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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214화 (214/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214)

공략 불가능 대상인 하이케는 내게 호감도를 스스로 준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야.’

나와 봐라. 이게 뭔 모순이야?

공략이 불가능하다면서 저놈은 내게 호감도를 왜 주는데?

[……]

창이 앞에 뜨긴 했으나 아무런 문구도 적히지 않았다.

그때, 이전에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 퍼뜩 스쳤다.

[나는 널 멋진 팀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부리는 오기일 뿐, 내가 진정으로 느끼는 인상이 아닐 수도 있겠지. 물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마저도 너에 대한 선호에서 시작한 건지, 나도 한번 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다는 집념에서 시작했는지 모르겠어.]

하이케 아인시델이 내게 했던 말이다.

당시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의 감정 결여가 호감도를 주지 않는 것과 직결되었는지는 모르나, 매사에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부류라면 충분히 영향이 간다. 잘 퍼 주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오를 가능성도 있다는 거 아닌가. 물론 그것도 그것대로 의문스럽다. 공략 불가 대상의 호감도를 적어 놓는 게 일반적인가? 호감도를 올릴 수 없으니 공략 불가 아닌가. 아니면 엔딩이 없어서 공략 불가인가?’

이제 알겠다.

하이케의 호감도는 자의로 오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공략 불가능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첫째, 이놈의 체계는 만능이 아니다.

공략 불가능이라면 대상의 호감도가 오르는 것을 방지했어야 한다. 하지만 왜 그러지 못했는가?

시간을 돌릴 능력을 가졌으면서, 남들의 호감도를 6점씩이나 올리는 능력을 가졌으면서 왜?

‘젠장. 이걸 나르케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둘째, 경고쯤은 하되 내게 높은 자유도를 주었다.

그렇다면 아예 악역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놓지 왜?

능력 부족인가, 내게 자유의지를 허용한 결과인가.

‘지금 당장 합리적인 쪽을 고르자면, 이건 전적으로 이 체계의 능력 부족이겠지.’

그보다, 지금은 따져야 할 게 다른 곳에 있다.

“어어~?!”

내게 어깨를 붙들린 나르케가 당황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를 끌고 외진 곳으로 가서 차음 마법을 걸고 중얼거렸다.

“…너 뭔 말을 한 거야? 이게 뭐야?”

“루카스가 너랑 지금보다 더! 친해지고 싶대~ 라고 말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잖아…. 응? 뭘 했길래 애가 난생처음으로 놀이공원 온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하이케와 지난 한 달간 같이 지내 본 우리는 안다.

저건 매사에 아무 생각 없는 눈을 하고 있는 하이케에게서 보기 드문 표정이다.

심지어 웃는 것도 아니고 무표정인데 묘한 기대감이 든 저 눈빛이라니.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나르케가 뒷걸음질 치며 제 앞에 손을 흔들어 날 막았다.

“진, 진짠데~?! 진짜로 딱 한마디만 했어. 통찰 좀 썼거든. 하이케가 제일 기분 좋아할 말이 뭘까, 알아야 우리가 좀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대화하지~ 솔직히 우리가 하이케에게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

“…하이케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그거라고?”

“으응. 아, 물론 네가 나오는 이야기 중에서 말이야.”

음, 그럼 그렇지. 부담이 한결 덜어진다.

모든 걸 다 제치고 나랑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인생에서 제일 즐거운 목표 이런 생각이었으면 당장 구마 예식을 알아봤을 거다. 그럴 건덕지가 없었으니까.

내가 그를 놓고 물러나자 나르케가 날 달래듯 설명했다.

“그래도 정말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야~ 전에 하이케도 직접 말했잖아. 한번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었다고. 정보를 팔아넘기거나 우리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어.”

그를 빤히 보자 그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왠지 술에 취해 장난기가 늘어난 것 같다.

“너 능력 범위가 많이 늘어났나 보네.”

“…….”

나르케는 말없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이쯤은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 조용히 대답했다.

“다시 저절로 줄어들 거야.”

“줄어들 거라고. 왜?”

“계속 여기서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해.”

나르케가 섬뜩한 말을 하고는 미소지었다.

먼저 말해 주지 않는 이상 캐묻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는 걸 알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다.

호감도에 애스터리스크가 붙는 것은 특성이 적용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예지(Lv.2)*처럼, 특성에 붙어 있는 건 무슨 의미인가.

