼 다른 생각에 잠겼다.

오늘 새벽 6시에 나왔던 그 기사들, 어디서 많이 본 분위기 아닌가?

1월 학생군사단 시험이 처음으로 치러졌을 때의 반응과 똑같다.

[‘플레로마’는 치료가 가능한가?]

[안할트 신교 교회 연합 “플레로마가 플레로마를 처리하는 시대” 강력 비판]

[루카스 아스카니엔, 아스카니엔 가문의 유일한 활로]

[“플레로마에게 신민 맡길 수 없어” 제국2교육원의 결정에 결사반대]

이것이 지난달 1차 시험 이후 나왔던 기사다.

당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이는 당연한 결과이며, 그간 쌓인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면 그걸 더 이상하게 여겨야 한다. 어디선가 높으신 분이 자신의 의도대로 언론통제를 하고 있다는 말일 테니까.’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난국에서 어떻게 호감도 10,000점을 모을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적기다.

이미 언론은 한 달 동안 같은 주제로 지지부진하게 이야기를 끌어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신민들의 관심도는 조금씩 낮아졌다. ‘루카스 아스카니엔이 제국2교육원 학군단 시험에 참가했다’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그대로 존재하는데 뭘 더 어쩌란 말이냐?

1월 초, 신민들은 날 내쫓든지 안전을 확실히 확인하든지, 둘 중 하나를 원했다.

그러나 학교는 날 내쫓지 않았고, 나는 바이에른 마법의학센터의 검증을 받아 코어 상태가 정상임을 증명했다.

대중은 이미 들어온 자극에 금세 익숙해진다. 금세 그것을 넘어 더 충격적인 자극을 얻길 원한다.

아마도 언론사들은 내가 1등으로 합격해 황실에 입성까지 하게 된 이 소식이 바로 그 ‘그것을 넘는 더 충격적인 자극’이 될 거라 믿은 모양이다.

좋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혀야만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므로, 더 기다려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답은 나왔다.

이제 언론 통제를 할 때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출범식을 위해 우리와 연습하던 황실 의전팀장이 확성 마법을 걸고 소리쳤다.

시간을 보니, 벌써 저녁 6시였다.

“으아… 진짜 힘들다.”

엘리아스가 느적느적 걸어와 내 어깨에 양팔을 걸치고 축 늘어졌다.

“진짜 재미없어. 그렇지?”

“어.”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다 썩어빠졌지만 우리 집 밥 하나는 맛있어. 집 안 온 지 꽤 되니까 이제 생각나네.”

우리 집… 이기는 하지.

늘 그렇지만 황실을 우리 집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 것에는 딱히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떨떠름한 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엘리아스뿐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진이 다 빠진 얼굴로 흩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아침 7시부터 황실 별관에 도착했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여기에 도착했다. 나는 아직 쌩쌩하지만 친구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엘리아스가 쉬는 시간마다 하이케와 포커를 쳤네 뭐네 하는 잡담을 늘어놓다가, 등 뒤에서 내 얼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외쳤다.

“그러고 보니까 루카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너 없어서 심심했다고!”

“교수님께 하나 더 시킬 게 있어서.”

“시킬 거?”

“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서 뛰어오는 나르케를 바라봤다.

“루카스!”

“음?”

잘 보니 손에 신문 뭉치를 들고 있었다.

뛰어 오지 말라고 말하려던 순간, 놀랍게도 신문이 먼저 내 발치에 떨어졌다. 나르케가 신문 먼저 워프시킨 게 분명했다.

엘리아스가 잽싸게 제국신문을 먼저 주웠다. 그가 1교육원 학군단 이야기가 적힌 1면을 제치고 신문을 뒤적거렸다.

“어.”

바로 뒷장으로 넘기자마자, 지면 곳곳을 차지한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루카스 아스카니엔, 제국2교육원 학생군사단 최종 선발 결과 1위]

[황실 마법사 연합회, 루카스 아스카니엔 결격사유 없어… “완벽히 적격”]

[루카스 아스카니엔, 아드리안 아스카니엔 전철 밟나]

[카를 라이츠베르크 제국1교육원 명예교수 “루카스 아스카니엔, 마법사로서 최고의 잠재력 지녀”]

“…….”

오늘 아침 6시와는 꽤 다른 문구.

엘리아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차음 마법을 치고 내 등을 팍 두들겼다.

“야~ 니콜라우스가 끼기 어려운 상황 아니었나? 루카스 신원으로 언론까지 만졌어?”

“그렇게 됐다.”

“그러니까. 잘됐다!”

어느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까지 뛰어 온 나르케가 웃으며 나와 동시에 대답했다. 차음 마법 바깥에 있어 우리 대화를 듣지 못했을 텐데, 그냥 통찰로 읽어 낸 듯했다.

엘리아스가 나르케까지 같이 차음 마법 범위 안에 넣어 주며 말했다.

“근데 그 교수 1면까지는 못 땄네.”

그렇다.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영향력 있는 인간이었으면 구치소에서 내 도움 없이도 나왔겠지. 물론 황제가 넣은 사람을 뺄 만한 영향력을 가진 자가 대체 몇이나 있겠냐마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1면에서 내 욕 내려간 것만으로도 이득이야.”

신문 의존도가 높은 만큼, 굳이 1면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건 여기서 끝이 아니다.

* * *

같은 시각, 베를린.

평민들이 주로 오가는 술집에서, 누군가 일행들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런 사람을 1위에 올린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요. 1위 할 성적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소문이 도는 사람을 합격시킬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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