그건 또다른 특성이 통찰과 예지 능력에 적용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가 내게 숨기는 것이 많다는 것쯤은 안다.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게 먼저 말해 주지 않으니, 또 그가 내게 해가 되지 않으니 묻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내게 친절하다.

“나르케. 술 취했어?”

“아니야~ 난 취할 때까지 마시면 안 돼. 어쨌든… 그러니까 지금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봐. 그래 봤자 약간 는 것 뿐이지만, 저번보다는 더 정확하지 않을까?”

“…….”

상태창에 대해 묻고 싶은 생각이 솟구쳤다.

한번 물어보고, 시간을 돌릴까.

‘…레오에게는 그냥 심심해서 돌렸다고 해명하는 수밖에 없겠는데.’

당연히 구리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나르케에게 이런 민감한 질문을 하는 건 삼가자.

“내 앞날 좀 점쳐 줘.”

“아, 좋지! 근데 하이케 기다리겠다. 이따 내 방에 가서 들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가자, 우리가 갑자기 사라져서 의문스러웠는지 하이케가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미안! 루카스가 많이 쑥스….”

나는 그의 입을 한 손으로 막고 웃으며 해명했다.

“그런 거 아니고 하이케 네 반응이 평소 같지 않길래 혹시나 내가 아까 나르케에게 했던 말을 전한 게 아닐까 싶어서 물어보러 다녀온 거야. 그런데 말했다고 하네. 음… 많이 부담스러웠지?”

“아냐.”

하이케가 로봇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친구를 사귀고 싶은 거냐….’

양심이 콕콕 쑤신다.

이놈에게 해야 할 말이 정말 기분 좋은 말이 아닌데.

나르케가 우리를 연회장 위층으로 떠밀었다.

“자, 이제 가자.”

새로 들어온 손님용 휴게실은 아까 엘리아스가 쓰던 방보다 더 넓고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곳이었다.

엘리아스가 화려한 인성을 드러내며 깽판을 벌여 온 것치고는 썩 이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게 느껴진다. 그나마 그 덕에 숙청당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모조리 귄터화 시켰다는 괄목할 이점이 있었으니, 엘리아스도 이 정도의 불합리는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고보니 이제 슬슬 엘리아스가 독립할 때가 됐는데.’

굳이 황궁에 살 필요는 없는 인물이지 않은가.

황제가 그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붙들어 놓은 것이었기에, 소설에서 그는 지지도를 얻고 난 뒤에 바로 황궁에서 벗어났다.

물론 이제는 소설과 달리 졸업 전에 일이 커져 버린 데다 황실에 입성해 버렸으니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나르케는 아까 보았던 방과 꽤 다른 분위기에 당황했는지, 나처럼 고개를 휙휙 돌리고 있었다.

“음. 황실이 돈이 많구나.”

“그러게.”

하이케가 짧게 대답했다.

그는 전처럼 손에 술잔을 들고 있었는데, 다행히 여기에 리필 마법을 걸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술을 다 마시자 아쉽다는 듯 입을 쩝 다시며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얘들아. 그런데 우리만 이렇게 있어도 돼? 다른 친구들도 불러와야 하지 않을까?”

하이케가 고저 없이 말을 죽 내뱉었다. 그러나 그 눈에 담긴 기대감과 상기된 얼굴은 여전했다.

더 많은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게 분명했다.

침묵하던 나르케가 내게 신력을 써서 말을 걸었다.

—“양심이 찔려….”

—“나도야.”

그가 우리와 순수하게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건 이미 전에도 확인했으니, 오늘은 딱 하나만 확인하면 된다.

일단 다짜고짜 물으면 취조나 다름없으니 분위기부터 풀고.

나는 아까 아델베르트에게 받은 아이스크림 컵을 흔들었다.

“그런데 이 아이스크림 어디서 났어? 냉동고가 없을 텐데.”

“전에 축제 때 행정학과에서 아이스크림 부스 냈던 거 기억해? 그거 하던 냉각 마법사 친구가 또 만들어 왔어.”

“그랬구나. 허가를 받은 게 신기하네.”

“그 1학년 후배가 허가해 줬더라고~”

“아….”

아델베르트가 허가해 줬단 말인가.

뭔가 어이가 없네. 첫째는 저 옆에서 플레로마 등쳐 먹을 구린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둘째는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물론 내 입장에서는 크게 괴리를 느낄 이유도 없긴 하다. 그 둘은 닮을 이유가 없으니까.

지난 2주간 그레고리오—아브라함을 만나며 온갖 서적을 뒤지고 온갖 가능성을 뽑아내 결론지은 바에 따르면, 황태자는 이미 아델베르트의 가족이 아니다. 정확히는….

“좋다.”

생각을 이어나가며 나르케와 하이케가 나누는 잔잔한 대화를 한 귀로 흘리던 중, 예상치 못한 말이 귓가에 꽂혔다.

어느새 다시 빈 술잔을 집어 든 하이케는 술잔 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너희랑 같은 팀이 되고 싶었는데… 사실 그럴 기미가 없었잖아. 그렇다고 정원이 늘려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그랬구나.”

“우리도 하이케 너랑 같은 팀이 되어서 기뻐~ 사람 하나 더 있는 게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나르케의 말에 눈만 껌뻑이던 하이케는 뒤늦게 이럴 때 웃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미소 지었다.

“소원이 이뤄져서 신기해.”

“…….”

이놈은 전부터 낯간지러운 말을 참 많이도 한다.

우리랑 같은 팀이 되고 싶었던 게 소원이라는 말을 우리 앞에서 하다니. 나르케가 입을 다문 채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게 보였다.

나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질문을 던졌다.

“친구를 사귀어 보는 게 처음이라고 했잖아, 하이케.”

“응.”

“그럴 기회가 없었던 거야? 난 3교육원을 나오지 못해서 친구를 사귈 수 없었는데, 나랑 비슷한 상황이었던 건지 궁금해.”

“…….”

“무례한 질문이었다면 미안해.”

“나도야.”

가만히 기다리자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삼촌을 따라다니느라 친구들하고 친해질 시간이 별로 없었거든. 그리고 내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알긴 아는구나….

나르케는 나와 달리 앞선 말에 집중하며 몸을 기울였다.

“삼촌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는데, 삼촌을 따라다녔어? 많이 힘들었겠다. 나도 우리 집 어른들이랑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왜인지 공감이 되네.”

“파르네세 가문 어른들?”

“응, 맞아. 삼촌과 같이 다닌 이유가 있어?”

자연스럽게 호구조사 비슷하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역시나 하이케는 대답하지 않고 주저했다.

“아, 너무 민감한 얘기였나 보다. 우리 이거 끝나면 아침 6시인데, 그때 숙소에서 보드게임 할래?”

“좋아. 루카스도 와?”

“미안. 나는 피곤해서 조금만 자려고.”

“그렇구나.”

하이케가 그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장소의 분위기가 한결 풀릴 때까지 그들과 잡담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물어보고… 대답하지 않으려 하면 정신조작마법을 걸어야지.’

그런 뒤 시간을 돌릴 것이다.

다른 마법이면 또 몰라도, 정신조작마법은 친구에게 쓰기에는 너무 갔다. 어떤 식으로든 그런 기억을 남겨 줄 수는 없다.

설령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아예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마지막 예의다.

나는 적당히 말이 멈추길 기다린 뒤, 불쑥 물었다.

“하이케. 많이 갑작스럽겠지만, 네 고유능력 있잖아.”

그 말을 하자 하이케의 무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사람에게 써 본 적 자주 있어?”

“…….”

하이케는 그저 테이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와 나르케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을 공유할 즈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있다고?”

“응.”

“사람에게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걸로 보였는데.”

“맞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전에… 그 일 때문에 넌 내 말을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최대한 선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그때 이야기는 이미 끝났잖아. 널 믿어. 그런데 왜 좋아하지 않으면서 써 본 경험이 많은 거야?”

성향에 안 맞게 꼬치꼬치 캐묻고 있자니 벅차네.

하이케 역시 뭔가를 잘못한 사람처럼 눈만 굴리고 있었다.

한참 뒤, 그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이 내 능력으로 돈을 버셔서.”

“…….”

왜 그가 삼촌과 있으려 하지 않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쪽도 나르케와 비슷한 사례다.

나르케가 내게 눈짓했다. 사실인 듯했다.

“항상 무슨 일을 하기 전에는 날 데리고 가서 그 땅과 사람을 만지게 하셨어. 그래서 어릴 때는 삼촌과 엮인 사람 중에서 애꿎게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많았어.”

“…네가 읽은 정보를 그대로 말해 줬구나.”

나르케의 걱정스러운 말투에 하이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지. 내 능력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는 읽은 걸 그대로 말해 주지 않았어. …삼촌도 바보는 아니니 내 거짓말을 바로 알았겠지. 삼촌이지만 좋게 말해 줄 생각은 없어. 삼촌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

생각에 잠겨 있자 하이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저번 일은 미안했어. 나도 삼촌에게 물들었나 봐. 그러니까… 음, 내 말은… 이제 친해지는 데에 그런 능력을 쓰지 않을 거야.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쓰고 싶지 않아. 특히 우리 팀 팀원들에게는 절대로.”

내 물음을 ‘이번에도 내게 능력을 쓸 거냐’는 말로 알아들은 듯하다.

어쨌거나, 이 주제에 대해 그의 정확한 대답을 들었으니 됐다.

정신조작마법까지 가지 않아도 확실히 검증할 수 있다.

나르케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케의 각오가 분명하다는 뜻이었다.

말만 저렇게 하지 제게 이득되는 대로만 행동하는 놈들도 널렸는데, 하이케는 어릴 적의 좋지 않은 기억 탓에 아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래서 대화를 해야 한다.

나는 그 올곧은 눈을 바라보며 걱정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시험에서 능력을 많이 썼지. 능력에 대해서 좋은 기억이 없었을 텐데, 많이 힘들었겠다.”

“그래도 땅에 손을 대기만 하면 되는 거라 그나마 괜찮았어. 삼촌 같은 사람도 없고, 심지어 시험 중이었잖아.”

하이케가 희미하게 웃고는 제 귓가를 만지작거렸다.

아티팩트가 여럿 꽂혀 있었다.

“시험 끝나고 능력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아서 아티팩트도 맞췄어.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아, 정말 그렇구나.”

나르케가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하이케의 눈을 바라봤다.

“나도 아까 우리집 어른들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고 했지? 사실 너와 같은 이유야.”

“그래?”

“응. 어른들이 내게 늘 신력을 뽑도록 일을 시켰기도 하고…. 뭐든 그분들 입맛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으시거든.”

하이케는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 불문하고 흔한 일인가 보다. 나만 겪은 게 아니라니.”

“그러게. 흔하지~ 하극상도 흔하고 친족 살해도 흔하고, 열 살도 안 된 마법사를 데려다 가문 배불리는 데에 쓰는 일도 흔하고.”

“…….”

나는 의미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르케의 말을 들었다.

그래. 흔한 일이다. 마르코 슈라이버도 신인류는 자식을 보통 하나만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족 문제 있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네.’

안타깝게 됐다.

신인류는 구인류보다 더 계산적이다. 구인류 시대에도 온갖 기상천외한 정치적 모략과 암살극이 일어났다지만, 신인류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구인류의 후계 생산은 사랑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나 신인류의 후계 생산은 마력 증강을 통해 권력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출생은 오로지 가장 질 좋은 마력을 공수해 최적의 비율을 맞추는 것으로 이뤄진다. 거기에 피 한 줌, 신인류 사회에 의해 열등한 것으로 판정된 대부분의 요소를 제거한 표준 모형 하나까지.

그래서 루카에게 부모는 게오르크 아스카니엔만 존재하며, 굳이 두 명 꼽아야 한다면 게오르크 아스카니엔이 계약해 온 마력 중 두 번째로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다른 부모가 된다.

시작부터 구인류와 다른 길을 걸으며 나고 자라는 신인류는 가치관도 구인류와 다르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만 있었던 데다 공부만 하느라 크게 구인류와 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신인류 사회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강해지고 인간 사이의 유의미한 감정이 옅어진다.

시작부터 인간을 목적 실현 도구로 보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이케 역시 자신을 도구로 보는 집안에 정을 붙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정상을 따지라면 과연 내가 살았던 세상을 온전한 정상이라 할 수 있는가 싶지만 말이다.

나르케가 앞자리에 앉은 하이케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대부분 우리처럼 살지는 않는데 우리가 운이 그리 좋지 않았던 거겠지. 하이케 너처럼 나랑 처지가 같은 친구를 만나니 반갑다.”

“나도.”

“아~ 분위기 너무 무거워졌다! 우리 재밌는 얘기 해야 하는데. 하이케, 졸업하면 뭐 하고 싶어?”

나르케가 작게 웃으며 능청을 떨었다.

메피스토 역을 자신 있게 맡았던 경력이 있어 그런지 역시 연기에 능하다.

“엄마랑 같이 살아 보고 싶어.”

“오?”

“엄마도 날 삼촌처럼 대할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해서.”

“그렇구나.”

나르케는 아까보다 더 내면을 꿰뚫어 보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기억해 둘 만한 정보인가.’

전혀 재밌는 얘기가 아닌데 졸업하면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본 것도 그렇고.

우리가 모두 말이 없자, 덩달아 침묵하던 하이케가 입을 뻐끔거리더니 용기를 낸 듯 한마디 했다.

“…좀 뜬금없겠지만, 음, 아까 말했어야 했는데. 출동 상황이거나 내 능력이 필요한 곳이라면 도움이 되고 싶으니 언제든지 말해 줘. 이제 나도 너희 팀원이니까.”

“너희라니. 우리지.”

내 말에 하이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의 미소가 들떠 있었기에 나는 마주 웃어 보였다.

나르케가 손뼉을 치고는 완드를 빼 들었다.

“자, 좋아~ 마지막으로, 하이케!”

“응?”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 순간, 하이케가 심장을 부여잡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건 게 아니었다.

내가 개량한 공식을 나르케에게 알려 줬을 뿐이다.

나르케가 웃으며 사과했다.

“미안.”

“어? 어? 뭐지?”

하이케가 고개를 휙휙 돌려 나와 나르케를 바라보았는데, 누구 하나 설명해 줄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모양새였다.

아무렇지 않게 걸긴 했어도 역시 양심상 자유롭진 않은지, 나르케가 살짝 눈을 방황시켰다가 미소 지었다.

“난…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모조리 이 마법을 쓰는 경향이 있어.”

“…….”

이걸 이렇게 변명하네.

역시나 하이케도 상식은 있는지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왜?”

“내가 수집한 친구라는 뜻이지. 사실 친구들을 전부 내게 묶어 놔야 직성이 풀리거든~”

“너 진짜 특이하다.”

“…….”

하이케는 평소처럼 덤덤하게 대답했다.

진짜 특이한 사람이 누군데. 이렇게 반응 평온한 사람 처음 본다.

“그럼 내게만 건 건 아니겠네. 우리 팀원들한테 다 걸었어?”

“어? 이제 수집해야지. 옆에 있는 루카스에게도 이미 걸어 뒀어.”

언제?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갑자기 하이케의 눈에 빛이 돌기 시작했다.

정말 친한 친구의 증표로 여기는 모양이다.

‘마법 이름이 예속이라고는 절대 말 못 한다.’

특이 케이스였던 레오를 제외하면 전부 하나씩 걸리는 게 있는 놈들에게만 걸어 뒀던 것도 말 못 한다.

“아, 그리고 비밀이야. 다른 친구들에게는 말하면 안 돼!”

그 말에 하이케가 좀 더 힘찬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내가 클라이스트 설득해 볼게. 수집해야 한다며.”

“아아아! 아냐~ 이건 내 힘으로 수집해야 제맛이라서~”

“진짜 특이하다.”

다시 생각하지만 진짜 특이한 건 그다.

뭔가 다같이 미친 것 같은 분위기라 상식을 회복하기 위해 주제를 바꾸려 한 순간, 뒤에서 신력이 확 밀려왔다.

—Se il Signore non custodisce la città, invano veglia chi la custodisce.

“…!”

하이케는 주문 한 번에 의식을 잃고 잠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이케를 붙잡았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

그가 왼 주문은 이것이다.

‘이탈리아어….’

헛웃음 난다. 못 알아듣게 모국어를 읊어 버리네.

나르케가 평소처럼 웃으며 하이케의 등을 붙잡았다.

“아, 정말 미안하네…. 그래도 뭔가 끊긴 느낌은 없어~ 루카스 너도 느꼈지?”

“어.”

하이케와 다른 사람 사이의 연결은 없다.

무언가 연결되어 있었다면, 의식을 놓았을 때 몸에 흐르던 마력이 조금 다르게 움직이게 되어 있다.

“깔끔하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인식해 버린 정보는 좀 있나 봐. 그래서 아티팩트까지 맞췄구나.”

“우리 물건을 만졌나?”

“음, 그랬다가 자기도 모르게 읽었을 거야. 예속 마법도 걸었으니 누가 하이케를 공격하면 바로 알 수 있을 테고…. 어쨌든 이 정도면 괜찮겠어.”

나르케가 미소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결과가 어떻든 후회 없게, 최선을 다해 보자.”

“…….”

나는 그의 노란 눈을 빤히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쩐지 금방이라도 무언가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기에, 나는 부러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주제를 돌렸다.

“아, 잊고 있었는데. 내 앞날은 어때? 한번 능력 쓴 김에 같이 써 줘.”

“아, 그럴….”

나를 내려다보던 나르케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침묵이 무서워질 즈음, 나르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것도 우리가 최선을 다할게.”

* * *

하이케는 자신이 술을 과하게 마셔서 잠깐 존 줄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며 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만 마셔야 하나?”

‘보통 그런 일이 있으면 알아서 그만 마시지 않나.’

“더 마셔~”

나르케는 성직자면서 사람들이 취할 때까지 마시든지 말든지 별 관심도 없는 듯 웃기만 했다.

그나저나….

나는 차음 마법을 걸고 아까 듣지 못한 답을 듣기 위해 나르케에게 말했다.

“나르케. 그게 대체 뭔 말이야.”

“이따, 진짜 내 방으로 가서 얘기하자. 좀 길어질 것 같아. 지금 너만 엮인 게 아니고 이건….”

나르케는 웃는 것도 뭣도 아닌 난감한 얼굴로 애매하게 웃으며 말했다.

레벨 2면 아직 구멍 많은 능력인 걸 알지만, 어쨌든 한 단계 높아진 능력으로 이런 섬뜩한 예언을 듣다니?

‘아… 인생 미리 알지 말걸.’

아니다.

알아야 좀 정신을 차리지.

“그래도 최근에는 숨 좀 돌릴 시간이 있었잖아! 그렇지?!”

“원래 그래야 맞지 않냐?”

“…그건 그래….”

나르케가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그때, 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울리케가 후다닥 달려왔다.

“얘들아!”

왜인지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다 구겨진 종이를 한 장 들이밀었다.

[1학년 1팀 - 9급 폭주자 처리]

[1학년 2팀 - 9급 폭주자 처리]

[1학년 3팀 - 9급 폭주자 처리]

[2학년 1팀 (Eszett) - 펜탈론 주경기장 검문]

[2학년 2팀 - 9급 폭주자 처리]

[2학년 3팀 - 9급 폭주자 처리]

[3학년 1팀 - 9급 폭주자 처리]

[3학년 2팀 - 9급 폭주자 처리]

[3학년 3팀 - 9급 폭주자 처리]

“우리만 저거 한대!”

* * *

같은 시각, 니더작센 지방.

니더작센의 주택 3층, 거의 암실이나 다름없는 공간에서 누군가 벽에 붙은 수많은 사진과 압정을 손으로 쓸었다. 그의 시선은 베를린 지도로 옮겨 갔다.

그 자리에 한참 가만히 서 있던 마법사가 압정에 걸어 뒀던 붉은 실을 다른 압정에 연결했다.

그가 저지독일어로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내 방문을 두드리고 문손잡이를 돌려…. 아버지는 생각하신다. 바람이겠지. 어머니도 생각하신다. 바람이겠지. 아버지는….”

삐익—

마법사가 귓가에 걸린 아티팩트를 두드렸다.

곧바로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정 나왔다.]

“…생각하신다. 그냥 바람이겠지. 어머니도 생각하신다. 그냥 바람이겠지.”

[노래 진짜 엿같이 부르는군. 어떻게 그 발랄한 노래를 이렇게 범죄자처럼 부를 수 있는지 참 경이로워.]

“일정은.”

[펜탈론 주경기장 검문.]

“하하하하하!”

마법사가 종이에 무언가를 갈겨 적고 압정을 그 위에 꽂았다.

“첫 임무가 이런 일이라니? 제국의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생각인가 보네.”

[너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법사들은 전부 첫 임무로 이런 대표적인 일 하고 싶어 할걸. 특히 앞으로 한 달은 놀고먹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좋아. 내일부터?”

[내일부터. 이제…. 아!]

통화를 끊으려던 상대방이 다급히 소리쳤다.

[들려?]

“왜.”

[아스카니엔 사진 들고 나가지 마. 끝장인 줄 알아.]

“…….”

말없이 벽에 붙은 사진과 지도를 응시하던 마법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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